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 새끼야. 야구공 주우러 가더니 하나 만들어 왔냐?
죄송합니다! 헤헤.
야구는 팀플레이다! 한 명이라도 빠지면 안 되는 거야! 근데 그렇게 자꾸 혼자 나가면 어떡해? 니들도 마찬가지야! 야구를 하겠다는 거야 말겠다는 거야?
돌아가니까 코치님이 내가 예상했던 반응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보여주었고, 난 서둘러 외야로 돌아갔지. 2루수를 보고 있던 내 오랜 친구 정한무는 이렇게 말했지. 한무를 기억하니? 하긴 넌 모를 수도 있겠다. 한무는 걔 이름보다 '정항문' 이라는 별명으로 더 많이 불렸으니까.
미친놈아, 어디 갔다 왔어?
음악실, 너도 공 그쪽으로 간 거 봤잖아.
거기만 갔다 왔어? 너 아까부터 계속 쪼개고 있는 거 알아?
뭔가 반박하려고 했는데 생각해보니 그랬더라구. 그래서 그냥 계속 웃고만 있었어.
뭐야, 뭔 일이 있었던 거야? 아까 피아노 소리 들리던데…?
야, 항문아.
응…?
너 피아노곡 중에 그런 곡 아냐? 헤헤.
당연하게도 정항문의 표정은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나 싶은 표정이었지. 하지만 그 때 한껏 화나 있던 코치님이 잠시 분을 삭이다 다시 플레이를 외쳤기 때문에, 우리는 잠깐 긴장했어. 하지만 삼진 아웃을 당하더라고. 덕분에 난 다시 한무와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지.
야, 그런 곡 아냐고.
제목이 뭔데?
당신의 사랑이 늘 행복하기를.
정항문의 표정은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나 싶은 표정을 넘어서 급기야 왜 이런 새끼가 다 있나에 이르렀어. 그러더니 갑자기 배를 잡고 웃기 시작했지.
웃지 마 새끼야. 니가 뉴에이지를 알아?
크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야, 뉴에이지가 뭔진 몰라도 노래 이름이 그따위인 건 처음 들어 본다.
참, 참. 이 무식한 친구야. 너 피아노 칠 줄은 아는지 모르겠… 악!
갑자기 교양인이 되어 버린 외야수 포지션의 소년이 오래된 친구를 놀리는 동안, 다음 타자가 친 공이 정확히 한무 쪽을 보고 떠들던 내 머리 위를 강타해버렸지. 그런데 그것보단, 그 뒤에 들려오는 코치님의 호통 소리가 더 충격이 컸어.
야! 너 이 새끼 뭐야! 평소에도 그러더니 오늘은 왜 더 심해? 뭔 일 있냐?
아뇨! 헤헤.
난 크게 소리쳤고 코치님은 잠깐 한숨을 쉬더니 더 크게 소리쳤어.
공 날라올때 실실 쪼개지나 마!
코치님, 코치님 같으면 안 웃을 수 있겠어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소녀가, 제 사랑이 항상 소중하기를 바란다는데? 결국 그 날 연습이 끝날 때까지 한 개의 공도 잡지 못한 나는, 연습이 끝나고 주장에게 멱살만 잡히게 되었어. 문제는 그 와중에도 실실 쪼갰다는 건데, 나중에 정항문한테 들으니까 코치님이 퇴근하시면서 정항문에게 이렇게 신신당부했대.
정말 걔는 정신 건강만 챙기면 크게 될 아이인데, 그나마 네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다.
네?
내가 며칠 전에 인터넷에서 봤는데, 안 하던 짓을 하면 자살의 징조라고 그러더라고.
…….
저 새끼가 플라잉 캐치라도 하는 날이면, 그건 자살하려는 징조니까 니가 꼭 막아줘라. 알겠지?
네, 네….
평소엔 저 정도는 아니었는데, 아까 주장한테 멱살 잡히면서도 실실 웃는 거 보니까 소름이 돋더라. 후….
사랑스러운 코치님. 그 정도까지 걱정해 주시다니. 제기랄.
아무튼 그 정도로 난 좋았어. 그 뒤로 난 야구를 할 때가 되면, 항상 한쪽 귀로는 네 여름을 듣고 있었어. 그리고 바로 그 곡이 나올 때면, 다시 우리 코치님은 화가 나서 방방 뛰셨지. 레미 시솔 라솔. 그건 정말 쉬운 게 아니었는데. 넌 엄청 쉽게 치더라고. 아 참, 물론 그럴 때마다 우리 주장은 날 칠 뻔했어. 그 당시 정항문은 야구에 엄청난 재능을 보였었는데, 그쪽으로 오는 공은 다 잡아낼 경지에 이르렀어. 덕분에 우리는 다른 고등학교와 친선 경기를 할 때도 늘 승리했고(외야 쪽으로 오는 공이 극적인 승리가 되도록 만들긴 했지만….), 코치님은 드디어 대회에 나갈 때가 되었다고 통보했지.
그래서 그때쯤, 우린 정말 바빴어. 수업 시간엔 다 잘 수밖에 없었지. 다시 한 번 강조하는데, 잘 '수밖에 없었'어. 둘다 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고. 그래서 그때쯤, 수업시간에 난 자고만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