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황녀는 날지 않는다
작가 : 여름별밤
작품등록일 : 2017.11.22
  첫회보기
 
제국의 황녀 (5)
작성일 : 17-11-24     조회 : 350     추천 : 1     분량 : 4255
뷰어설정열기
기본값으로 설정저장
글자체
크기
배경색
글자색
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13 15 17 19 21

 쩌엉-

 묵직한 소리와 함께 제국군은 흙과 돌멩이를 동반한 작은 폭풍에 휩쓸리지 않으려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고, 그와 함께 다리에 안간힘을 쓰며 버티고 있었다. 그 폭풍의 근원지에는, 두 사람이 격렬하게 검을 맞부딪치고 있었다. 푸른 검기를 두른 노장군의 검과 붉은 검기를 두른 여성의 검이 얽히고 튕겨지고, 높게 치솟았다가 다시 떨어져 내리며 서로를 날카롭게 노리며 파고들다가도 유려하게 흘려내는, 그야말로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접전이 펼쳐지고 있었다. 두 사람의 검이 맞부딪칠 때마다 푸른 검기와 붉은 검기가 뒤섞이며 폭발했다.

 “대단하군......”

 “저게 바로 소드 마스터......”

 몇몇 제국군과 부관들은 감탄하며 바라보다가도 갑작스레 날아오는 흙과 돌멩이에 기겁하며 몸을 숙이곤 했다. 그런 와중에 두 사람의 검이 강하게 맞부딪치고 거의 동시에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났다.

 “놀랍군요, 놀라워! 10년 사이에 이런 경지에 오르시다니!”

 카탄은 경악과 감탄이 뒤섞인 표정으로 레아를 바라보았다.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진심으로 검을 휘두르지 않으신 걸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를 이렇게까지 밀어붙이시다니. 다섯 소드 마스터 중에서도 최강이라 불리셨던 이유를 알겠군요.”

 레아 역시 존경의 눈빛을 카탄에게 보냈다. 카탄은 안타까운 듯이 그녀를 바라보았다.

 “황녀님. 계속 이렇게 무의미한 싸움을 하셔야 합니까? 드래곤하트와 검을 가지고 황궁으로 돌아가시지요. 지난 5년은 어디 계신지 몰랐기에 섣불리 군을 움직일 수 없었지만, 이렇게 만난 이상 황녀님의 안전은 저와 북부군이 책임지겠습니다. 아까 말했지 않습니까. 제국의 황녀에게 검을 들고 싶지 않다고. 그러나 계속 이렇게 나오신다면 정말 다치실지 모릅니다.”

 걱정이 담긴 정중한 경고에 레아는 고개를 저었다.

 “카탄. 당신도 잘 아실 테지요. 드래곤하트와 검이 의미하는 게 무엇인지. 단순히 황가의 가보를 넘어선, 황제의 증표와도 같은 물건들입니다. 황후가 그걸로 무엇을 할지는 짐작하시겠죠,”

 “......엘타 라크델 공을 황제로 세운다, 그런 말씀이십니까.”

 레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기에 황후는, 저에 대한 추격을 포기하지 않는 겁니다. 황제와 황녀가 살아있고, 드래곤하트와 검마저 없는 상황에서 저를 죽이면 그 세 조건에서 두 조건이 맞아떨어지니까요.”

 “그래서 드라케니아로 가신다는 겁니까. 하지만 황제 폐하는......”

 “걱정 마세요. 저에게 드라케니아로 가라고 명하신 건 다름 아닌 아버지니까요. 그리고 황후의 위협은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단순한 위협에 불과합니다. 아버지가 아무리 쓰러지시고 황후가 정권을 장악해도, 섣부른 행동은 하지 못하겠죠. 제가 이렇게 살아있으니까요.”

 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카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검을 거두었다.

 “다 크셨군요.”

 “지난 5년 동안 몇 번이나 죽음과 마주했으니까요.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너무 늙어버렸습니다.”

 그렇게 대답하며 쓰게 웃던 레아가 이내 굳은 표정으로 카탄을 바라보았다.

 “스킨틸라 제국의 북부군 총사령관 카탄 드 파테이. 황가에게 충성을 다짐하고 검을 받았던 지난날의 맹약을 기억하는가?”

 잠시 어리둥절하던 카탄은 이내 뭔가 알아차린 듯이 한쪽 무릎을 꿇었다.

 “기억합니다.”

 “그럼 이제 맹약을 받았던 제국의 황제 아르도르 스킨틸라의 뒤를 이어, 제국의 황녀 레아 스킨틸라가 그 의지를 잇겠다. 그대는 나의 검과 방패가 될 것을 맹세하는가?”

 “맹세합니다.”

 “나 레아 스킨틸라는, 황제를 볼모로 삼고 정권을 장악해 황녀를 암살하려 하고 그녀의 가장 충성스러웠던 벗을 앗아간 제국의 2 황후 루마 라크델에게 대가를 치르게 할 것이다. 이의 있는가?”

 카탄은 고개를 들었다. 그 곳에는 10년 전 자신에게 가르침을 받던, 철없던 소녀는 더 이상 없었다. 아름답고도 기품 있는 제국의 황녀만이 검을 짚고 서 있었다. 카탄은 다시 고개를 숙이며 낮은, 그러나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북부군 총사령관 카탄 드 파테이. 황녀님을 따르겠습니다.”

 그 때, 허공이 일그러지기 시작했다. 출렁이며 두세 사람이 지나갈 정도의 공간이 물결치며 대화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냥 날아가도 되지 않나요?”

 “제국군을 단체로 공포에 떨게 할 일이라도 있냐? 잔말 말고 얌전히 따라와.”

 그 말과 함께 환한 빛을 뿜으며 레아와 카탄의 앞에 두 남자가 서 있었다. 아름다운 청년과 소년이었는데, 두 사람 모두 칠흑의 머리카락과 독특한 모양의 황금빛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그 모습에 카탄은 몸을 지탱하고 있던 한 쪽 무릎마저 털썩 꿇었다. 그를 부축하려던 레아는, 카탄의 입에서 흘러나온 한마디에 그대로 얼어붙었다.

 “아투스님.”

 그 말에 청년은 씩 웃었다.

 “오랜만이군, 카탄. 잘 지냈는가?”

 

 

 

 

 “......맙소사. 블랙 드래곤이라니. 그것도 두 마리나?”

 고원을 감싸고 있는 어느 나무들 사이에서 몸을 숨기고 있던 금발의 엘프가 고개를 내저었다. 에메랄드빛 눈동자가 당혹감으로 채워지고 있었다. 그 옆에서 눈을 감고 땅에 두 손을 대고 있던 은발의 엘프가 조용히 대답했다.

 “제가 말했잖아요, 아우카. 뭔가 불안하다고.”

 “아니 그래도 이건 좀......루넬리아, 여왕님께서는 아직 아무런 대답도 없으신가요?”

 “네. 평소보다 많은 노움(Gnome)들을 보냈는데...... 실프(Sylph)까지 동원해야할지도 모르겠네요.”

 “평소처럼 잠들어 계신 게 아닐까요.”

 “......근래 들어 그 시간이 좀 더 늘어나긴 했지만...... 이런 한낮에 잠들어 계시는 일은 없었어요. 일단 노움을 더 보내......꺄악!”

 갑작스런 루넬리아의 비명에 아우카는 순식간에 활에 화살을 메긴 후 루넬리아가 있는 곳으로 겨누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내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어이가 없다는 듯이 물었다.

 “뭐하고 계신 겁니까, 여왕님?”

 그 말에 루넬리아의 뒤에서 그녀를 끌어안고 있던 새하얀 머리의 엘프가 해맑게 웃었다.

 “루넬리아의 체온을 느끼고 있어.”

 끌어안는 걸 넘어서 루넬리아의 몸 이곳저곳을 더듬기 시작한 엘프는 이내 아우카의 손에 질질 끌려나왔다. 루넬리아는 눈물을 글썽이며 자신의 몸을 감싼 채 떨고 있었고, 그런 루넬리아를 아쉬운 듯 입맛을 다시며 바라보는 엘프에게 아우카는 그녀의 이마를 가볍게 손가락으로 튕겼다.

 “아얏! 왜 때려 아우카!”

 “루넬리아 좀 그만 괴롭히세요!”

 “에? 나는 그저 루넬리아와 반가움의 포옹을 한 것뿐이야.”

 “그 반가움의 포옹에는 남의 몸을 더듬는 것도 포함이 됩니까? 루넬리아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시고 달려드시니 맨날 루넬리아가 여왕님을 슬슬 피하는 거 아니에요!”

 “헤...... 설마 질투? 그럼 아우카도 안아줄게!”

 그녀가 두 팔을 활짝 벌리며 서서히 다가오자 아우카는 기겁하며 뒤로 물러섰다. 그런 그녀와 루넬리아를 번갈아 바라보며 백발의 엘프는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우카는 가슴은 좀 작지만 도도한 게 매력이고...... 루넬리아는 가슴이 크고 약간 어리바리한게 매력......아얏!”

 그녀의 감상평은 아우카의 손가락이 그녀의 이마로 날아들어 끊기고 말았다.

 “헛소리는 거기까지!”

 “힝...... 아우카는 너무 차가워. 그 성격만 죽인다면 참 좋을텐데.”

 “됐고. 어떻게 오신 거죠? 우리가 엘븐퀸덤(Elvenqueendom)에서 떠난 지도 일주일이 넘었는데.”

 그 말에 백발의 엘프는 가볍게 휘파람을 불었다. 거의 동시에 돌풍을 일으키며 거대한 흰 매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백발의 매의 부리와 머리를 만져주자 매는 기분이 좋은 듯이 낮게 울며 엘프에게 얼굴을 비볐다. 아우카는 루넬리아는 반가운 듯 말했다.

 “눈송이?”

 “이 아이가 데려다 주셨군요.”

 백발의 엘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응. 원래는 너희에게 일을 마무리 짓도록 할 예정이었지만, 갑작스럽게 상황이 악화되는 바람에 내가 직접 왔어.”

 “저희에게 황녀님을 감시하라고 한 일 이외에 시키신 게 있었나요?”

 의아해하는 루넬리아에게 백발의 엘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원래는 그렇게 감시하다가 이 고원에서 제국군이 황녀를 공격하면 그녀를 구출하라고 할 예정이었어.”

 “구출이요? 그런 대담한 짓을 하기에는 우리는 둘밖에 없고, 저쪽은 거의 천 명 가까이 되는 제국군이 버티고 있는데요. 게다가 총사령관으로 보이는 자가 직접 황녀를 생포하러 나왔어요. 문제는 저 자 역시 소드 마스터라는 점이에요. 뭐, ‘전투’가 아닌 ‘구출’이라면 가능하겠고, 다행히 제국군은 황녀의 편인 것 같지만, 지금 가장 큰 문제는 그게 아니죠.”

 아우카가 한숨을 내쉬며 황녀와 제국군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그 시선에는 흑발과 금안을 지닌 두 사람도 포함되어있었다.

 “블랙 드래곤이죠. 저런 존재들이 둘이나 끼어든다면 구출마저 장담하지 못해요.”

 그러나 이내 이어진 백발의 엘프의 태연한 말에, 아우카와 루넬리아는 온 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느낌을 받았다.

 “아, 로드 아투스?"

 

 
 

맨위로맨아래로
NO 제목 날짜 조회 추천
28 폭풍이 몰아칠 때 (3) 1/25 316 0
27 폭풍이 몰아칠 때 (2) 1/21 370 0
26 폭풍이 몰아칠 때 (1) 1/20 340 0
25 안개의 딸들 (完) 1/7 384 0
24 안개의 딸들 (4) 12/30 338 0
23 안개의 딸들 (3) 12/21 366 0
22 안개의 딸들 (2) 12/17 357 0
21 안개의 딸들 (1) 12/14 335 0
20 폭풍을 대하는 자세 (完) 12/11 361 0
19 폭풍을 대하는 자세 (7) 12/10 352 0
18 폭풍을 대하는 자세 (6) 12/8 346 0
17 폭풍을 대하는 자세 (5) 12/6 380 0
16 폭풍을 대하는 자세 (4) 12/3 372 2
15 폭풍을 대하는 자세 (3) 12/2 367 0
14 폭풍을 대하는 자세 (2) 12/1 351 0
13 폭풍을 대하는 자세 (1) 11/30 397 0
12 난쟁이들의 왕 (完) 11/29 352 0
11 난쟁이들의 왕 (3) 11/28 379 0
10 난쟁이들의 왕 (2) 11/26 362 0
9 난쟁이들의 왕 (1) 11/26 352 0
8 제국의 황녀 (完) 11/25 377 1
7 제국의 황녀 (7) 11/25 372 1
6 제국의 황녀 (6) 11/24 409 1
5 제국의 황녀 (5) 11/24 351 1
4 제국의 황녀 (4) 11/23 346 2
3 제국의 황녀 (3) 11/23 355 2
2 제국의 황녀 (2) 11/22 367 2
1 제국의 황녀 (1) 11/22 593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