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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비록
작가 : 강지인
작품등록일 : 201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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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채사장의 취임식
작성일 : 17-12-12     조회 : 283     추천 : 0     분량 : 4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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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점심시간, 피곤에 절은 개발팀 사원들, 그 중 유독 말짱하고 눈빛이 빛나는 빵대리.

 만찬자리로 들어선다.

 만찬회는 회사 앞 중식당에서 열렸다.

 신임사장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 홀의 테이블을 돌며 직원들과 악수를 한다.

 사장 옆에 서있던 윤비서가 빵대리에게 다가오라는 손짓을 한다.

 빵대리는 넥타이를 바로 매고 중앙 홀테이블로 향한다.

 어딘가 감격에 겨운듯한 표정의 빵대리, 채제공의 머릿 속에 '사고치지말라'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빵대리 속 채제공은 감정을 추스리며 멈춰선다.

 빵대리는 멈춰서서 헛기침하듯 주먹을 입술 위에 댄다.

 윤비서가 먼저 다가온다.

 

 "좀 늦으셨네요. 자리에 앉으시죠."

 

 "먼저 사장님과 악수라도.."

 

 "앉으시죠."

 

 윤비서는 무표정으로 빵대리가 앉을 의자를 빼준다.

 신임여사장은 방금 들어온 개발팀 사원들과 악수를 하며 인사하고있다.

 빵대리는 의자에 앉는다.

 빵대리는 신임여사장의 목소리를 조금이라도 더 듣고 싶은 마음에 몸을 쭉 빼서 뒤를 쳐다본다.

 빵대리의 시야가 어두워진다.

 

 "아!"

 

 식당 홀 여기저기서 탄식이 들려온다.

 빵대리의 얼굴이 신임여사장의 복부를 그대로 파고들었다.

 빵대리는 천천히 얼굴을 뗀다.

 

 "아..지수야.."

 

 채지수사장은 눈썹을 치켜뜨며 빵대리를 내려다본다.

 빵대리는 벌떡 일어나 고개숙여 인사한다.

 

 "사장님! 송구스럽습니다!"

 

 "어, 아니에요. 그럴수도 있지."

 

 채사장은 의자에 앉는다.

 

 "어떻게. 그러니까 이쪽이"

 

 윤비서가 끼어든다.

 

 "네, 저희회사 최연소로 대리직에 오른 어..."

 

 "...입니다. 사장님."

 

 사원들의 수다소리에 빵대리의 이름이 들리지않는다.

 

 " 이름이 좀.."

 

 "네 예쁜 편입니다."

 

 "특이하네요."

 

 "감사합니다."

 

 "칭찬아닌데."

 

 "네?"

 

 "이름이 특이하단거. 그다지 좋은거 아니잖아요? 부모가 자기 자식이 그런 이름을 가지고 살아도 상관없다. 신경안쓴다. 그냥 흥미 위주로 그런 이름. 재밌는 분이신가보네요. 부모님이."

 

 "하하하 그럼요. 그럼요. 저도 별로더라구요 그 두사람."

 

 채사장은 입을 살짝 벌린다.

 

 "재밌는 분이시네요. 대리님."

 

 빵대리는 미소를 띄우고 채사장을 바라본다.

 채제공은 지수의 얼굴을 뚫어져라본다.

 지수는 빵대리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인상을 천태만상으로 짜부뜨렸다가 미소짓고는 다른 쪽으로 시선을 돌린다.

 

 "윤비서?"

 

 "네, 사장님."

 

 "악수는 이만하면 됐지?"

 

 "네, 충분히 하셨습니다."

 

 "건배, 식사, 업무실. 알겠죠?"

 

 윤비서는 미소를 짓는다. 중식당과는 어울리지않는 와인잔을 손에 쥐고 은수저로 가볍게 와인잔을 친다.

 팅-.팅-.팅. 가벼운 와인잔소리에 부산스럽던 내부홀이 고요해진다.

 채사장이 일어나 외투 단추를 여민다.

 

 "제가 오늘 처음이라 그런데, 회사 내규상 점심시간이 어떻게 되죠?"

 

 홀 끝에서 개발부 차장이 소리친다.

 

 "열두시에서 한시 사입니다. 사장님!"

 

 "그래요? 둘러보니까 회사 근처에 괜찮은 식당도 없던데, 그 시간안에 다들 식사하고 오는건가요?"

 

 실내가 조금씩 잡음이 들린다.

 

 "어쩌죠. 제가 유럽에서 좀 오래있어서, 그렇게 짧은 시간에 식사를 다 끝내기...어렵네요 좀."

 

 직원들이 서로를 쳐다보며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는다.

 

 "그렇다고 사장 혼자 점심시간을 따로 둘 수도 없는 노릇이고, 귀찮게 됐네요. 점심시간은 세 시간으로 늘립니다. 이의사항 있으신 분은 오늘 처음 취임한 사장 앞에서 반론하셔도 상관없습니다."

 

 직원들이 환호성을 지른다.

 그러다 지수의 테이블에 같이 앉은 이사회 임원들이 둘러보자 조용해진다.

 임원 중 중진인 박 전무가 허탈하게 웃으며 고량주 잔을 들고 일어나려한다.

 

 "허허허허, 사장님 그런 사안은 저희 이사회와 합의를 거쳐"

 

 "앉으세요. 박 전무님. 누가 일어나도 된다고 했죠?"

 

 지수는 왼쪽 입술만 치켜올리고 박 전무를 내려다본다.

 

 "무슨 말씀이.."

 

 "앉으라구요. 늙으셔서 귀가 잘 안들리시나요?"

 

 지수의 발언에 홀 내부가 쥐죽은듯이 고요해진다.

 박전무 옆에 앉아 있던 최상무가 벌떡 일어난다.

 

 "거 채사장님! 그게 무슨 언동이십니까! 번암방산에 실질적인 총수로 역임해온 전무님께!"

 

 "그그 그만하게 최상무. 앉지 앉아. 사장님께서."

 

 "최상무님은 일어나계세요."

 

 지수는 팔짱을 끼고 둥근 테이블을 천천히 걷는다.

 

 "여러분들은 무언가를 착각하고 계십니다. 제 나이 쯤 되면 인턴인가요?"

 

 지수는 주변을 둘러보며 제 또래의 인턴들과 눈을 마주친다.

 

 "말도 안되죠. 이 나이에 번암방산 사장이라니,.. 다들 아시다시피 전 평강 채씨 문양공파 49대손입니다. 혈연 지연 학연 중에 제일 진한 혈연타고 사장 자리에 뚝 떨어진 낙하산입니다. 하버드랑 로잔도 기부금 떡칠해서 졸업한거면 더 욕할맛 날텐데 아쉽죠. 근데 그것도 다 집안좋고 교육잘받고 유전자타고 머리 좋으니까 얻은거니, 유전자빨이라고 해둡시다. 제가 뭐 딱히 한 것도 없는데 여러분은 평생가도 못 이룰 위치에 서있네요. 그죠?"

 

 다들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자 사장과 시선을 피하거나 고개를 돌려 테이블만 본다.

 

 "재밌잖아요? 이렇게 태어날때부터 정해진 격차가 있는데, 우리 최상무님은, 오랜 경력이, 명함 위에 적힌 직함 한 두글자가 그걸 상쇄해줄 사다리라도 되는 줄 착각하고. 이렇게. 사장의 공식적인 첫 발언에 딴지를 걸고 계시네요."

 

 지수는 테이블을 빙 돌아 최 상무 뒤에 서있다.

 지수는 최상무의 어깨 위에 손을 올려 슬며시 힘을 준다.

 최상무는 스르륵 무릎을 굽히고 의자에 앉는다.

 

 "수평적세상. 평등한세상인데. 그건 지들이 뒤집어엎고 일어나서 마그나카르타 읊어댄 유럽에나 통하는 이야기구요. 이 굴곡진 한반도 땅 위에서 그게 말이나 되는 말입니까? 기껏해야 여러분도, 겨우 대기업에서 일자리 하나 얻은거 가지고, 청소부나 여기 이 웨이트리스랑 같은 취급받으면 기분나빠하잖아요?"

 

 지수는 테이블 위에 요리를 올리고 있는 웨이트리스 옆에 선다.

 지수는 자켓 안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웨이트리스에게 수표를 건낸다.

 웨이트리스는 금액에 깜짝 놀라 크게 인사한다.

 지수는 미소를 지으며 끄덕인다.

 

 "저는 여러분 월봉을 팁으로 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여기계신 그 누구보다 최상급 교육을 받았고 누구도 들을 수 없는 정보를 들을 수 있는 사람입니다. 재벌가 자제가 보통 이런 생각으로 사는데, 입밖으로 내진 않죠. 에의니까. 그래도 여러분과 저는 이제부터 한 식구니, 서로 숨기거나 가식은 떨 필요없지않습니까? 여러분들이 저처럼 살 순 없습니다. 하지만 전 여러분들의 복지를 위해 최대한 힘쓸겁니다. 그만큼 응당 값어치있는 인재들이니까요. 그러니 제발. 방금 보신 부끄러운 꼴을 두 번 세 번 반복하지마십시요. 제가 하자하면 하면 됩니다. 말도 안되는 억지를 부린다면, 똘똘 뭉쳐서 대항하십시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장담컨데, 여러분의 일상이나 회사의 가치는 전보다 상승할 것 입니다. 그러니, 그러니 서로 마찰하면서 쓰잘데기없는 체력낭비할 생각도 마십시오. 연봉이나 회사에서의 지위,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않습니까? 저는 언젠가 번암의 회장이 될 사람이고, 박전무님과 최상무님은 언젠가 은퇴하시거나. 그 전에 사장 자리 한 번 앉아보실 인재 분들 아니십니까? 저랑 척지어서 좋을거 있나요?"

 

 지수는 최상무의 어깨를 툭툭 친다.

 

 "아니죠..없습니다."

 

 "없죠. 없는데 방금 그 행동은 뭐죠? 어리니까. 지금까지 제 아버님과 함께한 자리에서 보왔던 꼬마여자애니까 막 다룰 수 있을거라고 착각한건가요? 한 번 대칭되는 권력구도라도 만들어서, 회사에 이익도 안되는 정치질이나하면서 저랑 소꿉장난이라도 할 생각이신가요?"

 

 "그건 아니지만.."

 

 "아니지만, 회사운영에 절차를 따르라? 기존의 경영진에 대한 존중을 표하라? 뭐 그런거?"

 

 "..."

 

 "웃기지마십시오. 그래도 제가 제 동생들처럼 임원분들 횡령자료나 사생활뒷조사한걸로 꼬리 붙잡고 애같은 짓거리는 안하잖아요? 서로 자존심상하고 말이지. 식사합시다. 전 식은 음식 별로 좋아하지않습니다."

 

 지수는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와 앉는다.

 만찬회는 초상집처럼 침울한 분위기다.

 직원 전부 이 분위기를 어찌해야할지 몰라 굳어있다.

 지수는 테이블에 양 손을 올리고 예상했단 듯 피식 웃는다.

 

 짝!짝!짝!짝!짝!

 

 지수는 갑작스레 들려오는 박수소리에 깜짝 놀란다.

 아니, 그보다는 박수소리가 너무 요란하게 들려서 놀랐다.

 박수소리는 지수 바로 옆에서 들려왔다.

 빵대리다.

 빵대리는 감격에 젖은 표정으로 지수를 바라보며 힘껏 박수를 친다.

 빵대리의 박수소리에 사원들은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슬며시 박수를 따라친다.

 어느새 홀 안은 지수를 향한 박수소리로 가득해진다.

 지수는 예상치 못한 반응에 되려 당황한다.

 빵대리는 눈물이라도 흘릴듯한 표정으로 지수를 본다.

 빵대리가 점점 지수 쪽으로 몸을 기울이고 다가온다.

 

 "어..어..저..대리님...?"

 

 "우리 지수가.. 그 약하던 지수가 이리 강하게 잘 크다니.. 이 할애비는 이제.. 여한이 없다.. 없어.."

 

 "네? 네? 에에?"

 

 지수가 미쳐 피할 새도 없이 빵대리는 지수를 덥썩 안아버린다.

 박수소리가 뚝 끊긴다.

 지수를 힘껏 껴안은 빵대리가 지수의 귓가에 무언가를 속삭인다.

 당황하던 지수의 표정이 사색이 된다.

 지수는 놀라서 자빠진다. 그 바람에 둘의 포옹이 풀린다.

 

 "이런 미."

 

 윤비서는 벌떡 일어나, 빵대리의 멱살을 거머쥐고 땅바닥에 메치기를 해버린다.

 

 

 채제공이 감격에 젖어 서있다.

 그 발 아래 쓰려져있는 빵대리.

 빵대리는 신음을 내며 정신을 차린다.

 

 "어..어윽..허리야..어?"

 

 정신을 차린 빵대리가 주변을 둘러본다.

 바닥에 쓰려져앉아 자신을 쳐다보고 있능 이름모를 예쁜 여인.

 자신을 향해 씩씩대며 화내고 있는 봤던 묶은 머리의 윤비서.

 그리고 번암방산 임직원의 시선이 모두 자신에게로 쏠려있다.

 빵대리는 고개를 돌려 채제공을 올려다본다.

 여전히 채제공은 흡족한 표정으로 이름모를 예쁜 여인을 내려다보고있다.

 

 "저기 무슨...일이? 우아아악!"

 

 빵대리가 무언가 말도 끝맺기전에 윤비서가 달려든다.

 자신이 정장치마를 입고있단 것도 망각한 듯 빵대리 위에 올라타서 주먹으로 파운딩을 친다.

 

 "이! 무슨! 사원이! 성추행을!"

 

 "우억! 우억! 윤비서님! 우어억!"

 

 빵대리는 양 팔로 가드를 한다.

 '채제공이!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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