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첫 번째 서번트(1)
소미는 요즘 소위 말하는 금수저였다.
한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고성그룹의 영애.
거기다가 대대로 미인과 결혼해 내려온 집안 내력에 걸맞게 그림으로 그린 듯한 아름다운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신은 소미에게 모든 것을 주지는 않았다.
소미는 중학생 때 발병한 원인 모를 병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겉으로 드러나는 병은 아니었지만 수시로 이어지는 발열과 오한의 반복, 그리고 탈력감, 기면증 때문에 제대로 된 일상생활을 할 수 없었다.
결국 소미는 다니던 학교도 그만두고 그룹에서 운영하는 병원에 입원해야 했다.
거기에 세계 최고의 전문의를 불러와 갖은 검사를 했지만 치료는커녕 원인조차 짐작하지 못했다.
심지어 외계 괴수가 나타나고 우주인과 여러 기술을 교류했지만 치료할 수 없는 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그 와중에 작은 희망 하나를 찾았다.
그것은 상급 외계 괴수를 사냥할 때 나오는 코어였다. 한 우주인의 제안으로 그 코어를 정제해서 복용하자 고통이 멈췄다.
문제는 그것도 약효가 돌 때뿐이고 여러 가지 부작용도 있었다. 하지만 그것만이 소미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었다.
소미는 안 그래도 재벌가의 영애로서 과보호를 받고 자랐다. 그건 불치병에 걸리고 나선 더욱 심해졌다.
거기다 코어 관련 기술의 유출 우려가 있는 탓에 병원과 연결되어 있는 연구실 외에는 출입이 자유롭지 못했다.
그 때문에 소미는 항상 신경질적이었다. 사소한 걸로 다른 사람들에게 화풀이하기 일쑤였다.
다행히 그런 소미의 관심을 끈 게 있었다. 바로 연구실에서 본 다양한 우주인들의 화려한 능력이었다.
고성그룹엔 직접 유니언을 만들어 운영하고 아바타 능력자들을 육성할 계획을 하고 있던 터라 일반인은 쉽게 접하기 힘든 여러 관련 자료들이 많이 모여 있었다.
그중에서 소미는 단순히 총과 칼을 휘두르는 전투적인 능력보다는 하늘을 나는 능력, 순간이동 능력 같은 신체를 자유롭게 이동시키는 초능력을 좋아했다.
오랜 시간 폐쇄적인 곳에서 생활한 탓인지도 몰랐다.
그 외에도 자신만의 정령을 부릴 수 있다는 정령소환술에도 관심이 많았다. 친구를 만드는 느낌이 들었다고 할까?
그렇기에 류성호라는 정령술사가 아바타 각성을 지원받기 위해 찾아왔다는 말에 당장에 각성시켜 데려오라고 재촉했다.
다음날 오후.
자신의 방에서 안절부절못하며 강진석의 연락을 기다리고 있던 소미는 결국 참지 못하고 연구소에서 도망쳐 나와 강진석이 있는 곳으로 찾아갔다.
그곳이 바로 변이 구역, 호르헤가 있는 곳이었다.
정부 관리하에 있다고는 하지만 발견 및 관리는 고성그룹에서 하고 있어서 실소유주는 고성그룹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고성그룹에서 준비하고 있는 아바타 부대도 여기에서 많이 각성시켰다. 소미도 몇 번이나 구경한 적이 있다.
문제는 일반인은 이렇게 각성시켜 봤자 얻게 되는 능력이 하나같이 F급으로 최하급이거나 개성이 없었다.
겨우 아바타용 소총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정도? 정말 간혹 E급이 나왔고, 그마저도 한번 등급이 정해지면 상위 등급으로 올라가는 데 수년이 걸렸다.
어쨌든 그렇게 해서 겨우 마주친 정령의 실제 모습은 초라했다.
“흠. 쪼끄마하네.”
소미가 실망한 기색으로 그렇게 말했다. 그때 옆에서 정령술사 성호의 비웃는 소리가 들렸다.
“풋.”
그 비웃음이 어떤 의미인지 소미는 잘 알고 있었다.
안 그래도 병이 걸린 이후로는 성장하질 않아서 신경 쓰고 있던 참이다. 이제 만 18세가 되었는데도 중학생 때의 모습 그대로였으니까.
뒤에서 고용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듣기는 했지만 면전에서 들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다.
소미가 성호를 노려봤다.
그 뒤로 말다툼까지 하고 열 받아 뺨을 때리려고 했다. 성호는 여자애가 뺨을 때려 봤자 하며 방심한 듯했다. 하지만 성호가 모르는 게 하나 있었다.
‘코어 약을 먹은 덕분에 키는 자라지 않았지만 힘은 세단 말이지.’
소미는 그렇게 생각하며 성호의 뺨을 갈겼다. 소미의 예상대로 성호는 소미의 공격을 못 막고 나뒹굴었다. 아니, 성호가 예상보다 너무 약했다. 너무 힘을 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어쨌든 크게 다친 것도 아닌 것 같고 당황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고소했다.
소미가 그걸 보고 좋아하는 것도 잠시, 바로 대가가 뒤따라왔다.
머리가 뜨거워졌다가 순식간에 차가워졌다. 다리에 힘이 빠져 주저앉았다.
이게 어떤 증상인지는 소미도 잘 알고 있었다.
‘아, 아직 약효가 떨어질 때가 아닌데.’
여기까지 오면서 너무 기대한 탓일까? 한번 힘을 낸 것만으로 코어의 약효가 떨어지고 병이 다시 소미의 몸을 잠식했다.
약효가 떨어진 걸 눈치챈 강진석이 곧바로 약을 가지러 갔다. 괴롭긴 하지만 약만 가져온다면 금세 편해질 터였다.
그때 성호가 호르헤가 튀어나오기 직전인 곳을 보고 군인들에게 말해 호르헤를 꺼내서 퇴치하려고 했다.
언제 봐도 기분 나쁜 모습이었다.
소미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다. 그때 성호가 밀었다. 소미는 갑작스럽게 밀쳐져 화가 치밀었지만 그게 자신을 구하려고 한 행위라는 걸 깨달았다.
호르헤가 천장에서 자신이 있던 자리로 떨어진 것이다. 그게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호르헤의 유체가 떨어졌다.
이곳에 몇 번이나 와봤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같이 있던 군인들은 재빨리 소미를 보호하면서 호르헤 유체와 전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타고 온 스쿠터를 타고 도망치려고 했지만 호르헤 한 마리가 그 스쿠터 위로 떨어져 부서져 버렸다.
문제는 그게 호르헤 유체보다 훨씬 강한 성체라는 거였다.
결국 소미는 호르헤 성체의 더듬이에 붙들려 내동댕이쳐졌다. 그것도 두 번이나.
안 그래도 몸이 안 좋은데 신체에 여러 번 가해진 충격에 소미는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아으, 아으으.”
신음을 흘리던 소미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이대로 죽어버릴까?’
어차피 갇혀 사는 인생이다. 집에서도 체면 때문에 계속 치료해 주고 있지만 자신이 짐 덩어리일 뿐이라는 걸 스스로 알고 있었다.
여행도, 모험도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미래에 대해 꿈도 꿀 수 없고 말 그대로 죽지 않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다면 그 삶에 무슨 의미가 있는 걸까?
소미는 자신의 인생을 돌아봤다.
화려한 씨앗을 가졌지만 싹을 틔울 수 없었다. 앞으로 꽃도 열매도 피울 수 없을 것이다.
아무것도 남길 수 없다면 이대로 사라지는 것도 나쁘진 않은 것 같았다.
‘그래, 조용히 잠들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생각하자 한결 마음이 가벼워졌다.
하지만 조용히 생을 마감하는 것은 소미에게 허락된 바가 아니었다.
고통은 소미가 생을 잊지 않도록 계속해서 밀려왔다.
‘제발 이대로 놓아줘. 제발.’
소미는 속으로 절규했다.
그때,
“내 남은 수명의 절반으로 살릴 수 있다고? 이 정도면 싼 거지.”
성호의 목소리와 함께 소미의 몸이 치료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