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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록
작가 : 강지인
작품등록일 : 201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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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이름(1)
작성일 : 17-11-22     조회 : 294     추천 : 0     분량 : 4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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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로는 응접실에 앉아있다.

 흰 원목 가구로 통일되게 꾸며놓은 곳이다.

 박람회에 어느 인테리어 회사가 전시해놓은 가구들을 그대로 다 사와서 채워놓았다.

 은로의 미적감각은 초등학생 수준에서 멈춰있다.

 그러다보니 응접실은 집 안에서 가장 예쁜 공간이기도 하다.

 집안의 다른 공간은 여기저기서 눈에 띄는 가구들을 실컷 구매해놓고 어설프게 배치해놔서 혼란스럽기 그지없다.

 은로가 생각할 일이 생길 때면 응접실에 죽치고 앉아있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정작 본인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한다.

 이는 은로가 하는 전반적인 행동의 흐름과 유사하다.

 

 은로는 낮에 있었던 여배우와 매니저 그리고 커피샤워협박 사건에 대해 완전히 잊었다.

 이건 신과 관련된 이들의 공통된 문제점이기도 하다.

 주로 상대하는 존재가 신이다 보니, 은로는 인간과 있었던 일은 작은 문제로 치부해버린다.

 이러니 오후의 자신이 했던 행동에 대한 반성없이, 상대를 공략할 방법에만 골똘하고 있다.

 은로는 흰 종이 위에 머릿 속에서 정리한 것들을 써내려간다.

 신의 물건 사용금지. 여배우, 그 것도 유명여배우인만큼 신의 물건을 이용해서 어떻게 했다가는 전국, 전세계적 주목을 받을 위험이 있다.

 암살도 금지. 신의 인생을 파괴적으로 끝내버리다가는 다음 태풍때 한반도가 사라지는 수가 있다.

 예상치도 못한 골치아픈 상황. 은로는 탁자에 팔을 괴고 머리를 숙인다.

 일단은 여배우와 직접 만나야 한다.

 은로는 고개를 치켜든다. 바람의 신도 무슨 생각이 있겠지.

 

 다음날 새벽, 어제아침의 대청소를 마치자마자 은로는 우연의 신과 함께 바로 집을 떠났기 때문에, 집은 깨끗하다.

 지금 은로가 빵가루를 흩뿌리는 부엌바닥만 빼고,

 은로는 식탁에 앉아 토스트를 먹는다.

 식사를 중요시하는 은로가 아침을 간단히 먹는 이유는 점심에 누굴 만날 계획이기 때문이다.

 인간이다.

 은로의 재산관리사. 수첩에 장재산라고 적혀있으나 이름은 따로 있고, 은로는 기억하지못하기때문에 그냥 장재산라고 부른다.

 은로는 어디서 구한건지 출처가 궁금한 골동품 유선전화기를 식탁 위에 올려두고 다이얼을 손가락으로 돌린다.

 둔탁한 기계음을 끝으로 들어본 적 있는 클래식음악이 들린다.

 연결음이 끊기고 급박히 받은듯한 목소리가 들린다.

 

 " 네 강선생님!"

 

 " 예 장선생님. 이른 시간인가요? "

 

 " 아닙니다 강선생님! 강 선생님 전화라면 24시간 업무대기중입니다!"

 

 거짓말이다.

 현재 토요일 새벽 5시 31분, 장재산은 보통땐 들리지않는 '강은로 전용 벨소리'에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스마트폰을 집어들었다.

 이불 속에는 휴일에만 만나는 내연녀가 뒤척거린다.

 내연녀가 신경질을 부리려하자 장재산을 급히 손을 뻗어 내연녀의 입을 틀어막고, 얼굴을 들이밀고선 입을 막았던 손으로 스마트폰을 가르키며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임을 총동원해 '큰 손님'임을 강조했고, 내연녀는 인상을 찌푸리고 등을 돌려 다시 잠을 청한다.

 

 " 오늘 좀 뵐까하는데."

 

 " 아휴 그럼요 저녁에 강선생님댁으로 찾아뵐까요?"

 

 " 아뇨 볼 일도 있고 장선생님 회사로 가겠습니다."

 

 " 안 그러셔도 됩니다. 문제가 있으시면 제가 자료를 들고 찾"

 

 " 아뇨 점심때 갈께요 더 자세요 자요"

 

 뚝, 은로는 전화를 끊는다.

 은로는 장재산의 회사로 찾아갈 생각이다.

 장재산은 마음이 급하다.

 강은로의 방문 예고에 눈이 번쩍 떠졌다.

 현재 장재산은 오키나와에 있다.

 여의도에 있는 회사에서 점심약속. 머릿 속이 터질듯하다.

 스마트폰으로 급히 인천행 비행기를 예매한다.

 호텔에서 공항까지 30분, 이런저런 준비시간 1시간, 비행기 2시간 30분, 인천에서 서울까지. 계산이 끝나자 장재산은 씻기위해 샤워룸으로 향한다.

 

 타인의 입장을 염두하지않는 약속을 잡아버렸다.

 은로는 방금한 행동이 예의없는 신 같았다고 생각된다.

 돈을 많이 내니까 괜찮다.

 

 정오를 조금 넘긴 시각, 은로는 장재산의 회사로 들어간다.

 비서가 은로를 알아보고 장재산의 사무실까지 안내한다.

 고층빌딩에 통유리로 된 사무실. 은로는 사무실 여기저기를 훑어보다가 명패에 적힌 장 금호 라는 이름을 보고 장재산의 본명을 떠올려냈다.

 예전에 장재산이 자기 이름과 은로의 이름이 비슷한 발음이라며 아부하듯이 말한 적이 있었다.

 은로는 장재산의 의자에 앉는다.

 컴퓨터의 전원을 킨다.

 장재산에게 말한 볼 일이 이거다.

 컴퓨터화면에 비밀번호를 요구하는 화면이 뜬다.

 은로는 재킷 가슴주머니에서 몽땅연필을 꺼낸다.

 책상 위에서 포스트잇을 한장 떼내어 모니터의 비밀번호 입력화면에 붙인다.

 몽땅연필을 포스트잇 위에 덧칠하듯이 칠한다.

 포스트잇 위에 영어 스펠링과 숫자가 베껴져나온다.

 이 연필도 신의 물건이다.

 이건 선물 받은 것이다.

 원래는 이런 용도가 아니지만, 은로가 변칙적으로 알아낸 사용법 중 하나다.

 암호가 풀린 컴퓨터 모니터에 윈도우 메인화면이 뜬다.

 은로는 장재산의 은밀한 사생활이나 숨겨둔 회계장부를 보려는게 아니다.

  은로는 인터넷 창을 킨다.

 기억을 더듬어 예전에 보았던 드라마를 검색한다.

 분명 그 여배우가 출연했던 기억이 있다.

 검색결과에 여배우의 사진과 이름이 뜬다. 백만송.

 은로는 이게 궁금했었다.

 여배우의 이름.

 

 은로의 저택에는 인터넷이 없다.

 스마트폰도 없다.

 은로는 온라인 기록 상에 자신의 행동이 기록되는걸 끔찍하게도 싫어한다.

 자신의 행적이 데이터와 기록으로 남겨지는 것처럼 위험한게 없기에 스스로 없앴다.

 장재산의 컴퓨터를 사용하는 이유는 딱히 없다.

 보안상의 문제도 아니고, 장재산을 신뢰하기 때문도 아니다.

 은로의 협소한 인간관계 중 컴퓨터가 있는 공간을 서슴없이 제공할 인물로 장재산만한 자가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장재산은 기가 막힌 맛집들을 찾아내는 능력이 있다.

 그건 정말이지 대단한 재능이라고, 은로는 생각한다.

 

 장재산은 아직 오지않았고, 오랜만에 마주한 컴퓨터화면에 은로는 신이 난다.

 인터넷뉴스를 본다.

 서울에 큰 사고가 있었다.

 죽음과 재앙이 찾아온 날 오후다.

 여의도에 핀 벚꽃나무 두 그루에 관한 기사도 관심도가 높다.

 다른나라에서도 취재해갔단다.

 꽃무늬슬리퍼는 조심해야겠다.

 자주가던 신발가게는 국제적인 홍보가 되었을 듯 하다.

 

 누군가 노크를 한다.

 장재산이다.

 장재산은 새벽 일찍 비서에게 급히 전화하여 오늘 찾아올 '강 선생님'에 대해 단단히 일러두었다.

 정확히 언제 오는지 알려주지않아서 비서는 휴일 오전부터 오지도 않는 은로를 꼬박 기다렸다.

 비행기에서 내린 장재산은 '만약 강선생이 자신이 도착 전에 도착하면 무슨 짓을 해서든 사무실에 잡아두라'고 하였다.

 비서는 '무슨 짓'에 자신이 상상하는 그 짓도 포함되냐고 깔깔 웃으며 야한 농담을 던졌고 장재산은 무시하며 전화를 끊었다.

 장재산은 40대의 능력있는 재무관리사다.

 앞머리의 희끗거리는 머리카락 몇 개는 고급미용실 원장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가짜 머리카락이다.

 지적이면서도 연륜있어보인다는 미용실원장의 꼬임에 빠진 것이지만 이제는 장재산의 마스코트처럼 여겨지는지라 염색도 못한다.

 오키나와에서 여의도까지 직행해왔지만 장재산은 흐트러짐없는 수트의 앞섬에 가볍게 손을 대며 은로에게 다가가 인사를 한다.

 은로가 비밀번호 걸린 컴퓨터를 열어제치고 테트리스를 하고 있다.

 장재산은 은로의 행동에 어떠한 의문도 가지지않는다.

 이해안되는 손님, 예외사항이 많은 손님, 큰 돈 벌어다주는 손님.

 

 장재산은 은로가 테트리스에서 패배할 때까지 꼬박 25초동안 미소를 머금으며 정자세로 서서 기다린다. 게임오버.

 은로는 모니터에서 장재산에게로 시선을 옮긴다.

 

 " 장 선생님."

 

 " 네 강 선생님."

 

 " 장 선생님"

 

 " 네"

 

 " 백만송알아요?"

 

 " 네?"

 

 " 저번에 티비에 나오던데"

 

 " 그.. '백만송이 꽃처럼' 에 나온 그 백만송이요?"

 

 " 네 그 백만송이요."

 

 " 알긴 알죠."

 

 장재산은 의외의 대화주제에 놀란다.

 장재산은 여지껏 은로가 동성애자일거라 믿었다.

 장재산이 은로를 만나고 얼마지않아 한 밤접대에서 보여준 그의요란한 행동때문이다.

 은로는 술이 가득한 탁자를 계단처럼 밟고 그 길로 나가버렸다.

 이 후로 은로와의 만남은 '맛'을 중심에 둔 요릿집뿐이였다.

 장재산 향흥인생의 가장 독특한 존재가 여배우에 대해 물어본다.

 

 " 알아요?"

 

 " 알다마다요. 그 분 소속사 임원분도 저희 고객이신걸요."

 

 " 그래요."

 

 " 아휴. 그럼요. 혹시 팬?"

 

 " 그런건 아닌데 그런거라고 해두죠."

 

 " 그렇죠. 우리 강 선생님이 또 여잘 볼 줄 아시죠 역시 그 허리라인이"

 

 " 장 선생님."

 

 " 네"

 

 " 그 여배우 사죠."

 

 "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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