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터향이 진동한다.
테이블 위에는 조각케이크와 한 잔의 우유, 한잔의 밀크쉐이크가 올려져있다.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은로와 여배우가 마주 본다.
충무당 빵집이다.
한 명의 남자점원만이 카운터에 앉아서 무언가를 깨작깨작 적고있다.
손님은 은로, 여배우, 매니저 뿐이다.
응당 유명이라면, 무의식적이게 창문을 등지고 앉기 마련,
봄날의 햇볕이 여배우의 머리카락 사이사이로 파고들어 한 폭의 여신화처럼 보인다.
은로는 빨대로 쉐이크를 휘저으며 여배우의 시선을 피한다.
한 칸 떨어진 테이블에선 단발머리매니저가 빵을 층층이 쌓아두고 먹어치우고있다.
은로는 문제를 일으키지말아야겠다고 다짐한다.
여배우가 선글라스를 벗는다.
"어쩔까요."
"뭘요."
다시 말하지만, 은로의 정신수준은 초등학생, 중학생 수준에서 멈춰있다.
이건 미적재능뿐만 아니라, 사회성에도 적용되는 속성이다.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 툴툴대고 괜시리 괴롭히는 유아적인 뇌구조가 작동한다.
" 뭘요는 무슨, 강사장님 사태파악 안되요?"
" 되요."
" 뉴스 안봐요? 인터넷기사 안 봐요?"
" 안봐요."
" 이봐요."
둘의 목소리가 커지자 매니저가 쳐다본다.
가게 여기저기로 시선을 돌리던 은로와 매니저가 눈이 마주친다.
은로는 의자에 제대로 앉아 여배우 쪽을 향해 앉는다.
여배우가 팔짱을 낀다.
" 주식 떨어지던데, 자꾸, 오십일프로라면서요."
" 별걱정을 다."
" 누가 그쪽 주식걱정해요? 저도 로얄티 일부 주식으로 받거든요?"
" 아, 네"
은로는 의자 등받이에 드러눕듯이 기대며 밀크쉐이크를 쭉 빨아마신다.
여배우는 은로의 행동이 썩은 미소를 날린다.
은로는 여배우의 그 비웃음마저 예쁘다고 생각한다.
" 같은 배 탔네요."
" 네?"
" 만송이씨랑 저, 누가 그러더라구요. 같은 주식샀으면 같은 배 탄거라고,"
구르는 신이 그랬다.
" 뭐. 그래요. 같은 선원끼리 잘 좀 해봐요. 강 사장님."
" 아니죠."
" ..?"
" 선원은 그 쪽이고, 전 선장이죠."
" 아.. 네 뭐, 편하실대로. 마음대로 하세요. 강 선장님."
" 백만송 선원님. 배타면 뭐가 제일 위험한지 아세요?"
여배우는 뜬금없는 퀴즈를 듣자 선글라스 귀받침대 끝를 깨문다.
" 어..음.. 상어요?"
은로는 팔꿈치를 테이블에 괴고 손으로 턱을 감싼다.
" 바람이죠."
은로는 여배우의 눈동자를 뚫어져라 쳐다본다.
" 아, 그런가요?"
" 백만송씨는 바람이 불면 어떤가요?"
" 배...탔을 때요?"
" 아뇨. 그냥 평상시에, 막 바람이 느껴져. 어디서 막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그럼 어때요?"
" 바람..바람...바람이 부는구나..?하죠. 왜요?"
" 막, 그립고 어딘가로 떠나고 싶고. 막 옛날 기억 새록새록. 안그래요?"
여배우의 눈동자가 좌우로 흔들린다.
테이블 위를 방황하던 시선이 다시 은로의 콧등으로 향한다.
'진짜..'
미친놈인가.
여배우의 오감이 경고한다. 위험한 놈이다.
여배우는 진담반 장난반으로 가방을 들고 슬쩍 일어난다.
" 하하하하. 하..하...그러네요. 바람 좋죠. 바람. 어. 그 제가 스케쥴때문에 이만."
은로는 몸을 앞으로 기울여 여배우의 손목을 덥썩 잡는다.
"으아닛!"
여배우가 소리지른다.
단발머리 매니저가 테이블을 쾅 치고 일어난다. 빵이 우르르 떨어진다.
"잘.. 잘 생각해봐요. 네? 바람 막 분다 바람 어? 후~ 후~"
은로는 다급히 소리친다.
단발머리 매니저가 의자를 치우고 두 사람에게 가려는데, 그림자가 드리운다.
빵집점원이 매니저의 시야를 가리며 서있다.
중국어로 무언가 말하는 점원, 매니저는 깊은 주름을 만들며 점원을 노려보지만 말이 통하지않는다.
" 나. 나 기억안나요? 나 기억나죠? 네? 어어?"
"모..몰라요. 왜 이래요 강사장님 강은로씨."
여배우가 다급해져 매니저를 찾지만, 매니저는 남자점원과 마주 선 채 무언가 이야기 중이다.
" 후.. 강사장님. 기억나요. 하. 기억나니까 우리 침착해요. 이건 좀.."
여배우는 은로를 다독이며 손목을 바라본다.
여배우가 다시 의자에 앉는다.
" 기..기억나요?"
은로는 어설프게 웃으며 여배우의 손목을 놓는다.
" 여의도 말씀하시는거죠? 벚꽃 막 부아아악 "
여배우는 구연동화하듯 손가락을 마구 움직여 벚꽃을 표현한다.
" 아, 아뇨. 그 전에요."
" 그 전요?"
" 네 그 전요. 예를 들자면, 이번생의 전?"
여배우는 무릎 위에 올려진 핸드백을 꽉 거머쥔다.
은로는 그 모습을 본다.
" 그러니까 아주 하허하하 비유하자면 그렇다는거죠. 농담농담."
여배우, 그러니 바람의 신은 은로를 기억하지 못하는 듯 싶다.
은로가 알기론 이렇게 자연스러운 연기를 할 수 있는 실력이 못된다.
" 제가 눈물 연기는 잘 못해도 대사는 잘 외우거든요? 기억력 좋은데, 강 사장은 좀.. 처음보는... 새로운 캐릭터라... "
은로는 이 경우를 알고 있다.
신의 현신에는 여러 옵션이 붙는다.
그 중, 자신이 신이였다는 점을 기억하지 못하고 현신하는 경우.
이런 케이스로 현신한 신에게, 왜 그랬냐고 물어본 적 있다.
단순하다. 게임에 더 몰두하기 위해 VR기기를 쓰는 셈이다.
어라, 그런데 수해와 태풍이라는 단어가 잊혀진지는 대략 10년. 아무리 길게 보아도 말이지.
마주보고 앉은 바람의 신, 이 여배우는 20대 후반이다.
그렇다면 10여년 전, 이 여인의 몸으로 강림했단건가?
은로는 머리가 복잡스럽다.
신이였던 기억도 없이 덜컥 인간의 삶을 산다? 그게 되나?
복잡한건 차후에 본인에게 직접 물어보도록 하자.
여배우도 혼자서 골똘한다.
' 여의도보다 이전? 전에 본 적이 있나? 낯설진않아.'
테이블 위로 큰 그림자가 생긴다.
여배우와 은로는 동시에 위를 올려다본다.
단발머리매니저, 애인이다.
" 헉헉, 언니 괜찮아요? 헉헉"
여배우는 몸을 뒤로 쭉 빼 애인이 앉아있던 자리를 본다.
남자점원은 반으로 접혀져 의자에 꽂혀있다.
" 어..응.. 그보다.."
여배우는 접혀있는 점원을 손가락질한다.
" 괜찮아?"
" 어휴 몰라요. 튼튼하던데요 대륙놈."
은로도 여배우의 시선을 따라 남자점원을 본다.
가끔 보던 점원이 거꾸러져있다.
" 저..우리 땅.. "
" 넌 조용히 해라?"
은로는 매니저의 말을 잘 듣는다.
" 어 응. 괜찮아. 그냥 별 일 아냐. 저.. 그.. 가서 저 사람 좀 펴주지?"
" 네. 언니."
매니저가 다시 원래 자리로 돌아간다.
" 언니에요? 그 쪽이?"
은로는 몸을 기울여 속삭이듯 말한다.
여배우는 우유잔을 살며시 집어들어 입술만 살짝 적신다.
" 전달받으셨는진 모르겠는데, 어찌됐건, 인터뷰 하셔야되요. 그거. 일정 잡아놨어요."
" 취소하면 되죠."
" 나중에 저랑 사진도 같이 찍으시고. 인스타에도 올리고?"
" 안 찍어요."
" 사람이 왜 그렇게 못됐어요? 그 날 그 난리를 피우고 갔으면 최소한의 도리를 지켜야지."
" 도리요?"
" 최 이사님 쓰러지시고, 도대체 뭐라고 하신거래. 주최측이 그렇게 설설 기고있는데 거길 그렇게 떠요? 기자들 한뭉텅이 모여있는 길을? 레드카펫을 역주행해서? 사골? 그 사골을 잘 끓여드셨어요? 얼굴 뽀얘지신거보니까 잘 드시긴 드셨나보네요."
푸훕ㅡ.
은로는 웃음을 터트린다.
" 뭐가 웃겨요."
" 웃겨서요. 흐훕..후.."
나른한 오전, 따듯한 햇볕, 달콤한 빵냄새, 오늘도 예쁘고, 애인이도 곁에 있다.
마주보고 앉은 상대는 상당히 기분나쁘고 불쾌한 인물이지만, 웃는 모습은.. 좀 귀엽다고 생각한다.
여배우도 슬며시 웃는다.
" 흡.."
" 왜 웃어요."
" 그 쪽이 웃잖아요."
" 흐흐흡.."
" 하..후.. 안되지.안돼. 최이사님. 도대체 뭐라고 하신거에요? 그 분 기절하고 그런 캐릭터아니신데."
" 기억안나요. 그냥 뭐. 놀고있다? 그런 말이였는데,"
" 네? 놀고있다?"
" 아니 뭐.. 보니까 부채도 장난아니고. 올해 마땅히 짜여진 계획도 없으면서 돈 펑펑 쓰길래. 웃기잖아요."
" 천하의 최이사님한테, 놀고있다고 했어요? .. 그 최이사님한테?"
" 아아, 소돔과 고모라같다. 그랬다. 소돔과 고모라."
" 하.. 그 자존심에. 어쨌건, 그 날 그 난리. 강 사장님 책임도 상당해요. 회사 브레인들이 짜낸거니까, 그냥 시키는대로 해요. 뭐, 이거말고 무슨 학교 동창이였느니 원래 아는 사인데 오랜만에 만났느니 말도 안되는 시나리오쓰던데, 그거 제가 다 캔슬했어요. 솔직담백하게 가자 이걸로. 알겠죠? 제가 잔가지 다 쳐드렸다구요."
" 안해요."
" 해요."
" 안합니다."
" .. 어휴, 솔직히 말해봐요. 좋죠?"
" 네?"
" 아니~ 아닌게 아니라. 세상에. 이렇게 예쁜여자랑, 어? 제일 유명한 여배우랑 평일 오전에 느긋하게 같이 빵집에 앉아서 도란도란 이야기하니까 좋잖아요. 그죠?"
은로는 속내를 숨기고 잔뜩 눈썹을 찡그린다.
" 예상외로 예상외의 캐릭터시네요. 그쪽도."
" 뭐 어때요. 서로 서로한테 밑보여서 나쁠거 없는 사인데. 응? 투자자고 투자처고. 솔직해야지. 그래서. 그래요? 안그래요?"
" 이렇게 재밌는 분인 줄 알았으면 혼자 올게 아니라 아는 분이랑 같이 올걸 그랬네요. 얼마 전에 저희집에와서 자고가기도 했는데."
여배우는 팔짱을 살짝 풀었다가 손바닥으로 팔뚝을 감싸듯 껴앉는다.
" 무슨 발언이세요 그게."
" 아. 어 그런 쪽은 아니에요. 그..솔직하자면서요. 솔직히 말하는거에요. 맞아요. 좋아요. 저 백만송씨한테 관심많아요. 또 동시에 소개시켜주고 싶은 분도 있구요."
" 지금.. 제가 생각하는 그런 쪽은 아니겠죠?"
" 그 쪽이 뭘 생각하시는진 모르겠는데, 그거보단 확실히 클거에요. 백만송씨가 아는 그 누구보다."
여배우가 손가락을 위로 치켜든다.
" 높으신 분?"
" 뭐, 생각하기에 따라선 누구보다도?"
여배우는 시선을 천장으로 옮긴다.
'그럼그렇지.'
여배우는 길게 숨을 뱉는다. 그리고 헛웃음을 웃는다.
" 그럼 그렇지."
" 그렇죠?"
" 그렇네요. 뭔가 휭하다 했어. 이상하다했어."
" ?"
" 그 나이며, 재산이며, 본적도 없는, 바지사장인거지?"
" 바지? 뭐요? 바지사장?"
여배우가 머리카락을 뒤로 넘긴다.
" 또! 어떤!"
여배우가 우유잔을 거머쥔다.
우유잔이 흔들리며 살짝 넘친다.
매니저가 놀라서 쳐다본다. 카운터로 돌아간 남자점원도 본다.
" 버러지같은 놈이!"
여배우는 벌떡 일어난다.
많이 맞아봤다. 물잔, 커피잔, 술잔... 여배우는 이 장면을 익히 연습해왔다.
" 여배우를! 뭘로보고!"
여배우는 일어나는 반동과 팔을 뻗는 힘을 이용해 우유잔을 직각으로 밀듯 뻗는다.
창공을 날듯, 흰 우유가 비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