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행히 선영은 그 정도로 눈치가 없는 여자는 아니었다.
병실을 찾아온 정남과 시후가 심각한 표정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었다. 재민과 벌어졌던 소동에 대해선 전혀 모르는 것 같았다.
거짓말을 잘 못하는 현재는 고개를 푹 숙이고 표정을 숨겼다.
‘아무 일도 없었어. 그저 계단에서 발을 헛디뎌 구른 것뿐이야.’
학교에서의 그의 사정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은 그저 그가 하는 말을 믿었다. 차라리 그게 더 나을 것이다. 쓸데없이 일을 크게 키울 필요는 없었다.
조금만 참으면 졸업이니까. 그럼 그토록 따가운 눈초리는 숨어버릴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여자는 누구야? 네 핸드폰으로 전화를 건 여자.’
정남과 눈을 마주친 현재는 입가에 창백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모르는 사람이야. 처음 본.’
***
‘현재야.’
이골이 날 지경이다. 자다가도 꿈에서 나온 그 여자의 목소리에 잠이 깰 정도였으니까.
‘현재야? 안녕?’
항상 시작은 인사로 시작하지만 우연으로 만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오늘 날씨가 참 좋다! 어맛, 현재네? 이런 우연이 있나?’
그렇게 병실에서 그녀를 내친 그날 이후, 선영은 현재를 줄기차게 따라다녔다.
등교할 때도, 하교할 때도, 어느 날은 두세 번 마주칠 때도 있었다. 이쯤 되면 스토커라 불러도 과한 표현이 아닐 정도로 그녀는 그의 곁에 맴돌았다. 물론 현재의 생활반경은 한정되어있었지만 자신 몰래 위치추적기를 단 건 아닐까 의심될 정도로 어딜 가든, 언제든 그녀가 있었다.
오늘도 하교하기 위해 정문을 나서는 순간, 어김없이 그녀가 인사를 건넸다. 언제 왔는지, 그녀의 검은색 아우디가 천천히 걷고 있는 그를 따라왔다.
“안녕? 현재야? 요즘은 괴롭히는 사람…… 같은 거 없지?”
창문을 내리고 차에서 내리지도 않은 채 그녀가 물었다. 몇 일전 재민이 출석일수로 인해 학교를 더 이상 빠지지 못해 스케줄을 미루고 등교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창조예고는 이런 점에서는 엄격하고 냉정했다. 잘나가는 연예인이라고 출석에 관해서 특혜를 주는 것 따윈 인정하지 않았다.
비록 얼굴만 내미는 출석이었지만 그날의 사고를 목격한 선영은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었다. 그날의 재민의 행동은 상식을 벗어난 사건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의 질문에 줄곧 앞만 보고 걷던 그가 발걸음을 멈췄다. 멈춘 발걸음을 따라 천천히 서행하던 그녀의 차도 멈췄다.
아무리 그래도 자신을 걱정해주는 그녀를 무시할 순 없었다. 하지만 아직도 경계심을 가득 안고 있는 그의 말투는 딱딱하기 그지없었다.
“제 걱정할 여유 있으세요? 이제 연말인데, 한가롭게 절 만나러 와도 되는 거에요?”
그녀를 향해 고개를 돌린 현재가 물었다. 선영이 결코 한가한 사람은 아닐 거란 생각에 걱정스럽게 물을 수 밖에 없었다.
“기획사 팀장 정도 되면 엄청 바쁘지 않아요?”
항상 무시하기만 했던 반응이 오늘은 달랐다. 현재를 쫓아다닌 지 한달 만에 겨우, 질문을 받았다. 선영은 예상치 못한 그의 모습에 신이 났다. 묘하게 차오르는 기쁜 마음에 차가운 말투 따위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았다.
“나 바쁜 거 알아주는 건 너밖에 없구나. 고마워…… 그래도 그 바쁜 와중에도 너 걱정돼서 말이지. 하하하.”
뻔뻔하게 웃는 선영의 얼굴에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녀가 이렇게까지 현재에게 집착하는 지 그는 알 턱이 없었다. 그렇기에 불편한 기색을 내비치며 외면하는 수 밖엔 별다른 반응을 할 수 없었다. 그를 찾아오는 목적은 한가지뿐이었으니까.
“하아-.”
한숨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아니라고, 안 한다고, 수천 번 수백 번 말해왔는데.
여태껏 그녀에게 자신의 의사를 강력하게 표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그녀가 입을 열면, 그가 막아버렸다.
눈을 지긋이 감고 서늘한 숨을 길게 늘여 쉬었다. 딱 한번, 흔들릴 뻔했던 그날 오후가 생각났다. 서럽게도 비가 많이 왔던 날.
그리고 처음으로 그녀가 고마웠던 날.
기상일보만 믿고 살기엔, 너무 들쑥날쑥 했던 날씨가 문제였다. 아침엔 맑았던 하늘이 오후가 되자마자 하늘이 구멍이 난 것처럼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수능이 얼마 남지 않았던 날로 기억한다. 하지만 수능이라는 것이 현재에게 크나큰 의미가 있진 않았다. 정상적인 사람으로 살 수 없을 만큼, 현재는 장애를 앓고 있었다. 자신과 같은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걸, 평범한 사람들이 만든 세계에서 평범하게 살 수 없다는 걸, 그는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느 틈엔가 그녀가 나타났다. 그리고 터덜터덜 홀로 걷고 있던 현재의 젖은 머리에 우산을 씌워줬다. 선영에게선 씁쓸한 커피 향이 풍겨왔다.
‘왜 혼자 비를 맞고 다녀. 청승맞게.’
사실은 정남이 가방에 우산을 챙겨준 것을 일부러 꺼내지 않은 것뿐인데. 그저 그날은 비를 맞고 싶었던 것뿐인데.
하지만 현재는 침묵했다. 누군가가 씌워주는 우산에 비를 피한 것은, 아마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그 기분이, 정말이지 나쁘지 않았다. 귀찮고 성가셨던 그녀의 존재도 그날은 특별하게만 느껴졌다.
비를 맞고 걷는 그의 표정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느꼈는지, 그녀는 태워다 주겠다는 말은 건네지 않았다. 그들은 그렇게 오랫동안 빗속을 걸었다.
그렇다고 선영을 자신이 살고 있는 최시후의 집까지 데려갈 순 없었다. 현재는 눈 앞에 보이는 버스정류장에 발걸음을 멈췄다. 그녀는 비를 완벽히 피할 수 있다는 생각에 우산을 접었다. 그리고 그녀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현재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시험 잘 봐.’
어느새 현재의 손엔 그녀가 건넨 엿이 들려있었다. 처음으로 낯선 사람에게 무언가를 받아본 현재는 당황했다. 얼떨결에 받긴 했지만 마음이 불편한 건 여전했다. 돌려주기도 애매하고. 그는 물끄러미 엿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전 어차피 수능 못 봐요.’
‘왜?’
그의 대답에 선영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앞날이 창창한 19살 소년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아서, 잘못 들은 줄로만 알았다.
‘……을 수 없어서요.’
‘응?’
작게 웅얼거리는 그의 대답에 그녀가 되물었다. 하지만 그는 더욱 떨군 고개를 가로저을 뿐이었다.
‘아무것도. 아무것도 아니에요.’
굳이 사실을 말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의 비밀을 그녀가 알던 모르던, 어차피 자신의 의지를 굽힐 생각은 없었다. 한참이나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그녀가 물었다.
‘……정말 연기할 생각 없어?’
‘네.’
평상시처럼 그는 얄짤 없이 대답했다. 그리고 그녀도 그의 대답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왜? 너 정말 재능 있어. 넌 누구보다 잘 할거라 내가 확신해. 그런데도 하기 싫은 거야?’
처음 대답보다 조금은 늦게, 대답했다.
‘……네.’
하기 싫은 게 아니라, 할 수 없어요. 전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에요. 숨만 쉬고 숨어사는, 평생을 도망치고 그림자처럼 살아야만 하는 산송장이에요.
‘혹시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그런 거야? 다른 꿈이 있는 거야?’
그때, 그렇다고 대답했어야 했다. 아무거나 생각나는 대로 대답했어야 했다. 하지만 질문을 듣고 한참을 망설였다. 그 바람에 선영의 헛된 기대를 키워버렸다. 흔들릴 수 있는 여지를 보여줘 버린 것이다.
고개를 들고 그녀와 눈을 마주친 그 순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선명하게 쳐다보던 그녀도 더 이상 묻지 않았다.
그렇게 말하면 알아들을 줄 알았다. 그 정도까지 했으니, 알아서 그녀가 포기할 줄 알았다. 그러나 실낱 같은 희망 때문에, 그가 남긴 여지를 알아차렸기 때문에, 그녀는 포기할 수 없었다.
그들은 우연을 가장한 선영의 노력으로 마주칠 때마다 항상 변함없는 대본을 읽는 배우처럼, 같은 질문을, 같은 대답을 했다. 그것은 마치 일상의 대화처럼, 하루를 시작하고 끝마치는 통과의례처럼 서로에게 점점 익숙해져 버렸다.
그렇게 눈 내리는 겨울이 찾아올 때까지, 그녀의 집착은 계속되었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흔들었던 그녀의 존재가 머지않아 사라져버릴 것이라고는.
***
성인이 되기 전, 19살 소년의 끝자락.
마지막 겨울방학이 시작되던 날이었다. 날씨가 제법 쌀쌀해진 탓에 현재는 목도리를 눈 밑까지 돌돌 말아 얼굴을 파묻고 걷고 있었다.
방학식의 길이는 늘 상 길어졌던 교장선생님의 훈화연설에 달려있었는데, 그 날은 예상보다 일찍 끝났다. 고교생활을 함께 해온 친구들과 헤어지는 것이 아쉬운 아이들은 맨날 보던 얼굴에 뭐가 그렇게 할 말이 많은 지 교실에 남아있었지만 현재는 달랐다. 그는 교탁에 선 담임선생님이 종례를 하자마자 교실 밖으로 뛰쳐나왔다.
이제 모두 끝이었다. 성인이 되면, 그를 짓눌렀던 모든 것들로부터 자유로워질 것이다. 가족을 포함한 모든 것으로부터.
단 한가지, 마음에 걸렸던 일이 있었는데……
그것에 대한 의문이 풀리기까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녀가 그를 찾아왔으니까.
“현재야? 안녕?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반가울 수 없었다.
이제 저렇게 불쑥 파고드는 선영의 목소리를 듣지 않으면 도리어 꿈을 꾸고 있는 것이라 생각될 정도로, 그녀의 등장은 일상의 한 부분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그런데 아무런 말도 없이, 소식도 없이, 그녀가 갑자기 찾아오지 않았다.
정확히 새보진 않았지만 그녀가 갑자기 찾아오지 않은 날로부터 보름 정도 시간이 지났던 것 같다. 하루가 멀다 하고 밥 먹듯 자신을 찾아오는 그녀가 어느 날부터 보이지 않았다.
우습게도 현재는 안도보다 걱정을 먼저 하고 말았다.
분명 속이 시원해야만 했다. 더 이상 귀찮게 하는 사람이 사라졌으니 기분이 좋아야만 했다. 헌데, 뭔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자꾸만 신경 쓰이고 가는 길목마다 주변을 돌아보게 됐다.
이게 뭐야. 이러면 안되잖아.
계속 찾아올 거라고 했잖아. 나보고 도망치지 말라며.
말도 안 되는 생각들에 그가 쓴웃음을 지었다.
하긴 선영이 바쁜 사람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연말이 다가올수록, 만만한 회사가 아니니 엄청 신경 쓸 것도 많고 일에 치여 살겠지. 하지만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빠짐없이 찾아오던 그녀가 아니던가.
우습다. 자신이 너무 우스웠다. 그토록 거부하고 외면했던 그녀인데. 이제 와서 더 이상 자신에게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고 원망 섞인 기분이 드는 것이 오묘했다.
왜 그 동안 안 찾아왔어요?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걱정했잖아요. 쉽게 포기할 거면 시작도 안 했다고 했잖아요!
……보고 싶었어요.
현재는 머릿속에 떠오르는 말은 단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안 바쁘세요?
그는 감정을 숨긴 무표정한 얼굴로 그녀에게 물었다. 바보야. 안부 인사라도 먼저 했어야지! 멍청한 자신을 탓하기엔 너무 늦어버렸다. 지난 날을 되돌릴 수 없듯이 입밖에 내뱉은 말도 주워담을 수 없었다. 짐짓 당황했던 그는 애써 흥분한 자신을 추스르며 아무렇지 않은 척 했다.
“바쁘긴 한데, 나는 괜찮아. 요즘 영화제랑 시상식이 많긴 한데, 나는 관련 없으니까. 배우들이랑 프로젝트 기획한 팀에서 바쁘지 뭐.”
수능은 한참 전에 끝났고, 이제 한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다. 앞을 볼 수 없을 정도로 하얗게 눈이 내리는 날이 계속 지속되고 있었다. 뉴스에서는 해마다 반복되는 기상이변 때문이라고 했다. 며칠 동안 눈이 내리고 녹고. 말씨는 같은 행위를 카펫의 기괴한 패턴처럼 무한히 반복하고 있었다.
거리의 길은 빙판길이 되어 미끄러웠지만, 그 위에 눈은 깊게 쌓여 버렸다. 걸을 때마다 나는 뽀득, 소리가 마음에 안정을 줄 정도로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버렸다.
“저야 늘 똑같죠. 아무 일도 없었어요.”
“……그렇구나.”
선영이 힘겹게 대답했다. 몇 년도 아니고, 며칠을 안본 것 같은데 그녀의 얼굴은 반쪽이 되어버렸다. 생기를 잃은 입술과 낯빛. 무슨 심각한 일이라도 겪은 것처럼, 중요한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처럼 그녀가 짓는 미소는 힘도 없고 무겁게만 느껴졌다.
할 말이 엄청 많은데. 물어볼 말도 너무 많은데.
추운 날씨 탓일까. 그는 쉽사리 얼어붙은 입술이 떨어지지 않는 것을 느꼈다.
그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거에요?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렇게 얼굴이 엉망이에요?
물어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는데, 결국은 묻지 못했다. 늘 선영이 타고 다니던 까만색 아우디도 보이지 않았다. 현재의 기억 속에 가장 인상 깊은 비 오던 날처럼, 그녀는 그를 따라 걷고 있었다.
이제 학교를 졸업할 테고, 더 이상 그녀가 자신을 찾아올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럼 직접 연락하지 않는 이상 그녀는 자신을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성인이 되는 동시에, 학교를 졸업하는 동시에, 우연을 가장한 그녀의 방문은 사라져 버릴 것이었다.
저 멀리 버스정류장이 보였다. 무겁게 발걸음을 옮기던 선영의 발이 우뚝, 멈춰 서버렸다.
“현재야.”
얼어붙을 듯 차가운 공기에 뜨거운 입김이 부서졌다.
“이제 앞으로 나,”
그녀가 신고 있던 구두의 앞코가 툭툭, 얼어붙은 눈 위에 부딪힌다. 그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현재의 온 신경을 빼앗아 가버렸다. 그녀의 의미 없는 행위를 나란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녀도 그도.
무슨 말을 그렇게 망설이고 있는 것일까.
빨갛게 충혈된 그녀의 눈과 마주쳤다. 그 눈처럼 붉게 오른 그녀의 입술이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널 찾아오지 못할 것 같아.”
우는 걸까? 입김이 서린 안경 때문인지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떨렸다. 죄책감도 때문은 아니었을 것이다. 스스로 결정을 내린 게 아닌, 무언가에 의한 압박에 짓눌린 듯한. 억울하고 답답한 마음이 느껴졌다.
그럼에도 선영은 짐짓 아무렇지 않은 듯 웃어 보이며 말을 이었다.
“그 동안 미안했어. 많이 귀찮았지? 내가 정말 최선을 다해서, 너의 재능을 펼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었거든. 지금 생각해보니까…… 내 욕심에 불과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그래서 너무 미안해.”
이제 와서 없었던 일로 하기엔, 그녀는 이제 현재의 일상이 되어버렸다. 그녀가 사라졌던 한달 동안 많은 생각들이 그를 괴롭게 했는데.
미안하다는 단 한마디 말로 끝낼 수 없다.
“어쩌면 너는 끔찍이도 싫었을 텐데. 너도 너만의 사정이 있고 삶이 있는 건데. 너무 내 삶의 방식대로만 밀어붙였어. 내가 나이만 먹었지,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어.”
설기설기 굳은 눈이 묻어버린 신발의 앞코가 시려 보였다. 바닥만 보고 있던 마음이 답답해 고개를 들기엔 두려움이 앞섰다.
쉽게 포기하지 않을 거라 했던 그녀가, 그를 놓아버렸다.
“그래서 이제, 널 놓아주려고. 혼자서 집착하고 매달려서 미안해. 내가 많이 아쉬워서 그랬어. 혼자서 끙끙 앓고, 이루지 못했던 꿈이 있었거든. 그러니까……”
무슨 말이라도 했어야 했는데. 당신 때문에 내가, 바보처럼 도망치고 숨었던 내가, 걱정돼서 한숨도 못 자고…… 이제서야 망설였던 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잘 있어. 현재야.”
쓸쓸하게 돌아서는 선영을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없었다.
그토록 바라던 자유를 얻었음에도, 후련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