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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e 샤인
작가 : 처음부터
작품등록일 : 20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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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안녕. 내 이름은 강선영이야.
작성일 : 17-12-18     조회 : 272     추천 : 0     분량 : 54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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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쨍그랑.

 

 그녀의 손이 비타민음료가 든 봉투를 놓쳐버렸다. 바닥에 떨어뜨린 유리병에 신경 쓸 여유 따위는 없었다.

 

 “야! 너희 지금 뭐 하는 짓거리야!”

 

 집 나갔던 정신이 확 들어왔다. 이성을 되찾은 선영은 세차게 고개를 흔들어댔다. 이렇게 멍 때리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너무 늦게 깨달았다.

 

 비명처럼 날카롭게 등장한 목소리에 그들의 시선이 그녀에게 향했다.

 

 “보, 보자 보자 하니까, 비, 비겁하게 세 명이서 지금 한 사람 삥 뜯고 있는 거야?”

 

 사뭇 당당한 표정과는 다르게 그녀는 말을 더듬었다. 그래도 상대는 건장한 남학생 세 명이었다. 연약하지는 않지만 여자 한 명이 나서서 맞서기엔 두려움이 있었던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이건 너무 심했다. 사람꼴을 저렇게 험하게 만든 건 물론이거니와 듣기 거북한 말까지. 이 녀석들의 정신은 어디까지 쓰레기인지 가늠조차 안됐다.

 

 첫눈에 그들은 놀란 표정을 지었다. 특히 재민의 표정은 가관이었다. 그래, 이런 광경을 들키면 넌 잃을게 많을 테지.

 

 “황재민. 너. 나 알지?”

 

 사람은 정말 열 받으면 의외로 냉정해지고 차분해진다. 선영은 그런 류의 성격이었다. 새파랗게 어린 놈들을 위아래로 천천히 훑던 그녀는 기묘하고 서늘한 미소를 지었다.

 

 “어디 단체로 콩밥 먹고 싶어 환장했어? 앞으로 이 바닥에 발도 못 붙이게 해줄까?”

 

 그들의 흔들리는 눈동자를 그녀가 놓칠 리 없다. 어디, 세상이 네놈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만만한 줄 아나 보지? 그녀는 고개를 치켜들고 기세 등등하게 팔짱을 꼈다.

 

 “어디 보자, 황재민, 현정환, 정세진. 친절도 넘치시지. 친히 명찰까지 달고 아주 당당하다? 나 지금 교무실 가는 길이었는데- 같이 갈래?”

 

 입술을 깨물며 생각에 잠겼던 황재민은 의외로 주눅들지 않았다. 쭈뻣거리는 두 사람과는 달리, 미간을 좁힌 그는 눈을 가늘게 치켜 뜨며 말했다.

 

 “후- 어쩔 수 없지. 당신은 다 봐버렸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당신이 생각하는 것만큼 호락호락하지 않을걸?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아?”

 

 호락호락하지 않다. 이 녀석은 아무래도 가정교육을 잘못 받은 것 같다. 문득 재민의 아빠가 뭐 하는 사람인지 궁금해졌다. 하지만 이 쓸데없는 녀석들을 상대하기엔 바닥에 웅크린 남학생의 안위가 걱정됐다. 똥파리는 빨리 내쫓는 게 상책이다.

 

 “글쎄. 그건 관심 없고. 너 후환이 무섭지 않니? 내가 뭘 갖고 있는 지 알면, 너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닐 텐데.”

 

 그녀가 팔짱 낀 손을 풀며 입을 열었다. 어느새 그녀의 손은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

 

 “내가 몰래 숨어서 뭘 찍었는지 알아? 네놈들 얼굴 하나도 빠짐없이 나오게 찍느라 너무 힘들었어. 버튼 하나만 누르면 곧장 이 학교 홈페이지에 올라가. 너희들 이름도 한자 한자 궁서체로 올려줄게.”

 

 핸드폰을 누르는 그녀의 손가락이 분주하다. 당황한 아이들은 서로의 얼굴만 번갈아 쳐다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제멋대로 살아온 아이들, 특히나 세상이 제 마음대로 다 된다고 생각하며 살아온 아이들은 상황대처능력이 떨어지기 마련이다.

 

 네 놈 아빠가 아무리 대단해도, 여론은 무시할 수 없을걸?

 

 아직 한발 남았다. 이런 녀석들은 제대로 겁을 줘야 정신을 차린다.

 

 “당장 꺼져. 안 그러면 아주 재미있는 경험을 하게 될 테니까. 앞길 한번 제대로 망치고 싶어?”

 

 시발. 어둡게 인상 쓴 재민이 낮게 내뱉었다. 더 이상 그녀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패자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혼자서 중얼거리는 욕밖에 없었다.

 

 그녀의 협박이 먹혔다. 느릿하게 창고를 빠져나가던 재민이 고개를 돌려 그녀와 쓰러진 남학생을 흘겨봤다. 쳐다보면 어쩔 건데? 선영은 더욱 눈에 힘을 주고 그의 눈빛을 맞받아쳤다.

 

 “그 새끼가 먼저 도발한 거니까. 피차 귀찮은 일 만들지 맙시다.”

 

 그들의 모습이 사라지고 발소리가 멀어지자, 다리에 힘이 풀리는 것 같았다. 만약 몸을 한껏 웅크린 그 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았다면 바닥에 주저앉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러나 다친 사람을 두고 그럴 순 없었기에 그녀는 곧장 그에게 달려갔다.

 

 “괜찮아? 잠깐 고개 좀 들어봐. 심하게 다쳤니?”

 

 분명 정신을 잃지 않았는데도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상처 때문에 아플 텐데도 신음소리마저 내지 않았다.

 

 힘이 풀렸는지 그녀의 손이 움직이는 대로 그의 몸을 휘청거렸다. 그녀가 살펴보기 위해 그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감싸 올렸다. 그가 입고 있는 하얀 셔츠만큼 하얀 얼굴. 어디에 부딪혔는지 이마에 흐르는 피가 하얀 눈 같은 얼굴을 듬성듬성 가려버렸다.

 

 “엄맛, 어, 어떡해. 너 정말 괜찮니? 일단 일어날 수 있어?”

 

 걱정에 젖은 그녀의 목소리가 떨렸다. 다 큰 사내놈 셋이서 몰아붙였으니 멀쩡할 리가.

 

 “……괜찮아요.”

 

 자신의 두 뺨을 움켜쥔 그녀의 손을 뿌리치며 그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의외로 차분한 그의 태도에 그녀는 당황했다. 혼자 호들갑 떨었나 창피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그때, 번개처럼 스치는 기억에 그녀의 숨이 멈췄다.

 

 어, 이상하다. 낯이 익다. 누구지? 언제 한번 만난 적 있나?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레 남학생의 가슴으로 향했다. 피투성이인 교복 위, 명찰은 예외 없이 달려 있었다.

 

 <최현재>

 

 찾았다. 자신도 모르게 선영은 소리 없이 내뱉었다.

 

 

 ***

 

 

 눈처럼 새하얀 벽이 시야에 가득 들어찼다. 눈을 두어 번 깜빡이고 나서야, 현재는 그것이 천장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단박에 의문이 차 올랐다. 여기는 어디지? 내가 왜 누워있는 거지? 정신 없이 돌아가던 머릿속은 정리되지 않았다.

 

 힘겹게 고개를 돌리자 자신의 팔에 꽂힌 링거바늘이 보였다. 가습기에서 고요히 올라오는 수증기 사이로 벽의 나무틀에 새겨진 글씨가 보였다. 무슨 로고 같은데,

 

 병원이었다.

 

 꿈을 꾸고 있는 것만 같았다. 방금 전까지 분명 학교운동장 옆 창고였던 것 같은데.

 

 잠시 미뤄뒀던 기억을 더듬자, 이해할 수 없었던 자신의 행동에 후회가 몰려왔다. 결국 저질러 버렸다.

 

 상철에게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던 그는 교실로 곧장 돌아왔다. 이윽고 그가 자리에 앉자, 등뒤에서 들려오는 비웃음. 고개를 돌리자 웃음을 숨기지 않는 황재민과 눈을 마주쳤다. 그로써 확신할 수 있었다.

 

 역시, 너였구나.

 

 학기초부터 자신을 괴롭혔던 장시욱의 옆에 묵묵히 있던 재민은 그보다 더한 악질이었다. 착한 얼굴로 주변 사람들을 속이며 시욱을 말리는 척 했다. 하지만 아무도 보지 않을 때 감히 입에 담지 못할 말들로 상처를 줬다.

 

 불길한 예감은 항상 빗나가지 않았다. <프랑켄슈타인>의 주연을 탐내는 아이들은 한둘이 아니었으니까.

 

 ‘너 따위가 감히 공연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 어디서 굴러먹다 온, 근본도 없는 네가?’

 

 우리 학교에 저런 애가 있었어? 그 정도로 항상 존재감 없는 그림자처럼 조용히 지내던 현재였다. 허나 그 유명한 박상철 선생이 몬스터역으로 그를 캐스팅하자, 단번에 아이들에게 주목 받게 되어 버렸다. 상철의 강력한 추진력이 아니었다면 모두들 그 역할은 재민이 했을 것이라 입을 모아 말했다.

 

 그 자리는 원래 내 자리였어. 태어나서 한번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갖지 못했던 적이 없던 재민은 현재를 마주칠 때마다 주문처럼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넌 이제 빠져.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쥐 죽은 듯 숨어 살아.’

 

 그런 말을 듣고도 재민을 무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웃는 얼굴을 보자마자, 애써 집어삼켰던 감정이 터져버렸다.

 

 ‘박선생한테 공연 못하겠다고 말해. 그러면 그 자리는 내 자리가 될 테니까…… 대신 네가 원하는 만큼 돈을 줄게. 어때? 너 같은 애들은 꿈도 못 꿀 기회를 내가 주겠다는 거야.’

 

 말도 안 되는 이야기였다. 현재는 그 제안을 날카롭게 거절했다. 위압적이었던 재민은 걱정했던 것과는 달리 순순히 물러났다.

 

 하지만 그때 알아차렸어야 했었다. 무슨 꿍꿍이가 있을지도 모른다고 끊임없이 의식하고 조심했어야 했는데. 이제 와서 후회해봤자 아무런 소용없었다. 공연은 끝나버렸고, 피지 못한 꽃망울 같던 그의 꿈은 바람처럼 사라져버렸다.

 

 수업이 끝나자 마자 그는 재민을 불렀다. 물론, 그가 혼자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 않았다. 단순히 확인하고 싶었다. 당한 것만큼 돌려줄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런 헛된 생각은 하지 않았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이라도 있을 줄 알았다. 양심의 가책 같은, 지푸라기처럼 가벼운 마음이라도.

 

 ‘애초부터 너 같은 놈은 학교에서 받아주면 안됐었어. 물이나 흐리고 질 떨어지게 만드는 병신은 사회에서 아주 매장시켰어야 해’

 

 그 말이 날카로운 창살이 되어 현재의 가슴에 박혔다. 분노를 주체하지 못한 재민이 발로 찼던 고통과는 비할 바가 안됐다.

 

 그러다 기억의 마지막 부분이 떠올랐다.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있는 힘껏 불렀던 것 같은데. 서서히 감겨오는 눈꺼풀을 닫기 전에 어떤 여자의 얼굴을 본 것 같기도 했다.

 

 누구였지? 처음 보는 여자 같았는데. 잘못 본 건가.

 

 안경이 없어 흐릿한 시야가 답답했다. 이윽고 드르륵 소리와 함께 한 여자가 문을 열고 들어와 그와 눈을 마주쳤다. 확신할 수 없지만, 굳어있던 그녀의 얼굴이 깨어난 그를 보자마자 화색이 도는 것은 느낄 수 있었다.

 

 “어? 일어났어? 괜찮은 거야?”

 

 너무 놀란 나머지 현재의 입술이 제멋대로 떼어지지 않았다. 멀뚱히 있던 그가 몸을 일으키려 하자 그녀가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누워있어. 너 지금 많이 아파.”

 

 신음소리를 집어삼키는 그를 향해 선영은 상황을 설명했다.

 

 “기억 나니? 넌 잠시 정신을 잃었어. 다행히 크게 다치진 않았는데, 의사선생님이 인대에 무리가 갈지 모르니까 왼쪽 팔의 깁스는 당분간 하고 있어야 한대…… 음…… 그리고 아까 얼굴에 피가 묻어있어서 어디 찢어진 줄 알고 놀랬거든. 살짝 까진 거라 꼬매 지는 않아도 된다고 하고…… 그래도…… 천만 다행이다.”

 

 그는 아무런 말 없이 가만히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문득 그가 걱정됐다. 아까 일로 충격이라도 받은 걸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 나쁜 녀석들, 괘씸하기 그지없었다.

 

 “완전 미친놈들 아니야? 지들이 무슨 깡패야? 새파랗게 어린 놈들이 이런 몹쓸 짓이나 하고 말이야. 마침 교무실 가던 길인데 잘됐네. 저런 것들은 행실 하나하나 다 까발려서 콩밥을 먹여야 돼.”

 

 자신의 일처럼 흥분하는 그녀를 향해 그가 무겁게 입술을 떼어냈다.

 

 “……그러지 마세요.”

 

 “뭐?”

 

 “…….하지 마시라고요. 까발린다고 하신 거.”

 

 오히려 더 화를 내도 부족할 판에, 그는 한겨울에 내리는 눈처럼 차갑게 말했다.

 

 “오늘 본 것, 못 본 걸로 해주세요. 저는 아무렇지 않으니까.”

 

 남의 일처럼 냉정하게 말하는 그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병원 신세를 질 정도로 맞았으면서,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지?

 

 “아니, 어떻게 그래. 넌 억울하지도 않니?”

 

 “당한 건 전데 왜 그 쪽이 화내요?”

 

 현재는 울분을 토해내는 그녀가 당황스러웠다. 원래 이렇게 오지랖이 넓은 사람인가.

 

 ”이건 제 일이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선영은 빈정이 상해버렸다. 구해줘서 고맙다는 말도 아직 못 들었는데. 무슨 애가 이렇게 쌀쌀맞아?

 

 둘 사이에 어색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그러다 그녀는 자신의 목적을 상기했다. 다친 아이 때문에 온 정신이 팔려있었지만 이제 그를 만났으니까.

 

 그녀가 선홍색의 가는 입술을 움직였다.

 

 “나는 강선영이야.”

 

 그녀의 말에, 그는 흐릿한 시야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뜨겁게 응시할 수 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할 말은 아니지만…… 다시 만나서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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