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무협물
파촉지룡
작가 : 부지화
작품등록일 : 2017.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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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영단 입단
작성일 : 17-12-10     조회 : 439     추천 : 0     분량 : 5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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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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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야, 축하한다! 한턱 내지 그래?"

 

 당난영은 제가 목검에 휘감아낸 아릿한 불꽃에 온 정신이 쏠려 있었다. 찰나를 반추하느라 연무장을 나서면서도 반 쯤 정신이 나간 채였다.

 

 하여 함께 와서 지켜보던 이명걸이 그녀의 뒤에서 목을 확 잡아챘으나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졌다.

 

 "으아악!"

 

 "어엇, 미, 미안하다."

 

 "이 형, 그러다 이 자알 생긴 얼굴에 흠이라도 나면 어찌 책임지시려 그러십니까, 예?"

 

 빙글빙글 웃음기가 묻어나는 목소리.

 

 "우와... 뻔뻔하기 짝이 없구나, 너."

 

 "크크. 너무 몸을 움직여서 그런가, 영 곤하네요. 간만에 땀도 흠뻑 흘렸고 말이죠."

 

 "그래그래. 그럼 땀만 좀 씻고서 요기하러 가자."

 

 머리 위로 떠있던 해가 어느새 서녘으로 한껏 달음박질쳤다.

 

 "아, 다행이다. 아무도 없네."

 

 여벌옷에 조두(澡豆)며 화장수, 수건을 챙겨 도착한 대욕탕은 운 좋게도 텅텅 비어있었다.

 

 소호당에는 남녀 숙소별로 대욕탕이 딸려 있었고, 이는 언제나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방되었다. 대개는 밤 늦게나 새벽 일찍이 사람이 붐비는지라, 이런 애매한 시간에는 사람이 없는 것이 당연했다.

 

 당난영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연신 데운 물을 끼얹었다. 조두를 푼 물로 결 고운 머리카락도 감고 땀에 전 몸이며 얼굴을 깨끗이 닦았다.

 

 익모초 가루와 계화(桂花) 가루를 섞은 조두에서는 달큰한 향내가 솔솔 피어났다.

 

 꽃향기가 살결에 배는 느낌은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것 중 하나였다.

 

 그녀는 단출한 무복이나마 보송한 새 옷을 입고 향 좋은 화장수를 얼굴에 토닥였다. 젖은 수건과 갈아입고 난 옷을 동동 개어 숙소로 들고 가니 이명걸이 기다리고 있었다.

 

 "아, 이 형, 오래 기다렸어요?"

 

 기분이 좋은지 생글생글 말갛게 웃는 당난영의 얼굴은 더운 김이 덜 가셨는지 뺨이며 입술이 도화빛으로 발그레 달았다.

 

 그녀가 촐싹이며 바싹 다가서자 물기가 촉촉하게 어린 머리칼에서 사철의 꽃내음이 뒤섞여 어우러진 꽃다발같은 냄새가 훅 끼쳤다.

 

 ‘도대체가 말이지.’

 

 이명걸은 눈 앞의 사내가 사내로 보이지 않았다. 꽃잎과 과즙을 걸러 얼굴에 바르고 머리카락에는 향유를 발라 빗질해 온몸을 향기롭게 치장한 귀한 댁의 금지옥엽 아가씨처럼 느껴졌다.

 

 "이 형? 어디 아파요?"

 

 "어, 아? 아니, 잠시 딴 생각을 했었나보다... 가자! 무얼 먹을테냐?"

 

 "뭐 먹고 싶은거 없으세요?"

 

 "글쎄다, 사는 사람이 가자는대로 따라가야지."

 

 "그래요. 그럼, 가 볼까요?"

 

 반쯤 넋이 나간 이명걸은 당난영에게 손목을 붙들린 채 끌려나갔다.

 

 장원에서부터 한 다경쯤 걸어나온 곳은 사람이 바글바글했다. 비록 황성(皇城)은 아닐지라도, 황하를 낀 고도(古都) 낙양은 장안 못지않게 번화한 도시였다.

 

 두 사람이 대로에 빽빽이 들어찬 인파를 헤치고 들어선 식당에서는 고소한 기름 냄새가 고깃국물 냄새와 뒤섞여 군침이 돌게 했다.

 

 “여기 양육탕(羊肉湯) 맑게 끓여서 하나 주시고, 유선(油旋)이랑 거기에 곁들일 돼지고기 볶음도 주세요. 아, 소채(小菜)도 적당하게 한 접시 주시구요.”

 

 얼마 지나지 않아, 따끈한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접시들이 탁자 위에 조로록 늘어섰다.

 

 “음, 역시 좀 기름지네요, 저한테는.”

 

 “너, 도사님한테 검술을 사사했다더니 무슨 산 속에서 도 닦다 내려왔냐?”

 

 “하하, 그럴지도 모르죠?”

 

 당난영은 음식이 기름지다느니, 간이 세다느니 해 가면서 연신 툴툴댔으나 손이며 입은 쉬지 않았다.

 

 “아, 거, 불만 있으면 먹지 마, 요놈아.”

 

 “무슨 그런 섭섭한 말씀을요. 제가 내잖습니까?”

 

 시장이 반찬이라 했던가, 당난영은 새 모이 쪼듯 하던 평소와 다르게 양 기름이 동동 뜬 국물이며 유선이며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걸로도 모자라 닭구이 한 마리에 행인두부(杏仁豆腐)를 두 접시나 더 시켜서 먹어댔다.

 

 찻물로 입 안의 기름기를 씻어내며 그제야 배가 찼다는 듯 느긋이 다향을 음미하는 그녀를 보는 이명걸의 표정이 오묘했다.

 

 “...왜 그렇게 보세요? 얼굴에 뭐 묻었어요?”

 

 “아니, 아니다. 너, 배 고프면 이렇게도 먹어대는구나, 싶어서 말이다.”

 

 이명걸은 접시에 쌓인 그릇을 바라보며 질린 표정을 지었다. 기실 그의 속 역시 그 표정만큼이나 묘하게 틀리는 중이었지만 말이다.

 

 이명걸은 제 눈 앞의 가느다란 사내놈이 덩치에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무작스럽게 먹어대는 것을 보며 그가 확실히 사내가 맞다고 단정지었다.

 

 그러면서도 그가 곱고 어여쁘다 느껴져서 퍽 혼란스러웠다.

 

 ‘내가 정말로 남색에 취미가 있었나...’

 

 이명걸의 혼란한 마음을 뒤로 하고 시간은 흐르고 흘러 9월 초하루가 되었다.

 

 어느샌가 제법 싸늘해진 바람이 무림맹 장원 중앙 연무장에 시립한 당난영의 코끝을 할퀴고 지나갔다. 그녀가 선 이곳, 중앙 연무장에서는 월영단원 총 소집 겸 신입 월영단원 임명식이 한창이었다.

 

 그녀가 입은 소맷자락이 제법 펄렁한 검은 심의는 바람을 따라 천자락을 흐늘거리며 가을 햇볕을 반사했다. 홍옥을 짖찧어 흩뿌린 듯 붉은 빛이 부서지는 소맷단에는 은사로 댓잎 한 장과 그믐달이 수놓여 있었다. 은은한 향을 내는 머릿기름을 발라 상투를 튼 머리에는 은비녀에 자그마한 검은 관이 꿰어 얹혔다.

 

 그녀는 온몸에 걸친 월영단원의 정복이 남의 것을 걸친 것마냥 거북살스럽다 생각했다. 저도 모르게 자꾸만 허리춤으로 손이 갔다. 거기 매인 소호검의 손잡이만이 익숙한 온기를 전해와 마음을 비끄러맸다.

 

 “...이상으로 신입 월영단원 임명식을 마친다. 해산!”

 

 여전히 단장은 부재중인지라 임명식은 부단장인 무영검이 주관했다. 돌아가도 좋다는 그의 목소리에 당난영은 그제야 긴장이 풀려 몸을 돌렸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긴장감에 이를 딱딱 부딪치던 차였다.

 

 “...이봐!”

 

 멍하니 걸음을 떼던 그녀를 무영검이 불러세웠다. 어느샌가 걸음을 재게 옮겨 다가서 그녀의 어깨를 붙든 채였다. 당난영은 왜인지는 알 수 없으나 그 눈이 여름내 그녀를 귀찮게 굴던 눈과 다르다 여겼다.

 

 “네, 네. 부단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하하, 뭘 또 딱딱하게 부단장님씩이나. 그건 그렇고, 자네는 나랑 어디 좀 같이 가세.”

 

 “네. 그런데 어디를...?”

 

 “가 보면 알아. 가 보면. 일단 따라와.”

 

 낮은 목소리에 감긴 어조에는, 알 수 없는 힘이 깃들어 당난영의 몸을 그녀도 모르게 이끌었다. 그녀의 두 발이 무영검을 바지런히 따르는 것과는 별개로, 그의 손은 그녀의 팔목을 굳게 붙든 채였다.

 

 일월전(日月殿)이라 적힌 현판을 지나자, 그 손에 실린 힘은 더 굳건해졌다. 죄인이 어디론가 도망치지 못하게 막는 듯이 느껴졌다.

 

 “아픕니다.”

 

 점차로 빨라지는 걸음을 좇느라 당난영은 반쯤 뛰고 있었다. 손목이 죄여 아프다 호소해도 벽에다 대고 외치는 것마냥 대답이 없었다.

 

 그 시커먼 등에서부터 섬찟한 느낌이 번져 그녀를 옭아매었다. 살기처럼 당장이라도 살갗이 베일 듯 날카롭지도, 투기처럼 피부를 저릿하게 자극하지도 않는 그 어떤 것이 올올이 흘러나왔다.

 

 그것은 아마도 적의(敵意).

 

 밤보다 새카만 그것이 그녀의 가느다란 신형을 건물 지하로 이끌었다.

 

 어째서, 나에게?

 

 영문을 알 수 없었다. 어째서 이 사내는, 무영검이라는 고수는 저에게 적의를 내보이는 것일까.

 

 당난영의 등골을 따라 소름이 오소소 돋아났다.

 

 저에게 등을 돌린 채, 자신을 이끄는 저 등은 분명 한참 고수인 사내의 것. 당난영의 온 몸, 온 신경에 낱낱이 그런 이의 적의가 파고들었다. 무력감과 공포가 목을 조여 목소리마저 내리눌렀다.

 

 사위가 온통 새카맣게 잠기었다.

 

 녹슨 경첩이 비명을 내지르고 무언가 묵직한 것끼리 쿵, 하고 부딫치는 소리가 났다. 내력을 집중해 안력을 돋운 눈이 어둠에 간신히 익숙해졌다.

 

 눈앞에 세워진 형틀이 간신히 잡혔다.

 

 "헉..."

 

 그 너머의 암흑으로 짐승의 신음성에 가까운 낮은 소리가 깔리었다. 얼핏 신음소리처럼 들리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울음소리 같은 그 어떤 것.

 

 "아, 보였나 보군? 역시 제법일세, 그래."

 

 "여, 여긴 어디입,니까?"

 

 "응? 머리는 좋은 줄 알았는데. 멍청하구먼, 자네?"

 

 무영검의 혀 차는 소리가 쯧 하고 내렸다. 이어 사슬끼리 스치는 소리와 함께 재차 무거운 소리가 등 뒤에서 울렸다.

 

 아마도 이번 소리는 문이 닫히는 소리일 테지.

 

 희고 고른 이가 저도 모르게 딱딱 부딪쳤다.

 

 무영검은 넋을 빼놓은 당난영을 그대로 형틀에 비끄러맸다. 양 손목과 발목이 질긴 줄로 한 번, 강철로 된 형구로 다시 한 번 형틀에 고정되었다.

 

 "대체, 왜..."

 

 "아, 그걸 몰라서 묻나?"

 

 "모르겠습니다."

 

 "그래?"

 

 일정한 발소리가 주변을 한 바퀴 비잉 돌자, 주변이 밝아졌다. 타닥, 탁. 타오르는 등불에 무영검의 그림자가 일렁였다.

 

 불길하게 일렁이는 그림자가 팔을 휘두르자 채찍이 몸에 휘감겼다.

 

 "이제 대답할 말이 생각날 차례라고 생각하는데."

 

 "영문을, 흐, 가르쳐 주십시오."

 

 "덜 아픈가 보지? 아니면, 그새 내력이라도 끌어올려 버텼나?"

 

 무영검은 입꼬리를 쓰윽 끌어올렸다. 미소짓듯 호선을 그린 입매가 기묘하게 비틀렸다.

 

 그가 다가선 탁자는 방 안의 살벌한 풍경과 어울리지 않게 다과상이 차려져 있었다.

 

 검을 쥐던 단단한 손이 다호를 기울여 찻물을 따라냈다. 따라낸 찻물에 무언가 자그마한 흰색 환이 맑은 소리를 내며 잠겨들었다.

 

 무영검은 당난영의 입을 억지로 벌리고 그리로 찻잔을 기울였다. 찻물의 적당한 온기가 도리어 불길했다.

 

 "중요한 걸 깜빡했지 뭔가."

 

 단전에서 뻗어나와 몸 속의 혈맥을 타고 흐르던 기운이 흩어지기 시작했다.

 

 "읏..."

 

 "산공분이라면 들어본 적 있겠지? 자아, 이제 좀 대답할 말이 생각날 것 같은데. 아닌가?"

 

 "모르겠다구요!"

 

 울음 섞인 외마디가 방 안에 잠겨들었다.

 

 "그래 그래. 나는 친절한 사람이니 조금 가르쳐주지. 내가 이래 보여도 말야, 좀 아는 것도 많고 눈썰미도 대단하거든. 그런데 웬걸, 거의 삼십 년쯤만에 사라진 줄 알았던 탄주를 들었다는 말이지."

 

 당난영이 예상한대로였다.

 

 그녀가 무심결에 내비친 탄주법은 먼 옛날부터 대대로 파촉당가에 물려내려온 것이었다. 그리고 이 무영검이라는 사내는 그것을 단박에 알아챘다.

 

 "내가 혹시나 애먼 사람 잡을까봐서 확인도 했지. 청성파는 물론이요, 청성산에 있는 그 어떤 도관에서도 하예랑(何藝郞)이란 사내를 아는 자는 없었다. 허면, 수십 년 만에 사라진 탄주가 어디서 솟아났을까? 그것도 파촉제일가의 내공심법의 진수를 품은 그 탄주가 말이다."

 

 말을 잠시 멈춘 무영검은 다시 채찍을 휘둘렀다. 채찍이 감긴 자리마다 옷이 찢기고 그 틈으로 벌건 물이 배였다.

 

 "아, 윽..."

 

 "아마도 마교에 흘러들어간 것을 익혔겠지, 그렇지 않나?"

 

 "억울,합니다..."

 

 "글쎄다, 뭐가 억울하다는 건지."

 

 부러 과장되게 낸 발소리가 가까워지자 당난영은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마교의 세작에게 단복이라."

 

 무영검은 검은 옷자락을 팩 잡아챘다. 이미 너덜거리는 옷자락은 손쉽게 찢겨나갔다.

 

 미끈한 얼굴에 그려낸 호선이 눈 앞 가까이 다가왔다.

 "뭐, 검은 옷이니 잘 어울렸으려나?"

 

 그리고는 다시 물러서, 마치 무언가 미술품이라도 감상하듯 그녀를 훑어보았다.

 

 "그래도 역시 과분해. 그렇지?"

 

 "흐... 제발."

 

 빈들빈들 짓는 미소가 진득하니 엉긴다.

 

 아래위로 그녀를 찬찬히 훑던 눈이 순간 멈칫했다. 심의 안에 받쳐 입은 옷도, 이미 어느 겨를엔지 날깃날깃 찢겼다.

 

 그 찢긴 틈새로 한껏 눌러 고정한 가슴이 비쳤다.

 

 "자네, 계집이었나?"

 

 "예에... 제발, 말미를... 주세요."

 

 "하! 마교도 계집이 대범하구나. 세작 노릇을 하려 성별까지 속였던가."

 

 "해, 해명 할, 수 있습니다."

 

 살갗 위로 벌벌 기는 통증에 절로 목소리가 떨렸다. 말 한 마디 한 마디 잇기가 힘겨워 당난영은 바람 빠진 풍선같은 소리를 간신히 뱉었다.

 

 "검남도에, 학명산에서, 사람이 오고 있어요."

작가의 말
 

 유선은 길고 얇게 편 밀가루 반죽을 소용돌이 모양으로 돌돌 말아 튀긴 빵이에요. 빵도 외래어니까, 무심코 적었다가 지워버렸네요. 그리고 스토리에서 드디어 맹 내의 인물에게 여자란 사실을 들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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