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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악녀의 사랑
작가 : 서윤하
작품등록일 : 2017.1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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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들
작성일 : 17-11-25     조회 : 329     추천 : 0     분량 : 40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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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 일곱 악녀

 

 (1) 악녀들

 여신의 결계에 묶인 지 100년. 이런 일은 처음이었다. 아닌가? 예전에도 한 명 있긴 있었다. 그러나 그는 친구였다. ‘세인트 산’의 일곱 봉우리마다 무지갯빛이 피어올랐다. 여자의 사랑을 농락한 죄로 이곳에 잡혀있지만, 침입자를 처단하는 일은 여신과는 별개였다.

 “도대체 어떤 놈이?”

 “보나 마나 미친놈이겠지.”

 플라이트 마법으로 각자의 봉우리를 떠난 7명의 쌍둥이 악녀들은 커다란 폭포가 쏟아지는 산 중턱에서 마주했다. 공중에 떠 있는 그녀들은 마치 커다란 투명 공에 담겨있는 듯했다.

 “아무튼, 반가운 일이군. 죽기 전에 사람 냄새를 맡게 되었으니까.”

 “그렇지만 이 세상에 누가 있어 감히 우리에게 도전을?”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우연일 거야. 종종 길 잃은 짐승이나 요정들도 들어오잖아.”

 “만일, 아니라면?”

 “아니라면…….”

 갑자기 악녀들의 얼굴이 불안해진다.

 “놈이 죽던 가, 우리가 죽던 가, 둘 중 하나겠지.”

 “호호…우리도 죽음을 걱정할 때가 생겼군.”

 “아무튼, 가보자.”

 다투어 떠들어대던 악녀들의 몸뚱이가 산 아래로 급하게 날아갔다. 빨주노초파남보의 옷들이 자유자재로 뒤섞인다. 그녀들의 시야로 제일 먼저 들어온 것은 광활하게 펼쳐진 초록 밭이었다.

 “도대체 어디까지 쳐들어온 거야?”

 키가 큰 침엽수들이 빽빽이 꽂혀있는 ‘메도스 숲’은 일곱 악녀만의 안식처였다. 지평선 너머로 붉은 태양이 스멀스멀 가라앉는 중이다. 숲의 끝은 세인트 산의 일곱 봉우리로 향하는 입구였다. 혹시 모를 침입에 대비해서 숲 속에다 오크들을 풀어놓았다. 놈들은 먹을 것만 던져주면 무엇이든 척척 해결하는 착한 부하들이었다.

 와르르!

 숲의 끝자락이 일순간 꿈틀거린다.

 “뭐야? 벌써 끝난 거야?”

 마지막 방어벽을 통과했다는 소식을 접한 게 2시간 전이다. 오크의 또 다른 장점은 번식력이 강하다는 것이다. 발에 밟힐 정도로 수없이 깔렸을 놈들을 그 짧은 시간에 해치웠단 말인가?

 “놈이 나온다!”

 숲이 끝나는 자리부터 산 입구까지 굵은 자갈밭이 하얀 뱀처럼 깔려있다. 침입자는 붉은 머리칼을 짧게 자른 사내였다. 보통 사람들보다 머리 하나가 커다랗고 훈련으로 다져진 근육질 몸매만 보더라도 용사라는 이미지와 딱 맞아떨어졌다. 그의 손을 떠난 새하얀 비둘기가 푸드덕 하늘로 날아올랐다.

 터벅터벅!

 사내의 발걸음은 매우 가벼워 보였다. 느긋하게 뒷짐까지 진 모습이 마치 산책 나 온 사람 같았다. 방금까지 겪었을 전투의 흔적은 갑옷에 묻은 오크들의 푸른 피뿐이었다. 그는 오백 보(步) 이상의 거리를 숨소리 하나 남기지 않고 한 번에 걸어왔다.

 “멈춰라!”

 일곱 악녀는 자신의 눈을 의심하며 그를 막아섰다. 사내가 그 자리에 서서 별거 아닌 듯 그녀들을 바라보았다. 짙은 눈썹의 우락부락한 얼굴이 사내를 더욱 강인하게 만들었다. 빨간 옷의 악녀가 앞으로 나서며 사내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누구냐?”

 “그건 알 필요 없고…….”

 사내가 대답 대신 실실 딴청을 부리며 주변을 둘러본다.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수작은 안 통해.”

 악녀들이 천천히 좁혀왔다. 그러나 사내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았다.

 “후후…네가 이 추한 것들의 우두머리인가?”

 “추…추한 것들?”

 나름대로 미모에 자부심이 있던 그녀들이다. 한참 잘 나갈 때는 남자들의 모가지를 액세서리처럼 달고 다녔다. 일곱 쌍둥이 중 가장 성격이 거친 노랑 옷이 앞으로 나섰다.

 “감히 이놈이?”

 “오라? 네가 여자의 마음을 건방지게 만들어서 그 사랑을 빼앗아 버린다는 ‘로베나’구나.”

 노랑 악녀가 주춤한다.

 “우리를 아는가?”

 “당연히 잘 알지…후후!”

 사내가 히죽거렸다.

 “일부러 우리를 찾아왔다?”

 긴장의 빛이 살짝 드리웠다 사라진다.

 “오 년을 죽어라, 찾아다녔지. 하루도 쉬지 않고!”

 “호호…죽고 싶어서 안달이 났나 보군. 하지만 죽기에는 아직 어린 나이인데?”

 “걱정하지 마. 오늘은 늙은 년들이 죽는 날이니까.”

 입이 거칠다.

 “칼보다는 주둥이가 먼저인 놈이구나.”

 “그건 조금 있으면 알게 돼…후후.”

 사내가 칼을 앞으로 세웠다.

 “애송이 놈이 겁을 잃었군!”

 “같은 날 죽으니 지옥에서도 심심치는 않을 것이다.”

 “이놈! 혓바닥부터 뽑아서 버릇을 고쳐주마.”

 “후후…네 년들 몸뚱이가 갈라져도 그런 소리를 하는지 봐야겠다.”

 “보자 보자 하니까 끝이 없구나.”

 “칼날이 가슴을 후벼 팔 때쯤이면…….”

 “닥쳐라!”

 어느새 측면으로 돌았는지 보라색의 악녀가 사내의 옆구리를 파고들었다. 그녀의 양손이 빨갛게 물들어 이글거렸다.

 “네놈은 내가 씹어 먹는다!”

 “흥! 어딜?”

 사내가 슬쩍 피하며 가볍게 쳐낸다. 그러더니 손가락으로 그녀의 얼굴을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너는 여자의 사랑을 스스로 죽이는 년이고…아마 ‘슈나’라고 했지?”

 “이놈! 내가 갈기갈기 찢어주마!”

 주황색의 다른 악녀다.

 “이번엔 누구지?”

 별거 아니라는 말투다. 악녀의 손에 파란빛이 번쩍거렸다.

 “하하…‘라이트닝 볼’ 따위로 나를 죽이려고? 그래도 여자들의 사랑으로 사기나 치는 주제에 마법은 제법 배웠는데?”

 “머리통이 부서져야 정신을 차리겠구나!”

 “어디, 네년 솜씨도 좀 볼까?”

 “죽어라!”

 악녀의 손을 떠난 번개들이 수평으로 층층이 달려들었다. 커다란 자갈들이 부서지며 이리저리 비명을 질러댔다. 그러나 사내는 피하기는커녕 오히려 가슴을 활짝 폈다.

 깡!

 그뿐이었다. 기세 좋게 달려들던 제트(Z) 모양의 파란 불빛들이 순식간에 사라져버렸다. 일곱 악녀는 본능적으로 한걸음 물러섰다. 그녀들은 동시에 굵은 침을 삼키며 협공의 자세를 취했다.

 “어…어떻게 신의 갑옷을 입고 있지?”

 “이거?”

 사내가 가슴팍을 주먹으로 쾅쾅 친다. 악녀들은 마른 입술에 침을 바르며 뒤로 물러섰다.

 “후후…이제야 내 실력을 알겠는가?”

 “네놈은 누구냐?”

 “슈턴!”

 사내가 천천히 다가섰다.

 “멀쩡한 시체라도 건지려면, 스스로 가슴을 갈라 심장을 꺼내라!”

 “우…우리의 심장?”

 “그래! 심장!”

 “우리의 심장이 필요한가?”

 “……!”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인다.

 “왜?”

 “친구를 살려야 하니까!”

 사내가 다부지게 대답했다.

 “우…우리가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알아?”

 “그렇다고 떨긴…하하하!”

 “이놈이!”

 살면서 이런 모욕은 처음 이었다. 일곱 악녀의 이빨 가는 소리가 으스스 떨려 나왔다.

 “좋아! 싸우다 죽을 기회를 주지. 한꺼번에 덤벼라!”

 싱글싱글 여유가 있다.

 “죽어라!”

 동시에 일곱 가락의 파이어 볼이 북두칠성의 궤적을 그리며 사방에서 날아왔다. 그중 두 개는 곧장 가슴을 노렸다. 그러나 슈턴은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앉았다.

 “흥!”

 날렵한 몸이 거칠 것 없이 별의 궤적으로 뛰어들었다.

 팡! 팡!

 가슴을 노리던 두 개의 파이어 볼이 슈턴을 강타했다. 그러나 신의 갑옷은 불덩어리들을 갈가리 찢어버렸다. 나머지 5개의 별이 위로 솟구쳤다가 그의 머리 위로 쏟아졌다.

 “이것도 받아보아라!”

 악녀들이 서로의 손을 맞잡았다. 신의 갑옷을 뚫을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마지막 힘을 한순간에 모아야 한다.

 “부스트…부스트…부스트…….”

 주문이 점점 빨라지며 빨주노초파남보의 빛줄기가 불덩어리들을 향해서 뻗어 나갔다.

 “…부스트…부스트…어둠을 지배하는 왕이시여!…부스트…부스트…악령의 힘으로 저희에게 더욱 큰 마력을 주시옵소서!…부스트…부스트…….”

 “흥! 요망한 것들!”

 슈턴은 롱소드를 치켜들며 머리 쪽에서 쏟아지는 파이어 볼들을 노려보았다. 일곱 줄기의 무지개가 불덩어리들의 주변을 감싸며 무서운 속도로 떨어져 내렸다.

 “가라! 파이어 웰!”

 순간! 칠악녀의 기합소리가 터져 나왔다. 다섯 개의 불덩어리가 하나로 뭉쳐 두꺼운 벽으로 변하였다. 그러나 슈턴은 당황하지 않았다.

 “어딜?”

 칼을 풍차처럼 돌리며 천천히 내려오는 불벽을 노려보았다. 시뻘겋게 이글거리는 불 벽이 슈턴을 짓누르기 시작했다.

 “으읍!”

 신음이 짓눌리며 흘러나왔다. 생각보다 강한 힘이었다.

 “으윽!”

 두 번째 신음은 이빨 사이에서 들렸다. 땅속으로 두 발이 처박히려 한다. 더욱 이를 깨물었다.

 “그 정도로는 어림없다!”

 슈턴의 팔뚝 힘줄이 부풀러 올랐다.

 “으으으…!”

 모든 힘을 쏟아 칼을 회전시켰다. 불 벽 가운데가 엷어지며 작은 구멍이 생기려 한다. 일곱 악녀의 얼굴에서 짙은 땀방울이 흘러내렸다.

 “…부스트…부스트…….”

 불벽을 감싸고 있던 무지개가 하나로 뭉쳐지며 새하얗게 변했다. 주변의 모든 사물이 색깔을 잃어갔다. 엄청난 기력이 세상을 바꾸려 한다. 그러나 슈턴은 물러서지 않았다.

 “이…이얍!”

 기합소리가 허공을 찔렀다.

 쾅!

 잠시 빛을 잃은 세상은 온통 까만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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