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믿습니까?"
암흑 속에서 탁한 목소리가 묻는다.
"당신은...... 믿습니까?"
"네? 무엇을 말입니까?"
"당신은... ...을 믿습니까?"
"네? 뭐라고 하셨어요? 크게 다시요."
"당신은 영원불멸의 존재를 믿습니까?"
갑자기 환해진다.
갖가지 소리들이 찬 공기를 메운다.
암흑도 없고 침묵도 없다.
나는 횡단보도 가운데 서있다.
깜빡이는 신호를 한참 보다가 겨우 발을 옮긴다.
아슬아슬하게 길 저편에 닿는다.
"당신은 영원불멸의 존재를 믿습니까?" 마주 선 사내가 묻는다.
"네. 믿고 말고요. 당신은 진실을 아시는군요."
물끄러미 바라보는 나의 시선을 그는 정면으로 받는다.
이윽고 그가 입을 연다. "메신저여, 신의 뜻을 들을지어다."
사내는 장검을 높이 쳐든다. 칼날의 반사광이 눈부시다.
장검은 나의 심장을 사정없이 관통한다.
나는 무릎을 꿇은 채로 신탁을 듣는다.
테잎을 거꾸로 돌리는 듯한 소리가 어지러이 귀를 때린다.
엄청나게 빠른 속도로 준엄한 목소리가 신탁을 내린다.
고통과 혼란의 시간이 지나고 나는 눈을 뜬다.
이상하게도 한 문장 한 문장이 또렷이 기억에 남는다.
"신탁은 틀림없이 이루어진다."
마지막 문장이 망령처럼 귀에 붙어 있다.
길을 지나는 이들이 힐끔거린다.
나는 일어나 무릎을 털고 차분히 길을 걷는다.
"왕은 형제를 만난다. 신탁은 틀림없이 이루어진다."
망령이 속삭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