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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험가로서 살아가는 법
작가 : 글쓰는기계
작품등록일 : 2016.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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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2 화
작성일 : 16-08-17     조회 : 694     추천 : 0     분량 : 5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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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희도 모험가입니다. 먼저 지나가도 될까요?”

 “아, 지나가시죠.”

 창을 든 리더가 흔쾌히 끄덕였다. 방패를 든 전사 둘과 도적은 벌써 쓰러뜨린 구울의 머리통을 부수며 마나석을 찾고 있었다.

 “그것보다 3구역에서 둘이 다니다니, 특이하군. 보통 다섯 명 정도는 데리고 다니지 않나?”

 “남이야 알 게 뭐냐. 자신이 있으니까 저러고 가겠지. 움직여, 고시니.”

 고시니라고 불린 키 큰 오크 남자는 볼을 긁적이며 손도끼로 구울의 머리통을 부쉈다. 악취가 나며 안에서 마나석이 떨어져 나왔다.

 “옛다.”

 “야, 던지지 말랬지?”

 우락부락하게 생긴 고시니의 생김새에도 굴하지 않고 방패를 든 우조가 타박했다. 삐죽 나온 이빨을 드러내며 고시니는 툴툴댔다.

 “알겠다.”

 긴 칼을 조심스럽게 닦은 다음 집어넣은 아칼은 창을 든 파티의 리더에게 갔다.

 “대장, 언제까지 여기서 사냥을 할 거요? 수입은 짭짤하지만, 원래 우리는 이번에 4층으로 가기로 한 거 아니었나?”

 “그렇긴 한데, 지금 구울을 상대하는 데도 이렇게 치열한 상황에 밑으로 내려가기가 조금 그래서…….”

 대장은 고민된다는 듯이 구울의 시체를 치우며 한숨을 쉬었다. 뒤에서 활대를 만지작거리던 도적이 다가왔다.

 “뭐, 어때요. 가서 힘들다 싶으면 곧바로 올라오면 되지. 설마 한 번에 죽기야 하겠어?”

 “넌 너무 쉽게 생각한다. 그보다 아까 인챈트된 화살을 쓰던데?”

 “아, 너무 오래 걸려서 포위라도 당할까 봐 썼지. 비싼 건데…….”

 화살 한 통이 은화 한 개라면, 그 한 통에 인챈트를 하는 비용은 10배 가까이 들었다.

 그렇기에 활을 쏘던 도적도 결정적인 순간이 아니면 잘 사용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지만 효과는 훌륭했다. 화살의 촉이 닿는 순간, 촉에 새겨진 마법 문자가 발동해 상대를 얼어붙게 하는 것이었다.

 “어쨌든 조금 더 고민해 보자.”

 

 모험가 파티를 지나친 둘은 빠른 속도로 앞으로 나가고 있었다. 타르라는 쉴 틈 없이 움직였다.

 숫자가 적은 둘은 넓은 공터에서 구울을 만나는 것이 위험했다.

 “우리는 무조건 좁은 길목에서 상대해야 되니까.”

 타르라는 지도를 보며 길을 찾았다. 리처드는 강행군 탓에 서늘한 지하에서도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습기가 높은데다가 계속해서 긴장 속에서 움직였기에 지친 것 같았다. 오랫동안 가죽 물통에 담겨 있던 물에서는 냄새가 났다.

 꿀꺽거리며 물을 삼킨 후, 리처드는 계속해서 타르라를 따라 움직였다.

 자신보다 타르라가 체력이 좋을 리가 없는데도 타르라가 이렇게 움직인다는 것은 그녀가 그만큼 급하다는 것일 것이다.

 “샘이다!”

 랜턴을 들고 움직이던 리처드가 통로 옆으로 난 샛길에서 나는 물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렸다.

 잘 보니 안쪽에는 벽을 타고 흘러나온 물이 고여 있었다.

 “리처드, 3구역에서는 땅에 흐르는 물 같은 걸 마실 수가 없어. 구울 때문에 거의 오염됐다고 봐야 해.”

 “뭐? 진짜?”

 그러고 보니 흐르는 물의 색이 좀 탁한 것 같았다. 리처드는 어쩔 수 없이 품속에서 해독 알약을 꺼냈다.

 “젠장, 이걸 벌써 쓰게 될 줄이야.”

 비어서 홀쭉해진 가죽 물통에 물을 담은 다음 리처드는 알약을 집어넣었다. 잠깐 흔들자 물이 뿌예지면서 다시 색이 변하는 것이 보였다.

 “보면 볼수록 신기하단 말이지.”

 “마법사가 만드는 게 다들 그렇지.”

 “가만 보면 이런 모험가보다 마법사가 되는 게 훨씬 이득인 것 같은데, 그렇지 않아?”

 “마법사라는 게 애당초 재능이 없으면 시작조차 하지 못하는데다가, 고생고생 하고서도 제대로 마법을 쓰지 못하니까. 불안정한 모험가들도 마법사들보다는 안정적일걸?”

 “그렇긴 한데…….”

 리처드는 물통에 코를 가져다 댄 다음 냄새를 맡았다. 인공적인 약품의 냄새가 흘러나왔다.

 그렇게 좋은 향기는 아니어도 충분히 마실 수는 있었다.

 “게다가 그런 마법사들도 안에서는 분파가 많이 갈리니까. 이런 건 연금술 전문인 마법사들이 만들어낼 거야.”

 리처드는 처음 듣는 말에 놀라서 물었다.

 “다 같이 하는 게 아니었나?”

 “당연하지. 마법이 얼마나 넓고 다양한데. 원소계를 주로 다루는 학파, 말했듯이 연금술 전문인 학파, 에너지 계열을 주로 다루는 학파…….”

 타르라는 어이없어 하며 설명했다.

 “그러면 모험가들 중에서 마법사들은 대부분 어떤 학파야?”

 “글쎄? 딱히 이거다 싶은 학파는 없어. 다들 다루는 계열이 다르니까. 그렇지만 연금술 같은 것은 즉석에서 도움이 되기 힘드니까 보기 힘들지. 말했듯이 저주 계열이나 원소 계열처럼 주문을 쓸 수 있는 마법사들이 많아.”

 “그런데 이런 곳을 돌면서 연구가 가능해?”

 “뭐, 마법사도 돈이 필요하니까. 게다가 마법사는 미친 듯이 돈을 쓰는 직업이거든. 던전을 파고들면서 깊숙한 곳에 남겨진 흔적으로 연구를 진행시킨다든가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어. 소문을 들어보니 10구역을 넘어가면 마법을 쓰는 몬스터가 나온다던데.”

 “뭐?”

 “믿기지 않지? 나도 그래.”

 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무작정 덤벼드는 구울들을 상대했는데, 더 내려가면 마법을 쓴다는 몬스터가 있다는 것이 신기했다.

 “본능이나 직감으로 쓴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간에 마법사가 무조건 연구를 위해 사는 건 아냐. 애당초 신분 상승을 위해서 마법을 배우는 사람도 있거든. 필요한 마법만을 배워서 모험가로 돈을 버는 거지. 사실 던전에서는 기초적인 마법 몇 개만 있어도 꽤나 쓸모가 있거든.”

 “예를 들어서?”

 “아까 구울이 몰려 있을 때에도 화염구 같은 주문 하나만 외웠다면 구울의 절반은 쓸려 나갔을 거야. 그놈들은 머리가 나빠서 피할 생각을 못했을 테니까. 게다가 자이언트 스네이크 같은 경우에도 불이 약점이잖아? 뭐, 그놈이야 주문을 쓰는 데 필요한 시약 값도 안 나올 테니까 쓰진 않겠지만.”

 “그런가? 나는 구울 같은 걸 상대하는 데 유리한 건 성직자나 가능하다고 생각했어.”

 “성직자나 마법사나 사실 별 차이는 없어. 성직자가 쓸 수 있는 기술은 그쪽 계열을 연구하는 마법사도 쓸 수 있고. 그래서 마법사와 성직자는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아. 당연히 신이 없다고 우기는 마법사를 성직자가 좋아하지 않겠지.”

 딱히 믿는 신이 있는 건 아니지만, 꽤나 대단하게 생각했던 성직자들이 실제로 그렇게까지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자 뭔가 좀 아쉬웠다.

 둘은 샘에서의 보급을 끝내고 움직였다.

 

 3구역은 말 그대로 끈질긴 싸움이었다. 계속해서 나타나는 구울들은 리처드와 타르라의 정신을 갉아먹었다.

 마나석을 담은 주머니는 어느새 두 개째가 가득 찼다. 그만큼이나 구울들을 많이 잡았다는 뜻이었다.

 “잠깐 쉬었다 가자.”

 통로의 옆쪽으로 나 있는 샛길이 나타나자 타르라는 안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한 다음 입구를 돌로 가리고 안으로 들어가 엉덩이를 땅에 붙였다.

 음산하고 묵직한 공기 속에서 계속해서 걷는 것 또한 체력을 소모했다.

 경험이 없는 사람이었다면 발광을 하거나 실수로 죽어도 이상하지 않겠지만 타르라는 이미 모험가로서 경험이 충분한 사람이었고, 리처드는 정신이 거의 전설 속에 나오는 금속처럼 단단한 사람이었다.

 타르라는 가죽 물통을 꺼내 입에 가져다 댔다. 그녀의 목울대가 움직이며 물을 집어삼켰다.

 리처드는 피곤한 얼굴로 몸을 벽에 기댔다. 눈을 감은 그의 얼굴에서 피로감이 역력히 느껴졌다.

 “많이 힘들어? 조금 속도를 늦춘다면…….”

 “아니. 이대로 가자고. 7구역에서 뿔이 세 개인 놈을 찾느라 얼마나 걸릴지도 모르는데.”

 타르라는 고개를 숙였다. 이러다가 정말로 실패해 버릴 것 같다는 불길함이 엄습한 것이다.

 3구역에서 이렇게 체력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친 상태라면 위로 올라가서 회복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는 한 피로는 더해질 것이었다.

 “역시 어떻게든 치료 계열의 마법사나 성직자를 데려왔어야 했어.”

 “이제 와서 그런 소리 하지 마. 제안을 한 건 너지만, 그걸 받아들인 건 나다. 뭘 이제 와서 그러는 거야?”

 리처드가 짜증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가 곧바로 표정을 원래대로 돌렸다. 지친 것 때문인지 감정이 쉽게 튀어나왔다.

 던전에서 돌아다니는 모험가들에게 이런 불협화음은 가장 두려운 존재였다.

 “미안.”

 타르라는 자신보다 훨씬 경험이 없는 리처드한테 배려 받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쓴웃음을 지었다. 초조하게 몰린 상황이 그녀를 괴롭게 만들고 있었다.

 리처드는 쉬는 시간을 틈타 장비를 다시 손질했다. 이제 리처드가 하는 동작만을 보면 어엿한 모험가의 티가 났다.

 짧은 기간 동안 긴급하게 훈련을 한 효과가 나오는 것이다.

 구울의 피에 닿아서 상한 롱 소드의 칼날을 일단 임시로 갈아낸 다음 표면을 소독했다.

 확실하게 뒤처리를 하려면 대장간에 가서 다시 불로 달구는 것이 낫겠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그러고 보니 너는 그다지 검을 손질하지 않는 것 같던데?”

 “나야 영구적으로 마법 각인이 되어 있는 검이니까.”

 “뭐? 왠지 좋아 보이긴 했는데……. 나는 인챈팅도 받지 못하고 왔는데 말이지.”

 리처드는 투덜거리면서도 갑옷을 벗어 닦아낸 다음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던전에서는 제대로 닦을 수 없었다. 이런 캄캄하고 음산한 곳이 아니라 밖으로 나간다면 둘에게서는 냄새가 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이미 서로에게 익숙해진 상태였기에 냄새를 맡을 수 없었다.

 리처드는 임시로 만든 수건에 물을 붓고 끈적거리는 곳을 닦아냈다. 샘이 던전 내에서 볼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찾는다고 바로 나오는 곳도 아니었다.

 게다가 둘은 최대한 빠르게 던전을 주파해야 했기에 샘을 찾을 형편도 아니었다.

 아까 나온 샘에서 나온 해독된 물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이렇게 쓰는 리처드였다.

 “너도 닦지?”

 “난 됐어.”

 “됐긴 뭐가 돼? 대강이라도 닦아놔. 나중에 또 언제 기회가 올 줄 알고.”

 결국 타르라는 검은색 가죽 갑옷을 벗고 천 옷만을 입은 채 수건을 사용해 몸을 닦기 시작했다.

 벗어놓은 갑옷을 보며 리처드는 궁금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것도 특이한 건가?”

 “그건 와이번을 사냥해서 그 가죽으로 만든 갑옷.”

 타르라는 원래 모험가들끼리 그런 걸 묻는 건 실례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렇게까지 말하기가 귀찮았다.

 게다가 리처드에게 민폐를 끼치는 상황에서 그렇게 딱 잘라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야 잘 모르지만…… 확실히 모험가들이 특이한 장비를 가지고 다니는 걸 보다 보면 대단하단 생각이 들어.”

 “그래? 그다지 대단한 것도 아니야.”

 “너야 그렇겠지만, 난 모험가 일을 한 지 몇 달도 안됐잖아. 당연히 저런 걸 본 적도 없지. 와이번의 가죽은 뭐가 다르지?”

 “보통 파는 가죽 갑옷은 대부분 소가죽을 경화시켜서 만들지만, 와이번 가죽은 애당초 가죽 자체가 썩지 않고 어느 정도 방어력을 가지고 있어. 나 같은 경우에는 성인식 때 잡은 와이번을 갑옷으로 만들었지.”

 “성인식으로 와이번을 잡아오다니, 늑대 수인족은 과격하군.”

 리처드는 웃으면서 물을 마셨다.

 “네 얘기도 해봐, 리처드.”

 “글쎄……. 난 정말로 할 이야기가 없어. 도시로 오기 전까지 산속에서 사냥꾼으로 살았거든. 산에서 나오는 짐승들은 꽤 강한 놈들도 있지만, 그놈들이 몬스터는 아니었지. 그러다가 아버지가 돌아가시니 남아 있을 이유도 없더군. 마침 지나던 상단을 따라서 도시로 나온 거야.”

 “사냥꾼이었다니. 별다른 걸 배운 적도 없고?”

 “아버지한테 배운 건 글하고 함정 놓는 법. 산에서 살아남는 법 정도였는데.”

 리처드의 말은 잘 믿겨지지 않았다. 사냥꾼으로 살아왔다고 하기에는 너무 빠르게 적응했다. 마치 타고난 전사처럼.

 “그보다 늑대 수인족들은 어떻게 생활하지?”

 “부족 단위로 마을을 만들고 지내지. 주로 왕국의 동쪽에 많이 살아. 그쪽 주변에는 사람보다 늑대 수인족을 많이 볼 수 있을 거야.”

 “플랜태저넷 왕국에 가장 많은 종족이 뭐지?”

 “아마도 인간이겠지? 그래도 다른 종족도 거의 비슷할 정도로 많아.”

 던전에서 나눌 만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그래도 리처드는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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