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불행은 예상보다 빨리 찾아온다. 옛말은 틀린게 없다.
남자가 산딸기와 주목열매를 다 나누기도 전에 손님은 도착했다.
죽음이 왔다.
옛말이 틀린게 있다면, 죽음과 함께 온건 불행이 아니다.
재앙이였다.
재앙이 왔다는 점에서 불행한 것도 맞으니까 10점 만점에 8점 정도로 옛말이 맞았다.
재앙이 왔다는 건 문학적 표현이 아니라 실제로 재앙의 신이 왔다. 죽음의 신과 손을 잡고서.
남자는 체력적으로 굉장히 지쳐있었다.
전날, 봄의 신을 만났다.
바로 몇 시간 전, 비록 중턱부터이기는 했지만, 산 정상근처까지 왕복등산을 했다. 양손가득 짐을 든 채로.
방금 전까지는 한아름의 산딸기 속에서 그와 크기도 색깔도 비슷한 주목열매를 구분하고 있었다.
남자는 지쳐있었다. 체력적으로 힘든 상태에서 죽음의 신과 재앙의 신을 맞이 해야한다는 심리적 긴장까지 떠안고 있는 중이였다.
이게 죽음의 신과 재앙의 신이 식탁에 앉는 순간까지, 남자가 부엌바닥에 드러누워 생산삼을 씹고있었던 이유이다.
남자는 생산삼을 입에 문 채로 움직임을 멈췄다.
죽음의 신이 노인의 얼굴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죽음의 감정을 읽기란 어렵다.
노인의 얼굴을 하고있다면 그리 좋은 기분은 아니란 것. 그쯤이다.
단기간에 이렇게 많은 신을 만나는 일은 드물다.
집안 대청소를 해야 할 듯 하다.
장난꾸러기가 집으로 숨어든게 분명하다.
그 일은 뒤로 미루고 남자는 식탁에 앉은 죽음과 재앙에게 대접할 준비를 한다.
죽음의 신은 은쟁반에 소복히 담긴 산딸기와 주목열매 중 주목열매만을 모아 3개씩 뭉쳐놓는다. 소꿉놀이를 하듯이,
반대편에 앉은 재앙의 신은 의기소침한 기운을 내뿜으며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죽음의 신과 재앙의 신이 함께 다닌다면, 이 근방에 꽤 큰 사고가 났음이 분명하다.
재앙의 신은 이름과 다르게 여린 소녀의 모습이다.
흰 원피스를 입은 긴 검은머리를 가진 일곱살짜리 소녀처럼 보인다.
이 소녀때문에 재앙이 일어나는 건 아니다.
이 소녀는 재앙이 일어나면 그 후에 나타난다.
재앙으로 인한 고통과 슬픔에 이끌려다니는 신이다.
신 치고는 어린 편에 속한다.
그렇다하더라도 인류의 문명보다 오래된 존재이다.
죽음의 모습은 역동적이다.
신생아의 체형이다.
몸에 비해 비대하게 큰 머리와 몸통, 다리는 정확하게 삼등신으로 나뉜다.
얼굴은 세 가지, 아기의 얼굴과 노인의 얼굴. 그리고 드물게 자신을 바라보는 상대방을 얼굴을 한다.
처음 마주한다면 까무러칠 정도로 기괴한 외모이지만, 은근히 사람을 좋아하고 특유의 집착때문에 다루기 쉬운 신 중 하나에 속한다.
죽음은 3이라는 숫자에 집착한다.
체형도 3등신, 머리에 달린 얼굴도 3가지. 물건을 3개씩 분류하는 걸 좋아하다.
남자가 식탁의 의자를 3개만 놔둔건 죽음의 취향에 맞춘 조치다.
그릇도 세 개씩, 포크 수저 젓가락. 세종류의 식기를 뒀다.
샹들리에는 7개의 전등이 들어오지만, 4개의 전등은 빼둔 상태다.
죽음이 방문할 때마다 식탁위에 올려두는 삼지창모양의 촛대에 불을 켜 식사의 시작을 알린다.
죽음의 신은 이 식사에 망각의 신도 불렀다.
망각의 신은 식사약속을 잊고 오지않았다.
세 명의 손님을 불렀지만, 식탁에 앉은 건 주인을 포함하여 세 명뿐이다.
남자는
망각의 신은 망각의 신답고, 죽음의 신은 죽음의 신다워서 재밌다고 말했다.
여담이지만, 보통 저승사자로 착각하는 존재가 바로 망각의 신이다.
죽은 이에게는 죽음의 신 다음에 찾아와 생의 기억을 잊게 해줘야하는데,
망각의 신은 그 순서를 잊고 죽음의 신보다 가끔 먼저 찾아온다.
어쩌다가 죽다 살아나는 이들이 망각의 신을 저승사자로 착각하고 기록한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본 걸 잊게 해야하는데 망각의 신인지라 그마저도 잊고 내버려둔 결과로 모든 문명사회에 망각의 신을 기록한 민담 하나씩은 있게 되었다.
의외로 죽음과 재앙이 함께한 식사는 유쾌하다.
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쪽은 죽음의 신이다.
그는 죽음에 관한 농담을 무한하게 알고있다.
유명한 역사인물들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를 할 때는 엄숙한 노인의 얼굴로 재미나게 풀어낸다.
그는 박애주의자다.
죽음을 당하는 모든 이들을 사랑으로 받아내주는 어버이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음의 신을 꺼리는 이유는 종종 뜬금없는 부탁을 해오기때문이다.
이번에도 목적이 있었고 신의 부탁은 들어줄 수 밖에 없다.
죽음 그 자체이기때문에 무언가를 죽여달라는 부탁을, 소금을 건내달라는 부탁처럼 가벼이 여긴다.
생의 끈을 부여잡고 사는 필멸자로서 꺼림직한 신일 수 밖에 없다.
이번의 부탁은 바람의 신에 대한 것이였다.
여름이면 휘몰아치던 태풍이 몇 년간 한반도로 오지않는 이유를 알게되었다.
부탁을 수락하자 죽음은 진중한 노인의 얼굴을 갓난아기의 얼굴로 바꾸더니 소름끼치도록 자지러지게 웃어댄다.
맞은 편에 앉아있던 재앙의 신은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서 웃는 듯 어깨를 들썩였다.
죽음의 신은 모든 주목열매를 3개씩 나눈 후에야 작은 손으로 3개씩 집어들어 먹기시작한다.
식탁은 경건한 식단으로 가득하다.
죽음의 신 앞에서 무언가의 살코기를 먹는다거나 알요리를 해먹는 것도 금지된다.
죽음의 신은 단순히 인간의 죽음만이 아니라 세상 모든 죽음을 관장하기때문에 죽음과 얽힌 음식은 피해야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의 신은 철저한 채식주의자인 셈이다.
제대로 된 약속이라면 3일 전부터 육식을 금해야했겠지만, 갑작스레 잡힌 약속이며 죽음의 신이 요청한 자리니만큼 융통성있게 그 절차는 넘어가준다.
이렇듯 신은 융통성이 넘치는 편이다.
인간이 신의 취향을 조금이나마 안다면 삶이 유복해진다.
죽음의 신이 3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 과거 혹은 현재의 몇 몇 인간들은 3을 뜻하는 삼각형을 상징으로한 비밀집단이나 종교따위를 만들어 죽음의 가호를 받기도 한다.
나름대로의 생존방식인지라 나쁘게는 생각치않지만 죽음에서 벗어나 자만하게 되었다가 절멸하게 된 전례를 알기때문에 조심해야한다.
재앙의 신은 가느다란 손목을 부지런히 움직여 채소스프를 먹는다.
아직 재앙의 신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한다.
말수도 적고 동정심을 유발하는 아이같은 모습이지만, 인류가 겪었던 대부분의 재앙 뒤에는 이 신이 있었다.
어떤 조건으로 움직이는지 모르겠지만, 그녀가 변화를 일으킨다면 지구 상에 비교할게 없을만큼 거대한 존재가 된다.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비극을 먹으며 조금씩 성장한다고 한다.
그래도 보통때는 머리카락에 스프를 뭍히며 먹는 어린아이와 다름없다.
치즈로 꽉 채워 구운 호밀빵을 스프에 찍어먹으며 맛있는 식사라고 칭찬한다.
재앙을 화나지않게 할 수만 있다면 뭔들 못할까.
주목열매를 다 먹은 죽음의 신에게 과일젤리와 수정과를 대접한다.
젤리를 보자 죽음의신이 잠깐 세번째 얼굴을 꺼내 화를 냈지만, 동물성 재료는 하나도 들지않았다는 설명을 듣고 난 다음에야 아기의 얼굴로 돌아가주었다.
죽음의 신 목 위에 달려있는 세번째 얼굴을 보는 건 끔찍한 일이다.
순간적으로 생명이 줄어든다.
죽음은 디저트가 괜찮다며 수명을 돌려준다.
재앙의 신에게는 생크림케이크와 밀크티를 대접한다.
죽음도 생크림케이크를 원하기에 큰 조각으로 준다.
죽음과 재앙은 식사를 마치고 거실에 놓여있는 커다란 소파 위에서 누워 담요를 덮고서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밤새도록 옛날영화와 재방송되는 티비쇼를 본다.
남자는 중간에 잠들어버려 그들이 언제 돌아갔는지는 모르지만, 아침에 눈을 뜨니 흔적도 없이 사라져있었다.
흔적이 없진 않았다.
아끼던 와인 몇 병이 텅 빈 채로 거실에 뒹굴고 부엌 냉장고의 디저트 칸이 농담처럼 비어있었다.
이 정도면 큰 산 하나는 넘은 셈이다.
유리창의 커튼을 걷어버리고, 햇살을 맞이 한다.
대청소를 해야한다.
혹시나 죽음과 재앙의 물건이 남아있다면,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일.
둘은 물건을 잃어버리지않는 편이지만, 만의 하나라도 남아있다면 위험한 물건들이기때문에 꼼꼼하게 살펴봐야한다.
그 다음은 집안에 숨어있을 장난꾸러기를 찾는 일이다.
일이 이 정도로 꼬이려면 필히 하나는 숨어있을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