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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신부
작가 : 작뚱이
작품등록일 : 2017.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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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여름의 하늘 -02
작성일 : 17-11-21     조회 : 230     추천 : 0     분량 : 45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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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우의 불호령에 의해 하루 종일 다락방 안에서 꼼짝도 못하는 항아는 온몸이 근질거리는 기분이었다. 태어나 줄곧 자신이 원하는 곳은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산이며 들이며, 계곡이나 나무 위 어디든. 이렇게 갇혀보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라 무척이나 괴로웠다.

 

 “항아님, 이것 좀 드셔보시겠어요?”

 “이게 뭔데?”

 “요새 궁녀들 사이에서 반응이 좋은 다과이온데, 삶은 고구마와 꿀을 섞어 만든 것이옵니다.”

 “……응, 먹어볼래. 고마워, 월아.”

 

 항아는 월이 들고 있는 다과상을 자신이 들어 바닥에 내려놓았다. 월은 올해로 16살이 된 어린 궁녀였다. 항아의 무지한 용기로 인해 목숨을 건진 후, 이렇게 항아와 함께 다락방에서 지내며 항아를 보살피고 있는 중이다. 나이에 비해 침착한 월은 항아의 좋은 말동무가 되어주었다. 항아는 월이 가져온 다과를 하나 집어 입에 넣었다. 생전 처음 먹어보는 달콤함에 잠시 움찔했지만 이내 기분이 좋은 듯 열심히 입을 오물오물 움직이며 맛을 음미했다.

 

 “이곳은 신기해.”

 “예?”

 “내가 못 보던 것들이 가득하지.”

 

 월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되물었다. 항아는 그저 웃으며 월을 바라볼 뿐이었다.

 

 “사람들은 이런 곳에서 살아가는구나.”

 “……아뇨, 모두가 이곳에서 살지는 않죠. 성 밖에는 배고픔에 허덕이는 백성들이 있으니까요.”

 “아아. 들어본 적 있어. 예전에 청아 언니가 그랬어. 산 밑에는 누구보다도 자신의 황제를 믿으며 하루하루를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그 사람들을 백성이라고 부른다고.”

 

 월이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그래요. 그들은 가난하고, 가엽고, 순수하죠.”

 

 항아는 ‘가난하다’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잘 알지 못했다. 사람들과 섞여 살지 않았던 항아에겐 ‘가난하다’라는 개념 자체가 박힐 수 없었다. 항아는 월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월은 그녀가 백성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길 원했다. 그녀에게 정말 낙인이 있다면. 그녀가 정말 황제의 반려라면. 백성들의 울음소리를 외면해 버리는 황제를 대신해 들어주기를 원했다.

 월이 말했다.

 

 “저도 궁에 들어오기 전까진 한낮 가난한 계집이었어요. 굶어 죽은 부모의 곁에서 날밤을 새며 울어대다 우연히 착한 선비님에 의해 작은 한옥 집에서 살았고, 두해 뒤 궁에서 궁녀를 모집한다기에 지원을 하여 궁으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궁으로 들어오는 순간 밖에서 일어난 모든 일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기로 했어요. 저는 이제 황제 폐하의 사람이 되었고, 죽어서야 궁 밖으로 나갈 수 있을 테니까요.”

 월의 이야기에 항아는 먹던 다과를 내려놓았다. 그녀는 지금 괴로울까. 아니면 행복할까. 자신을 구해줬다는 그 선비의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미소를 짓는 월. 하지만 항아는 그녀의 눈 안 가득히 눈물이 차올라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항아를 눈치 챈 것인지 월이 조금은 장난스런 목소리로 말했다.

 “물론, 황제 폐하가 폭군임을 알았다면 절 거두어 주신 선비님의 밑에서 일하며 살았겠지만요.”

 

 항아가 다과를 하나 더 입에 넣었다. 월이 웃으며 맛있으시냐고 묻자 항아는 그렇다고 대답하였다. 손이 조금 끈적끈적해지자 월은 자신의 손수건을 물에 묻혀 항아의 손을 닦아주었다. 항아가 말했다.

 

 “월. 너는 참 착해.”

 “아뇨, 저는 항아님을 보살피기 위해 이곳에 있는 걸요.”

 “그런 소리 말아. 너는 나의 동무야.”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감사드려요.”

 

 항아는 다과를 마저 삼킨 후,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렸다. 월은 항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는 없었으나 그 모습이 퍽이나 귀여워 작게 웃었다. 항아가 자신보다 4살이나 많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월, 있지.”

 “네?”

 “황제는 날 싫어하시는 거겠지? 이렇게 가두어 두기만 하니까.”

 

 월은 항아의 물음에 당황했다. 반려랍시고 특별한 애정을 보이는 것도 아니고, 조심스럽게 대해주지도 않았다. 오히려 험한 말만을 골라하는 황제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항아를 처형장으로 끌고 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월은 자신을 바라보며 묻는 항아의 모습에 쉽사리 대답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셔요. 항아님을 아껴주고 싶으셔서 이곳에 있으라 하신 걸 거예요.”

 “어째서?”

 “그야 항아님은 황제폐하의 반려 시니까요.”

 

 항아는 월의 말에 웃음을 뗬다. ‘반려’ 정확한 뜻은 알 수 없으나 누구든 자신이 그의 반려라 하면 모두가 잘해주었다. 모두가 웃어주었다. 그 이유만으로도 항아는 반려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했다.

 

 “그럼 황제가 오면 부탁해야겠다.”

 “무엇을요?”

 

 월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리고.

 

 “백성들을 만나러 가자고!”

 

 그 느낌은 틀리지 않았음을 바로 알 수 있었다.

 

 -

 

 빗속에서 한 설거지가 제대로 되었을 리가 없었다. 비가 개고, 무수리들을 점검하러 온 나인은 빗물로 인해 상해버린 그릇을 보고 단단히 화가 나버렸다. 설거지를 할 때 가예를 담당했던 나인은 모르는 일이라며 시치미를 떼기만 할 뿐이었다. 결국, 가예는 다른 무수리들이 쉬는 동안에도 계속해서 일을 해야만 했다. 설거지와 빨래부터 시작해서 걸레질, 사냥개 밥 주기, 나인들 속치마 빨기……등등. 수도 없이 많았고, 쓸데없는 일들뿐이었다.

 겨우 해가 지고서야 쉬게 된 가예는 그대로 연못 앞에서 뻗어버렸다. 오늘 하루, 해를 제대로 보았는지도 의문이었다.

 

 “도망갈까…….”

 

 눈앞에 연못이 있다. 당장이라도 뛰어들면 어디로든 갈 수 있었다. 가예는 잠시 연못을 바라보다 옅게 웃었다. 도망은 무슨. 그랬다간 언니들을 만나기도 전에 역적으로 몰려 쫒기는 신세가 될 것이 뻔했다.

 가예가 손을 부드럽게 둥글게 움직이자 연못의 물이 출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이내 가예의 손 모양을 따라 떠올랐다. 둥글게, 조금만 더 둥글게. 두 손을 둥글게 굴리자 어느 새 둥그런 물방울이 되어 가예의 앞을 떠다녔다.

 

 “지금 무엇을 하는 건가.”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놀란 가예가 황급히 뒤를 돌아보았고, 물방울은 그대로 연못으로 곤두박질 쳤다. 가예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 전하…….”

 

 율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연못을 바라보았다. 표정은 덤덤했지만 사실 율은 많이 놀란 상태였다. 궁녀들이 모두 들어간 시각, 연못에서 이상한 소리가 나기에 연청과 함께 왔더니 낯익은 뒷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녀의 손에 의해 공중에서 움직이는 물방울 역시 선명하게 보였다.

 

 “연못에서 떠올랐다더니 역시 보통 인간 계집은 아니었구나.”

 “…….”

 “정체가 무엇이냐.”

 

 가예는 급히 일어나 두 손을 모으고 고개를 숙인 채 말하였다.

 

 “저는 그저……일개 무수리일 뿐이옵니다.”

 “그렇다면 내가 방금 본 그 관경은 무엇이지?”

 “그것은…….”

 

 자신의 실수이다. 이곳은 궁. 궁녀는 들어갔다 할지라도 군사들이나 중신들은 돌아다닐 것이다. 게다가 황제라면 말할 필요도 없었다. 생각이 짧았다. 바보 같은 짓이었다. 가예는 황제의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한 채 입술만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말을 안 할 심상인가?”

 “……그것이 아니오라.”

 

 율은 가예를 쳐다보았다. 화려한 옷을 입고 연못에서 떠오른 계집이라는 것 자체가 수상하였지만 방금 전 자신이 본 그 광경으로 인해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수룡께서 내게 신녀인 너를 보내주신 것이냐?”

 

 가예는 율의 물음에 잠시 멈칫했다. 연호국은 아직까지도 황제가 용의 부름을 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무수리들을 통해 알고 있었다. 두 나라보다 늦은 부름에 율은 조급해져있다는 사실도 물론 알고 있었다. 이것은 기회였다.

 

 “대답하라. 신녀인가, 아닌가.”

 

 분명히 말해두지만 본인은 신녀 따위가 아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자신은 수룡(水龍)을 만날 수 있으며 물을 다룰 수 있다는 점이다. 신녀가 아니면 어떠한가, 자신이 신녀 행색을 한 것을.

 

 “……예, 소녀. 수룡의 부름을 안고 황제를 뵙습니다.”

 

 이깟 연극 좀 한다고 자신의 거짓말을 알아 챌 이는 오직 수룡뿐이었다.

 

 -

 

 유난히도 밝은 달빛에 청아는 쓰개치마만을 두르고 정원으로 나갔다. 차가운 밤공기가 막혔던 숨을 턱 트이게 해주었다. 청아는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가 내쉬었다.

 

 “잘 지내고 있니…….”

 

 청아는 달을 바라보며 말했다. 자신을 애타게 찾을 동생들이 걱정되었다. 자신은 이곳에서 사랑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지만 자신에게 의지하며 살아온 동생들은 분명 자신을 찾고 있을게 분명하였다.

 

 “이렇게 말도 없이 떠나버려 미안하구나.…….”

 

 청아는 자신의 손목을 바라보았다. 손목 안쪽에 선명히 그려진 낙인은 그녀가 초월국 황제의 반려임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지금으로부터 6개월 전, 자신의 손목에 낙인이 그려지는 것을 알아챈 청아는 더 이상 아이들과 살아갈 수 없음을 느꼈다. 그래서 떠났다. 단 한 장의 편지도 없이.

 

 “...어디에 있어……?”

 

 란의 반려가 된지 7일이 지나서야 청아는 란의 허락에 의해 자신이 살던 동굴로 돌아올 수 있었다. 하지만 단 7일 만에 동굴은 더 이상 사람의 온기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 란은 급히 군사들을 풀어 두 아이를 찾으라고 명했지만 해가 지도록 그 누구도 두 아이를 찾아오지 못했다.

 

 “난 이리도 행복하게 살고 있는데, 너희는 어디에 있는지 생사조차 확인을 할 수가 없구나.”

 

 달빛은 답이 없었다.

 

 “너희를 지켜주겠다 약조했거늘.”

 

 청아는 눈동자 가득히 차오르는 눈물을 재빨리 훔쳐내었다. 그리고 웃으며 말했다.

 

 “곧 너희를 위한 연회가 열린단다.”

 

 바람이 불었다. 쓰개치마가 약하게 흔들렸다.

 

 “보러 와주지 않겠니?”

 

 결국 청아가 자리에 주저앉았다.

 밤공기는 차가워 막혔던 숨을 트이게 해주었다. 더불어 왠지 모르게 기분이 좋아졌다.

 

 “너희를 찾을 때까지 연회는 계속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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