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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록
작가 : 강지인
작품등록일 : 201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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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주인공과 여배우
작성일 : 17-11-21     조회 : 292     추천 : 0     분량 : 3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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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로는 이 여자를 안다.

 몇 년 전부터 월화드라마며 수목드라마며 매 분기마다 빠짐없이 얼굴을 내미는 여배우다.

 찍는 영화며 드라마며 다 망하는데도 광고도 잘 찍고 차기작이 항상 대기중이다.

 그런데 이름이 생각이 안난다.

 

 여배우는 얇아보이는 베이지코트를 입있다.

 안으로 보이는 흰 목티와 검은 정장바지에도 아름다운 몸매는 가려지지않는다.

 옷 색깔의 배치는 다르지만, 은로는 검은 코트에 흰 셔츠와 갈색바지를 입었다.

 가까이 서있으니 비틀어진 데칼코마니같다.

 키가 큰 편인 은로에 비해 꿀리지않을 정도로 여배우의 키는 컸다.

 여배우는 검은 단화만 신었을 뿐이다.

 

 우연의 신은 멀리 달아나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인연의 신과 필연의 신은 함께있다.

 은로는 가만히 서서 상황을 정리한다.

 필연의 신은 은로를 노려보다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

 

 몇 년 전부터 별다른 배우경험도 없이, 중간과정도 없이 갑작스럽게 톱스타가 된 이 여배우는 바람의 신이다.

 바람의 신이라 해서 바람만을 관장하진않는다.

 바람의 신은, 바람, 파도, 태풍, 흐름으로 움직이는 모든 것의 신이다.

 꼭 그 분야만이 아니더라도, 본인 자체로 신이다.

 인류역사를 뒤엎는다해도 전혀 이상할게 없는 존재. 잠깐 유명인생활을 하고싶다면 뭐든지 할 수 있다.

 그래도 이렇게 유명하신 몸일 줄은 은로도 미처 예상못했다.

 

 은로는 여배우에게 퉁명스레 인사를 건낸다.

 

 " 놀고 계시나봐요?"

 

 " 네? 아, 네."

 

 여배우는 은로와 눈도 마주치지않고, 벚꽃만 올려다본다.

 짧은 대답이지만, 귀찮으니 저리 꺼지라는 함축적 깊이가 담겨있는 대답이다.

 

 " 이제 그만 노실때도 되지않았어요?"

 

 여배우는 은로를 쳐다본다.

 은로는 그녀가 바람의 신임을 이미 안다.

 여배우는 당혹스럽단 듯이 눈동자가 흔들린다.

 은로도 여배우를 지긋이 바라본다.

 바람의 신도 은로를 알 것이다.

 왠만한 신이라면 은로의 얼굴을 모를리 없다.

 여배우는 벚꽃에 대한 관심을 접고 은로를 경계하면서 뒤를 돌아 길을 걷는다.

 은로는 바람의 신과 추격전을 할 생각이 없다.

 여배우와 적당히 거리를 두며 따라걷는다.

 인연의 신과 필연의 신은 자신들의 소임을 다했다고 생각했는지 여배우의 옷깃을 놓고 사라진다.

 여배우는 핸드백에서 선글라스를 꺼내 쓴다.

 은로는 코트주머니에 손을 넣는다.

 걸리적거리는 종이봉투도 구겨서 코트 주머니에 넣는다.

 힘이 과했다.

 종이봉투는 작은 파열음을 내며 터진다.

 그 소리를 신호삼아 은로와 여배우 사이의 정적이 깨진다.

 종이봉투가 터지는 소리에 여배우는 깜짝놀라 빠른걸음으로 걷기 시작한다.

 은로도 여배우의 보폭에 맞추어 좀 더 빨리 걷는다.

 ' 이거 완전 스토커네.'

 

 은로는 신과 함께 행동 할 때면 타인의 눈에 어떻게 보일지부터 생각한다.

 하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여배우를 놓칠 순 없다.

 사람없는 곳에 닿게 되면 여배우로 연기 중인 바람의 신과 진지한 대화를 나눌 셈이다.

 은로는 계획이 무산됨을 깨닫는다.

 갑자기 뛰기 시작한 여배우는 사거리의 카페에서 나오는 단발머리의 큰 덩치에게 달려간다. 남잔 줄 알았지만, 여자였다.

 여배우는 매니저인듯 보이는 거대한 여인의 뒤로 숨어 은로를 향해 손가락질한다.

 양 손에 커피를 든 매니저는 미간에 굵은 주름을 만들고 은로를 쳐다본다.

 어젯밤 죽음의 신이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이는 킬러에 대한 농담을 해주었다.

 은로는 다음에 죽음의 신을 만나면 그건 농담이 아닐지도 모른다고 알려줄 참이다.

 매니저의 살기에 은로는 당혹하며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항복한다는 듯이 코트를 펄럭거린다.

 매니저는 당장이라도 달려들 기세로 양손에 든 커피를 앞뒤로 흔들며 은로를 향해 걸어온다.

 매니저는 다섯 걸음만 더 걸으면 은로와 키스도 할 수 있을 정도의 거리에 선다.

 은로는 신을 상대하는데는 능숙하지만, 인간은 아니다.

 이 돈많은 백수 신사는 이 거대한 여인을 진심으로 겁내는 중이다.

 

 " 오해가 있으신"

 

 " 꺼져."

 

 " 네?"

 

 " 꺼지라고 이 엄동설한에 커피로 샤워하고 싶지않으면 "

 

 매니저는 인간을 상대하는데 능숙했다.

 여배우를 귀찮게 하는 남자는 꽃에 꼬이는 꿀벌보다 많다.

 실제로 꿀벌은 종의 멸종위기를 겪는데 비해 인간의 수는 점점 늘어가니 비유적 표현이 아니라 정말 더 많다.

 그런 남자들을 파리채로 쫓아낼 수도 있지만, 매니저는 몇 마디 단어과 심기불편을 표현하는 눈빛만으로도 쫓아낼 수 있는 경지에 이른 능숙한 사람이다.

 은로는 가벼운 목례를 하고 매니저의 충고를 받아들여 진실되게 꺼진다.

 봄의 신이 왔으니 엄동설한이라는 표현은 무리가 있지않냐는 말대답과 사실은 자신이 죽음의 신에게 부탁을 받아들여서 당신이 모시고있는 여배우인 바람의 신을 죽이려고 한다는 말로 오해를 풀려 하다가는 매니저의 충고가 현실이 되는 모습을 보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만약 매니저의 점퍼 속에 총이라도 있다면, 은로의 허벅지를 총알이 꿰뚫고 지나가도, 차후에 법원은 매니저의 증언을 듣고 정상참작을 넘어 정당방위로 무죄도 선고할만 한 발언들이다.

 

 은로는 만개한 벚꽃나무 근처까지 돌아온다.

 신발가게 앞에 핀 두 그루의 벚꽃나무때문에 사람들이 잔뜩 몰려있다.

 은로는 한 발 뒤로 물러서 수많은 인파들을 지켜본다.

 은로는 일단 신발가게 안으로 들어선다.

 봄의 신에게 신발을 만들어 준 장인은 부재중이다.

 왠만해선 공방에 있던가 하는 할아버지다.

 은로는 가게를 지키는 점원에게 다가간다.

 점원은 주문제작을 자주하는 손님을 알아보고 계산대에서 일어난다.

 

 " 어서오세요."

 

 은로는 주머니에 든 종이봉투를 꺼내 점원에게 건낸다.

 터진 종이봉투 속에는 은로가 늘그렇듯 과도하게 주문하고 다 먹지못한 BLT샌드위치가 있다.

 점원이 받아든 종이봉투가 무엇인지 알아채기도 전에, 은로는 신발가게를 나선다.

 신발가게 문에 달린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은로는 거침없이 직진하며 자동차키를 눌린다.

 두 개의 벚꽃나무, 그 사이의 고급 외제차.

 자신의 차에 기대어 사진을 찍어대던 사람들과 눈도 마주치지않고 은로는 운전석 문을 연다.

 은로는 운전석에 앉아 자동차 경적을 짧게 빵 하고 친다.

 차 주변에 몰린 인파들이 차도에서 물러나자 은로는 과한 속도로 그 자리를 떠난다.

 

 그리 멀지않은 곳에 여배우가 서있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 사이에서 여배우는 싸인을 하고있다.

 약간 떨어진 주차장에 서 있는 매니저가 여배우를 지켜본다.

 매너지는 밴에 기대어 있다.

 덩치가 워낙 커서 대형 밴이 작아보일 정도다.

 은로는 후일을 다짐하며 여배우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악셀을 밟는다.

 그러거나 말거나 사거리의 신호등은 붉은색으로 변한다.

 사거리 카페 앞, 멈춰선 차.

 은로와 여배우는 도로와 인도의 거리가 느껴지지않을 정도로 가깝게 된다.

 여배우는 운전을 하는 은로를 눈치채고 은로를 본다.

 여배우와 은로는 눈이 마주친다.

 ' 쪽팔려.'

 은로는 매니저와의 일때문에 자존심이 상해있다.

 

 "얘들아 너희는 착하게 커야 돼 저 아저씨처럼 법 어기고 그러면 안돼."

 

 여배우는 급정거로 횡단보도까지 침범한 은로의 차를 가르키며 학생들에게 말한다.

 여학생들은 웃는다.

 

 " 돈이 중요한게 아니야. 먼저 사람이 되야지."

 

 은로는 반대편 차창을 보다가 룸미러를 괜시리 만지작거린다.

 

 " 아저씨 들으셨죠?"

 

 까불거리는 목소리의 키작은 여학생 하나가 은로의 뒤통수에 이야기한다.

 

 " 죄송합니다."

 

 은로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하고, 차창문을 올린다.

 횡단보도를 건너와 싸인을 받으려는 인파때문에 은로의 목소리는 여배우의 귀까지 들리지않았다.

 신호가 바뀐다.

 은로는 또 과한 속도로 차를 출발시킨다.

 

 그 날 은로는 교통단속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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