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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로 찬 영혼
작가 : 은발늑대
작품등록일 : 201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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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 반란001
작성일 : 17-11-21     조회 : 512     추천 : 0     분량 : 5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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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리리스는 매일 같이 신의 존재 여부를 알고 싶어 했다. 살아있는 자들을 가엾게 여긴다는 신은 도대체 어디 있는지. 과연 정말로 구원이란 걸 해줄 수 있는지.

  가능하다면 자신을 구해줄 수 있는지.

  늘 의문을 가졌다.

  하루 종일 똑같은 고민을 하다보면 똑같은 결론에 도달했다.

  ‘신 따윈 없어…….’

  어둡고 침침한 어느 지하실, 각종 고문 도구가 널려 있는 이곳에 하얀 머리의 소녀가 사지마다 쇠사슬이 묶인 채 벽에 매달려 있었다.

  기껏해야 15살이 된 그녀는 벌써 10년 째 이곳에 갇혀 있었다. 혀를 깨물어서 자살이라도 하고픈 심정이었지만 입에 물린 재갈 때문에 꼼짝 못했다.

  이제는 침도 나오지 않는다. 지쳐서 신음소리도 내기 힘들다.

  그러나 웃기게도 그녀의 몸은 누구보다 건강했다. 수많은 고문이 있었지만 상처 하나 없었으며 먹고 마시는 게 부족했는데도 살집이 제법 있었다.

  “아직도 악마 주제에 신을 찾나?”

  때마침 지하에 한 남자가 들어왔다. 그는 이단심문관으로 악마나 이단, 변절자들을 찾아다니는 일을 했다.

  이름이…… 힐만이라 했던가?

  큰 하관이었지만 뾰족한 턱에 대쪽 같이 단단한 눈빛이 무서운 남자였다. 희끗한 머리카락이 중간중간 줄무늬처럼 있어서 상당한 나이가 있어 보였다.

  10년 전, 그가 리리스를 이곳으로 끌고 왔다. 고작 5살 밖에 안 되었던 그녀를 악마라 하면서. 왜 악마로 지목됐는지는 단순했다.

  악마니까.

  다른 이유는 없다.

  “재밌는 년이군. 악마는 신을 부정하는 종족 아니던가?”

  “…….”

  입으로 무어라 했으나 재갈 때문에 발음이 꼬였다. 어이쿠, 소리를 내며 남자가 재갈을 풀어줬다. 자살을 우려하지 않았다. 그녀가 못 죽을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푸으, 침과 숨이 같이 나오면서 재갈이 떨어졌다. 남자가 재갈을 바닥에 아무렇게 던지고는 리리스의 턱을 움켜쥐었다. 뺨이 얼얼해지면서 우악스러운 힘에 점점 아파왔다.

  “역시 반반한 얼굴이야. 가슴도 제법, 크고.”

  다른 손이 흉부를 쥐어뜯을 듯이 잡았다. 찢어진 옷 아래로 풍만한 젖가슴이 일그러졌다. 아픔과 굴욕감에 리리스의 얼굴도 구겨졌다.

  “으윽……!”

  “하핫! 여전히 신음소릴 낼 힘이 남아있군. 과연 악마야. 괴로운 순간에도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뭔가가 있어.”

  탐욕스러운 눈동자가 리리스를 잡아먹을 듯 접근했다. 여차하면 입이라도 맞출 기세로 혀가 튀어나왔다. 어떻게든 고개를 돌려보지만 그는 자꾸만 가까워진다.

  육체적인 접촉보다 더 싫은 건 마음이었다. 리리스의 내면에서 남자를 안고 싶어 하는 욕구가 끓어올랐다. 가랑이 사이가 쑤셔서 다리를 오므려보지만 조금씩 습기가 찼다.

  힐만은 이단심문관이자 신관이지만 늘 도를 넘어섰다. 대체 어딜 봐서 신성한 신관이라고. 장장 10년 내내 툭하면 손을 대온 그는 악마보다 더했으면 더했다.

  한껏 주무르던 그는 갑자기 두 손을 놓고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리리스의 얼굴이 훨씬 붉어지면서 생기가 돌았다. 눈만큼은 여전히 살기가 넘쳤지만. 입에서 거친 신음소리가 쏟아졌다.

  “하아…… 하아…….”

  “벌써 흥분했군. 남자를 매료하는 힘만큼이나 자신도 즐긴다는 건가. 과연 서큐버스야.”

  서큐버스.

  남자의 정기를 빨아먹으며 죽인다는 신화 속 악마.

  그들은 ‘매료’라는 능력을 이용해 남자들을 유혹하는 전설 속 존재였다. 매료에 넘어간 남자들은 서큐버스의 아름다움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몸을 섞어 정기를 빼앗긴 끝에 목숨을 잃고 만다.

  이런 서큐버스의 존재를 알게 된 건 리리스가 3살 때였다.

  분타그라시아스 제국의 작은 시골 마을 출신인 리리스는 평범한 여자아이로 태어났다. 누구도 악마의 영혼을 갖고 있을 거라 상상하지 못할 정도로 작고 귀여운 생명체였다.

  그러나 3살이 되던 그 해, 서큐버스의 영향으로 성인의 몸으로 급격하게 변했다. 마치 고치 속에서 허물을 벗고 새로운 생명을 얻은 듯한 형상이었다고 당시 목격자들이 증언했다.

  그녀의 부모님은 딸을 괴물이라며 다른 마을에 버렸고, 길거리는 돌아다니던 리리스는 5살이 될 때까지 서큐버스에게 몸을 지배당해 살아야만 했다.

  끔찍했던 기억들이 아닐 수 없다. 수시로 서큐버스가 튀어나와 리리스를 지배해 남자들과 몸을 섞었던 감각들은 생생한 기억이 되어 돌아왔다.

  신성력이 높은 신관이나 하물며 수많은 악들을 상대했던 이단심문관들도 예외는 없었다. 모두가 그녀의 매료에 넘어가곤 했다.

  하지만 힐만은 달랐다. 강력한 신성력 덕에 매료에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자기 리드대로 끌고 갔다. 때문에 심문과 고문은 늘 그 혼자서 맡았다. 이곳은 그만의 공간이자 어떤 짓을 해도 간섭받지 않는 무법지대와도 같았다.

  “난, 서큐버스가 아니야…….”

  “10년 내내 할 소리가 그것 밖에 없나? 한심하군.”

  힘겹게 읍소해 봐도 남자는 어이없는 웃음소릴 냈다. 그나마 최근에는 덜 악마답긴 했다. 툭 하면 이성을 잃고 서큐버스에게 몸을 빼앗겼던 거에 비하면 말이다.

  이는 리리스 본인이 싸우고 있다는 증거였다. 그녀 자체가 악마는 아니라는 증거이기도 하고.

  서큐버스의 영혼은 리리스의 영혼, 즉 마나 코어에 기생하고 있었다. 몸을 빼앗을 수는 있어도 리리스의 마나와 영혼까지 지배할 순 없었던 것이다.

  “그래봤자 넌 엄연한 악마다. 서큐버스이고 툭하면 인간을 탐내지. 인간을 양식으로 삼는 네가 아무리 부정한다고 해서 어찌될 게 아니야.”

  “더 이상 인간을 탐하지 않을 수 있어. 말했잖아.”

  10년이란 세월 동안 서큐버스는 남자의 정기를 얻지 못하면서 점점 약해졌다. 만나는 남자라고 해봤자 힐만 뿐인데 그는 매료에 걸리지 않으니 당연했다.

  이러다 보니 서큐버스를 통제할 수 있게 된 리리스는 멀쩡한 정신으로 있는 날들이 늘었다. 하지만 멀쩡한 정신은 고문의 생생한 고통을 느끼게 해줬다.

  “부탁, 부탁이야. 제발 날 놔줘.”

  “넌 할 줄 아는 말이 그것 밖에 없나? 악마가 아니다. 놔 달라. 앵무새 같은 짓을 질리지도 않고 하는군.”

  “난, 진짜로 악마가 아니란 말이야……!”

  “알고 있다.”

  남자의 말에 퍼뜩 리리스가 고개를 들었다. 찰랑 거리는 쇠사슬 소리가 요란하게 울린다. 리리스의 낯에 동요가 일었다.

  “알고 있다고? 무슨 소리야, 그게?”

  “무슨 소리냐니. 본인이 더 잘 알고 있으면서 묻나?”

  “당신들은 늘 나한테 악마라고 했잖아! 인간이라고 해도 믿어주지 않았잖아!”

  “그랬던 적 없어. 아니, 믿지 않은 건 사실이지만. 내가 믿지 않은 건 너 자체였지 인간이라는 사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상대는 이단심문관이다. 신의 대리인으로서 악을 벌하고 잘못된 일을 바로 잡는 자들. 폭력적이고 인간적이지 못한 행동들을 하기도 하지만…….

  “이단심문관의 목적은 회개가 아니었어? 나 같은 사람들을 도와주는 게 아니냐고!”

  “뭐, 틀린 소린 아니다. 정확히는 너 같은 녀석들을 이렇게 묶어놓고 악마를 몰아내는 게 우리 일이지.”

  “근데 어째서 날…….”

  리리스가 힘없는 소리를 내면 남자가 가소롭다는 미소를 지었다.

  “어째서 고통만 주냐고? 그야 당연하지. 너는 스스로에게 깃든 악마의 존재를 숨기고 남자들을 유혹해 죽음으로 몰았다. 그렇다면 죽지 못하고 평생 고통을 받아가며 속죄를 해야지.”

  “내가 원한 게 아니야! 서큐버스가 했어!”

  “원하지 않았다고 해서 너라는 존재로부터 비롯된 게 사실이다, 리리스. 살인을 방조한 것도 죄이지 않나.”

  칼 같은 말에 리리스는 머리를 떨궜다. 하얀 머리카락이 아래로 쳐지면서 동시에 눈물도 아래로 낙하한다.

  처음 서큐버스가 몸속에서 나왔던 그 날. 리리스는 유아기도 제대로 지나지 않은 채 변한 몸을 보고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정신을 잃고 일어나면 사람이 죽어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늘 남자였고 하의가 다 벗겨져 있는 상태였다. 사람들은 남자가 누굴 강간하려다가 죽음을 맞이했다고 했다.

  이 같은 일이 반복되던 어느 날, 리리스가 서큐버스란 걸 인지하게 된 건 다름 아닌 허벅지 사이로 흐르는 남자의 정액을 보고서였다.

  이 사실을 누구에게 알릴 수가 없었다. 자신이 사람을 죽였고 악마가 깃들었다는 얘기를 대체 누구한테 하겠는가.

  계속되는 남자들의 죽음을 기이하게 여긴 이단심문관들이 찾아와 조사를 벌이면서 결국 정체가 들통 났지만.

  그렇다고 지금처럼 그녀에게 강제로 무언가를 하진 않았다. 자신들은 신관이니 악마를 퇴치해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사람을 유혹하다 못해 죽였다는 죄책감에 리리스는 망설임 없이 그들을 따라갔다.

  최종 목적지가 이런 곳인 줄도 모르고.

  “걱정마라. 네년을 절대 죽이진 않을 거다. 가끔씩 몸만 대주면 돼.”

  다시금 손이 움직이더니 이번에는 엉덩이와 허벅지를 차례로 훑었다. 슬퍼하는 와중에도 단번에 성욕이 끓는점에 도달했다.

  손가락 하나하나가 예민하게 살결을 자극한다. 호흡은 거칠어지고 점점 체온이 달아올랐다. 주뼛 서는 머리카락이 괴롭다 못해 점점 쾌감으로 변했다.

  “하, 하지 마! 이러면 서큐버스가 나온― 읏!”

  “그 역시 알고 있다. 아마 서큐버스의 힘이 엄청나게 약해졌겠지. 나를 먹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거야. 하지만 걱정 마라. 내 정기를 먹어봤자 신성력으로 인해 반발성만 심해질 테니.”

  그러니까 넌 참지 않아도 돼.

  힐만이 리리스의 귓가에 속삭였다.

  그 순간 끝끝내 리리스가 지켰던 선이 끊어졌다. 마나 코어에 있던 서큐버스의 영혼이 단번에 리리스의 몸 절반을 빼앗았다.

  한쪽 눈이 붉게 물들었으며 목을 시작으로 한쪽 팔과 다리에 기아학적 문신이 줄기처럼 뻗어나갔다.

  힐만이 소용없다고 했지만 서큐버스는 배고픔이 먼저였다. 안 된다 싶으면 리리스의 마나를 뺏어가 신성력을 밀어낼 작정이었다.

  결국 리리스는 모든 걸 포기했다.

  ‘그래, 차라리 이게 나아. 어차피 뭘 해도 여기 갇혀 있을 텐데. 어쩌면 여기 있는 게 좋을 지도…….’

  요즘 들어 자꾸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스로가 괴로워도 결국 악마 때문에 누군가가 피해를 받을 거라면 구속되어 사는 쪽이 낫겠다고.

  그만큼 그녀에게 짊어진 죄와 책임감이 컸다. 아무리 원하지 않은 악마라고 해도, 힐만의 말처럼 피해가 커질 때까지 숨겨선 안 됐다. 정말로 서큐버스가 싫었다면 처음부터 신관을 찾아갔으면 되는 일이었다.

  서큐버스를 탓하는 것도, 결국에는 변명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눈물이 나는 이유는 뭘까?’

  괴로운 삶이라서? 서큐버스가 원망스러워서?

  모르겠다. 알고 싶지 않아.

  이미 오래 전부터 계속되는 힐만의 만행에 그녀는 고민하기를 포기하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였다. 차라리 이렇게라도 속죄할 수 있다면 좋았다.

  아니야, 속죄라는 것도 탈출 못하니까 입맛대로 대는 변명 아닐까?

  사실은 죄책감 따윈 느끼지 않으면서 현실에 순응하고 싶어서 그런 거잖아.

  그것도 아니면.

  나도 성욕과 쾌감을 즐기기 시작한 건 아닐까?

  “답을 모르겠어…….”

  “그래, 넌 아무것도 몰라도 된다. 그냥 몸만 맡기면 돼.”

  무엇이 진실이고 거짓인지 분간할 수 없게 된 지금, 리리스는 점점 서큐버스에게 몸을 맡기고 있었다. 힐만이 죽진 않을까, 걱정 됐으나. 이제는 그마저도 잊었다.

  어차피 상대는 모든 걸 알고도 성욕에 미친 녀석이다. 벌을 받는다면 힐만도 언젠가 받겠지.

  “모르는 건 찾아봐야 하는 법이다.”

  한줄기 희망과도 같은 목소리가 들린 건 그 때였다.

작가의 말
 

 처음으로 도전하는 로맨스 판타지네요.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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