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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과 함께하는 나날
작가 : ghostS
작품등록일 : 2017.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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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멍청한 남자
작성일 : 17-12-18     조회 : 274     추천 : 0     분량 : 86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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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hapter 4. 가제: 억울한 죽은 자와 억울한 산 자

 

 #19. 멍청한 남자

 

  “저기, 김민정 씨라고, 그 쪽의 대학교 후배라는데, 아시는 거 맞죠?”

 

  선우명의 다시 한 번 더 묻자, 윤찬희는 선우명의 멱살을 쥔 손을 놓고선 기겁을 하며 한 발 뒤로 물러났다.

 

  ‘뭐야? 민정이가 결국 그 일을 신고한 건가?’

 

  하지만 눈앞의 어려보이는 남자가 경찰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자신을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고 고개를 살짝 외면한 채 말을 하는 모습도 뭔가 어설펐다.

 

  “넌 뭔데? 미친 새끼, 니가 뭔데 갑자기 여기 나타나서 지랄인건데? 개새끼야!”

 

  “아니, 욕은 하지 마시고요, 그게, 그 김민정이란 분이 그 쪽에게 뭔가 할 말이 있다고 하셔서.”

 

  선우명은 남자가 다짜고짜 욕설부터 퍼붓자 억지로라도 윤찬희 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여자는 아예 남자의 목을 타고 앉아서 고개를 숙이고는 귀를 잘근잘근 물어뜯고 있었다. 실제로는 남자의 몸에서 피가 새어 나오진 않았지만, 선우명의 눈엔 여자의 찢어진 입뿐만 아니라 온몸에서 줄줄 흐르는 피가 이젠 남자의 몸도 축축하니 적시고 있는 것이 보였다.

 

  그 형상을 보니 선우명은 저도 모르게 인상이 잔뜩 찡그러졌다. 그런데 윤찬희의 눈에는 그런 선우명의 인상 쓴 표정이 불량스럽게 시비 거는 것으로만 보였다.

 

  ‘뭐야? 경찰도 아니고, 동네 양아치 같은 새끼한테 그 일을 말한 거야? 하! 창희한테 받은 건 별도로, 나한테도 협박해서 뭔가 뜯어내 보시겠다, 이런 거야?’

 

  하지만 당장 민정이 직접 눈앞에 나타나서 따지는 것도 아니니, 윤찬희는 일단은 무시하기로 마음먹었다. 무조건 모르쇠로 밀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

 

  “뭐? 김민정? 무슨 그런 흔한 이름 하나 들이밀고는,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거야? 그게 누구든, 내가 아는 여자 중엔 그런 사람 없어. 난 모른다고, 몰라. 별 미친 새끼가 다 나타나서 지랄이네, 빌어먹을.”

 

  뭐라 뭐라 욕설을 더 덧붙이면서 윤찬희는 선우명의 어깨를 두 손으로 한 번 거칠게 밀쳤다. 그래도 선우명이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윤찬희는 그냥 등을 돌려 복도 끝에 있는 엘리베이터로 거의 달리듯 잰걸음으로 걸었다.

  벌써 12시 30분이다. 윤창희가 1시에 도착할 거라고 했었다. 그러니 5101호 문 앞에서 저 이상한 새끼랑 실랑이를 벌이는 걸, 창희에게 들켰다간 괜히 골치만 아파질 것이다.

  게다가 아까부터 온몸이 으슬으슬 떨리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오기 시작하는 게, 윤찬희는 어서 빨리 집으로 돌아가 눕고만 싶었다.

 

  윤찬희가 엘리베이터 버튼을 거칠게 누르고 있는 동안에도, 선우명은 멍하니 5101호 앞을 떠나지 않았다.

 

  “윤창희 씨? 이 안에는 지금 누가 있는 겁니까?”

 

  마침내 선우명의 냉정한 목소리가 조용한 복도를 크게 울리자, 윤찬희는 다시 5101 호 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윤찬희를 노려보는 선우명의 눈이 매서웠다. 선우명은 5101호실을 향해 손가락을 가리키며, 다소 날카로운 목소리로 다시 물었다.

 

  “지금 이 안에 누가 있냐고요? 또 여기서 무슨 짓을 하려고 한 거냐고?”

 

  윤찬희는 선우명의 그런 모습에 불안해졌다. 자신이 여자를 하나 더 납치해온 것을, 그리고 지금 저 방에 그 여자가 기절해 있다는 걸, 마치 다 알고 하는 수작 같았다. 하지만 자신이 안절부절 못해하는 모습을 들킬 수는 없었다.

 

  하행 엘리베이터가 도착했음을 알리는 띵 소리가 들렸음에도 불구하고, 윤찬희는 다시 선우명에게 돌아가 막무가내로 다시 멱살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곤 억지로 질질 엘리베이터 쪽으로 끌어당겼다.

 

  “미친 새끼가, 남의 집 앞에서 뭐하는 짓이냐? 응? 너 같은 거지새끼는 이런 집 안쪽은 구경도 함부로 못한다고! 이 안에 뭐가, 누가 있는지 도대체 왜 궁금한데?”

 

  하지만 이번엔 선우명도 고분고분히 멱살을 잡힌 채 끌려가지는 않았다. 오히려 윤찬희의 팔을 뿌리치곤, 자신이 윤찬희의 멱살을 맞잡았다.

 

  “그 김민정씨가, 지금 저기에 있는 여자를 구해달라고 하잖아! 너 때문에 또 죽게 생겼다고!”

 

  “무, 무슨……, 도대체……뭔 말이야?”

 

  “당신, 도대체 여자들을 납치해서, 여기서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고?”

 

  선우명이 아예 분을 참지 못하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바로 지금 이 순간, 이 아시아 최고라는, 온갖 럭셔리한 것들로 겉치장을 한 최고급 타워 안에서,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고 있었다는 사실에 경악과 분노를 참을 수가 없었다.

 

  윤찬희의 목을 쥐어짜듯 틀어 앉아서, 윤찬희의 얼굴을 손톱으로 뜯어내고 있는 피투성이 여자는 한 손을 계속 5101호 쪽을 가리키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끊임없이 끔찍한 울림의 귀성(鬼聲)을 내뱉었다.

 

  -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살.려.주.세.요.

 

  선우명도 처음엔 여자가 자기를 살려달라고 하는 말인 줄 알았다. 자신이 죽기 직전에 끊임없이 내뱉었던 한 맺힌 그 말을, 죽은 후에도 습관적으로 내뱉는 모양이라고 짐작만 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게 아니었다. 여자는 누군가를 살리고 싶어 하고 있는 것이다.

 

  윤찬희는 진심으로 황당했다. 이제껏 자신이 여자들을 데리고 온 이후의 일 같은 건 일말의 관심조차 없었긴 했다. 하지만, 사람이 죽어 나가는 일은 절대 아니라고 믿고 있었다.

 

  “씨발, 죽기는 누가 죽어? 어디서 개수작이야? 너 진짜 뭐하는 놈인데?”

 

  “당신이 일주일 전에 여기로 데리고 온 여자, 김민정! 그 여자가 죽었다고, 일주일 전에 여기서!”

 

  “미친 새꺄! 니가 봤어? 봤냐고? 증거 있어? 죽긴 누가 죽어? 씨발, 너, 민정이랑 무슨 사이야? 민정이가 이렇게 말하라디? 이런 식으로 사기 치라고? 김민정 그 년 지금 어딨어? 당장 말해.”

 

  여자의 행방을 묻는 남자의 외침에, 선우명은 당황했다.

 

  ‘이 남잔, 진짜 그 여자가 죽은 걸 모른다? 이 남자가 죽인 게 아니란 거야?’

 

  윤찬희도 선우명의 목을 다시 쥐어틀며 악다구니를 쳤다.

 

  “씨발, 지금 어딨냐고? 니들 둘이 짰지? 나한테 돈 빼먹을라고? 미친년이, 돈이 부족하다 싶으면, 창희한테 받을 만큼 더 받아낼 것인지, 나한테 왜 개 수작질이야?”

 

  “창희? 당신이 ‘윤창희’잖아! 김민정씨가 그랬는데?”

 

  “윤찬희! 난 윤.찬.희라고! 그 개 같은 짓거리는 윤창희가 한 짓이라고. 내가 한 게 아니란 말이다! 미친년들이 지들이 제 발로 여기까지 따라 들어와 놓고선, 누구한테 지랄이야?”

 

  “…? 년들? 당신 이때까지 대체 몇 명이나 여자를 데리고 온 거야? 그 여자들 결국은 다 죽은 거라고! 알아?”

 

  “씨발! 몇 번을 말해! 죽긴 누가 죽었다고? 김민정 어딨어? 지금 어딨냐고!”

 

  “나도, 씨발! 당신 어깨 위에 앉아있다고! 죽어서 귀신이 됐다고! 지금 당신 얼굴을 쥐어뜯고 있다고!”

 

  선우명의 외침에 순간적으로 윤찬희의 몸이 얼음처럼 굳었다. 선우명을 바라보는 눈빛이 미친 듯이 흔들렸다. 자신이 진짜 재수 없게 정신병자 개또라이를 만난건가 하는 불안감이 퍼져왔다. 그리고 한편으론 진짜로 김민정의 귀신이 자기에게 붙어 있는 건가 하는 말도 안 되는 두려움도 따라왔다.

 

  하지만, 정작 선우명의 눈동자도 마찬가지로 미친 듯이 흔들리고 있었다. 밑도 끝도 없이 당신한테 지금 귀신이 붙어있네 어쩌네 하고 말하면, 그걸 도대체 누가 믿어준단 말인가. 미친 놈 취급이나 받고 끝난다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선우명은 멍청한 자신을 직접 때려주고 싶었다.

 

  “………… 그렇다고, 내가 말하면 믿어주실래요?”

 

  결국 그렇게 바보 같이 덧붙일 수밖에 없었다. 선우명의 멍청한 그 말에, 윤찬희도 결국 마지막 인내심을 놓고야 말았다.

 

  “이 미친 개새끼가!”

 

  순식간에 윤찬희의 오른쪽 주먹이 선우명의 왼뺨을 향해 날아들었다.

 

  “어, 어라? 엘……엘보 패드?!”

 

  선우명도 놀라선 왼쪽 팔꿈치를 들어 급하게 얼굴을 보호했다. 이내 짧은 비명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비명을 지르며 쓰러진 건 선우명이 아니라 윤찬희였다. 복도 바닥에 나뒹굴며 오른쪽 손목을 그러쥐고선 눈물 까지 찔끔거렸다.

 

  “으아악아아악. 씨발, 뭐야? 몸에 뭔 쇠뭉치를 달고 다녀? 개새끼.”

 

  “미, 미안합니다.”

 

  선우명은 조금 전 급하게 언령조형술로 만들어낸 왼쪽 팔꿈치와 아래팔을 감싸고 있는 금속 보호대를 다시 없애버렸다.

 

  선우명은 우운선자로부터 도사들의 주술도 그리 많이 배우지 못했지만, 도인들이 기본적으로 장착해야 할 기본적인 체술(體術)은 아예 하나도 구사하지 못했다. 물론 사부님이 선우명에게 가르치지 않은 게 비단 체술 뿐만이 아니긴 하지만 말이다.

 

  우운선자는 체술을 가르쳐 주지도 않았으면서, 또 어디 가서 맞고 다니지는 말라고 명령했었다. 그래도 자기 제자인데 몸싸움이라도 하게 되면 이기진 못해도 적어도 맞고 다니는 건 보기 싫다면서 말이다.

  그래서 선우명은 언령조형술만 가지고도 맞고 다니지 않을 방법을 고민해 봤다. 그러다 어느 날 TV에서 아이스하키 경기를 보고선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바로 오행 중 금金을 이용한, 갑옷 같은 신체 보호구를 만들어 내는 것이다. 인터넷을 뒤져가며, 몇 번이고 엘보 패드(Elbow pads)니, 신 패드(Shin pads)니, 숄더 패드(Shoulder pads)등의 아이스하키 보호구들을 찾아보고선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구겨 넣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습 중엔 그것들을 제대로 만들어내는 데에 성공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그 이후 내내 집과 수리오래 못만 왔다 갔다 하느라, 실제로 금속 보호구를 불러 낼만한 급박한 상황에 처한 적도 단 한 번도 없었기에 그 동안엔 별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 채 살았던 것이다.

 

  선우명은 일단은 뒹굴고 있는 윤찬희를 일으켜 세워 주었다.

 

  “저기, 일단, 미안하긴 하고요. 이렇게 제대로 만들어질진 저도 몰랐었거든요. 저기, 손, 많이 아파요?”

 

  “이 개 새꺄. 너 인마, 내 손에 죽어봐라!”

 

  하지만 악에 받친 윤찬희는 선우명의 변명 같은 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리고는 바지 뒷주머니에서 작은 잭나이프를 꺼내 들었다. 윤찬희의 상상 속에서 윤창희를 몇 번이고 찔러대고 쑤셔대던 칼이었다.

  그 칼을 선우명에게라도 휘두르고 싶었다. 상상속의 윤창희가 아니더라도, 선우명을 찔러 죽여서라도 당장의 분함을 풀고 싶었다. 하지만 불가능했다.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휘청거리더니, 윤찬희는 다시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선우명은 여자 귀신이 이제 윤찬희의 머리 골 속으로 뾰족한 손가락을 모두 집어넣는 역겨운 장면을 볼 수밖에 없었다. 머리통에 뽕뽕 뚫린 열 개의 구멍으로 피가 품어져 나오고 있지만, 윤찬희는 그걸 알 수 없었다. 그저, 스스로는 이유 없이 몸에 힘이 안 들어간다고 느낄 뿐이다.

 

  힘없이 털썩 주저앉은 남자의 앞에 선우명이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그 김민정씨요, 긴 머리가 허리까지 내려와요. 당신이 마지막에 봤던 날에…, 그러니까, 김민정씨는 그게 일주일 전 목요일 밤이라고 하네요. 그 날 그 여자 분이 입었던 옷 기억나요?”

 

  윤찬희는 아무 말 없이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릿속에 지난 주 목요일 밤, 자신이 불러내자 평소에 입지 않던 원피스를 입고 민정이는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나타났었다.

 

  ‘분홍색 원피스.’

  “김민정씨 분홍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죠?”

 

  자신이 생각하던 것이 선우명의 입에서 나오자, 윤찬희가 숙였던 얼굴을 들어 선우명의 눈을 다시 바라보았다.

 

  “그 여자분, 그 날, 여기서 죽었다고요. 당신이 여기로 데리고 온, 바로 그 날.”

 

  “민정이가 죽었다고? 진짜?”

 

  “그래요. 도대체 당신이랑 그 또 다른 창희? 당신들 둘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거냐고?”

 

  “아냐, 난 아냐. 난 아무 짓도 안 했다고. 창희 새끼가 다 한 거야! 난, 그냥 여자를 꼬셔왔을 뿐이라고. 시발, 그년들도 다 지들 발로 걸어왔다고! 으으윽.”

 

  갑작스럽게 끔찍한 두통이 윤찬희에게 들이닥쳤다. 귀도 아팠다. 윤찬희는 자신의 귓구멍을 찢어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선우명은 이 와중에도 뻔뻔스럽게 자기변명만 하는 윤찬희를 제대로 한 번 때려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김민정이 남자의 골을 물어뜯고 있기에 자기는 나서지 않기로 했다. 계속 이런 인간을 상대하는 것도 역겨웠지만, 선우명도 김민정이 원하는 걸 마무리 지어야지만 자신의 일이 끝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지금, 저 안에도 다른 여자가 지금 있는 거지?”

 

  자기 머리를 쥐어뜯으며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윤찬희가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남자의 몸을 뒤적이며 선우명은 녹색 카드키를 찾아냈다.

  그리고 이젠 육체 대부분을 다 뜯겨나가는 것만 같은, 그 알 수없는 고통에 몸부림치는 윤찬희를 내버려두고선, 서둘러서 5101호실 문을 카드키로 열었다.

 

  “분명히 난 말했어! 난 아무짓도, 사람 죽이는 짓은 안 했다고. 크으윽. 진짜야. 경찰한테도 분명하게 말해줘야 한다고! 으윽으으윽.”

 

  선우명은 윤찬희에게 침이라도 뱉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먼저 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삐비빅.’ 경쾌한 음을 내며 문이 열렸지만, 선우명은 어두운 방 안에 쉬이 들어가지를 못했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흑흐흑흑흑. 제발 살려주세요.”

 

  살아있는 여자의 것이 분명한 울음 섞인 작은 중얼거림이 그 안에서 구슬프게 들려왔다. 하지만, 선우명은 암흑천지인 방 안으로 차마 들어설 수가 없었다.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 안에도 있었다. 원한으로 귀신이 된 것은, 김민정 하나만이 아니었다.

  수 십 명의 여자 귀신들이, 아직 살아있는 겁에 질린 여자 하나를 둘러싸고선 그 여자의 공포심과 생기를 빨아 먹고 있었다.

 

  “씨발, 저것들은 또 뭐야?”

 

  저도 모르게 튀어나온 선우명의 목소리에, 피투성이의 여자들 수 십 명이 동시에 선우명을 바라보았다.

  여자들의 몸은 아예 제대로 된 형태들이 남아있는 것이 없었다. 이미 혼백이 검게 썩어들어 가면서 얼굴 생김새가 뭉개져 있었고, 피 냄새뿐만 아니라 악취까지 흘러나왔다. 그 여자들의 얼굴에 드러난 역겨운 미소는 익히 선우명이 알고 있던, 그들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의 공포심을 즐기는 웃음이었다. 그 여자들은 이미 악귀였다.

 

  살아있는 여자가 열린 문 쪽으로 흘러들어온 아주 작은 빛을 그제야 발견했다. 하지만 이미 충격과 공포로 마비된 몸의 다리가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제발요, 살려주세요. 흑흑흐흐흑흑흑.”

 

  “아우, 씨. 신목(神木) 나와랏! 불검!”

 

  선우명의 신목이 먼저 뻗어 나왔고, 그 뒤를 이어 커다란 불검이 선우명의 오른 손에 나타났다. 불검이 어두운 복도와 방 안을 밝히자, 신목의 뿌리가 귀신들의 몸을 둘둘 말아 놓은 것이 보였다. 신목에게 사로잡힌 귀신들이 동시에 찢어지는 귀곡성을 울려댔다. 그들의 억울함을 호소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그렇다고 동정을 해주고 싶을 만한 몰골들이 이미 아니었다. 선우명은 머리가 터지고 귀가 찢어질 것만 같은 고통 속에서도, 다시 기절해버린 아직 살아있는 여자를 끌어냈다.

 

  그리고 여자를 질질 끌며 겨우 복도에 다시 나왔을 때, 선우명은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어 버렸다.

 

  어둡고 길고 넓은 복도는 이미 피바다가 되어있었다. 윤찬희가 어느 새 모르는 남자 하나를 깔고 앉은 채 얼굴에다 작은 잭나이프를 몇 번이고 박아대고 있었다. 깔린 남자의 얼굴에서 피가 솟구칠 때 마다, 남자의 두 다리가 움찔 움찔대고 있었다.

 

  “킄킄끅. 윤창희 이 개자식아. 내가 너 언젠가 죽인다고 했었지? 킄끜끅. 꼴좋다. 큭크큭.”

 

  윤찬희 아래에 깔린 남자가 바로 윤창희라는 걸, 그제야 선우명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끔찍한 지옥 같은 장면 앞쪽 엘리베이터 벽엔 얼어붙은 젊은 남자 셋이 공포에 절어 떨고 있었다. 그들도 윤찬희에게 당했던 것인지, 발목 쪽에 모두 피가 흐르고 있었다. 세 사람은 윤찬희의 뒤쪽에서 여자를 끌고 나온 선우명을 발견하고는 동시에 애원했다.

 

  “크아아악……. 좀, 살려……!”

  “…으아아아악악.”

  “……경찰! 경찰 좀!”

 

 

  윤창희의 얼굴에 칼을 쑤셔대던 윤찬희가 천천히 선우명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웃고 있었다. 기쁘다는 듯, 만족한다는 듯. 복수에 성공한 것에 너무나도 기뻐하는 표정이었다. 선우명의 착각인지도 모르겠지만, 거기엔 그런 자신을 외면하지 않고 도와줘서 고마웠다는 감사의 표정마저 서려있었다.

  윤찬희의 몸과 정신은 이미 김민정에게 몽땅 잡혀 먹혀버린 게 분명하다. 그런 윤찬희에게 마지막으로 남은 감정이 아마 윤창희를 죽이고 싶은 욕구 하나 뿐이었을 거다. 그렇게 완전한 악귀가 되어버린 김민정은 윤찬희와 윤창희 둘 모두에게 복수하는데 성공했다.

 

  “킄킄끅. 저 새끼들도 죽여야 해. 내가 다 죽일거야. 끜킄끄킄크.”

 

  그리고 선우명은 눈치챌 수 있었다. 그 끔찍한 살인에는 윤찬희, 윤창희 뿐만 아니라 저 뒤쪽의 세 남자도 공모했다는 것을.

 

  신목이 사라지며 방안의 수 십 명의 귀신들이 우글거리며 기어 나왔다. 귀신들은 벽에 붙어있던 남자들을 향해 맹렬히 기어갔다. 평소였다면 그들에게 보이지 않았을 귀신들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미 윤찬희의 급작스런 공격과 윤창희가 죽는 적나라한 모습을 목격했다. 이미 자신들도 지금 당장 죽을 수 있다는 공포심을 느낀 세 남자의 눈에 고스란히 끔찍한 귀신들이 드러났다.

  잔혹한 귀신들의 공격에 남자들의 비명소리가 울려 퍼지는가 싶더니, 이내 윤찬희의 칼에 혀들이를 잘려 나갔다.

 

  선우명은 천천히 전화기를 들어 119를 눌렀다.

 

  “여보세요. 여기 레테 타워 51층인데. 여기 복도에 사람들이 피를 흘리고 쓰러져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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