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병무청(2)
“먼저 사과드립니다.”
강 준위가 꾸벅 고개를 숙였다.
성호를 데리고 아바타병 지원접수실을 나온 강 준위는 본관 건물 내에 위치한 자신의 사무실로 데리고 왔다.
그 사무실에는 [특수병과 지원부]라는 패널이 붙어 있다.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사과부터 하며 어떻게 된 경위인지 차근차근 설명하기 시작했다.
금방 만난 최치석은 직접 유니언의 이름을 언급하진 않았지만 특정 유니언과 유착관계가 있는 인물로 중간에서 아바타 능력자들을 빼돌리는 역할을 맡고 있다고 한다.
군에서도 그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니언들의 입김이 워낙 세서 못 건드리고 있다고 했다.
우습게도 딱히 기대 안 하고 있는 부서이기도 해서 방치 중으로 유니언에서도 큰 기대를 안 하고 적당히 찔러놓은 인물이라는 것이다.
내부 사정을 알지 못하는 성호는 순진하게 그곳을 찾아가서 불쾌한 일을 겪게 된 것이다.
“전 아바타병 기술 자문으로 활동하고 있는 강진석 준위라고 합니다. 아까 저희 쪽으로 지원접수실이 전화를 안 받는다고 연락이 와서요. 그 때문에 찾아갔더니…….”
접수대의 여직원은 아바타병 접수실이 전화를 안 받자 당황한 나머지 아바타병 관련 부서란 부서에는 전화를 다 돌린 모양이다.
강 준위는 금방 작성한 지원서를 꼼꼼히 읽다가 성호가 비워둔 아바타 능력 부분에 멈췄다.
“여기 아바타 능력란은 비워두셨는데요. 어떤 능력을 가지고 계시죠? 아니면 최근에 각성률이 따로 오르셨습니까?”
“직접 보시죠.”
성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바타 메이커를 조작해 불의 정령을 소환했다.
허공에 작은 불덩어리가 나타났다.
“이건?”
강 준위의 눈이 커졌다.
예상한 대로의 반응이다. 강 준위는 최치석과 달리 차근차근 이야기를 들어줄 거 같긴 했지만, 이쪽이 반응이 확실할 거 같아 대뜸 정령부터 보여줬다.
최치석에게도 금방 정령소환술을 보여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최치석의 태도가 못 미더워서 주저할 수밖에 없었다.
“이건 정령인가요?”
강 준위가 몸을 일으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정령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살짝 건드려 보기도 했는데, 뜨겁지 않은 게 되레 신기한 모양이다.
“네, 정령소환술입니다.”
“많은 아바타를 봐왔지만 지구인 출신 아바타 능력자가 정령소환술을 쓰는 건 처음 보는군요.”
“틀렸습니다.”
“네?”
의외의 대답에 강 준위가 반문하며 성호를 쳐다봤다.
“전 아직 아바타로 각성 못 했습니다. 지금도 정령을 소환하는 정도고요. 그리고 신체검사 기록을 확인해 보시면 알겠지만 검사 때 각성 확률도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습니까?”
강 준위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곤 표정을 금방 지운 뒤 다시 의자에 앉아 컴퓨터로 성호의 전산 정보를 찾았다.
잠시 후 성호의 말이 사실인 걸 확인한 강 준위는 모니터에서 눈을 떼고 손가락으로 천천히 책상을 두드렸다.
“정령술을 쓰지만 각성률이 거의 제로인 아바타 지원병이라…….”
아바타 능력란에는 등급이나 각성 전인 경우 각성할 확률만 적어두는 게 일반적이다. 말하자면 성호의 경우는 규격 외였다. 그 때문에 강 준위는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런 고민하는 모습은 성호가 노린 바였다.
유니언은 어디까지나 철저히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아바타들의 단체, 최소 D급은 되어야 가치가 있는 외계 괴수들을 사냥할 수 있었다.
그 때문에 뛰어난 재능이 보여도 각성률이 높은 정도이거나 각성해도 F급인 능력자는 제대로 유니언에서 대우를 받기도, 유니언에 가입하기도 힘들었다.
반대로 아바타가 귀한 국방부에선 자신처럼 희소성 있는 능력자를 쉽게 거절하기 힘들 거라는 계산이 있었다.
“알겠습니다. 이 지원신청서는 제가 직접 처리하겠습니다.”
결심을 굳혔는지 강 준위가 신청서에 손을 뻗었다. 그때 성호가 먼저 신청서를 낚아챘다.
“그전에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요?”
강 준위가 의아한 눈빛으로 성호를 쳐다봤다.
하지만 여기부터가 성호가 이곳까지 찾아온 이유였다.
“군에서 비밀리에 비각성자를 아바타로 육성하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알기는커녕 지레짐작해 찔러본 것뿐이다. 공식적으로 나온 말은 아니었지만, 유니언에서 하는 것을 군에서 따라 하지 않고 손 놓고 있을 리 없을 테니까.
성호의 말을 들은 강 준위의 눈이 가늘어졌다. 다행히 정곡을 찌른 모양이다.
“그 말씀은…….”
“군에서 절 아바타로 각성시켜 주길 요청합니다.”
성호는 거기에 덧붙여 가능하면 빨리 각성시켜 달라고 말했다. 빠른 지원이 불가능할 경우 다른 유니언을 찾아보겠다며 엄포를 놓았다.
강 준위는 굳은 표정으로 메모까지 해가면서 받아 적었다.
“일단 지원서와 함께 요구 사항도 상신하긴 하겠습니다만 가능할지는 모르겠습니다. 저희 쪽은 좀 나은 편이지만 보고 체계가 빠른 편은 아니라서요.”
“연락 기다리겠습니다.”
성호는 그 말을 끝으로 병무청을 나왔다. 입구를 나오자마자 성호는 크게 숨을 내뱉었다. 주먹을 쥔 손에는 땀이 흥건했다.
성호 스스로는 머리를 굴린다고 굴려 한 행동이지만, 그는 아직 사회 경험이 부족한 대학생이었다.
병무청에서 강 준위를 상대로 한 협상도 결국에는 얄팍한 협상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문득 이런 일을 터놓고 상의할 부모님이 없다는 사실에 마음이 우울해졌다.
‘아니, 부모님이 살아 계신다고 해도 쉽게 상의할 수는 없었겠지.’
성호는 계속 숫자가 줄어가고 있는 아바타 메이커를 보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
다음으로 성호가 한 일은 주변 정리였다.
병무청을 나온 뒤 휴학 신청하기 위해서 곧바로 대학교로 갔다. 자퇴도 생각해 봤지만 아직 조금 미련이 남았다.
다음으로는 편의점에 들렀다.
정남이 형에게 입대 때문에 내일부터 그만둘 거라고 이야기했다. 정남이 형은 놀랐지만 자세한 건 묻지 않았다.
사장한테 전화하니 사정을 이야기하기도 전에 갑자기 그만두면 어떡하느냐고 길길이 날뛰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정남이 형이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고 하고선 전화 한 통으로 여자 알바를 구했다.
그러자 사장의 입이 떡 벌어진 게 전화기 너머로도 느껴졌다. 좋게 해결됐지만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도 정남이 형에게는 도와줘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고개를 꾸벅 숙인 성호를 보며 넉살 좋게 웃은 정남이 형은 군 생활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고 돌아갔다.
‘동생들한테는 아직 비밀로 해야겠지?’
성호는 그렇게 마음먹었다.
괜히 지금부터 죽을 수 있다며 마음 졸이게 하는 것보다는 성공하든 실패하든 정해지고 나서 이야기하는 게 순리인 거 같았다.
[남은 수명–5일 17시 11분 12초]
성호는 아르바이트하는 내내 초조한 마음으로 아바타 메이커를 쳐다봤다. 숫자는 매정하게도 멈추지 않고 꾸준히 줄어들었다.
‘군에서 연락이 안 올 경우엔 정말 유니언이라도 찾아봐야 하나.’
그런 생각에 컴퓨터로 이것저것 검색하면서 잊어보려고 애썼다. 성호는 그렇게 유난히 길었던 마지막 아르바이트를 마쳤다.
집으로 돌아가니 집 앞에 익숙한 얼굴이 기다리고 있다.
강 준위였다.
그의 뒤쪽에는 SUV 차량 한 대가 기다리고 있다.
***
“아시겠지만 비밀 유지는 철저히 해주셔야 합니다. 군에서도 이례적인 일이니까요.”
차에 타자마자 강 준위가 신신당부했다.
성호는 알았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보다 신경 쓰이는 게 있었다.
‘일이 너무 일사천리로 진행되는 거 아니야?’
하룻밤 만에 성호를 아바타로 각성시키기 위해서 군에서 움직인다?
성호의 예측 범위를 뛰어넘는 일이다. 믿기 힘들 정도로 일이 쉽게 흘러가자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럼 실례지만 이걸 써주십시오. 휴대폰도 맡아두겠습니다.”
강 준위의 말대로 성호는 휴대폰을 건네주고 안대를 받아 썼다. 그리고 헤드셋이 씌워졌다. 그러자 밖에서 무슨 소리가 나는지 전혀 들리지 않았다.
‘어딜 가길래 이렇게 철저하게 해?’
일급 기밀 장소라는 건 당연히 짐작했지만 첩보영화를 방불케 하는 이런 방비는 생각지도 못했다.
성호는 불현듯 이대로 잘못되는 건 아닌가 하는 불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 와서 물릴 수도 없지.’
그렇게 생각하며 잠자코 앉아 있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밤새 아르바이트하고 온 탓인지 성호는 잠깐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떴을 때 도착한 곳은 뜻밖의 장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