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1. 유능한 퇴마사의 어설픈 제자
#4. 귀신을 상대하는 여러 가지 방법
사실 사부님이 그 때 귀신을 상대하는 요령이라며 가르쳐 준 것들은, 귀신을 코앞에 두고서는 거의 쓸데가 없는 쓰레기 같은 것이라고, 선우명은 장담할 수 있었다.
-첫 번째, 제일 간단한 거야. 그냥 무시해. 눈앞에 들이밀어도 안 보이는 척, 귓가 바로 옆에서 말을 걸어도 안 들리는 척해. 그 녀석들은 이쪽에서 먼저 반응을 보이지 않는 이상 절대로 볼 수 있는 인간이라는 걸 눈치 챌 수 없어.
-네에? 무시라니, 그게 말이 쉽지 가능한 일입니까, 그게?
-그렇게 못 본 채 계속 무시로 일관한다면 잡귀들도 금세 흥미를 잃는 법이야. 귀신들은 자신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에게 파고들어 에너지를 얻고 그 에너지를 먹이 삼아 살아있는 자들의 세계에 발을 붙일 수 있는 거거든. 만약에 모든 산 인간들이 다 귀신들을 무시할 수만 있다면 잡귀들은 세상에서 결국 다 사라질 걸?
사부님의 말에 의하면 잡귀들도 그들을 볼 수 있거나 느낄 수 있는 인간들에게 더 흥미를 가지고 달라붙는다는 것이다.
산 자가 죽은 자를 보는 순간, 눈이 마주친 직후 호흡이 거칠어지고 입이 마르고 피가 식어 온 몸에 소름이 끼치는 바로 그 순간, 그 찰나에 귀신들은 그들을 볼 수 있는 산 자에게 들러붙기 시작한다.
보통은 그냥 덧없이 떠돌아다니다가, 어떤 식으로든 생전에 인연이 있던 사람을 찾거나 아니면 원래부터 타고난 생기가 없거나 어떤 일로 심신이 약해져 기력이 허한 사람을 발견해서는 그 곁에서 야금야금 조금씩 기운을 뺏어먹는다고 한다. 그것이 보통 귀신의 습성이다.
하지만, 예외가 있으니 바로 선우명 같은 경우였다.
보아선 알 될 것을 볼 수 있거나, 느낄 수 없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사람들이 종종 있는데 그들의 경우는 단순히 기가 약해서 라기 보다는 영안(靈眼)이 트였다거나 신기(神氣)가 있다거나 특별한 핏줄의 후손인 쪽이다.
이런 사람들은 본래의 타고난 기운은 세다. 하지만 그 센 기운을 다스리지는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달라붙은 귀신들에게 그 다듬어지지 않은 무한한 기운을 그저 뺏길 뿐이었다. 운이 나쁜 경우에는 본인이 왜 그런 건지 채 알아채지도 못하고 두려움에 떨다 잡귀들에게 잔뜩 시달린 후 기운만 쪽쪽 빨리다 요절하는 수도 있었다.
-그러니까 니가 담력을 키우는 게 가장 간단하고 빠르고 효과적인 방법이지. 옆에서 온갖 잡귀들이 온갖 진상 짓을 다 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호흡 하나 흩트리지 않는다면, 그것들은 그냥 니 곁을 스쳐 지나갈 거야.
‘하지만, 그게 말이 되는 거냐고? 이 미친 비주얼을 어떻게 무시하냐고? 웃기지 말라고 해.’
선우명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사부님의 말씀을 부정할 수밖에 없었다. 이미 집밖으로 나오자마자 선우명은 귀신 하나와 눈이 마주쳤었다. 하필이면 천둥이 치고 난 다음 순간이었다.
번개가 번쩍이던 짧은 순간, 어느 새 코앞까지 쓱 다가온 녀석의 시뻘건 눈동자와 양옆으로 찢어진 커다란 입매를 너무나도 분명하게 확인해 버렸는데 어떻게 반응을 하지 않을 수 있냔 말이다.
이미 그때 선우명의 떨리는 눈동자와 거칠어진 호흡을 느낀 녀석들은 선우명이 자기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그리고 그를 놓치지 않겠다는 듯 여기저기서 몰려온 녀석들은 이미 선우명의 온 몸을 둘러싸고 있었다.
‘그래, 그래, 나에게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로 포식을 할 예정이겠지. 하아, 사부님, 귀신 무시하기 방법은 애시당초 걸러먹은 거였다고요.’
-두 번째로는, 삼십육계 줄행랑. 니가 체력 좀 단련시키면 가능한 방법이야. 물론 이미 어떤 특정 귀신에게 완전히 홀리거나 먹힌 거라면, 니가 아무리 달려도 소용없지. 하지만 그런 경우가 아니고 그저 눈이 마주친 정도라면, 보자마자 도망쳐. 홀려서 다리가 얼어붙기 전에 일단 냅다 달리는 거지.
-그게 가능하다고요? 그럼, 안 따라 온다고요?
-미친 듯이 달리기만 하면 해. 온 힘을 다해 온 마음을 다해 달려 나가는 걸 보면, 잡귀들도 자기들을 부정하는 강한 거부의 힘을 느끼게 되거든. 그럴 경우 굳이 따라오진 않아. 온 힘을 다해 고함치거나 기도하거나 해서 그 귀신을 부정하는 것도 같은 효과는 있지. 하지만 같은 공간에 계속 있으면 아무래도 한계가 있겠지? 그냥 달려서 다른 데로, 최대한 멀리 가.
결국 퇴마사나 무당만 귀신을 퇴치를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진심으로 한다면, 일반인들도 가능한 일이긴 하다는 거다. 물론 유능한 퇴마사들이나 무당들이 좀 더 간단하고 효율적으로 하는 거겠지만.
하지만, 지금의 선우명은 달리는 것도 이미 불가능한 상황이었다. 눈앞이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폭풍우가 몰아치고 있는 날씨도 한몫 했지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었다.
이미 백은 넘게 보여 지는 귀신의 무리들이 붙잡고 있는 선우명의 두 발에서 천 근 같은 무게감이 느껴졌다. 자면서 가위눌리는 것과 같은 귀신들의 장난질이다. 뛰기는커녕, 어느새 걷는 것조차 힘든 지경이었다.
‘그것보라고요, 삼십육계는 무슨. 애초에 잡귀들 손아귀에 붙들려 힘으로 눌리면 아무 소용도 없는 거라니까.’
우르르 쾅쾅. 번쩍번쩍.
머리 위로 다시 한 번 요란하게 천둥번개가 들이닥쳤다. 번개 빛으로 귀신들의 끔찍하고 괴이한 형상을 한 번 더 제대로 확인 하는 바람에 선우명은 기절할 것만 같았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었다. 선우명은 최대한 빨리 잡귀들의 무리에서 벗어날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머릿속에 떠오른 방법이 하나 있긴 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 방법으로 귀신을 혼자 상대해 본 적이 없었기에 과연 그것이 가능할지 확신 할 수는 없었다.
선우명은 눈을 감은 채 집중하며 읊조렸다.
“불, 모든 영혼을 태우는 불꽃.”
선우명의 목소리에 응답하듯 우산을 쥐지 않은 오른쪽 손바닥 위로 불덩어리 하나가 파팍 소리를 내며 작게 떠올랐다.
순간 갑자기 나타난 불빛에 잡귀들이 흠칫하며 선우명의 몸에서 떨어져 나가는 듯싶었다. 하지만 불꽃은 민망할 정도로 이내 사그라졌다. 오히려 선우명의 어설픈 힘에 자극을 받은 듯 귀신들은 더 적극적으로 아우성치며 선우명에게 들러붙기 시작했다.
‘하아’ 하는 긴 한숨을 한 번 내쉰 후, 선우명은 다시 정신을 집중 시켰다. 오행 중 하나인 불을 불러오는 것은 그나마 가장 성공률이 높은 편이다. 불을 불러와 눈앞의 귀신들을 아주 잠깐만이라도 치울 수 있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있는 힘껏 수리오래 못으로 내달릴 예정이었다.
“불, 불덩어리! 영혼까지 태우는 염화(炎火)!”
이번에는 좀 더 커다랗고 분명한 목소리로 외쳤다. 처음보다 훨씬 더 커다란 형태의 불꽃이 나타났다. 생각보다 더 나은 결과물에 선우명은 크게 만족했다.
더 이상 제 몫을 다하지 못한 채 휘어져 꺾여 버린 우산을 집어던진 후, 이번엔 그 불꽃을 기다란 검의 형태로 변형시켜 보았다. 제법 그럴듯한 형태에 선우명은 스스로에게 대견함까지 느낄 정도였다.
그리고는 두 손으로 있는 힘껏 불검을 휘둘렀다.
-끼아악아악 끄아아아아아악.
끔찍하고 표현조차 어려운 괴성을 질러대며 귀신들은 엉금엉금 물러났다. 하지만 그저 몇 발자국 물러나게 했을 뿐 완전한 퇴치는 아니다. 선우명은 자신의 불꽃으로 귀신을 완벽하게 불태울 정도의 능력은 아직 갖추지 못했다.
선우명은 말 그대로 완전 생 초짜의 퇴마사 지망생일 뿐이었다.
언령조형술(言領造形術).
그나마 선우명이 사부님에게 제자로서 배운 유일한, 그럴 듯한 술법이었다.
주술자의 생각과 목소리, 그 두 요소의 공명(共鳴)으로 머릿속 이미지를 실체화 하는 가장 간단한 술법으로 특별한 기초 지식 없이 그저 타고난 기운을 운용하는 것만으로도 펼칠 수 있는 초 간단 술법이다.
물론 말처럼 간단하지만은 않다. 주술자의 강한 기운 외에도 엄청난 집중력과 의지가 있어야만 가능했다.
사부님이 간단히 ‘꺼져’라는 말 한 마디로 주위의 모든 잡귀들을 한순간에 물리쳤던 것과 비슷한 종류의 언령(言靈) 술법이지만, 지금의 선우명으로선 그 수준은 꿈도 못 꾸는 경지였다. 그저 아직까지는 불火, 물水, 나무木, 쇠金, 흙土 의 오행 요소들을 아주 조금 불러내는 정도만 겨우 할 수 있을 뿐이다.
불검을 좌우로 마구 휘두르며 선우명은 내달리기 시작했다. 선우명의 앞길을 뚫는 데는 성공했지만 등 뒤로 바짝 따라오는 녀석들은 어찌해 볼 수가 없었다. 사부님이 말해 준 첫 번째 요령대로 무시하는 수밖에. 그리고 두 번째 요령대로 냅다 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퍽.”
갑자기 날라 온 커다란 종이 박스가 선우명의 발치 쪽으로 요란하게 날아들었다. 선우명의 몸이 휘청 기우뚱 하더니 그대로 젖은 땅바닥으로 털썩 쓰러졌다. 그 뒤로 곧바로 수십 가지의 쓰레기들이 여기저기서 날라 와서는 선우명의 몸을 덮쳤다.
“키키키키킥.”
얼굴까지 완전히 바닥에 처박혔지만, 선우명의 귓등으로 잡귀들의 비웃음소리만은 분명히 들려왔다.
선우명이 휘두르던 불검도 사라졌다. 주술자의 정신이 흐트러지면 어김없이 언령조형술로 만든 것들도 사라진다.
“하아. C팔. 얼마나 이승을 떠돌아 댕겼으면 귀신 주제에 염동력을 쓰냐? 나도 아직 못 쓰는데. 씨P.”
사부님에게 혼나지 않으려고 웬만해선 사소한 욕설이라도 입에 담지 않으려 노력 해왔지만, 입과 코에서 흘러내리는 비릿한 액체를 느끼자마자 욕설이 절로 튀어 나왔다. 빗속에 퍼지는 진한 피 냄새를 느낀 잡귀들이 더욱더 들썩거리고 있었다.
몸을 일으키려고 시도했지만, 이미 귀신들이 쓰러져 있는 자신의 몸 위에 자리 잡고 본격적으로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인지 꼼짝도 할 수 없었다. 목 뒤가 서늘하니 소름이 올라왔다. 찬 빗물과 세찬 바람 때문만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찬 기운을 감지한 덕분이었다.
귀신들에게 기를 쪽쪽 빨리는 것이 느껴졌다. 온 몸이 빳빳해지고 힘이 하나도 들어가지 않는다. 소름끼치고 역겨운 느낌에 온몸이 달달 떨렸다. 오랜만에 느끼는 괴로움이었다. 사부님과 만난 이후 2년간 단 한 번도 이런 상황에 처해지지 않았었기에, 그 동안 너무 안일했던 모양이다.
정신방어술(精神防禦術)을 익혔으니 쉽게 귀신들에게 몸을 뺏기지는 않을 것이지만, 이대론 꼼짝없이 기절할 때까지 생기를 뺏길 형국이다. 생기를 잃는 것은 이미 어쩔 수 없지만, 문제는 ‘언제까지’냐다.
오늘 같이 폭풍우 치는 날에 굳이 수리오래 못 근처로 나오는 사람들이 없을 테니 최악의 경우엔 이대로 내일까지 뻗어져 있을 수도 있었다. 그건 곤란하다.
사부님이 알려 준 귀신을 상대하는 세 번째 요령은 ‘두려워하는 것을 들키지 마라’는 거였다.
-만약에 무시도 못 하고, 이미 도망도 못 가는 상황이라면, 그냥 너도 웃으며 상대해. 니가 귀신을 무서워하고 두려워 한다는 걸 들키지 않으면 돼. 잡귀 따윈 절대로 널 죽이진 못하거든. 그냥 산 사람들이 제 풀에 놀라 기절하거나 심장마비로 죽지만 말이야.
-하아, 진짜, 두려워하지 말라니. 말이 쉽지, 그게 가능합니까? 차라리 그 자리에서 콱 죽고 싶은 심정을 당신이 알아요?
-아까도 말했듯이 니가 두려워 한다는 걸 알게 되면, 귀신들은 더욱 더 흥분한다니까. 음, 쉽게 말하자면, 너 할 거 끝나면, 알아서 가라, 나는 나 할 거 있어서 멀리 배웅 못 나간다, 라는 심정으로 평상심을 억지로라도 유지해봐. 의외로 자기를 별로 무서워하지 않는다 싶으면, 쉽게 질려 해서 금방 떠날걸?
-하아, 그러니까, 그 평상심을 어떻게 유지합니까? 답답하네, 정말.
-뭐 흔히 하는 쉬운 방법으로 찬송가를 부르던가, 불경을 외던가. 아, 근데 마음이 불안하면 그거 별 소용없어. 단단히 마음을 다잡아야 효과가 있지.
-저, 무교입니다.
-하아, 정말 귀찮은 아이네. 너, 내가 너 때문에 오늘 얼마나 말을 많이 한 건줄 아니? 엄청 힘들어, 나. 그러니까, 일일이 말꼬리 좀 잡지 말래?
-하아. 그니까, 제발 도움 될 만 한 걸, 좀 간단하고 효과적인 걸 말 해주시죠.
-하아, 꼭 종교적일 필요는 없어. 니가 널 지켜 주리라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떠올리고,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효과는 있어. 중요한 건 믿음이니까. 그 사람이 나를 구해줄 거라는 믿음, 아니 그 사람이 존재하는 이상 나는 꼭 무사히 살아남을 수 있을 거라는 확신 담은 믿음. 그것도 일종의 언령言靈의 술법이라고 할 수 있거든. 누구나 다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주술이지.
“우운 사부님.”
머릿속으로 2년 전 사부님과 나누었던 대화들이 바로 어제 일처럼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떠오른 것은 사부님의 무표정한 평소의 얼굴이었다. 아름답고 강인한 얼굴.
“깔깔깔깔, 내가 너 이럴 줄 알았다. 너 지금 그 꼴 엄청 웃긴 거 알아? 크크큭.”
하아, 저 재수 없는 목소리가 이렇게나 기쁘고 반갑게 느껴지다니. 선우명은 스스로가 너무나 안쓰럽고 불쌍해졌다.
“미친. 왔으면, 웃지만 말고 좀 도와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