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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hine 샤인
작가 : 처음부터
작품등록일 : 2017.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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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집착녀
작성일 : 17-12-18     조회 : 259     추천 : 0     분량 : 5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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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삼촌?’

 

 시선을 사로잡는 시끄러운 울림에 그녀는 액정 위에 뜬 이름을 보았다. 뭐가 그렇게 숨길 것이 많은지.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현재는 재빠르게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숨긴다고 숨겼겠지만, 그녀의 눈치를 보는 그의 표정은 하나도 감춰지지 않았다.

 

 그가 그녀의 반대편으로 고개를 한껏 돌린 채 전화를 받았다. 얼마나 조심스러운지 작은 소리조차 새어 나올까 그 커다란 손으로 휴대폰과 입을 가렸다.

 

 “……삼촌?”

 

 - 현재야? 괜찮아?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병원이라니! 감기도 잘 안 걸리던 네가 병원이라니!

 

 어떻게 안거지? 정남이 하는 소리에 그가 선영을 쳐다봤다. 묘한 시선에 그녀의 어깨가 한껏 위축됐다.

 

 - 현재야? 최현재?

 

 “……네, 삼촌. 듣고 있어요.”

 

 - 어디 심하게 다친 건 아니지? 막 수술해야 하고 그런 거 아니지?

 

 “괜찮아요. 저. 그냥 살짝 다친 거에요.”

 

 - 그렇다면 다행이고…… 아까 전화 받고 얼마나 놀랬는지 몰라! 그 여자분이 알려줬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너 이렇게 다친 것도 모를 뻔했잖아. 아무튼 지금 병원 로비니까 금방 올라갈게. 쉬고 있어.

 

 “네, 네? 벼, 병원에 다 와간다고요?

 

 당황한 현재는 말을 더듬었다.

 

 “설마 그 사람도 같이 오는 건 아니겠죠?”

 

 - 그 사람?

 

 바로 알아듣지 못한 정남이 잠시 뜸을 들이다 대답했다.

 

 - 아……. 시후도 같이 가는 중이야. 왜?

 

 지금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여기는 보는 눈이 많은 병원에다, 절대 마주쳐서는 안될 여자가 함께 있는데. 그는 아무 소리도 들어가지 않게 핸드폰을 막고 선영에게 물었다.

 

 “혹시 제 핸드폰으로 전화 걸었어요?”

 

 “응. 당연하지. 그래도 사람이 다쳤는데, 가족은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왜 묻지? 하는 그녀의 반응에 할말은 없었지만, 예민하게 날이 선 그는 자신도 모르게 화를 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남의 핸드폰을 함부로 만지는 경우가 어디 있어요?”

 

 이게 무슨 마른 하늘에 날벼락 치는 소리인가.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선영은 화를 내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물었으니 대답하는 것은 인지상정.

 

 “핸드폰 비밀번호도 안 해놓은 사람이 누군데. 지금 나한테 화내는 거야? 그럼 사람이 병원에 갈정도로 정신을 잃었는데 가족한테 연락 안 해?”

 

 “아니, 그래도……”

 

 그녀의 말에 틀린 말은 없었다. 그렇다. 그녀에게는 잘못이 없다. 조급하게 욱했던 현재는 감정을 집어삼켰다. 일단, 이 상황을 빠르게 정리하는 것이 자신의 신상에 이로울 것이다. 핸드폰 스피커로 들려오는 정남의 부름에 그가 응답했다.

 

 - 현재야? 현재야? 듣고 있어?

 

 “……네, 듣고 있어요.”

 

 - 아무튼 지금 올라간다? 이따 봐!”

 

 “삼촌? 사암촌?”

 

 통화가 끊긴 소리를 듣고도 그는 삼촌을 불러댔다. 절망에 빠진 그는 사고회로를 빠르게 회전시켰다.

 

 아, 어떻게 해야 하지? 가만히 있으면 선영이 최시후를 마주칠 것이 분명했다. 이 여자를 어서 돌려보내야 하는데. 그는 혼란스러워했다.

 

 언제부터였을까. 그녀는 진땀을 빼고 있는 그를 의문스러운 눈빛으로 계속 지켜보고 있었다. 정신을 잃고 눈을 떴을 때부터 그녀가 곁에 있었기에 뭐든 것이 뒤죽박죽이었다. 평상시처럼 그림자처럼 지내는 것이 불가능하게만 느껴졌다.

 

 “……있잖아. 그런데 네 핸드폰. 일부러 확인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전화번호가 저장된 사람이 한 사람밖에 없었어…… 삼촌이라는 사람.”

 

 학교 운동장 창고에서 쓰러진 현재를 병원으로 옮기면서 그녀는 그의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유일한 사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때는 경황이 없어 저장된 번호가 단 하나라는 사실에 신경 쓸 겨를 없었다. 하지만 이제와 돌이켜 생각해보니 가볍게 넘길만한 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단 하나의 저장된 번호.

 

 설마, 이 아이…… 유일한 가족은 삼촌 하나인 걸까? 남들에게 말 못할 가족사가 있는 걸까. 혹시 집을 나온 가출 청소년인가? 그래서 삼촌이랑만 연락하고 지내는 건가?

 

 게다가 단지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을 뿐인데,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현재를 위한 모든 절차가 끝마쳐 있었다. 이름조차 모를 삼촌이라는 사람은 얼마나 부자인지 모르겠지만, 그는 병원의 VVIP들만 쓴다는 특실로 바로 안내되었다.

 

 설마 이 아이 부잣집아이인가? 그래서 연기는커녕 아무것도 안 해도 살만한 건가?

 

 제법 자신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생각했는데. 그 엄청난 크기의 병원의 특실은 난생처음 보았다. 아니, 영화촬영장소로 한번 와봤을 때 빼고는 그렇게 오래 있어본 적은 없었다. 현재가 깨어나기까지는 3시간 정도 걸렸으니까.

 

 그녀의 머릿속에 갖가지 생각들이 들쑥날쑥 떠올랐다. 하지만 함부로 물어볼 순 없었다. 남의 가족사를 들춰내는 건, 정말이지 엄청난 실례가 아닐 수 없다. 평온했던 그가 불같이 화냈던 마음은 가라앉히고 싶었다.

 

 선영은 결코 그의 아버지가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인 ‘최시후’라는 것은 상상조차 못했다. 그녀의상상력은 결국 최현재는 ‘가출청소년’ 정도로 마무리되어 버렸다.

 

 그 엉뚱한 결론에 그녀의 가는 어깨가 위축됐다. 점점 그녀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혹시 나 때문에 곤란하게 된 거야? 아깐 나도 너무 놀라서 뭐든지 해야만 했거든…….”

 

 아니에요. 괜찮아요. 급했으니까, 무서웠으니까, 그럴 수 있죠.

 

 그 쉬운 말들 중 단 한마디도 현재는 내뱉을 수 없었다. 신경이 온통 자신을 찾아 올 최시후에게 쏠려 있었다.

 

 아. 조심성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 자신이 유명배우라는 사실을 밥 먹듯 까먹는 저 인간과 정남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가슴을 조려야 되는 건가.

 

 그가 할 수 있는 선택은 한가지뿐이었다.

 

 “……가세요.”

 

 “뭐?”

 

 빨리 이곳에서 그녀가 사라졌으면 했다.

 

 “지금 당장 돌아가시라고요.”

 

 “아, 아니. 난.”

 

 위협적인 현재의 태도의 그녀는 당황했다. 도무지 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제가 몇 번이나 말했잖아요. 안 한다고요. 그리고 더 이상 그쪽이랑 할 말 없어요. 그러니까 돌아가세요.”

 

 현재는 마음이 조급했다. 삐걱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는 아픈 몸에도 불구하고 선영의 손을 잡고 병실입구로 끌고 갔다. 과격해진 그의 행동에 어찌할 바를 모르면서도 그녀는 자신의 할말을 멈출 수 없었다.

 

 “아직 내 얘기 안 끝났어. 이렇게 쉽게 포기할 거면 시작도 안 했다고.”

 

 ‘지금 나에겐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고요.’

 

 그의 마음속의 소리를 그녀가 들을 리 없었다. 잠깐만을 몇 번이나 외쳐대는 그녀는 어느새 병실 밖으로 내쳐졌다.

 

 지나가던 누가 듣는다면 사랑다툼쯤으로 보였을 것이다. 매정하게 여자를 내치는 남자와 그 남자에게 매달리는 여자.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삼촌한테 내가 잘 설명할게. 그까짓 가출쯤이 대수겠어? 내가 진짜 잘 설명한다니까.”

 

 하.

 

 병실 문을 닫고 뒤돌아 기댄 현재의 입술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도대체 이 여자는 무슨 상상을 한 거야?

 

 등뒤로 느껴지는 선영이 두드리는 문의 울림이 느껴졌다. 그런 그녀를 외면하자 창문으로 어둑해진 밖의 풍경이 보였다. 오늘 하루, 너무 많은 일이 벌어졌다. 온몸이 축 늘어지는 것만 같았다. 다쳐서가 아니라, 마음이 지쳤다.

 

 낯선 여자의 오해를 하나 하나 풀어줄 여유 따위는 없었다. 그는 자신에게, 자신의 재능에 집착하는 그녀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일일이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배우지망생들이 넘쳐나는 시대다. 재능과 끼를 타고나는 사람들이 아마 그녀의 앞에 줄을 서고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왜 나에게 이러는 걸까. 고작 내 연기를 스치듯 단 한번 본 것으로. 지우지 못할 기억에 집착하는 것처럼.

 

 제발 가세요. 조용히 살던 나를 가만히 내버려두라고.

 

 

 ***

 

 

 문 뒤로 들려오는 병실 안의 고요한 침묵.

 

 그 무거움에 선영은 곧 포기하고 말았다.

 

 감정기복이 심한 편인가. 저리도 갑자기 차갑게 돌변한 현재를 그녀는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은 받아들여야만 했다. 지금은 물러서야 할 때라는 걸.

 

 “……갈게. 네 말대로.”

 

 문 뒤에 있는 것인지 궁금할 정도로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지만, 그녀는 말을 멈추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널 포기했다는 건 아니야. 너에게 무슨 말 못할 사정이 있는 것 같으니까 돌아가는 거야.”

 

 대답은 없었다. 그래도 미묘한 떨려오는 숨소리에 그가 듣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다.

 

 “도망치지 않겠다고 한 거. 잊지 않았지?”

 

 애꿎은 약속 하나에만 매달릴 수 밖에 없지만. 그래도 지금 이것만이라도. 선영은 꾹 움켜쥐고 있었던 자신의 명함을 문 아래로 집어 넣었다. 그가 받아줄 지는 모르겠지만. 희망은 꿈꾸는 자의 것이니까.

 

 “약속 지켜.”

 

 현재야. 너는 모를 거야. 내가 왜 이렇게까지 매달리는 지.

 

 정말 하고 싶었던 말을, 그에게 차마 전하지 못했던 말을 꾸욱- 삼키며 그녀는 병실 문 앞을 떠났다. 의도치 않게도 발소리마저 터덜터덜 쓸쓸한 소리를 냈다.

 

 선영이 그의 재능에 집착했다. 자신은 죽었다 깨어나도 가질 수 없는, 빼앗을 수 없는, 태어났을 때부터 타고난 재능. 그렇게 소중한 것을 그저 땅속에, 시간 속에 묻어둔 채 썩혀버린다는 것은 천벌을 받을 짓이라 생각했다.

 

 어렸을 때부터 선영의 꿈은 배우였다. 방송국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영향이 큰 탓도 있었다. 하지만 흐지부지 경영자 집안의 뜻에 따라 미국의 유명한 경영대를 진학했다. 그러나 20살, 유학시절에 보게 된 공연이 그녀의 삶을 통째로 바꿔놓을 것이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프랑켄슈타인>

 

 지훈도 알고 있는 그녀 인생의 최고의 작품.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선영은 과감하게 경영대에서 예대로 전과해버렸다.

 

 하지만 슬프게도 그녀는 재능이 없었다.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영화연극 연출학과에 만족할 수 밖에 없었다. 무대에 서고 싶었지만, 공부와 돈과 시간만으로 해결되는 장벽이 아니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선영은 현실을 받아들였다.

 

 방송국에서 나온 아버지가 <먼데이 엔터테인먼트>라는 거대한 기획사를 차린 지, 벌써 20년이 다되어갔다. 가장 존경하는 아버지를 따라 그녀도 어엿한 기업인이 되었다. 자신의 나이에 어느 정도의 경제력과 커리어우먼의 화려함도 갖출 수 있는 최고의 자리. 그녀는 현실에 만족했다.

 

 그러나 가슴속에 덮어두었던 마음은 메마른 땅의 잡초처럼 좀처럼 죽지 않았다. 현재를 만나자마자 단단한 둑이 터져버린 것처럼 폭발해 자신을 휩쓸어버렸다.

 

 너라면 이룰 수 있지 않을까?

 

 20살. 선영의 마음을 움켜쥐고 뒤흔들었던 그 감동적이었던 연기.

 

 너라면 정말 내가 꿈꿨던, 이루지 못했던 꿈을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지난밤, 꿈만 같았던 그의 연기가 아직도 눈앞에 생생히 그려졌다. 죽을 때까지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널 절대로 놓치지 않을 거야. 그게 바로 이 일을 하는 내가 해야 할 일이고, 타고난 너의 재능에 대한 예의야.

 

 너는 아니라고 했지만 나는 알 수 있었어. 네가 간절히 원하고 있다는 것을.

 

 화려한 VVIP 병실 복도를 지나 그 끝에 다다르자 엘리베이터가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버튼을 누르려던 찰나, 마치 우연처럼 문이 열렸다. 누군가가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푹 숙인 고개를 올리기도 전에 엘리베이터 안에 타고 있던 두 남자가 쏜살같이 그녀를 지나쳐갔다. 재빠른 그들의 움직임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뒤를 돌아보았다. 후덕한 덩치의 한 남자와 춥지 않은 날씨에도 까만 모자와 마스크로 수상쩍게 얼굴을 가린 남자.

 

 엘리베이터에 올라탄 그녀는 뒤를 돌아 병원의 지하주차장으로 가는 버튼을 눌렀다. 그저 스친 두 남자였다. 울적한 기분에 그냥 관심을 끄려고 했는데 그럴 수 없었다. 닫히는 엘리베이터의 문 사이로 그들이 향하는 곳을 보고 말았다. 현재가 입원한 병실이었다.

 

 ‘설마 그 사람도 같이 오는 건 아니겠죠?’

 

 삼촌과 통화하던 현재가 말했었다. 그 사람? 그렇다면 현재가 그 사람이라고 말한 사람이 저 사람인가?

 

 그녀가 서둘러 열림 버튼을 눌렀지만, 늦어버렸다. 머뭇거림 없이 그대로 지하로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기억을 더듬었다.

 

 한 겨울도 아닌데 칭칭 몸을 가린 수상쩍은 남자. 그리고 옆의 후덕한 남자까지.

 

 이상하다. 어디서 많이 봤는데. 진짜 진짜 어디서 꼭 본 거 같은데. 어디서 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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