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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녀는 날지 않는다
작가 : 여름별밤
작품등록일 : 2017.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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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국의 황녀 (6)
작성일 : 17-11-24     조회 : 409     추천 : 1     분량 : 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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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볼룬타스 고원의 제국군, 카탄 그리고 레아는 한 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었다. 자신들의 앞에 서 있는 존재는 다름 아닌 드래곤이었다. 그것도 그 강대한 존재들의 정점에 군림하는 왕, 드래곤 로드. 30년 전 대전쟁에서 대악마 튀란누스와 악마들로부터 대륙을 지켜낸 전설적인 영웅. 맨 처음에는 의심하는 이도 있었으나 이내 그런 멍청한 생각은 그만두기로 결심한 것이 제국군들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고위 마법사도 힘들어하는 공간 이동 마법을 아무렇지도 않게 쓰면서 나오더니 30년 전 대전쟁에 직접 참전했던 자신들의 대장군이 두 무릎까지 꿇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그저 입을 다물고 얌전히 지켜보는 것이었다. 무릎을 꿇은 카탄이 간신히 입을 열며 드래곤 로드를 올려다보았다.

 “이......곳까지 오신 이유가 궁금합니다만.”

 그런 카탄을 안쓰럽게 바라보던 아투스가 답했다.

 “아직 오지 않은 손님들도 계시니, 그들이 오면 말하도록 하지. 그보다 좀 일어나면 안 되겠나? 우리 사이에 격식 차릴 필요가 뭐 있다고.”

 “아......그럼.”

 자신의 부축을 받아 간신히 일어나는 카탄을 보며 레아는 속으로 가볍게 웃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앞으로도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은 아닌 것 같았다.

 “네가 아르도르의 딸인가.”

 “그렇습니다, 드래곤 로드시여.”

 레아는 속으로 웃었던 스스로를 반성했다. 그저 아투스의 입장에서는 가볍게 말 한번 건넨 것일 텐데, 말 한마디에도 엄청난 위압감이 실려 있었다. 말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게 비유가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허 참. 그렇게 격식 차릴 필요 없다니까. 내 친구의 딸이면 너 역시 내 딸과도 같다. 편하게 대하도록. 뭐, 그동안 여러 사정이 있어서 오늘 처음 만나는 거지만. 아르도르는 잘 지내나?”

 남의 입으로, 실로 오랜만에 듣는 아버지의 이름에 레아는 자신도 모르게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기분이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아투스가 입을 열려는 순간, 고원에 길고도 날카로운 새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와 동시에 그들이 서 있는 곳에서 꽤 떨어진 숲에서 거대한 하얀 물체가 솟아오르더니, 무시무시한 속도로 그들을 향해서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카탄은 재빨리 손을 들며 외쳤다.

 “궁병, 사격 준비!”

 궁병들은 일제히 어깨에 메고 있던 활에 재빨리 화살을 메기고 여전히 거침없이 날아오는 하얀 물체를 조준했다.

 “안 돼! 멈추게!”

 아투스가 다급하게 외쳤고 카탄은 당황한 듯 그를 돌아보았다.

 “저건 그녀의......!”

 아투스는 말을 잇지 못하고 두 팔로 황급히 얼굴을 가렸다. 매섭게 몰아치는 바람과 함께 하얀 물체가 사뿐히 내려앉았다. 눈을 뜨지 못하는 이들 사이로 달콤하고도 사랑스러운, 그러면서도 기품 있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제 아이가 본의 아니게 여러분들을 놀라게 해 드린 모양이군요.”

 레아는 살짝 눈을 떠, 목소리의 주인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앞에 거대한 하얀 매와, 그 곁에 서 있는 세 명의 엘프가 있었다. 그 곁에 있던 카탄은 놀라움으로 손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아아......테......테사나님!”

 세 명의 엘프 중 백발의 엘프가 환하게 미소 지었다.

 “30년 만이로군요, 카탄.”

 그리고 그녀는 아투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당신도, 아투스.”

 

 

 

 

 볼룬타스 고원의 서쪽으로 해가 저물어가고 있었지만, 제국군의 그 누구도 어두워진다고 느끼지 못했다. 그들의 시선은 오직 전설적인 존재들의 등장과 만남에 쏠려있었다.

 “흠...... 당신이 아르도르의 딸이로군요. 후후, 꽤나 귀여운 아가씨네? 단발도 참 잘 어울리지만 개인적으로 긴 머리면 좋겠......”

 백발의 엘프의 말은 뒤에 있던 금발의 엘프에게 질질 끌려 나가는 바람에 끊기고 말았다. 그 모습을 잠시 안타깝게 바라보던 은발의 엘프가 레아를 돌아보았다.

 “죄송합니다. 우리 여왕님이 요즘 잠들어 계시는 시간이 많아지다 보니 평소에도...... 보시다시피 저런 상태십니다. 부디 이해해 주시길.”

 레아는 순간 “뭐야? 난 항상 정상이거든?” 이라는 말과 “제발 조용히 좀 해 주세요. 인간들과 드래곤 로드 앞에서 자꾸 이런 추태를 보이실 겁니까?” 라는 말을 들은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그 대화에 대해서는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이내 은발의 엘프를 마주보았다.

 “저, 아까 드래곤 로드께서 손님들이 마저 오시고 이곳에 오신 이유를 들려주신다 했습니다. 그 손님들은 아마 당신들을 뜻하는 것 같은데, 당신과 저 금발의 엘프께서 저 분을 여왕님이라고 부르셨죠. 그리고 카탄께서는 저 분을 테사나님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럼 저 분이 정말 엘프퀸덤의 주인이자 포레스티스의 첫 번째 딸. 엘프 여왕 테사나님이 맞으십니까?”

 그 말에 은발의 엘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제 소개가 늦었군요. 저는 테사나님의 호위기사 중 하나인 엘프 루넬리아라고 합니다. 제국의 황녀님을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아, 루넬리아라고 하는군요. 반갑습니다. 그런데 루넬리아, 묻고 싶은 게 하나 있는데, 괜찮나요?”

 “얼마든지요.”

 “숲에서 제 뒤를 따라오셨던 건 당신들인가요?”

 두 명의 엘프는 순간적으로 얼어붙었다. 그 모습에 레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역시 당신들이었군요.”

 “...... 여왕님의 명이긴 했지만, 어찌됐든 죄송합니다. 알고 계셨습니까?”

 “뭐...... 멀리서 누군가의 시선이 간간이 느껴지는 것 같아서. 그 정도로 거리를 두고 따라온다는 것은 저를 죽이러 온 암살자 혹은 숲의 자식들 둘 중 하나니까요. 살의가 느껴지지 않는 시선이었기에 그냥 걸었습니다.”

 루넬리아와 아우카는 속으로 감탄했다. 엘프들의 추격은 요란스럽지 않다. 조용히 표적의 뒤를 밟기 때문이다. 하물며 엘프들의 거주지인 숲에서 그 추격을, 그것도 인간의 몸으로 그것을 알아채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 때 아투스가 눈썹을 꿈틀거리며 입을 열었다.

 “암살자?”

 그 순간 모든 이들은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었다. 무시무시한 살기가 자신을 짓누르고 옭아매는 느낌이었다. 레아는 간신히 입을 열어 대답했다.

 “네, 암살자.”

 “감히 누가 제국의 황녀를 건드린다는 말이지? 하물며 아르도르의 딸을?”

 방금 전 보다 더 짙고 무거워진 살기가 온 몸을 휘감았다. 레아는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가 내뱉었다.

 “그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드리기 전에, 로드께서 먼저 해 주셔야 할 이야기가 있지 않습니까? 손님들도 다 모인듯하니, 이곳에 오신 이유를 설명해 주시지요.”

 그 말에 아투스는 잠시 얼굴을 굳히더니, 테사나를 바라보았다. 테사나 역시 한숨을 내쉬며 그를 마주보았다. 짧다고 하면 짧다고 할 수 있는 침묵이 흐르고, 그 침묵을 먼저 깬 건 아투스였다.

 “테사나. 당신과 나, 아르도르 그리고 브뤤은 30년간 만나지 못했지. 그 이유는 말하지 않아도 알겠지.”

 “아르도르는 대전쟁으로 황폐해진 제국을 재건하는 데 열중했고, 브뤤과 나 역시 마찬가지였어. 하지만 당신은......”

 말을 잇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테사나를 아우카가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그러고 보니 아까 상황이 악화되었다고 말씀하셨죠. 그게 무슨 말씀이죠, 여왕님?”

 그 말에 아투스의 얼굴은 더욱 굳어졌다.

 “결국......”

 “아직은 아니야. 하지만 더 이상 지체하다가는 30년 전의 일이 반복될 수도.”

 테사나의 충격적인 발언에 레아와 카탄, 두 엘프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간신히 정신을 다잡은 카탄이 아투스에게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게 무슨 소립니까. 30년 전의 일이 반복된다니요.”

 아투스가 담담히 대꾸했다. 그러나 그 목소리 사이로 놀랍게도 두려움이 서려있었다.

 “자네가 생각하는 대로야, 카탄. 어쩌면 그 보다 더 한 일이 일어날 수도.”

 테사나가 떨리는 목소리로 그 뒤를 이어받았다.

 “악마들이 돌아올 거 에요."

 그 말에 루넬리아가 의아하다는 듯이 말했다.

 “하지만 그들을 이끌만한 대악마는 이미 30년 전에 두 분과 아르도르 황제, 브뤤님에게 쓰러지지 않았나요?”

 “그건 그냥 대악마들 중 하나였을 뿐이야.”

 아투스가 말했다. 그는 잠시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나머지 대악마들이 전부 깨어난다면?”

 그 한마디는, 지금껏 그 누가 해왔던 그 어떤 말보다도 영향력이 컸다. 그 이야기를 들은 이들은 온 몸을 누군가가 강하게 두드리는 듯 하는 충격을 받았다. 대악마. 그 말이 의미하는 바는 달랐다. 튀란누스라는 대악마 하나에게 대륙은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만 했다. 그렇다면 남은 대악마들이 이 대륙에 강림한다면? 그 뒤의 일은 불 보듯 뻔한 일이었다. 레아가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무슨 근거로 대악마들이 깨어난다는 거죠?”

 “그 얘기는.”

 아투스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아까 내가 먼저 한 질문에 답을 하고 난 뒤에 들려주도록 하지. 자, 말해라 황녀여. 누가 너의 목숨을 노린다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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