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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악녀의 사랑
작가 : 서윤하
작품등록일 : 201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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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악녀의 전설
작성일 : 17-11-24     조회 : 283     추천 : 0     분량 : 44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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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일곱 악녀의 전설

 마지막 전투로 유명한 ‘피의 언덕’ 아래쪽에는 ‘에바 강’이 굽이쳐 흐르고 있었다. 노을에 물든 황금빛 물비늘들이 바람에 실리어 마치 살아있는 듯 꿈틀거렸다. 언덕의 끝자락을 돌아서면 거대한 돌탑이 주변 경치와는 어울리지 않게 우뚝 솟아 있었다. 윌리엄과 슈턴은 ‘제국의 수호신들’이란 탑의 비명(碑銘)에다가 차례로 입을 맞추었다.

 “벌써 7년이나 지났어.”

 “세월이 빠르긴 하다.”

 두 친구는 언덕을 휘돌아나가는 강물 너머에 시선을 두었다. ‘루벤스 제국’의 수도가 한눈에 들어올 정도로 가까운 거리였다. 어떤 적(敵)이든 이 언덕만 넘어서면 제국의 수도를 쉽게 함락할 수 있었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그날 대단했어.”

 “맞아. 이반 아저씨의 작전이 멋지게 통한 거지.”

 “괜히 ‘블랙 엔젤’이 아니라니까.”

 그날 적(敵)은 총공세를 펼치며 물밀 듯이 쳐들어왔다. 결국, ‘루벤스 제국(帝國)’의 용사들은 수비대장 이반의 작전대로 두 갈래로 나누어서 적을 맞이하기로 했었다. 하얀 갑옷이 피로 물들어 까맣게 보인다고 해서 붙은 별명 ‘블랙 엔젤’. 이반은 윌리엄과 슈턴, 그리고 유일한 여전사인 베로니카의 스승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해도 아찔했다.”

 사방을 둘러보던 슈턴이 언덕을 가리키며 떠는 시늉을 한다. 마지막 전투는 배수진이었다. 적에게 밀리면 전부 ‘에바강’에 빠져 죽어야 했다. 더군다나 병사들의 3분의 1은 이반의 작전대로 언덕을 내려가서 강을 타야했다. 그 병사들의 선봉장이 슈턴이었다.

 “진짜 신(神)께서 도우신거지.”

 윌리엄도 그날을 생각하면 아찔했다.

 “아저씨들이 잘 버텨줬어.”

 언덕을 내려간 병사들은 강을 따라 흘러가서 적의 후미를 공격하기로 했다. 가뜩이나 수적 열세였는데 병사들을 둘로 나누었으니 피의 언덕에서 적을 맞이하던 황제 이하 주력군은 거의 전멸이 될 정도였다. 슈턴의 예비기사단이 때맞추어 적의 후방 부대를 무너뜨리면서 전투의 양상이 바뀌게 된 것이다.

 “어떻게 생각해?

 슈턴은 느닷없이 주제를 바꾸었다. ‘피의 언덕’을 바라보던 그의 시선이 천천히 친구 쪽으로 돌아갔다.

 “뭐?”

 “일곱 악녀!”

 갑자기 묻는 이유가 수상했다.

 “그건 왜?”

 “궁금해서.”

 최근 들어 제국 전체가 일곱 악녀 때문에 난리였다. 100년 전에 갑자기 사라졌던 그녀들이 다시 등장한 것이다.

 “정말일까?”

 물론 소문만 무성했지만 통일 전쟁 이후 최고의 이슈였다.

 “뭐가 궁금한데?”

 “윌리엄, 너는 아무렇지 않아?”

 “글쎄.”

 전혀 관심이 없는 투다.

 “하-! 어이가 없네?”

 “일단 내가 본 게 아니니까.”

 “그래도….”

 사실 일곱 악녀들의 이야기는 오래된 전설로 치부하기엔 그 내용들이 너무 구체적이었다. 실제로 사랑을 쫓다가 그녀들의 칼날에 죽은 사람들도 부지기수였다. 며칠 전에 사라진 훈련대장 케빈 경(卿)의 실종에도 칠악녀가 연관되었을 거라며 술렁거렸다.

 “훈련대장 말이야?”

 “그래.”

 기다렸다는 듯이 슈턴은 두 눈을 반짝거렸다.

 “케빈 경에게 여자가 있었나?”

 “당연히 없지.”

 훈련대장은 오로지 검술(劍術)뿐이었다.

 “그렇다면 칠악녀는 아니네.”

 “꼭 사랑 때문이 아닐 수도 있잖아.”

 슬슬 본론이 나오려고 한다.

 “지금까지 그런 경우는 없었어.”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악녀들은 여자의 사랑을 막기 위해 태어난 존재들이야.”

 “그렇긴 하지.”

 창조주인 사라여신(女神)은 인간을 만들면서, 남자와 여자를 두어, 서로가 사랑하며 조화롭게 살기를 바랐다. 그런데 인간의 사랑은 자손이 번성뿐 만 아니라 신(神)까지 넘볼 수 있는 커다란 힘을 갖게 만들었다. 이에 당황한 여신은 인간의 사랑을 막기 위해, 특히 자손 번식에 열쇠를 쥐고 있는 여자의 사랑을 막기 위해 칠악녀를 세상에 내려 보냈다.

 “너도 칠악녀의 저주가 뭔지 알지?”

 “당연하지. 제국시민이면 누구나 다 아는 거잖아.”

 “그런데 케빈 경의 실종을 거기다가 갖다 붙여?”

 “아닐 수도 있잖아.”

 또 한 번 똑같은 대답이다. 그 말은….

 “빨리 불어.”

 윌리엄의 입술이 가늘게 떨렸다.

 “네 생각대로야.”

 벌써 알아챘을 것이다. 보통 머리는 아니니까.

 “황태자가 협박을 했나보네?”

 “야! 내가 협박을 받을 사람이냐? 협상이지.”

 “조건은 내 목숨인가?”

 “……!”

 하나를 말하면 열 가지를 알아채는 친구다.

 “언제 떠날 건데?”

 “베로니카만 보면 떠나야지.”

 “그렇게 빨리?”

 “빨리 떠나야 빨리 돌아오지.”

 “그래….”

 건성으로 머리만 끄떡인다.

 “그 표정은 뭐야? 마치 내가 죽기라도 한 것처럼.”

 “어려운 상대야.”

 “그렇다고 내가 지겠냐?”

 “으음.”

 아예 대답자체를 하지 않는다. 그만큼 칠악녀의 악명은 대단했다.

 “이번 기회에 여자 가슴이나 실컷 보려고…하하하.”

 호기롭게 웃지만 그 속은 긴장하고 있을 것이다. 말이 가슴을 여는 것이지 일곱 악녀들이 자신의 심장을 쉽게 내 놓겠는가? 그때 둘보다 한 옥타브 높은 날카로운 목소리가 어디선가 날아들었다.

 “왜? 그랬어?”

 “베로니카!”

 슈턴이 깜짝 놀라며 자기 목숨 같은 친구를 반갑게 맞아했다.

 “너는 언제 정신 차릴래.”

 “내가 뭘?”

 “언제 사람 될 거냐고. 맨날 애들처럼 싸움질이나 하고.”

 “누가 싸워?”

 “지금 싸우러 간다며?”

 “내가?”

 어이없다는 표정이다.

 “거기다가 가…슴…까지……”

 말투가 느려진다 싶더니 소리를 꽥 지른다.

 “야!”

 “왜…왜에?”

 죄진 것도 없이 주눅이 든다. 이반 스승님의 가르침 중에 ‘여자는 무조건 옳다.’ 라는 계명에 나무 충실했던 결과다.

 “그러니까 여자의 가슴을?”

 “어…엉.”

 얼떨결에 대답이 저절로 나왔다.

 “이게 정말!”

 당장이라도 잡아먹을 듯 달려들었다.

 “그만 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무 말 없던 윌리엄이 두 사람에게 소리를 질렀다. 한 번도 그런 모습을 보지 못 했던 친구들은 깜짝 놀랐다.

 “윌리엄….”

 베로니카가 곧 울 것만 같은 표정이다.

 “자기가 생각하는 그런 거 아냐. 슈턴이 떠난다고 해서….”

 설명을 잇지 못한다.

 “떠나?”

 “그래. 그것도 칠악녀를 잡으러.”

 “뭐?”

 그제야 상황을 대충 파악한 베로니카의 얼굴빛이 일그러졌다.

 “둘 다 왜 그래?”

 “슈…슈턴….”

 “베로니카, 너도 내가 못 돌아올 것 같아?”

 “누가 그렇데?”

 확신에 찬 대답이었다.

 “그런데?”

 자신의 실력을 믿어주니 고맙긴 한데 뭔가 찝찝하다.

 “바보야. 칠악녀는 싸움으로 되는 게 아니잖아. 여자의 사랑을 방해하는 일곱 개의 죄악을 이겨내야 하잖아.”

 “그렇지.”

 “하지만 너는 사랑을 전혀 모르잖아.”

 “하아~!”

 여자는 여자다. 전설 따위를 그대로 믿고 있다. 그냥 찾아가서 악녀들의 가슴을 열고 심장을 꺼내면 되는 것이다. 전설처럼 일곱 악녀들을 사랑으로 굴복시킬 필요는 없는 것이다.

 “여자의 사랑을 방해하는 일곱 죄악은….‘

 전혀 어울리지 않게 문학소녀의 감성을 지닌 베로니카 입에서 일곱 악녀의 죄악이 술술 흘러나왔다. 그것들만 얻을 수 있다면 영원한 사랑을 영위할 수가 있는 것이다.

 “잘 들어봐. 슈턴이 할 수 있는 사랑이 있는지.”

 작은 입술에서 음유시가 흘러나왔다.

 루디! 빨강은 자아도취! 여자의 사랑을 막는다.

 바실라! 주황은 불복! 여자의 사랑을 막는다.

 로베나! 노랑은 허영! 여자의 사랑을 막는다.

 그리니! 초록은 유약! 여자의 사랑을 막는다.

 사르티스! 파란은 구속! 여자의 사랑을 막는다.

 블로피! 남색은 겁쟁이! 여자의 사랑을 막는다.

 슈나! 보라는 자살! 여자의 사랑을 막는다.

 노래를 끝낸 베로니카가 슈턴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곰탱이 친구는 전혀 반응이 없다. 옆에 있던 윌리엄도 마찬가지이다. 아무튼 남자들이란 사랑을 몰라도 너무 몰랐다.

 “이해가 안 돼?”

 베로니카의 눈꼬리가 확 올라간다.

 “그거 그냥 확 빼오면 되는 거 아냐?”

 “가슴을 갈라서?”

 “그렇지.”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너는 100년 전부터 내려오는 전설도 모르는구나.”

 “뭐? 악녀들이 심장을 숨겨놨는데 그걸 찾는 열쇠는 사랑이라고? 너는 정말 그 말을 믿어?”

 “그래! 이 곰탱이야! 악녀들을 죽으면 오히려 심장을 찾을 수가 없다고.”

 슈턴이 난감한 표정으로 윌리엄을 쳐다본다.

 “네 생각은 어때?”

 “……!”

 아무 대답도 없다.

 “윌리엄, 슈턴에게 말 좀 해 줘.”

 두 사람 모두가 윌리엄의 대답에 귀를 세웠다. 그러나 그의 설명은 전혀 뜻밖의 내용이었다.

 “슈턴, 살아서 돌아와라.”

 친구의 양 어깨를 잡는다.

 “뭐? 슈턴이 죽어?”

 윌리엄의 손아귀에 힘이 들어간다.

 “윌…윌리엄.”

 “꼭 살아있어야 해…흑흑흑…”

 입술을 꾹 깨물더니 울기 시작한다. 슈턴과 베로니카가 서로를 쳐다보며 어쩔 줄을 몰라 했다.

 “슈턴, 칠악녀의 심장이 왜 필요한 건데?”

 “그게….”

 “너…혹시…황태자가?”

 베로니카도 짐작 가는 게 있었다. 그녀는 지금까지 슈턴이 실종된 케빈 경을 찾으러 가는 줄 알았다. 둘 사이가 그리 친한 것은 아니지만 같은 용사끼리는 서로의 자존심을 지켜주려는 배려가 있었다.

 “자세히 말해봐. 정말 황태자가 너에게 부탁한 거야?”

 “어…엉….”

 슈턴이 엉거주춤 대답을 했다.

 “흑흑흑…슈턴…어떡하든 살아야…흑흑….”

 “황태자, 이 놈이 기어이!”

 이가는 소리가 들리나 싶더니 베로니카도 훌쩍인다.

 “흑흑흑….”

 “둘…다…왜 이래?”

 어린 시절부터 한 번도 떨어져 본 적이 없는 세 사람이었다. 두 사람을 바라보던 맥슨마저 천천히 울먹이더니 아예 통곡을 하고 말았다.

 "아앙~!!!"

 이제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 지 모르는 목숨 같은 친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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