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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과 함께하는 나날
작가 : ghostS
작품등록일 : 201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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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혼魂. 백魄. 귀鬼. 정精
작성일 : 17-12-18     조회 : 287     추천 : 0     분량 : 8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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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3. 혼(魂)과 백(魄)의 안내자

 

 #15. 혼魂. 백魄. 귀鬼. 정精

 

  선우명은 난생 처음 와 보는 으리으리한 식당에 앉아 연신 다리를 달달 떨었다. 어색하고 불안한 자리였다. 홍란과 저녁에 만나서 자세히 이야기하기로 하고선, 덜컥 약속을 잡았더니 오라는 곳이 이런 비싼 호텔 레스토랑이다. 선우명도 이곳에 오기 전 까지는 이런 곳인지 알지 못했다.

 

  ‘하아, 진작 알았더라면, 이런 델 덜컹 온다고 하는 게 아닌데. 아니, 이런데 도대체 밥값이 얼마야. 간 쫄려 죽겠네.’

 

  그저 밤 이외의 시간 동안 홍단을 자신의 집에 머물게 하는 것만으로도 터무니없이 많은 돈을 받기로 한 것이 은근 마음에 걸렸었다. 그래서 자신이 나중에 밥을 한번 거하게 사겠다고 말한 것이, 당장 오늘이 그날인 된 것이다. 선우명은 벌써부터 후회가 되기 시작했다. 괜히 부잣집 아가씨에게 그런 큰 소리를 친 게 잘못이었다.

 

  “킄큭ㅋ큭, 야, 야. 명아, 이런 데 고기는 더 맛있는 거냐?”

 

  “으음, 그저 그래. 오늘 아침에 멍이가 구워준 고기가 더 맛있을 걸.”

 

  거슬리도록 활발한 목소리의 아애와 차갑고 냉소적인 목소리의 홍단도 선우명과 함께 앉아있었다. 선우명은 홍단에게 아침부터 몇 번이나 ‘선우 멍’이 아니고 ‘선우 명’이라고 고쳐 말해주었으나, 이젠 그냥 포기하기로 했다.

 

  홍단은 여기서 같이 밥을 먹고 홍란과 함께 바로 출근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아애는, 귀찮다고 웬일로 나가기 싫어하는 걸 억지로 겨우 데리고 나온 거였다. 물론 미끼는 비싸고 맛있는 먹거리들이었다. 나중에 선우명이 집으로 돌아갈 시점엔 분명 이미 밤이 되어있을 테니, 그 때를 대비해서 아애가 필요했다.

 

  선우명은 아애를 무조건 데리고 와야만 했다. 물론 선우명도 아애를 100% 완전히 신뢰하고 있지는 않다. 아애가 선우명에게 달라붙는 잡귀들을 치워주는 건 아예 기대조차 하지 않는다. 그래도 선우명이 길에서 기절이라도 한다면, 적어도 쓰러진 상태로 방치하지는 않을 거라는 얄팍한 기대는 하고 있는 중이다.

 

  그 날 새벽에 그렇게 많은 귀신들을 한꺼번에 보지 않았다면, 그래서 아직도 선우명의 심장이 벌렁 벌렁거리지만 않았다면, 선우명도 그렇게 비굴하게 아애를 꾀지 않았을 거였다.

 

  “하아, 그러고 보니, 홍탁! 나도 그런 수탉 한 마리 키우고 싶네요. 그 녀석만 있으면 내 곁에 몰려오는 잡귀들 다 날려 보낼 수 있는 건데.”

 

  녀석의 어마어마한 꼬끼오 소리에 무시무시한 악귀들이 먼지처럼 사라지던 모습이 아직도 생생했다.

 

  “하아, 정말이지 그 녀석을 낮이고 밤이고 데리고 있다면, 더 이상 귀신을 두려워하며 살아가는 이런 비참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될 텐데 말이죠. 제가 그 녀석 관리자 하면 안 될까요?”

 

  “넌 안 될걸? 일단 그 닭 녀석은, 홍란 가문의 핏줄에게만 전해 내려온 거라서 말이야. 홍란의 먼 조상이 그 닭을 만들어냈거든. 게다가 홍탁인 밤에만 튀어나오는 녀석이라서 말이야. 너 소원대로 낮이고 밤이고 데리고 다니는 건 더더욱 불가능이지.”

 

  “흐음, 그런데 그 닭은 도대체 정체가 뭐에요? 레드오어키드님은 무슨 순결한 귀신만 먹는다나, 뭐라나, 하고 이해 못할 소리를 하시던데.”

 

  “뭐, 천계(天鷄)라고 하면서 그 집안에서는 엄청나게 떠받들고 있는 나름 신성한 영수(靈獸)이긴 해.”

 

  “천계(天鷄)?”

 

  “뭐 옛날에는 쉽게 그냥 ‘하늘 닭’, ‘하늘 닭’ 하고 불렀어. 신들의 세계에 있는 신성한 산의 신성한 봉숭아 나무를 지키고 있다는 닭들의 왕.”

 

  “대박. 진짜로 킹 오브 더 치킨 이었어.”

 

  “하지만, 진짜 천계는 아니야. 당연히 진짜는 신계에 있겠지, 이렇게 인간들 세상에서 혼백이나 쪼아 먹고 살겠어? 그저 인간들의 간절한 소망이 불러낸 천계의 짝퉁일 뿐이지.”

 

  홍단이 심드렁하니 말했다.

 

  “깔깔깔, 그런 헛소리 말고, 우린 언제 밥 먹어? 나 배고파.”

 

  “시끄러워. 진짜로 뱃속에 해충이나 아귀가 들었나, 항상 왜 그러는 거냐?”

 

  “그것보다도, 아애 넌 정말 그런 옷밖엔 없는 거야, 아님 그냥 니 취향이 그렇게 너저분한 거야?”

 

  홍단은 아애의 패션 센스가 영 마음에 안 드는지 손가락질까지 해댔다. 홍단의 말에 선우명은 맞은편에 나란히 앉은 두 사람, 아니 사람인 척 하고 있는 두 명을 자세히 바라보았다.

 

  키가 거의 180에 달하는 여자 아애와 170정도의 남자 홍단. 한 쪽은 낡고 닳은 짝퉁 브랜드 트레이닝을 입고 있었고 다른 한 쪽은 TV에 나오는 아이돌 그룹의 멤버처럼 화려하게 차려입고 있었다. 속 내용물은 일단 무시하더라도, 겉모양새로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상한 조합이었다.

 

  “하, 그러고 보니 너 그 꼴로 잘도 클럽에도 들어 왔었네? 이거 물 관리 제대로 안 하는 거야 뭐야? 클럽 가드들 교육 좀 다시 시켜놔야겠는데?”

 

  “크큭큭. 니 꼴도 만만치 않은 데 뭘 그래? 지지리 궁상 명이도 너처럼 그렇게 많이 찢어진 건 안 입고 다니거든.”

 

  홍단이 입고 있는 무릎까지 찢어진 청바지와 구멍이 송송 뚫린 얼룩덜룩한 면 티를 보며 아애가 깔깔거렸다. 사실 선우명도 그 미묘하게 화려한 옷들을 보며 살짝 당황하기는 했었지만, 적어도 멋 부리려고 일부러 입은 옷이라는 것만은 알 수 있었다. 그 옷들이 엄청 비싸고 유명한 프랑스 브랜드의 진품 이라는 건, 당연히 선우명도 몰랐지만 말이다.

 

  “흠흠, 홍단님 옷 멋있기만 한데, 아애 넌 가만히 있어.”

 

  “크크크큭. 멋있긴 개뿔. 거지가 따로 없구만. 야, 야, 차라리 선우명 니가 지금 입고 있는 게 차라리 낫다, 뭐. 깔갈갈깔갈깔.”

 

  선우명은 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낡은 티셔츠를 째려보는 날카로운 홍단의 눈을 피해 달아나고 싶었다.

 

  “그런데, 야, 선우명, 나 배고프다고오~! 맛있는 거 먹게 해준다메?”

 

  “하아, 넌 좀 걍 조용히 해. 밥은 레드오어키드님이 와야 시킬 거 아냐?”

 

  사실은 선우명도 배가 슬슬 고파왔지만 이런 고급스런 곳에선 어떻게, 무슨 음식을 시켜야 하는지 몰라서 그냥 참기로 한 것이다. 선우명은 홍란이 어서 빨리 와서, 자신의 뻘쭘하고 부담스러운 상황을 없애주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홍단이 손을 가볍게 들더니 웨이터를 불러 세웠다. 선우명은 홍단의 갑작스런 행동에 놀라 심장이 크게 두근거렸다.

 

  “와인 가벼운 걸로 아무거나 먼저 줘요.”

 

  홍단의 말에 웨이터가 당황하며 일행을 훑어보았다. 선우명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고, 아애는 눈치 없이 배고프니 당장 먹을 것도 내놓으라고 말했으며, 홍단은 자신의 지갑에서 주민등록증을 꺼내 내보였다.

 

  “올 사람이 하나 더 있어서요. 와인이랑 간단한 식전빵 같은 거라도 먼저 내 주세요.”

 

  아직 10대로만 보이는 홍단이 민증으로 이미 성인이라는 걸 확인시켜주자 그제야 웨이터는 안심의 미소를 지으며 되돌아갔다.

  그리고 의아해 하는 선우명을 보며 설명해 주었다.

 

  “매일 밤 홍란 녀석 따라 클럽 같은 델 드나들어야 하니까 말이지. 이런 게 있어야 좀 편하더라고.”

 

  “그런데, 그런 건 어떻게 만드셨어요?”

 

  “뭐, 홍씨 집안에서 불법으로? 날 이용해 먹으려면, 그 정도는 해야지, 뭐.”

 

  아애는 홍단의 손에서 작고 네모진 플라스틱 카드를 뺏어들고는 신기한 듯 요리 조리 뒤집어 보았다.

 

  “야, 선우명! 나도 이런 거 내놔.”

 

  “하아, 진짜 미친다, 내가. 니가 왜 필요한데? 학교 갈 거야? 투표 할 거야? 이상한 짓해서 경찰한테 붙잡히지만 않으면 돼. 너한테 아무 필요 없는 물건이라고.”

 

  “내 놔. 만들어!”

 

  “하아, 나도 어떻게 만드는지 모른다고. 이날 이때껏 대한민국의 법을 어겨본 적이 없어서, 그런 불법적인 일 어떻게 하는지 모른다고요.”

 

  다행히 때마침 웨이터가 와인 한 병과 와인 잔들, 그리고 먹음직스러운 빵을 가지고 나타났다. 어울리지도 않을 앙탈을 부리던 아애도 빵을 씹으며 잠시 조용해졌다.

 

  “그런데 홍단님. 레드오어키드님이 말했던, 그 귀신이 순결하니, 안 순결하니 하는 건 무슨 말이죠? 그리고 혼백이니 귀신이니 하는 것들도 무슨 차이에요?”

 

  먼저 와인부터 한 모금 마신 홍단이 선우명 뒤쪽의 테이블을 가리키며 물었다.

 

  “네 눈엔 저 사람들 어떻게 보이는데?”

 

  선우명은 몸을 돌려, 자신이 뒤쪽 테이블을 바라보았다. 엄마, 아빠, 아들, 딸의 정형적인 다정한 4인 가족이 외할머니인지 친할머니인지 모르겠지만 할머니 한 분과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다. 가족들이 맛있게 먹는 걸 보는 게 그저 흐뭇하신지 할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보기만 할 뿐 먹지는 않고 계셨다.

 

  “뭐, 사이좋게 보이는 평범한 가족이네요. 아, 이런데서 밥을 먹는 거 보니까, 부자 가족?”

 

  “다시 확인해봐. 테이블도.”

 

  “?”

 

  선우명은 다시 몸을 돌렸다. 여전히 다정한 가족이었다. 홍단의 충고대로 테이블 위도 확인했다. 처음엔 뭘 봐야 할지, 뭐가 이상한건지 알 수 없었지만, 선우명도 곧 알 수 있었다.

  할머니 앞에는 수저나 식기 같은 게 아예 없었던 것이다. 4인 가족은 단 한 번도 할머니 쪽을 바라보거나 말을 걸지도 않았다. 처음부터 없는 사람인 것처럼.

  선우명은 온몸이 뻣뻣하게 경직되는 것 같았다. 그 상태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천천히 고개를 돌려, 겨우 원래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저 할머니, 죽은 거야. 아예 저 집 식구도 아니고. 그냥 저 식구들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서 붙어있는 거지. 저런 게 혼백이야. 니 표현대로 라면, 바로 순결한 귀신인거지.”

 

  마치 살아있는 사람처럼 천연덕스럽게 앉아있는 저 할머니가 죽은 사람이라는 걸 알게 되자마자, 선우명은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그리고 더듬거리며 말했다.

 

  “아니, 저 할머니도 죽은 거라면, 결국 귀신인거잖아요? 그런데 왜 저렇게 사람이랑 구분도 안 되게 똑같아 보이죠? 내가 이제껏 본 것들은, 저런 게 아니었다고요! 엄청나게 끔찍하고 무섭게 생겼다고요. 냄새도 소리도 겉 생김새도 다 얼마나 끔찍한데.”

 

  “니 눈에는 홍탁이가 잡아먹는 것들도 다 산 사람처럼 보였다면서?”

 

  “아·······, 네에. 아무래도 제가 늘 보던 귀신들과는 너무 달랐으니까요.”

 

  선우명은 홍단에게 자신이 보는 끔찍한 귀신의 행태를 자세히 풀어냈다. 사부님도 제대로 들어주지 않았던 자신의 불쌍한 삶에 대한 하소연을, 홍단은 의외로 잘 들어주었고 아애는 중간 중간 선우명을 비웃으며 놀리는 것을 잊지 않았다.

 

  “흐음. 어쩌면 영안이 너무 밝아서 생긴 일종의 부작용일수도 있겠네. 보통의 경우엔 아무리 인간이 영안이 트였다 하더라도 ‘혼’이든 ‘백’이든 ‘귀’든 다 그냥 흐릿하게 보일 뿐이거든. 각자 풍기는 기운으로 그것들을 겨우 구분 할 수 있을 정도?”

 

  “혼? 백? 귀? 그게 다 무슨 말인데요? 그러니까 결국 그게 다 귀신인거잖아요?”

 

  “흐음. 멍이 넌 그런 영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아는 게 별로 없네? 어릴 때부터 그랬다면, 주변에서 아무도 안 알려줬어? 보통은 가족에게서 계승 될 텐데.”

 

  “고아라서요.”

 

  “아, 미안.”

 

  일단 사과의 말을 하긴 했지만, 홍단은 사실 별로 신경 쓰는 것 같지는 않았다.

 

  “하아, 아니, 왜 사부님조차도 제대로 설명 안 해주냐고? 그럼, 뭐야? 내가 살아있다고 생각했던 사람 중에서도 사실은 죽은 것일 수도 있다는 건데? 이거 뭐지? 괜히 무섭게.”

 

  “사부?”

 

  “아, 네에. 우운 선자님이라고, 도계이선 엄청 유명하신 분입니다. 아마 홍단님도 들어보셨을 텐데요?”

 

  “우운…… 선자? 흐음, 풍이에게 들어본 적 있었던 거 같기도 하네.”

 

  고개를 갸웃거리는 홍단의 대꾸에 선우명의 눈이 호기심으로 반짝였다. 그러고 보니 홍란도 부적을 날려 귀신을 잡는다는 풍 영감 이야기를 했었다. 풍 영감님이 어쩌면 자신의 사부의 동료일수도 있겠다 싶어 그 분에 대한 호기심이 발동했다. 하지만 풍 도사님 이야기도 너무 궁금했지만, 지금은 다른 궁금증이 더 급했다.

 

  “홍단님, 일단 해주시던 설명, 마저 해주시면 안 될까요?”

 

  홍단님은 사부님과 달리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스타일이었다.

 

  혼魂 과 백魄.

  둘 다 살아있는 사람의 넋으로서 그 정신과 육체를 유지하는 정기(精氣)다.

  사람이 죽을 때,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 인간 속에 정신 활동을 관장하던 혼(魂), 땅에 머물러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 인간의 모든 육체 활동을 관장하던 백魄.

 

  “흔히들 죽으면 저승사자가 데려간다는 거 있잖아. 그게 혼(魄)이야. 천국이든 지옥이든 극락에 가든 환생을 하던, 그건 다 혼, 영혼인거지.”

 

  “아하.”

 

  “그리고 남아서 제사상 얻어먹는다거나 하는 것들이 바로 백(魄). 인간이었을 때 행동을 담당하던 넋이라 살아있을 때의 일을 반복하는 거지. 제일 많이 들어봤을 걸? 지박령같은 거.”

 

  “네에.”

 

  “하여튼 혼魂이든 백魄이든, 사람이 죽으면 원래는 다 하늘과 땅으로 돌아가야 하는 게 자연스러운 거야. 그런데 때가 되어도 돌아가지 않고, 계속 그렇게 산 자들의 세계에 남아있게 되면 귀鬼가 되는 거고.”

 

  “그럼, 지금 저렇게 멀쩡하던 할머니 혼백도 나중엔 그렇게 끔찍한 악귀가 될 수 있다는 거군요.”

 

  홍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늘과 땅으로 돌아가 ‘정기精氣’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가지 못한 것들은 주로 한恨이나 분노, 집착, 미련 같은 뭔가 집요한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들이야. 그것들이 자연으로 흩어지지 않고 계속 형태를 유지시키려고 인간들의 생기를 흡수하는 거고.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본래의 정기는 더럽혀지고, 나중엔 아마도 선우멍이가 보는 그런 끔찍한 귀신 상태가 되는 거겠지.”

 

  “그렇다면, 혼은 하늘로, 백은 땅으로 돌아가는 게 자연스러운 건데, 홍탁이 막 그렇게 먹으면 안 되는 거 아닌가요?”

 

  “그게 홍탁이의 힘이야. 먹어서 소화시켜 정화시키는 거지. 나름 ‘인공 혼백 정화기’ 랄까?”

 

  홍단의 말에 아애가 깔깔거리며 끼어들었다.

 

  “깔갈깔갈깔. 근데 그딴 녀석 없어서도 잘 돌아가야 되는 거 아니었어? 갑자기 왜 그렇게 구질거리는 것들이 많은 거야? 운가 녀석도 투덜대던데? 크킄큭.”

 

  “으응? 운가? 웅가? 아애야, 그건 또 뭐 뭔 말이야?”

 

  선우명은 아애가 말하는 녀석은 또 어떤 종류의 요괴인 건지 알 수 없어, 괜히 소름이 돋았다.

 

  “음, 그건 왜냐하면……, 지금 이 세상엔 이제 신神들이 포기한 인간들만 남아있어서랄까?”

 

  홍단은 특유의 살짝 비아냥거리는 말투로 말했다. 선우명은 다시 홍단에게 집중을 하기로 했다.

 

  “네에?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어요.”

 

  “쉽게 말해 더 이상 이 세상은 신(神)이 없는 세계라는 거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신을 맹신 하며 살아가는지, 홍단님은 잘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선우명은 생각했다.

 

  “더 이상 인간을 어여삐 여겨, 혼魂을 직접 하늘로 데려다 주던 친절한 천사나 저승사자는 없다는 거지. 인간의 혼이 천국에 드는지 마는지 저 하늘 위의 신神은 더 이상 관심이 없어. 살아있을 적 인간을 어여삐 여겨 그 백魄을 흙과 물과 나무에 기꺼이 받아들여주던 자애롭던 대자연의 신들도 더 이상 이 땅엔 남아있지 않고.”

 

  선우명은 냉소적인 홍단의 말에 뭐라 대꾸할, 적당한 말을 찾을 수 없었다.

 

  “멀리 생각하지 않아도, 너 같으면 저렇게 오염된 강이나 바다에 신이 남아있고 싶겠냐? 원래 신이 머물던 곳에도 이미 인간들이 다 점령했어.”

 

  “흐음, 그래도 요괴 같은 건 종종 보는데요?”

 

  선우명은 빵을 아구 아구 찢어먹고 있는 아애를 바라보며 말했다.

 

  “맞아, 나나 아애 같은 정괴(精怪)는 아직도 남아있긴 하지. 신들이 떠나고 난 후엔, 나 같은 녀석이 신으로 추앙받기도 했었지만, 어디까지나 진짜 신의 대용이었어. 더 이상 진짜 신들은 여기에 남아있지 않는다는 걸, 눈 밝은 인간들도 알 수 있었거든.”

 

  정괴.精怪.

  수천 년 동안 하늘과 땅과 그 사이의 삼라만상(森羅萬象)의 가장 깨끗한 ‘기氣’가 모여 만들어진다는 ‘정精’. 그리고 그 ‘정精’이 어떠한 이유로든지 형체를 이루게 되면 ‘정괴精怪’라고 불리게 된다.

  선우명은 아애도 저렇게 아름다운 과정을 거쳐 만들어졌다는 걸 인정할 수가 없었다.

 

  “하여튼 이 세상에 저렇게 많은 혼백과 귀신이 우글거리는 그 자체가, 바로 신들이 이 세상을 버린 게 확실하다는 증거지.”

 

  “아니, 뭐, 귀신들이 우글거린다는 건 제가 제일 잘 알고 있지만요.”

 

  하지만 선우명도 끔찍한 귀신들이 많다는 건 잘 알고 있었지만, 순결한 혼백, 즉 귀신이 되기 전의 죽은 지 얼마 안 된 혼백들도 그렇게 많다는 건 모르고 있었다. 지금의 세상은 산 사람 반, 죽은 사람 반이 함께 움직이고 있다는 거다. 선우명은 다시 소름이 돋았다.

 

  “홍탁인 진짜 신계에 있다는 하늘 닭을 흉내 내어 ‘홍계관’이가 만들어 낸 거야. 인위적으로 어마어마한 양의 정기를 모아서 말이지.”

 

  “네에? 홍…계관? 혹시 홍란님의 조상님 쯤 되나요?”

 

  홍단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단히 능력 있는 점쟁이이자, 훌륭한 주술가 였어. 그 후손들도 그 덕에 이렇게 잘 사는 거고.”

 

  “홍계관? 뭔가 학교에서도 들어본 것 같은 이름이네요.”

 

  “하여튼, 아마 홍계관의 시대 때부터 귀신들이 득실거렸던 모양이야. 그래서 홍계관이 만들어 낸 거지. 사람들을 위해서. 이미 악귀가 되어버린 것들은 멀리 쫓아버리고, 자연적으로 정화되지 못한 혼백들은 먹은 후 억지로라도 정화시켜 보내려고. 그러고 보면, 홍탁이에겐 악귀까지 정화시킬 정도의 힘은 가지지 못한 셈이야. 짝퉁 천계의 한계인거지.”

 

  그 진짜 ‘하늘 닭’을 닮은 짝퉁 요괴 닭을 만들어내기 위해, 홍계관이 얼마나 많은 피를 사용했는지는 굳이 말해주지 않았다. 지금도 홍계관의 후손인 홍란의 피를 이용해서 간신히 그 형태를 유지시킨다는 것도 말이다.

 

  “무슨 말을 그렇게 심각하게 하고 있어요? 나는 홍단님이 그렇게 말을 많이 할 수 있다는 걸 오늘 또 처음 알았네요.”

 

  드디어, 마침내, 붉은 색 원피스를 차려입은 빨간 머리 홍란이 등장했다.

  치밀어오는 배고픔에 옆에 앉은 홍단이라도 본격적으로 다시 먹어치울까 고민하던 아애의 두 눈에 빛이 반짝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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