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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과 함께하는 나날
작가 : ghostS
작품등록일 : 201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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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너의 목소리가 들려
작성일 : 17-12-18     조회 : 271     추천 : 0     분량 : 5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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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4. 가제: 억울한 죽은 자와 억울한 산 자

 

 #17. 너의 목소리가 들려

 

  “이제 슬슬 일어나야겠어요.”

 

  어느덧 저녁 8시가 넘은 시간이 되었다. 시계를 확인한 후 홍란이 말했다. 여름이라 해가 늦게 지긴 하지만, 레스토랑의 커다란 유리창 밖으로 보이는 하늘빛은 이미 어둑어둑했다.

 

  “아, 네! 더 늦기 전에 가야죠.”

 

  창문 밖으로 시커먼 무언가가 휙 지나가는 걸 보고 선우명도 질겁하며 말했다.

 

  “크크큭크큭. 하여간 쫄보라니깐, 깔깔깔깔깔.”

 

  아애가 놀리든 말든, 선우명은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정말이지 당분간은 귀신이나 그 비슷한 건 일절 보고 싶지 않았다.

  홍란 또한, 완전히 어두워지면 홍탁이 나타나는데, 그 전에 무슨 준비를 해야 해서 일단은 집으로 서둘러 돌아가야만 한다고 했다.

  홍란이 자연스럽게 웨이터에게 계산서를 요청하더니, 원래 밥을 사기로 한 선우명 대신에 직접 계산까지 해주었다.

 

  “아, 죄송합니다, 레드님. 제가 한 턱 쏘기로 한 건데.”

 

  “아무리 그래도, 미성년자에게 이런 비싼 곳에서 얻어먹지는 않아요. 게다가….”

 

  홍란은 앞자리의 아애의 눈치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선우명에게 바싹 붙어 속삭였다.

 

  “저, 아애라는 여자…, 확실하게 우리 홍탁이 안 잡아먹게, 꼭 막아줘야 해요! 알았죠?”

 

  “아, 물론이에요. 당연하죠! 홍탁이가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는지 아는데, 무조건 보호해야죠.”

 

  고맙게도 홍란은 장우진이랑 같이 있었던 그 욕쟁이 마초남자 쪽을 한 번 더 추적해 보겠다는 약속까지 해주었다. 그러고 나서 홍란과 홍단은 각자 타고 온 차를 타고 가기 위해서 먼저 지하 주차장으로 출발했다. 선우명은 아애와 함께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기에 1층 VIP 전용 출입문을 통해 밖으로 나갔다.

 

  선우명도 가능한 빨리 레테타워를 벗어나기 위해 서둘렀다.

 

  “아애, 우리도 얼른 가자. 진짜로 여기엔 더 있기 싫다고.”

 

  “지하철 탈거지? 크크큭킄큭. 난 그게 재밌더라~. 인간들 구경도 하고. 깔갈갈깔깔.”

 

  “으이그. 그것 참 다행이네. 당장 자동차 내 놓으라고 안 해서.”

 

  아애는 운전을 할 줄 아는 홍단을 엄청 신기해했지만, 천만다행으로 직접 운전을 해 보겠다고 나서지는 않았었다.

 

  선우명도 김삼재 노인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이 불쑥 떠오르거나 또 앞으로 장우진을 어떻게 찾아야 할지를 생각 하면 마음이 갑갑하기는 했다. 게다가 김삼재 노인은 사부님 우운선자와도 아는 사이였다. 선우명은 김삼재 노인의 부고 사실과 그 분이 돌아가시기 전에 마지막 부탁을 했다는 것을 언제쯤 사부님에게 전할 수 있을지,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단 당장은 배도 부르고, 돈도 굳었던지라 즐거운 마음으로 타워 밖으로 나서고 있었다.

 

  레테타워의 출입문을 나서자마자 온 몸에 소름이 돋는 괴이한 현상이 생기기 전 까지는 말이다. 물론 레테타워에 처음 들어섰을 때부터 두통과 한기가 느껴지긴 했지만, 지금은 뭔가가 아예 본격적으로 선우명에게 그 소름끼치는 기운을 집중적으로 쏟아 붓는 느낌이었다. 선우명은 본능적으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단순히 밤이 되어가면서 레테타워 안팎의 음기가 더 강해진 것 때문인지, 아니면 다른 원인이 있는 것인지 알아야만 했다.

  하지만 주위에는 별다른 것이 보이진 않았다. 귀신도, 괴물 같은 것도 없었다.

 

  “뭐지? 요 며칠 동안 귀신한테 너무 많이 시달려서 내가 허해진 건가?”

 

  “깔깔깔깔깔, 명아~. 너, 조심해야겠는 걸. 크크큭ㅋ큭.”

 

  “왜? 뭔데? 무슨 일인데?”

 

  선우명이 불안감에 떨며 아애를 쳐다보았다. 그때 선우명의 머리 위로 뭔가가 ‘휙’ 하고 떨어졌다.

  축축하고 역겹고 소름끼치는 무언가는 머리 위로 툭 떨어지더니 선우명의 온몸을 관통하고선 바닥에 쾅 소리를 내고 철퍼덕 퍼져버렸다. 비릿한 피 냄새가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선우명은 바닥에 널브러진 그것과 그만 눈이 마주쳤다.

 

  “아, 진짜, 무슨 이런 미친…….”

 

  그 기묘한 피투성이 얼굴을 다시 보자, 선우명은 다시 속이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기껏 먹은 비싼 음식물들이 그대로 다시 올라올 것 같았다. 온몸에 퍼진 한기가 선우명의 피를 차갑게 식혔다. 또 다시 기절할 것만 같았다.

 

  피투성이 여자는 그 묘한 소름끼치는 웃음을 짓더니, 갑자기 찢어지고 짓이겨진 입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꼭 말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무슨 말인지는 전혀 들리지 않았다. 선우명에겐 귀신 특유의 끼이익 하는 소름끼치는 소리로만 들릴 뿐이었다.

 

  “깔깔깔갈깔깔, 아까 얘가 너한테 반했나보다. 크크큭. 너한테 사랑고백 하나본데? 크크크큭.”

 

  “미친 년. 헛소리 좀 작작해.”

 

  겨우 정신을 다잡은 선우명은 일단 무시하기로 결정했다. 음식물이 위도를 타고 올라오는 걸 억지로 손으로 틀어막은 채, 자기의 두 발위에 걸쳐진 귀신의 몸이 안 보이는 척, 한 걸음을 억지로 내딛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순간, 머리 위로 또 다시 그 귀신이 툭 떨어졌다.

 

  “으윽. 우욱욱.”

 

  이번에도 마찬 가지로, 온몸을 관통하고 떨어지는 귀신의 소름끼치는 느낌에 결국 선우명은 토악질을 하고 말았다. 다행히도 시척지근한 신물만이 올라왔다.

 

  “킼킥키킥. 가지가지 한다. 이젠 하다하다 토쟁이냐? 깔깔깔깔.”

 

  선우명은, 떨어지느라 온 몸이 기괴하게 꺾인 채 바닥에 누워 있는 피투성이 여자 귀신의 얼굴 위로 구토를 해댔지만, 귀신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 그저 찢어진 입이 다시 오물거린다.

 

  “하아, 씨. 뭐 이런 미친 귀신이 다 있어.”

 

  은근히 열이 받기 시작했다. 선우명은 억지로 다시 한 발을 내딛었다. 하지만 또 다시 반복이었다. 휙. 쾅. 철퍼덕. 퍼지는 피 냄새.

 

  “미친 년.”

 

  선우명은 이젠 뛰어 보려고 했다. 하지만 빨라진 선우명의 움직임만큼이나 더 빨라지는 귀신의 추락은 선우명의 발을 끝끝내 잡았다.

 

  “아, 진짜. 어쩌라고?”

 

  무려 삼십분 동안 레테타워 1층의 VIP 전용 출입문 밖에서 꼼짝도 못하고 서 있는 선우명은 진심으로 울고만 싶었다.

  출입문을 오고가는 몇몇 사람들이, 귀신이 떨어질 때마다 움찔움찔 거리는 선우명을 이상하다는 듯 흘깃 쳐다보며 지나갔다. 밤 9시 정도 밖에 안 된 시간이라 레테타워를 오고가는 사람들이 아직도 제법 있었다.

  언제 어디서 사람들이 나타날지 몰라, 선우명은 언령조형술로 불검을 빼들지도, 신목을 불러내어 여자 귀신을 묶어두지도 못하고 그저 쩔쩔매고 있었다.

  결국 선우명은 최후의 수단을 시도해보기로 했다.

 

  “하아, 아애야, 어떻게 좀 ……….”

 

  “깔갈깔깔깔깔, 그럼, 그거 내놔.”

 

  아애가 눈을 빛내며 말을 했다. 그녀의 눈이 가리키고 있는 건, 선우명의 오른 손목에 걸려 진 팔찌였다. 좀 더 은밀히 말하자면 아애가 바라는 것은 팔찌처럼 휘감겨져 있는 낡은 가죽 끈 끝에 매여져 있는 작은 구슬이다.

 

  “하아, 이게 그렇게 탐나나?”

 

  “그래!!!”

 

  작은 구슬을 보면서 눈빛을 빛내는 아애를 보면서 선우명은 고개를 떨궜다. 그리고 손목에 매여진 그것을 내려다보면서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사실 이 구슬은 선우명이 어릴 때부터 가지고 있었던 거였지만, 의외로 스스로는 그렇게까지 애착을 가지고 있는 물건은 아니다. 그래도 예전에 키워주신 할머니가 무슨 일이 있어도 항상 지니고 다니라고 당부하던 물건이기는 했다. 또 우운선자님 또한 이 구슬을 보고 난 후, 구슬을 소중히 여기라고 스치듯 말한 적이 있긴 했다.

 

  게다가 겉은 평범해 보이지만, 이 푸른빛을 내는 투명한 구슬은 특이한 점이 하나 있었다. 애초에 도대체 어떻게 이런 식으로 만들어졌는지는 도통 알 수 없지만, 구슬의 내부에 낯선 형태의 상형 문자 같은 것들이 빼곡히 새겨져 있는 것이다.

 

  안에 글씨 같은 게 새겨져 있는 특이한 구슬이라 처음엔 무슨 영화나 소설처럼 구슬 속에 특별한 힘이 숨어 있는 게 아닐까 기대도 해보았다. 하지만 특별한 기운은 전혀, 눈곱만치도 느껴지지 않았다.

  이 구슬은, 그저 선우명이 기억도 하지 못하는 자신의 친부모님과의 연결고리 같은, 뭐 그런 기념품 같은 거였다.

 

  그러고 보니, 아애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 구슬을 가지고 싶어 했다. 구슬의 푸른빛을 닮은 두 눈알이 깊은 어둠속에서 무시무시하게 번쩍이던 순간이 일순 떠올랐다.

 

  “아니지, 안 돼지.”

 

  선우명은 머리를 흔들어대며, 예전 아애를 처음 만났을 때의 기억을 머릿속에서 없앴다. 이 와중에 나쁜 기억까지 되새길 필요는 없다.

 

  “웃기지 말고. 아애, 너 오늘 비싼 고기도 잔뜩 먹여줬는데, 이 정도도 못 해주냐?”

 

  “킄큭킄크크큭. 야, 그건 빨강이가 사 준거지, 니가 사 준거 아니잖아?”

 

  “아, 진짜로! 내일 밥 맛있는 걸로 해줄게.”

 

  “크크큭크큭. 그건 원래 당연한 거고. 그런 걸로 나랑 거래를 하면 안 돼지~. 깔깔깔깔깔깔.”

 

  선우명과 아애의 쓸데없는 소리가 길어지는 동안, 귀신이 갑자기 ‘스으윽’, ‘스으윽’ 소리를 내며 레테타워 안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떨어져 죽었을 때, 두 다리가 꺾이고 부서진 모양인지 그래서 걷지 못하고 기는 것 같았다. 귀신이 또다시 핏물로 그려진 길을 만들어내며 천천히, 그러나 집요하게 기어 앞으로 나아가자, 선우명은 이때다 싶어 재빨리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여자 귀신은 다시 선우명의 머리 위로 쿵 하고 떨어졌다. 역겨운 피 냄새와 소름끼치도록 더러운 기운을, 다시 선우명의 온 몸을 관통하며 온전히 느끼게 해주면서 말이다. 그리고는 다시 힘겹게 기어서 타워 안으로 들어갔다.

 

  “크크큭크큭? 어떡할 거야? 아무래도 니가 쟬 따라가지 않으면 계속 이럴 거 같은데? 너 완전히 코 끼인 것 같은데? 깔깔깔깔깔깔.”

 

  “미친 소리 작작하랬지? 가기는 어딜 따라 가? 지금이 기횐데?”

 

  다시 선우명이 탈출을 시도 할 때였다.

  이미 수십 번 반복되었듯이, 여자가 휙 하늘에서 떨어졌다. 땅과 부딪히며 온 몸의 뼈가 부서지는 소리가 들렸고 피가 튀면서 비릿한 피 냄새가 사방으로 확 끼쳤다.

  이제껏 순식간에 벌어지던 일련의 일이, 갑자기 슬로우 비디오를 보듯이 모든 것이 천천히 보여 졌다.

 

  여자는 떨어져 땅바닥에 부딪히기 전에 이미 그 몸은 만신창이였다. 입고 있던 옷도 찢어진 채였고, 얼굴은 엉망으로 멍들었으며, 입은 찢어져 피가 나고 있었다. 떨어질 때부터 두 눈에 가득 맺혀져 있던 눈물이 이마가 터져 흘러내린 피와 함께 섞여 흐르면서, 말 그대로 피눈물이 흐르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땅바닥으로 떨어지기 직전에 입이 벌어졌다. 여자는 죽을힘을 다해 마지막 말을 하고 있었다.

 

  -살.려.주.세.요.

 

  분명히 그렇게 말했다. 귀신의 목소리를 들은 건, 맹세코 태어나 처음 이었다.

  그리고 선우명은 그때서야 깨달았다. 여자의, 너무나 기묘하게 뒤틀려서 어색하고 무섭게만 보이던 그 미소가, 사실은 미소가 아니라는 것을.

  여자는 추락하는 공포와 죽음의 두려움 속에서 경직되어진 입으로 무언가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후, 여자는 다시 부서진 몸을 질질 끌며 레테타워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선우명은 그런 여자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크크큭크큭. 선우명씨, 이제 어떡할 거야~?”

 

  “씨발. 어떡하긴 어떡해. 이대로 어차피 집에 가지도 못하는데. 차라리 아예 못 들었으면 몰라도……. 아으, 젠장.”

 

  그게 산 자든, 죽은 자든, 살려달라는 말을 들은 이상, 선우명은 그걸 무시할 수는 없었다.

  도움을 청하는 자를 돕지 않는 건 사람이 아니다! 그것이 돌아가신 할머니의 평생 지론이셨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생판 남인 선우명을 기꺼이 키워주신 분이셨고 선우명도 그런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바라셨다.

  아애가 깔깔대며 미친 듯이 웃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선우명은 그렇게 어두운 밤, 음기(陰氣) 가득한 레테타워 안으로 힘없이 터덜터덜 다시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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