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무협물
파촉지룡
작가 : 부지화
작품등록일 :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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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복여인(男服女人)
작성일 : 17-11-28     조회 : 462     추천 : 2     분량 : 5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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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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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양 풍월루(風月樓), 낙양에 있는 무림맹 본단 장원 인근에 자리한 3층짜리 고급 기루. 고급이기에 기본적으로 술값도 비싸지만 이곳의 기녀(妓女)들은 돈만 낸다고 품을 수도 없는 곳.

 

 그래도 호화로운 내부 장식이며 설령 하룻밤 즐기지는 못할지라도 곁에 끼고 술시중을 들어주는 기녀들의 미모며 수준 높은 공연 덕에 연일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리고 이곳에서도 3층은 아무나 들이지 않는 곳이었다. 그 풍월루의 3층 중앙에 무대가 마련되어있었다.

 

 풍월루에서 가장 뛰어난 재주를 지닌 이들만이 올라 그 재주를 뽐낼 수 있게끔 마련한 곳이었다. 번화한 낙양의 복판이라 루 내부는 물론이요 그 문 밖을 나설지라도 꽃이나 나무를 구경하기 어려웠지만 반경이 1장 가량 되는 이 둥그런 무대 가장자리는 색색의 꽃이 화려하게 피어 있었다. 다만 이 반 척 정도 높이의 흑단나무 무대를 둘러싸듯 피어난 꽃은 하나같이 촛불의 빛을 반사해 반짝거렸다. 색색의 옥과 산호, 마노, 호박을 섬세한 솜씨로 조각한 꽃은 살아있는 것처럼 보였다.

 

 여인은 새카만 비단에 금사와 연분홍 수실로 난꽃을 수놓은 궁장 차림이었다. 어두운 색이지만 화려한 궁장 차림에 어울리게 틀어올린 머리에는 옅은 빛의 산호와 금 장식이 달랑거리는 보요에 금으로 된 석산(石蒜) 모양의 떨잠이며 꽃봉오리나 나비 모양을 본딴 금과 옥 비녀를 여러 개 꽂아 장식했다. 반짝이는 것들로 기묘하게 자주색 광택이 도는 듯한 새카만 머리를 뒤덮은 모양새였으나, 그녀의 미모가 도리어 금과 보석의 광채를 가리웠다.

 

 양지옥 덩어리를 깎아 만든 듯 새하얀 얼굴은 붉은빛이 선연한 작고 도톰한 입술이 대비를 이루었다. 살포시 내리깐 눈에는 새카만 속눈썹이 발처럼 그림자를 드리우고 그 그림자 아래 연갈색 눈동자는 차분하게 가라앉아 처연한 느낌이 들었다. 여인의 품에는 매끈한 핏빛 비파(琵琶)가 안겨 있었고 그 오른손에는 새카만 발목(發木)이 쥐여 있었다.

 

 따라랑. 여인의 품에 안긴 비파에서 맑은 소리가 울려퍼졌다. 바삐 움직이며 현을 퉁기고 짚는 여인의 손가락은 희고 섬세했고 그 소리는 곱고 청아했다. 간드러지는 높은 음이 뺨을 간지럽히나 싶으면 낮은 음이 가슴 깊이 스미어 울렸다. 바삐 움직이는 손가락만큼이나 빠른 박자가 음을 이끌고 듣는 이의 어깨를 흥에 겨워 들썩이게 만들었다.

 

 "비파 소리에 날아가던 기러기가 홀려 떨어진다더니..."

 

 여인의 손가락이 멈추자 누군가 신음처럼 말소리를 흘렸다.

 

 일자를 그리며 굳어 있던 여인의 입꼬리가 살풋 휘어 올라가 그 입술이 부드러운 호선을 그렸다.

 

 피처럼 검붉은 피백(被帛)을 걸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는 여인의 고운 몸에 먹음직한 고깃덩이를 바라보는 승냥이 떼같은 탐욕 어린 시선이 꽂혔다. 키가 좀 크긴 하지만 옷자락 안쪽을 꽉 채운 풍만한 가슴에 허리는 가녀리고 반투명한 치맛자락 안으로 비치는 다리는 곧고 매끈해 보였다. 동그란 눈매가 보호본능을 불러일으키고 그 귀여운 얼굴과 대비되는 성숙하고 풍만한 몸매는 한층 더 사내들의 음심(淫心)을 자극했다.

 

 "며칠 전부터 3층에서 연주하지 않았어?"

 

 "한 사나흘 쯤 됐는데..."

 

 "뭐라고 하더라...?"

 

 "요화(妖花)라 부르더구만."

 

 요화는 자신을 향해 수군대는 이들을 향해 깊이 절을 하고 비파를 챙겨 걸음을 옮겼다. 욕망이 뚝뚝 흘러내리는 눈길이 그녀의 발자국을 핥고 있었다.

 

 "길가에 자란 갈대요, 담장 아래 꽃이느니."

 

 한 사내가 긴 소매에 감춰진 그녀의 손목을 낚아챘다.

 

 "놓아주시어요, 대인."

 

 그녀는 저를 제 손목을 붙든 이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사내가 맞는 걸까. 보름달처럼 새하얗게 빛나는 얼굴에 눈동자가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가늘게 호선을 그린 눈에 얇고 붉은 입매가 그림처럼 고왔다. 턱가가 파릇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여인으로 보였을 고운 얼굴.

 

 그러나 요화는 사내의 고운 눈가에 맺힌 웃음기가 묘하게 소름끼쳤다. 그녀는 손목을 비틀어 잡힌 손을 빼내려고 했다.

 

 "어찌 꽃이 사람에게 반항한단 말이냐."

 

 사내가 그녀의 손목을 휙 잡아당겨 그녀를 제 무릎에 앉히며 허리를 감싸 안았다.

 

 "허리가 참으로 가늘구나."

 

 슬슬 엉덩이를 더듬는 반대편 손. 요화는 제 허리를 감싼 팔을 손으로 찰싹 때렸다. 묘하게 백옥같은 빛을 띠며 반투명하게 살풋 빛나듯 보이는 손에는 제법 공력이 실려 있었다. 도통 눈썰미가 좋은 이가 아니라면 어둑한 기루의 조명으로는 이것이 그 유명한 소수마공(素手魔功)임을 알아볼 수 있는 이는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 무시무시한 극음의 일격이 내려친 사내의 가는 팔뚝은 강철처럼 단단했다.

 

 불쾌하지만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해서도 안되고 따끔하게 맛을 보여줘 몸을 빼내려던 시도는 전혀 먹혀들지 않아 그녀는 난감해졌다.

 

 "아이, 대인... 저는 그냥 악사여요. 놓아주시어요."

 

 "앙탈이 제법이야. 마음에 든다."

 

 기녀는 물론이요 악사에게 함부로 손 대지 않는 것은 풍월루의 불문률.

 

 하지만 사내의 옅은 주황색의 촉금 도포를 걸치고 산호로 만든 관에 순금 상투비녀를 꽂은 고급스러운 차림새와 뻔뻔하고 능청스러운 태도는 다른 이들의 참견을 막는 벽이 되었다. 요화의 동그란 눈가에 물기가 올라 눈물이 한 방울 떨어졌다.

 

 "거 적당히 좀 해!"

 

 울림이 깊고 낮은 목소리가 정적을 밀어내고 건물 안을 가득 채웠다. 짙고 굵은 눈썹이 인상적인 거한이었다.

 

 암갈색의 비단 무복을 입고 등에는 보통 사람들의 키만한 거도를 맨, 누가 봐도 무인으로 보이는 사내였다. 굳게 다물린 입술은 강직해 보였고 시원시원하게 뻗은 콧대와 굵은 얼굴선은 퍽 보기 좋았다.

 

 "기녀가 됐든 악사가 됐든 연약한 아녀자를 그리 희롱하는 것이 사내다운 짓거리냐!"

 

 약간의 공력이 실린 낮고 굵직한 목소리가 울린다. 오른손을 등에 맨 도의 손잡이에 가져다 댄 사내에 시선이 모였다.

 

 "나는 역산도(㔏山刀)라 한다! 칼을 뽑아라! 사내답지 못한 더러운 개짓거리를 도저히 더는 못 봐주겠다!"

 

 역산도, 하북 팽가의 삼남이라던 팽준호(彭俊豪)라며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타고난 커다란 체구 덕에 거도를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무인인데 실력이 워낙 뛰어나 여덟 살이나 위인 맏이와 후계 경쟁을 한다던가, 힘이 좋아서 도 한자루면 산도 쪼갤 것이라던가 하는 소문이 따라다니는 이였다. 물론 그를 따라다니는 소문의 팔 할은 그 불꽃같은 성미와 관련되었지만 말이다.

 

 "하하... 과연 소문대로 성질머리가 불 같은 소협이시구려."

 

 요화를 희롱하던 사내는 그제야 팔을 풀었다. 요화는 기다렸다는 듯 일어나서는 팽준호 앞에 깊이 절했다.

 

 "도움 정말 감사합니다, 대인. 이 은혜를 어찌 갚으면 좋을까요?"

 

 깊이 절하고서 팽준호를 올려다보는 요화의 젖은 눈매가 퍽이나 고왔던지 벼락같이 화내던 젊은이의 귀가 빨갛게 물들었다.

 

 "어흠, 무릇 대장부라면 연약한 여인을 돕고 보호할 줄 알아야 하는 법이지. 당연한 일이니 너무 그러지 마시오."

 

 "아닙니다. 정말 감사해요, 대인."

 

 고운 여인이 한 걸음 다가서자 얼굴을 붉게 물들인 커다란 젊은이가 한 걸음 물러섰다. 그 얼굴은 붉어지다 못해 벌건 물이 뚝뚝 흐를 것 같았다. 요화는 그에게 손을 살며시 뻗으며 말했다.

 

 "대인, 소녀는 요화라고 한답니다. 다음에 또 오시거든 꼭 소녀를 찾아주시어요."

 

 달큰한 체향이 숨 닿는 곳까지 훅 끼치자 팽준호는 뻣뻣이 굳어버렸다. 얼굴을 벌겋게 물들이고서 굳어 있는 사내를 뒤로 하고 요화는 사라져버렸다.

 

 * * *

 

 "예랑이, 어여 일어나!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아직도 꿈속이야?"

 

 무림맹 소호당, 해가 솟은지 한참이 되어서야 하예랑은 간신히 눈을 떴다. 그것도 옆 침상을 쓰는 이명길이 깨우고 나서야.

 

 "우음... 몇 시입니까?"

 

 예랑은 비척비척 몸을 일으키며 불그레한 눈가를 비볐다. 눈가는 불그스레 부어 있고 눈에는 핏발이 선 얼굴. 심지어 눈 아래는 퀭하니 그림자까지 졌다.

 

 "간밤에 잠을 설쳤어?"

 

 "아뇨 그건 아니고..."

 

 예랑이 몸을 일으키자 복숭아 향과 향분 냄새가 뒤섞어 풍겼다. 자세히 보니 입가엔 붉은 연지가 번진 자국까지 선연히 남아 있었다.

 

 "허어... 기루라도 다녀왔어?"

 

 "예에?"

 

 "아이구, 이 친구 참 왕성하구만! 낮에 그렇게 뛰어다니고도 기생 끼고 놀 생각이 나던가?

 

 "하하..."

 

 "사시(巳詩)가 다 되었어. 시간 지나기 전에 어서 조반 들고 와."

 

 "네에... 감사합니다, 이 형."

 

 예랑은 몸을 일으켜 부스스한 머리카락을 정돈했다.

 

 "아, 이 형은 식사 하셨습니까?"

 

 "아아, 나야 먹었지. 난 먼저 내려갈게."

 

 "네에, 이따 뵙겠습니다."

 

 하예랑은 눈길로 발걸음을 재촉하듯 방을 나서는 이명걸의 뒤를 쫓았다.

 

 "휴우."

 

 원래도 사내치고는 조금 가늘다 싶던 하예랑의 한숨소리가 묘하게 더 가늘어졌다.

 

 그가 침의를 벗자 헐렁한 옷으로도 가리지 못하던 가녀린 어깨가 드러났다. 오래 검을 쥔 덕에 잘 단련된 근육은 붙어 있지만 가느다랗고 연약한 여인의 골격이었다. 그리고 그 어깨 아래에는 하자(诃子)와 그 안의 질긴 흰 천으로 꽁꽁 동여매 한껏 누른 풍만한 가슴이 드러났다. 그는, 아니 그녀는 하자 위로 천을 한 번 더 동여매고서 그 위에 무복을 입었다. 무복을 입고 칼을 찬 그녀는 다시 사내 하예랑이 되었다.

 

 

 재빠르게 식사를 마친 하예랑은 연무장으로 갔다. 이미 그곳에서는 열댓명 정도가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몸을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는 그 사이에 끼지 않고 연무장 구석에 조용히 섰다. 연무장 구석에 서 눈을 감았다. 까만 속눈썹이 눈 아래부터 뺨까지 옅은 그림자를 발처럼 드리웠다. 잠이 부족한 탓인지 약간 파리하지만 도톰하고 고운 입술 사이로 고르게 정돈된 숨결이 새어나왔다.

 

 작고 고운 손에 쥔 검을 뽑았다. 소리도 없이 뽑힌 검은 예랑의 손목과 팔의 움직임을 따라 검로를 그려나갔다. 가는 몸을 감싼 옅은 빛의 무복 자락이 바람을 일으키며 나부끼고 자그마한 발에 신긴 가죽신은 소리 없이 돌바닥을 박찼다. 분명 묵직하고 견고한 것이 특징인 동작이지만 발놀림에선 무게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옆면의 날을 예리하게 세우지 않은 약간 두터운 장검이지만 순간 순간 희미하게 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가볍게 허공을 가르는 검로는 채 닿지도 않은 돌바닥에 흔적을 남겼다.

 

 하나 둘 사람들의 동작이 멎고 하예랑의 검무에 시선이 모였다. 동그랗고 맑은 눈은 허공에 보이지 않는 적을 쫓고 도톰한 입술은 꾹 다물려 일(一)자를 그렸다. 본바탕이 미인인 그녀라, 남장을 해도 미끈하게 잘 생긴 미소년으로 보이는지 여성 무사들은 입을 헤 벌리고 넋 나간 표정을 짓는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향한 눈길 중에는 사나운 적의를 품은 것들도 있었다.

 

 "계집년같은 면상이라 검도 계집년같구만 별..."

 

 제법 덩치가 크고 사납게 생긴 사내가 노기 어린 말소리를 씹어 뱉으며 그녀의 검로에 끼어들었다.

 

 챙! 날카로운 금속음과 함께 하예랑의 검로가 멈췄고 그와 함께 그녀의 고운 미간이 살풋 찌푸려졌다.

 

 하예랑의 검로를 가로막은 검은 금방이라도 그녀를 향해 내리그어질 것 같이 보였다. 묵직한 힘이 실린 검날. 예랑은 구김이 갔던 미간을 도로 펴며 가로막힌 검을 비틀며 휘둘렀다. 금방이라도 그녀를 머리에서부터 토막낼 것처럼 형형한 기세를 품은 검이 홱 돌면서 쥐고 있던 이도 휘청 자빠질 뻔했다.

 

 "뭡니까."

 

 짐짓 낮춘 목소리. 간신히 자세를 잡아 연무장 바닥에 나동그라지는 것만은 면한 사내를 하예랑이 노려보며 말했다.

 

 "어제 옥화검랑님과 무슨 얘기를 했지?"

 

 "하...?"

 

 어이가 없어 풀어져 버린 하예랑의 얼굴.

 

 "우리를 모르는 모양이군."

작가의 말
 

 석산(石蒜)은 소위 꽃무릇으로 불리는 독초, 발목(發木)은 비파를 연주할 때 사용하는 도구, 피백(被帛)은 길이 2m 가량에 폭이 좁은 얇은 비단으로 현대로 치면 숄 쯤 되는 일종의 겉옷입니다. 하자(诃子)는 당대의 여성들이 입던 가슴싸개 쯤 되는데요, 현대 의복으로 치자면 튜브톱이랑 가장 가까운 형태겠습니다. 구글링한대로 따온지라 간체자 표기, 발음이 hēzǐ 로 표기되어 있어 가자가 아니고 하자입니다.

서희seohee 17-12-22 19:05
 
음, 하예랑에게 뭔가 큰 비밀이나 임무가 있는 것 같은데...!
  ┖
부지화 17-12-22 22:00
 
네! 비밀을 꽁꽁 숨겨야 하는 비밀을 간직하고 있어요. 아주 중요한 비밀을 함께 나눈 긴밀한 사이처럼 느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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