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백 년 전..
노예였다. 그랬던 것 같다.
어디론가 한없이 끌려가며 그게 어딘지
기억조차 남아있지 않다.
그냥 무작정 걷고 걸었던 것 밖에..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다가도 갑작스레
차가운 비가 쏟아지고 또 어느새 눈도
뜨지 못할 심한 모래 바람이 불었다.
확실히 태어난 곳은 이곳이었는데
한번 씩 눈을 떴을 땐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가족이 있었는지, 친구가 있었는지..
기억도 나지 않지만 분명 형이라는
존재는 항상 함께였다.
왜 형이었는지..
그냥 형이라 불렀던 것 같은데 그게
피를 나눈 가족이었던 건지 아니면
같은 노예였던 건지 아무것도 모른다.
성격은 그리 나쁘지 않았던 것 같은데
웃음도 많았던 것 같고..
왜 노예로 끌려갔는지, 무슨 죄를 지어
노예가 됐는지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
무엇 때문에 인간이었을 때도 삶이
비참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피를 흘리며 죽어갔다.
그들을 보며 두려움에 도망쳤던 것
같은데 순간 목이 뜯겨져 나갔다.
죽었어야 했는데 이렇게 만든 이가
때를 놓친 것 같다는 생각뿐..
그러니까 일부러 만든 게 아니라 단지
내 피를 원했던 것..
무슨 이유에서인지 도망칠 수가 있었고
지금 이렇게 되어버린 것이다.
나는 피를 탐하는 자..
모습을 감춘이..
뱀파이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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