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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크릿 미션
작가 : 백한송이
작품등록일 : 2016.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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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또 다른 여자(1)
작성일 : 16-08-25     조회 : 377     추천 : 0     분량 : 42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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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집 문을 닫고 가게를 정리하며 화분과 꽃들을 돌본 후 지원은 가게 한 쪽에 있는 욕실에서 먼지와 땀을 씻어냈다. 잘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문단속을 하고 가게에 딸린 윗층 방으로 올라갔다.

 

  이 곳에서 지낸 지 벌써 2년이 다 되어 갔다. 자신에게 이렇게 평범한 일상이 올 것이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그의 은인인 재욱에 의해 이런 삶을 살게 되었다.

 

  지원은 일정한 직업이 없는 아빠와 함께 달동네 한구석에 있는 허름하고 낡은 집에서 살았었다. 그런데 고 2 때 엄마에 이어 아빠마저 집을 나가더니 돌아오지 않았다. 부모님도 없는 이런 형편에 더 이상 학업을 이어가는 건 무리라고 생각하고 학교를 무단결석하고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 결국 학교에서 퇴학을 당하였다. 머리가 좋은 덕분에 교과서를 달달 외우며 무료 인터넷 강의와 학교 수업만으로도 공부를 꽤 잘 했었지만 당장 끼니 걱정을 해야 하는 지원으로서는 학업을 한다는 자체가 사치였다. 고등학교 졸업장은 언젠가 검정고시로 따내면 된다고 생각하고 미련을 버렸다.

 

  그렇게 어린 나이에 일찍 생업에 뛰어들어 편의점 알바부터 배달, 포장, 주유소 알바까지 안 해 본 것 없이 다 해 보며 방패가 없는 어린 여자에게 사회와 어른 세계의 냉혹함을 뼈저리게 느끼며 일년 반을 살았다. 못된 어른들의 횡포에 부당하게 급여를 못 받는 것은 물론이고 성추행도 여러 번 당하며 계속 일자리를 바꾸었다. 어떤 때는 사장에게 강간 위기까지 겪어서 다시 가게를 나갈 수도 없었다. 그런데 운 좋게 마음씨 좋은 김밥 집 여사장님을 만나 거기서 몇 개월 정도 어려운 일 겪지 않으며 급여를 받으며 살 수 있었다. 그림을 꽤 잘 그렸던 지원은 미성년에서 성인이 되면 돈도 좀 더 모으고 중단된 공부도 하면서 삽화가가 될 수 있을 거라는 희망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일을 하고 나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오다가 집 앞에서 왠 검정 옷을 입은 깡패들에게 납치를 당했다. 그녀가 끌려 간 곳은 사채업자의 사무실. 아빠가 거액의 빚을 지고 도망을 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행방을 알 수 없는 아빠 대신 딸인 자신이 그 빚을 갚으라는 것이었다. 지원은 아빠가 그들에게 정확히 얼마의 빚을 진지도 몰랐다. 그들은 아빠가 원금을 빌려간 후 갚지 않은 이자에 이자가 더 붙고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 매일 매일 빚이 증가하고 있으니 네가 감당도 못할 거라고 윽박을 질렀다. 그 무서운 사채업자는 룸싸롱 사장에게 그녀를 팔았다.

 

  무섭고 두려움에 덜덜 떠는 가운데 눈이 가려지고 데려온 곳은 어딘지 모르는 밀실이었다. 룸싸롱 사장은 그 날 밤 지원을 겁탈했고 다음 날부터 유흥업소에서 술과 몸을 파는 윤락녀가 되어야 했다.

 

  지원은 매일 밤 손님을 받아야 했다. 만약 손님을 거부하거나 싫다는 기색을 보이거나 서비스가 불충분하게 보여지면 하루종일 밥을 굶어야 하거나 룸싸롱 조직원들에게 집단 성폭행을 당해야 했다. 심한 폭력을 당하면 상품인 자신의 몸에 흠집이 나므로 되도록 때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차라리 맞는 것이 더 나을만큼 인격적인 학대과 언어 폭력, 성폭력이 자행되었다.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석달이 되어가면서 지원의 몸은 피폐해져가고 마음은 점점 죽어갔다. 외모가 꽤 예뻤던 그녀는 룸싸롱에서도 단골이 생길만큼 인기가 좋았고 손님을 대하느라 지치고 힘들었다. 그러는 와중에도 그녀를 따로 불러 주기적으로 관계를 가지는 상급 조직원도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더더욱 힘들었고 매일 치욕스러운 일을 겪으며 기회를 봐서 자살을 하려고 결심했다.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다. 미성년자 고용 및 인신매매 혐의로 악마 같은 룸싸롱 사장이 입건되고 룸싸롱은 거래 정지 처분이 내려졌다. 밤에 들이닥친 경찰들로 인해 난장판이 된 그곳에서 성매매에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잡혀갔다. 그녀도 당연히 경찰서로 잡혀가 취조를 당했다.

 

  꽤 큰 인신매매, 미성년자 성매매로 온 나라가 떠들썩했던 이 사건의 중심에 있던 지원은 경찰서에 있던 몇 일 동안 아무것도 들리지 않고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슬로우 비디오처럼 스쳐지나갔다.

 

  경찰서에서 취조가 끝나고 피해자로 드러난 다른 미성년자들은 보호소로 갔지만 이제 막 성인이 된 지원은 보호소로 가지 않고 일단 거리로 나왔다. 어깨와 다리가 다 드러난 야하고 짧은 치마를 입고 있던 그녀에게 경찰서에서 누군가 준 커다란 점퍼를 걸치고 찬바람이 부는 거리로 터벅터벅 걸어나왔다. 하지만 갈 곳이 없었다. 그녀가 살던 허름한 집마저 이미 그들이 처분해 버렸을테니까.

 

  사람들이 좀 다니는 대로변에서 웅크리고 앉아 커다란 점퍼를 끌어내려 다 드러난 다리에 씌웠다. 감옥처럼 살았던 지옥 같았던 그 곳에서 나온 것이 일단 다행이었지만 이런 꼴로 어디를 가야할지 몰랐다. 친척들은 가난한 그녀의 가족들과 원래 가깝게 지내지도 않았지만 부모님과 연락이 끊기면서부터 아예 그녀를 외면해 버렸다.

 

  지나가던 남자들이 평범하지 않는 그녀의 옷차림과 모습에 힐끔힐끔 눈길을 주었다. 예전의 그녀라면 어떤 건지 몰랐지만 죽고 싶을만큼 험한 일을 겪은 후 그런 눈빛조차 부담스럽고 무서웠다. 아니나 다를까 저 쪽에서 가만히 서서 지켜보는 남자가 생겼다. 일단 여기를 떠야겠다고 생각하고 일어서는데 차 한 대가 그녀의 바로 앞에 섰다. 그리고 또 납치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놀라며 일단 뛰려고 몸을 돌리는 지원에게 차에서 내린 남자가 그녀의 손목을 붙잡았다.

 

  지원은 순간 눈을 꼭 감았다. 나쁜 놈들에게 끌려간 후 말을 안 듣는 것 같으면 여지없이 폭력을 행하는 손이 날아왔기에 왠지 또 맞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손찌검 대신 낮은 저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갈 데가 있나?”

 

  지원은 살며시 눈을 떠서 말하는 남자를 쳐다보았다. 아까 경찰서에서 자신에게 점퍼를 준 형사 재욱이였다.

 

  자신에게 점퍼를 준 그는 차가운 날씨에도 반팔 티셔츠 차림이었다. 하지만 별로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점퍼를 주고 갈데가 있냐고 묻는 그는 분명 따뜻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녀는 그를 올려다보며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보호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런 느낌은 부모님한테도 받은 적이 없는데.

 

  멍하니 아무 말 하지 못하는 그녀를 그가 어느새 차에 태웠다.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그는 따뜻한 먹을 것을 주고 따뜻한 물로 씻게 해 주고 깨끗한 그의 옷을 갈아입으라고 건네주었다.

 

  지원은 그렇게 팔려가서 지낸 시간의 두 배인 여섯 달 동안 그의 집에서 지냈었다. 전망이 확 트인 고급 주상복합 아파트인 그의 집에서 지내는 처음 한 달은 정말 방에만 틀어박혀 지냈었는데 차츰 그와 함께 머무는 이 집에서 안정을 찾으며 몸도 마음도 많이 좋아져갔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다음 두 달 동안도 거의 집 밖을 나가지 않았다. 심리치료를 받으러 병원에 갈 때와 그와 산책을 나갈 때만 잠시 외출을 했었다.

 

  재욱은 지원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그냥 오늘은 기분은 괜찮냐, 불편한 건 없느냐 하는 일상적인 질문 몇 마디 외에는 잘 말을 걸지도 않았다. 그는 매우 바쁜 사람이었고 가끔은 몇 일씩 집에 들어오지 않았었다.

 

  지원은 시간이 지날수록 신세만 지는 것이 너무 미안해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고 그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요리도 했다. 하지만 그는 그런 것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그녀를 부려먹으려고 이 곳에 둔 것은 아니라며 말렸다. 하지만 아무것도 안 하고 지내면 너무 심심하다고 괜찮다고 하며 집안 일을 열심히 했다.

 

  그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라고 그녀가 읽을만한 책을 사다주었다. 주로 용기를 얻는 법, 자존감을 높이는 법, 나를 소중하게 여기는 법 등의 책이었다. 화장품이며 소지품이며 옷가지들을 받을 때도 흘리지 않던 눈물을 책을 선물 받고 펑펑 울었었다. 그런 그녀를 재욱은 집에 데려온 후 처음으로 안아주었다.

 

  지원은 차츰 재욱에게 더 더욱 마음을 열게 되었다. 그는 그녀에게 가족이자 선생님이자 보호자였다. 갑자기 닥쳐온 가난 때문에 차례로 자신을 버리고 떠난 부모님한테도 받지 못했던 관심과 배려를 받고 보니 그가 정말 좋아져버렸다. 아니 정확히는 사랑하게 되었다. 처음 헐벗다시피 한 자신의 몸 위로 값비싸 보이는 가죽 점퍼를 벗어 걸쳐 준 그를 다시 만나면서부터 이렇게 좋은 사람도 있구나 하며 그때부터 감탄하고 사랑하게 되었던 것 같다.

 

  하늘처럼 높고 고귀해 보이는 이 남자는 부모에게 버림 받고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되었던 천한 자신은 감히 품을 수 없지만 그래도 같이 있을 때 잠깐씩 훔쳐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다.

 

  이렇게 많은 빚을 진 그에게 어떻게 은혜를 보답할까 고민을 했지만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그녀는 그에게 줄 것이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성적이고 빈틈없던 그가 술에 잔뜩 취해 들어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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