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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과 함께하는 나날
작가 : ghostS
작품등록일 : 201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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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레드 오어키드 red orchid
작성일 : 17-12-01     조회 : 266     추천 : 0     분량 : 6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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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2. 혼(魂)과 백(魄)의 안내자

 

 #8. 레드 오어키드 red orchid

 

  “야야, 명아. 그렇게 맹한 썩은 생선눈깔 하고 있지 말고, 우리도 저렇게 함 놀아보자. 엉? 안 논다고? 그럼 나 혼자라도 논다? 괜찮지? 깔깔깔.”

 

  선우명도 아애도 이런 시끄럽고 번잡스런 장소엔 분명 처음 와본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아애는 전혀 어색해 하거나 낯설어하지 않았다. 연신 몸을 까닥까닥 흔들며 음악과 분위기를 맘껏 즐겨대는 꼴을 선우명은 째려보았다.

 

  “하아, 인간도 아닌 주제에, 뭐 이런 델 그렇게 좋아하냐?”

 

  아애는 선우명에게 혀를 쏙 내밀더니, 선우명을 내버려 둔 채 기다렸다는 듯이 메인 스테이지로 달려 나갔다.

  그리곤 정말로 막춤이라는 말 외에는 달리 표현 할 방법이 없을, 이상하고 괴팍한 몸짓으로 미친 듯이 흔들어대기 시작했다.

  다행히도 그런 아애의 괴상망측한 몸짓에 신경 쓰는 사람들은 없었다. 아애의 요상한 춤사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각자 그들만의 몸짓에 몰두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흥에 겨운 아애와 다른 사람들이 신나게 뒤엉켜 춤을 추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선우명은 뭔가 울컥한 것이 치밀어 올랐다.

  여기는 물난리로 엉망이 되어버린 휘온동과는 너무나 다른 공간이었다. 바깥세상은 어떻든 상관없이, 이 클럽 안에서의 세상은 확실히 독자적으로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하아, 미친 것들. 어우, 다들 진짜 미친 것 같이 흔들어 대네.”

 

  그나마 다행인 건 여기에는 귀신들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원래 조금이라도 어둠이 깃든 곳이면 많든 적든 귀신들이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달랐다.

  처음엔 이런 클럽처럼 사람들이 지나치게 많이 모인 곳에는 잡귀들이 아예 끼어들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짐작했다.

 

  ‘흐음. 아닌데. 학교나 병원에는 많았는데 말이지.’

 

  그렇다면, 저렇게 지나치게 활기차고 미친 듯이 날뛰는 인간들의 생기(生氣)가 그것들에겐 오히려 마이너스 에너지가 될 수 있을 것 같았다. 귀신들은 인간들이 공포에 떨고 있을 때를 가장 좋아하니까 말이다.

 

  선우명이 앉아있는 라운지(Lounge) 바(Bar)에는 맥주부터 최고급 위스키까지 다양하게 판매하고 있었다. 그러나 선우명은 아애가 스테이지에서 실컷 노는 동안 겨우 차가운 얼음물 한잔만을 찔끔찔끔 마시고 있었다.

  ‘홍란’이라는 사람은 언제 클럽에 나타날지 모른다. 이렇게 무조건 기다리고 있어야 한다는 사실에, 선우명은 살짝 지루함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선우명은 조용히 주위를 둘러봤다. 전체적으로 어두운데다 수시로 네온사인 불빛이 머리위로 오고가는 정신없고 산만한 공간이었다. 주위로 오고가는 사람들도 술에 취했던 춤에 취했던 온전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없어 보였다.

  바(Bar) 구석자리에 앉은 채 손바닥 위에 작은 불덩어리를 올려놓더라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을 분위기였다.

 

  선우명은 자신의 언령조형술로 물을 다시 움직일 수 있을지 아침부터 내내 확인해보고 싶었었다. 하지만 새벽부터 이런 저런 일이 급박하게 진행되었던 지라, 그걸 미처 확인해볼 겨를이 없었다.

  선우명은 작은 목소리로 먼저 ‘불’이라고 외쳤다. 선우명의 머릿속 이미지 그대로 아주 작은, 성냥개비 하나에 붙어있을 법한 불덩어리가 오른 손바닥위에 나타났다. 선우명은 저도 모르게 씩 웃으며 만족스러움을 드러냈다. 역시 불은 항상 성공이었다. 절대로 실망을 주지 않는다.

 

  “물, 움직여라!”

 

  하지만 물잔 속 물방울은 평온하기 그지없다. 잔물결 하나 흔들리지 않았다. 선우명은 다시 한 번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선명하게 그려냈다.

 

  ‘컵 속의 물이 한줄기로 뿜어져 나온다. 아름답게 회오리치며 다가오더니 손위의 불꽃을 감싼다. 작은 물줄기가 결국 불을 꺼트릴 것이다.’

 

  선우명은 이번엔 좀 더 큰 목소리를 냈다.

 

  “물! 컵 속의 물! 움직여!”

 

  반응을 보인 건, 물이 아니라 바삐 움직이던 바텐더였다.

 

  “물 더 드릴까요?”

 

  “아, 아닙니다.”

 

  민망해진 선우명은 오른손을 의자 아래로 얼른 숨기며 말했다. 그리고 반대쪽에 몰려든 고객들을 향해 바텐더가 다시 돌아서자 급하게 입김으로 불을 ‘훅’ 꺼버렸다.

  아무래도 어제 자신이 물의 힘을 사용했던 것은 일종의 기적 같은 일인 모양이다. 선우명은 실망하며 차가운 물을 한입에 꿀꺽 삼켰다.

 

 *

 

  선우명에게 아까 자신들을 안내했던 매니저가 다시 찾아온 것은 그 뒤로 한 시간여가 지난 후였다.

 

  “레드오어키드님이 막 도착하셨습니다. 두 분 말씀을 드렸더니, 지금 바로 모시고 오라고 하십니다.”

 

  “우왁!”

 

  등 뒤로 나타난 매니저가 시끄러운 소음을 뚫기 위해 선우명의 귀에 바싹 대고 속삭였다. 그에 이미 반쯤 얼이 빠져 멍하니 앞만 보고 앉아있던 선우명은 화들짝 놀라고 만 것이다. 할머니와 사부님 외엔 다른 사람이 자신에게 그 정도로 가깝게 접촉해온 적이 없어 더 놀란 것도 있다. 물론 아애는 사람이 아니기에 별도지만 말이다.

 

  “괜찮으세요?”

 

  “아아. 네. 지금 바로요? 그런데 제 동행이 지금 저기서 춤을 추고 있어서요, 바로 불러오겠습니다.”

 

  하지만 선우명이 당연하듯 바라본 곳에는 아애가 없었다.

  분명히, 조금 전까지, 바로 저 스테이지 위에서 미친 듯이 괴성을 지르고 있었다. 두 손을 머리 위로 흔들어 대면서 방방 뛰기 까지 했었다. 그랬던 아애가 주위에서 녀석의 그 이상한 춤에 호응하며 같이 춤을 추던 무리들과 함께 사라진 것이다.

  선우명은 빠른 속도로 주위를 훑어보았지만, 거짓말 같이 아애는 시야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어어어. 어라? 잠시 만요. 제 동료가 지금 보이질 않아서, 좀 찾아봐야 할 것 같은데…….”

 

  “아니, 죄송하지만, 지금 바로 가셔야 합니다. 아시겠지만, 그 분이 워낙 까칠, 아니 예민하신 분이라, 지금 안 가시면 생각이 바뀌어서 안 만나보겠다고 하실 수도 있고. 잘 아시잖습니까? 그 분 성격.”

 

  여러 군데로 나뉘어져 있는 무대로 나가 아애를 찾아보려던 선우명의 소매를 잡아끌면서 매니저가 다급하게 말했다. 줄곧 냉정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던 매니저도 이번에는 꽤나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는 이 클럽에서 제법 오래 근무한 베테랑급 매니저였다. 그런 그도 예민하고 괴팍스러운 성격을 자랑하는 클럽의 최고 VIP인 레드오어키드를 직접 상대할 때마다 항상 식은땀이 흐를 정도로 긴장이 되곤 했었다.

 

  게다가 방금 전, ‘홍란’이라는 그녀의 본명을 대고 찾아온 고객 두 사람이 있다는 자신의 보고에 레드오어키드는 얼굴을 잔뜩 구기며 평소보다 더 날카롭게 반응 했던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본명 대신 레드오어키드라는 가명을 더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지만, 오늘밤의 반응은 더욱 더 신경질 적이었다.

  당장 그 두 사람을 데려와 보라는 그녀의 명령을 지금 바로 이행하지 않았다가는, 괜히 그녀의 기분을 몇 배로 더 상하게 만들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오늘 밤 내내 무슨 불호령이 내려질지 몰라 전전긍긍해야만 한다.

  무엇보다 그 레드오어키드가 지금 4층의 통유리 벽으로 둘러싸여진 초호화 VIP 파티 룸에서 아래쪽 상황을 다 지켜보고 있었다.

 

  “지금 바로 올라가 보셔야 합니다. 진짜로요.”

 

  이제는 땀까지 흘리며 말하는 매니저를 보자 선우명은 잠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선우명은 홍란이라는 사람의 성격뿐만 아니라 그녀에 대해서 아는 것은 단 하나도 없었다. 그저 이름 하나 달랑 듣고 무작정 찾아온 터였다. 이 만남이 더 중요한 건 이쪽이지 그 쪽은 절대 아니다.

  게다가 지금 매니저가 이렇게 긴장하는 모습을 보니 홍란이라는 사람의 성격이 그리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만은 눈치 챌 수 있었다.

  오늘 밤 자신은 앞으로 찾아야 할 사람에 관한 필요한 정보를 그녀에게서 얻어야만 했다. 그렇다면 괜히 아애를 찾아다니느라 중요한 기회를 놓칠 필요는 없다고 결론지었다.

  사실 아애가 어딘가에서 사고를 칠 까봐 걱정이지 그 녀석의 안위는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하아, 그럼 그렇게 하죠, 뭐.”

 

  천만다행이다 싶은 표정을 짓는 매니저의 뒤를 따라 선우명은 홀 한쪽에 나선형으로 만들어진 계단을 올라갔다.

 

  클럽 내부는 1층에서 4층까지 넓은 중앙 홀이 통으로 뚫려져 있었다. 계단을 오르면 각 층마다 각각 다른 컨셉으로 꾸며져 있고, 모두 중앙 1층의 메인 스테이지를 바라보며 춤과 술을 즐길 수 있도록 디자인되어 있었다.

  3층부터는 아무에게나 출입이 허용되지 않는 VIP전용 홀 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4층은 가장 호화스럽게 꾸며진 파티 룸으로 구성되어진 모양이었다.

  4층에는 각각 다른 색으로 꾸며진 4개의 파티 룸이 있었고, 그 중 온통 붉은 색으로 꾸며진 화려한 파티 룸으로 선우명은 안내되어졌다.

  그리고 선우명을 룸 안으로 들여보낸 후 매니저는 제 할 일을 무사히 다 마쳤다는 홀가분한 마음으로 서둘러 사라졌다.

 

  홍란이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의외로 파티룸은 비어 있었다.

  실내등이 켜지지 않은 상태라 내부는 어두컴컴했다. 그래도 홀 방향으로 넓게 펼쳐진 통유리를 통해 휘황찬란한 네온사인불빛을 볼 수 있어 그리 어둡다고 느껴지지는 않았다.

  선우명은 통유리 벽 쪽으로 다가가 아래쪽 1층 중앙 홀을 내려다보았다. 혹여 아애가 어디 있는지 보일 수도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것만 눈에 들어왔다.

  어마무시하게 화려하게 꾸며진 클럽 전체의 내부디자인 뿐만 아니라 수많은 인간들의 움직임이 만들어낸 물결이 장관이었다. 저절로 ‘우와’ 하고 감탄이 내뱉어 졌다.

  그러나 그 직후 선우명의 눈빛이 날카로워졌다.

  뭔가가 있었다. 평소에 선우명이 보던 귀신은 아니었다. 선우명은 어둠 속에서 설핏설핏 보이는 그 정체모를 덩어리를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찌푸렸다.

 

  컸다. 운동 좀 한다는 키 큰 사내가 꼬꼬마로 보일 정도로, 거의 두 배는 될 정도로 덩치나 키가 크다. 네온사인 불빛이 지나칠 때마다 언뜻언뜻 보였지만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커다랗고 뾰족한 부리와 높다랗고 화려한 머리장식 같은 볏. 그리고 머리 아래로 축 쳐진 징그러운 붉은 피부 같은 그것도 보였다.

 

  그것은 닭이었다. 수탉. 제 무리의 대장들만이 보여주는 근엄하고 강렬한 포스를 가지는 그런 수탉 말이다.

  한 번씩 큰 날개를 양쪽으로 쭉 펼치며 돌아다닐 때 마다 주위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이리저리 밀려졌다. 하지만 사람들은 제 옆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다니는 거대한 닭을 못 보는 것이 분명했다. 그들은 그저 ‘꺄르르르’ 거리며 신나하고 있었다.

  심지어 키가 3미터에 달하는 커다란 닭이 곁에 있는 사람 하나를 부리로 꼭 집어선 하늘 쪽으로 올려보며 그대로 꿀꺽 삼키고 있을 때도 말이다. 그 모습은 마치 닭이 지렁이를 집어삼키는 것처럼 자연스러웠다.

  선우명은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걸 느꼈다.

 

  “미친. 씨B, 여긴 귀신이 아니라 사람 잡아먹는 괴물이 나돌아 다니는 거야?”

 

  “아니요.”

 

  낭랑한 여자의 목소리에 선우명은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

  때마침 네온사인 불빛이 흘깃 통유리 안으로 비춰졌다. 그 화려한 불빛 사이로, 선우명이 서있는 통유리의 반대쪽 벽의 푹신한 소파에 앉아 있는 자그마한 그림자 하나가 그제서야 보였다. 선우명은 그 그림자가 자신을 찌르듯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걱정 말아요. 저건 괴물도 뭣도 아니니까. 사람을 잡아먹는 건 더더욱 아니고.”

 

  “······아, 네.”

 

  그럼 방금 전 내가 본 건 도대체 뭔데, 라고 고함쳐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지는 못했다. 왠지 상대방의 포스에 밀리는 것 같아, 아애를 이 자리에 같이 데려오지 않은 게 그저 아쉬울 뿐이었다.

 

  선우명은 먼저 상대의 목소리에 한번 놀랐다. 반대 쪽 어둠속에서 들려온 홍란이라는 사람의 목소리는 아무리 많게 봐도 20대 초중반 여성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애초에 선우명에게 의뢰를 했던 사람이 노인이었고 그 노인이 ‘홍란 여사님’이라고 지칭했었기에, 무의식적으로 그녀가 당연히 노인네의 동년배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알려준 주소대로 온 장소가 젊은 사람들이 노는 클럽이라는 것을 확인했을 땐, 그저 뭔가 잘못 된 것이 분명하다고만 생각했었던 것이다.

 

  ‘삐빅’하는 기계음과 함께 실내가 갑자기 환하게 밝아졌다. 홍란이라는 여자가 리모컨으로 실내 전등불을 켠 모양이었다.

  갑자기 방안이 밝아지자 순간적으로 선우명의 눈이 질끈 감겨졌다. 그 짧은 순간 뭔가가 ‘휘리릭’ 선우명의 코앞으로 빠르게 지나가는 느낌이 들었지만 눈을 떴을 땐 아무 것도 없었다.

  선우명은 눈을 뜨자마자 우선 소파에 앉은 여자를 관찰했다. 그리고 처음 목소리를 듣고 예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어리게 보이는 것에 두 번째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소파에 앉아 있는 여자는 새빨간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리고 새하얀 얼굴을 하고 있었다. 앙증맞은 작은 키와 동안이 제 나이를 가늠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 같았다.

  여자의 작은 얼굴 안에는 서로 잘 어울리는 눈코입이 오밀조밀하게 자리 잡아 제법 예쁘장한 인상이었다. 그리고 작은 체구에 어울리는 검은 색 미니 원피스를 예쁘게 입고선 팔짱을 낀 모습이 꽤나 도도해 보였다.

  선우명은 그녀가 요염한 작은 고양이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잠시간의 침묵 뒤에 먼저 말을 꺼낸 것은 여자 쪽이었다.

 

  “특이한 구석이 있는 분이네요. 다른 사람 같았으면, 아까 그걸 본 그 순간에 이미 난리법석을 떨 텐데, 제법 간이 크신가 봐요. 아니, 사실 그걸 볼 수 있는 사람도 없지만요. 거의.”

 

  “아아. 네에. 그건, 사실은, 제가 더 끔찍한 걸 더 자주 보는지라······.”

 

  솔직한 심정으로, 선우명에겐 방금 본 사람 거대한 닭 괴물 보다는 오랜 기간 동안 따라다니며 자신을 괴롭히는 귀신들이 더 끔찍하고 무서운 존재였다.

 

  “뭐. 그럼 일단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일단 앉으세요.”

 

  그제야 여태 멀뚱하니 서있는 자신을 눈치 채곤 선우명은 얼른 홍란의 맞은편에 앉았다.

 

  “아아, 네. 감사합니다. 홍란……님?”

 

  “미안하지만, 그 이름으로 부르는 거 좀 자제해 줄래요? 그건 좀, 너무, 올드해서 말이죠.”

 

  “아아. 네. 음.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저기 그 뭐라더라. 그 레드오어키드님?”

 

  “그렇게 불러도 되고, 뭣하면 그냥 레드라고 불러도 되요. 내가 워낙 빨간 색을 좋아해서요. 그냥 홍란이라고 부르지만 않으면 되요.”

 

  자신의 긴 붉은 색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레드오어키드는 선심 쓰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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