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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로 찬 영혼
작가 : 은발늑대
작품등록일 : 201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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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 도망자013
작성일 : 17-12-15     조회 : 304     추천 : 0     분량 : 4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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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 증세를 느낀 리리스는 도망치다시피 사교 클럽을 빠져나왔다. 뒤에서 쫓아오는 레이지의 목소리가 들렸으나 무시해버리고 달렸다.

  얼른 인적이 없는 곳에 가야했다. 이대로는 위험하다. 처음에는 본능적으로 묵고 있던 여관으로 돌아가려 했으나, 역시나 안 된다. 사람이 아예 없어야 한다.

  특히 남자가.

  “컥!”

  요동치는 마나 코어를 억지로 참다보니 피가 한 움큼 올라왔다. 손 위로 응고된 핏덩이가 툭 하고 떨어졌다. 문제가 되는 마나를 몸속에서 꺼내다보니 피를 뭉치게 만든 것이다.

  그 와중에 그녀는 계속해서 주변에 목격자가 없는지 살폈다.

  까만색으로 물든 골목길, 예민해진 감각에 느껴지는 거라곤 쥐새끼들뿐이라 다행이었다. 필사적이다시피 쫓아오던 레이지는 끝까지 못 따라왔다.

  [날 꺼내.]

  “욱!”

  잠깐 안도하는 틈에 한 번 더 속이 올라왔다. 목구멍에는 피와 위액이 범벅이 되어 역겨운 냄새가 났다. 뱃속에는 생명이 있는 것처럼 내장을 두들겼다.

  마치 배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것 같은 기괴함.

  “……!”

  놀란 리리스는 황급히 로브와 상의를 재껴 복부를 드러냈다. 잘 단련된 11자 복근 아래로 처음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하지만 하얀 피부 아래 느껴지는 감촉은 평범하지 않았다.

  툭…… 툭…….

  손바닥 모양이 피부 위로 올라왔다. 하나, 둘, 뒤이어 수많은 작은 손바닥들이 그녀의 안에서 빠져나오려 살갗을 두들겼다. 아주 작고 작은 손들이었다.

  “아니야…… 아니라고! 이건 아니야!”

  팔로 배를 감싸 안으며 막아보지만 그런다고 없어질 것들이 아녔다. 감각이 예민해진 만큼 선명하게 다가올 뿐.

  [아니긴 뭐가 아니야.]

  “……!”

  이번에는 머릿속이 리리스를 괴롭혔다.

  익숙한 목소리, 분명 그녀 자신의 음성이었다. 그러나 어딘가 모르게 구겨지고 뭉개져서 리리스와는 전혀 달랐다. 사람보다는 악마에 가까운 불쾌함이 깃들어 있었다.

  “서큐버스!”

  [꺄아아~ 드디어 말이 통하네. 그래, 나야. 오랜만이야, 릴림.]

  리리스의 안에서 요동치는 마나의 정체는 서큐버스의 것이었으나 전과는 달랐다. 형태나 성질 따위가 리리스의 마나와 비슷했다.

  “뭐야, 이거…… 어째서 네가 나랑 똑같은 성질의 마나를 갖고 있는 거야!”

  [오랜만에 나누는 대화인데 상당히 재미없는 질문이나 하고, 못 본 사이에 많이 시시해졌어.]

  “대답해!”

  [대답할 건 없어. 왜냐하면 너는 나고, 나는 너니까.]

  “알아듣게 말해. 안 그럼 널―”

  [네 마나로 날 억누르겠다고? 히히히히, 여전히 넌 멍청하구나. 정말로 여태까지 억눌렀다고

 생각하다니.]

  “너……! 끄윽!”

  [우헤헤헤~ 바보 리리스~ 바보 리리스~.]

  오랜만에 자의식이 돌아온 서큐버스는 한껏 신이 나서 웃음보를 터뜨렸다.

  리리스에겐 그녀의 비아냥거림이 점점 안 들렸다. 배의 감촉은 슬슬 통증으로 바뀌었다.

  결국 버티지 못하고 무릎을 꿇더니 옆으로 몸이 기울어졌다. 마나로 어떻게든 서큐버스를 밀어내보아도 자해를 하는 꼴이 되었다.

  [이런, 너무 힘들어하네. 흠, 도와주고 싶지만 나도 방법을 몰라. 솔직히 왜 갑자기 내가 이렇게 나올 수 있게 됐는지도 모르겠고. 조언을 주자면, 음…… 조심하는 게 좋아. 네가 죽인 영혼들은 소화되지 않은 채로 몸 안에 있으니까. 힘으로 억제하려다간 너만 괴로울 거야.]

  “컥! 쿨럭!”

  한 번씩 올라오던 피는 터져버린 수도관마냥 쏟아졌다. 피가 호흡기관을 막아서 그런지, 숨을 쉴 수가 없다. 배는 계속 아프고 머리에는 서큐버스가 아이 같은 낭랑한 말투로 떠들었다.

  서큐버스 말대로 제어와 통제를 할수록 뱃속 움직임이 격해졌다.

  리리스는 수면제를 꺼냈다. 일단 잠들면 악몽을 꾸게 되겠지만 적어도 서큐버스가 밖으로 나와서 날뛰진 않게 된다. 그럼 이 고통도 가시겠지.

  콰드득!

  개수를 세볼 여력이 되지 않아 손에 잡히는 대로 삼켰다. 피와 약이 한데 섞이면서 역한 맛을 냈다.

  약효가 있을까. 이렇게까지 반발성이 심했던 적은 최근에 없었다. 최근이 뭔가. 10년 전 반란군에 들어간 이후 서큐버스는 원래부터 없었던 것 마냥 잠잠했다. 가끔씩 튀어나오려고 해도 충분히 제어가 가능했다.

  ‘갑자기 왜, 어째서…….’

  리리스는 더 이상 고민하는 걸 그만둘 수밖에 없었다. 순식간에 잠이 쏟아지더니 눈이 감긴다.

  아픈데. 진짜 아픈데.

  ……괴로워서 못 잘 것 같아.

  [아씨! 잘 거면 빨리 자! 나도 못 자잖아!]

  수면제의 효과는 확실히 있었다. 몸은 이미 잠에 빠져들었고 움직이려 해도 움직일 수 없는 상태. 그러나 지독한 고통이 계속 남아서 자고 있다는 인식마저 생생하게 받아들여졌다.

  그건 서큐버스에게도 영향을 줬다. 의식이 달라고 몸을 공유하고 있으니까.

  [야, 릴림. 야, 야! 어……라? 얘가 왜 이래?]

  서큐버스도 조금은 사태의 이상을 감지하고 당황스러웠다. 평소 같았으면 벌써 잠들어서 서큐버스의 영혼도 같이 몽상에 빠져들어야만 했다. 아무리 서큐버스의 독단적인 의식이 있다고 해도 신체를 공유하고 있는 이상 활동할 수 없는 건 리리스와 똑같았다.

  원인 찾던 서큐버스는 마나 코어에서 이질적인 기운을 감지했다. 코어의 한계를 넘어 마나가 폭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거 설마……! 위험해, 위험하다고! 야, 릴림! 리리스! 정신 차려! 너 이대로 있으면 죽어! 나도 죽고!]

  소리쳐봤자 리리스에게 전해지지 않았다. 들리기만 하지, 듣는다고 몸이 반응하는 건 아니기에. 초점을 잃은 눈동자 또한 보고 있으면서 보질 못해서 허공을 헤맸다.

  어떻게든 리리스를 깨워서 마나를 통제하게 해야만 했다. 근본적으로 마나 코어의 주인이 리리스인 이상 그녀만이 다스릴 수 있다. 서큐버스는 기껏해야 기생하는 입장.

  [우와아악! 마나가 너무 커! 내가 감당할 수도 없어! 우으, 어쩐다. 아! 그 늙은이가 준 거!]

  문득 비구루가 위험할 때 쓰라고 했던 포션이 떠올랐다. 고위 신관의 신성력이 가미된 포션이라면 문제를 해결해 줄지도 몰랐다.

  비록 서큐버스를 제어하려고 만든 거긴 하지만.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녔다. 어찌됐든 마나 코어가 폭주한다는 건 서큐버스의 영혼이 마나 코어를 지배한다는 것과 비슷하다는, 서큐버스 그녀만의 발상 끝에 얼른 결론을 내렸다.

  [칫, 나중에 완전히 몸을 지배하려고 힘을 아끼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네.]

  잠깐이나마 서큐버스는 몸의 통제권을 빼앗아 왔다. 리리스의 영혼이 온전하지 않아서 그리 어렵진 않았다.

  “나른, 해 죽……겠네. 빌어먹……을.”

  100년 동안 쉬지 못하고 쌓인 피로가 온몸을 짓누르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손가락 까딱하기도 버거웠다. 그래도 남은 힘을 짜내서 안주머니에서 고이 모셔뒀던 포션을 꺼냈다.

  작은 크리스탈 병에 반투명한 액체가 찰랑거렸다. 뚜껑을 살짝 열자 고약한 냄새가 코끝을 찔렀다. 사람이었다면 향긋했겠지만 악마인 서큐버스는 끔찍한 향이었다.

  “인간들, 은 이딴 걸 어, 떻게 마……시는 거야…….”

  신성력은 서큐버스와 완벽한 상극이었다. 마셨다간 리리스보다 더 괴로워하리라. 폭주를 잠재울 수 있다는 가능성도 확실하지 않다.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점이 있다면.

  “인간 리리스에게는……도움이……되겠지…….”

  마지막으로 모든 의지를 집중하여 포션 뚜껑을 열고 입 속에 전부 부었다. 예상했던 대로 냄새처럼 맛도 구렸다. 당장 토해버리고 싶다.

  그러나 그럴 수도 없었다. 포션을 털어 넣기 무섭게 서큐버스는 다시 통제권을 잃었다. 신성력이 바로 발동된 탓이었다.

  [이익! 더럽게 아파! 썩은 내도 나고! 빌어먹을 할망구! 신성력을 있는 대로 때려 넣은 거야 뭐야?!]

  기분이 나쁜 걸 떠나서 자의식마저 조금씩 옅어지고 있었다. 오래간만에 밖으로 나왔던 서큐버스는 정신을 잃지 않으려고 애썼으나 마나 폭주에 신성력까지 더해지자 몽상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나마 몽상에 빠지는 건 좋은 신호였다. 리리스 또한 같이 꿈에 빠져들고 있다는 뜻이니까.

  폭주했던 마나 코어도 여전히 커지곤 있어도 가속도가 줄어들었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자 아예 커지질 않고 그 상태를 유지했다. 여기서부터는 리리스가 버텨주길 바라야만 했다.

  [빌어먹을 년, 넌 나한테 빚진 거야. 나중에 꼭 이 빚 받을 테니까 제발 몸 관리 잘해!]

  기약 없는 다짐을 하며 서큐버스는 현실로 돌아온 지 1시간도 안 되어서 몽상에 의식을 맡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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