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남부군이 주둔하는 곳에는 성이나 요새가 존재하지 않았다. 아니,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들은 지상위에 존재하지 않았다. 하늘에 떠 있는 수십 척의 비공정들. 스킨틸라 제국이 자랑하는, 대륙 유일의 비공정 군단. 하늘의 요새. 그 중 어느 한 척의 선장실에 한 남자가 앉아있었다. 책장에는 여러 종류의 책이 가득 꽂혀있고 방 한쪽에 위치한 벽난로에서 불꽃이 일렁이며 춤을 추고 있었다. 그 광경을 홀린 듯이 바라보던 남자는 누군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총사령관님.”
무뚝뚝하면서도 섬세한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남자는 여전히 춤추고 있는 불꽃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입을 열었다.
“들어와요, 리페.”
이윽고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하늘을 닮은 푸른색의 머리카락과 옅은 붉은빛을 띠는 눈동자가 아름다운 여자였다. 남자보다 나이가 좀 더 들어 보이는 그 여자는 방 안을 휘 둘러보다가 여전히 벽난로에 시선을 주고 있는 소년에게 물었다.
“그렇게 오래 바라보고 계시면 실명의 위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제야 남자는 고개를 돌려 여자를 바라보았다. 짙고 시커먼, 그러나 아름다운 두 눈동자와 루비를 닮은 눈동자가 마주쳤다.
“불꽃의 춤이 아름답긴 하지만 그 것을 위해 내 두 눈동자를 바치고 싶지는 않네요. 그래서 무슨 일이죠?”
“......황제 폐하의 전령이 내려왔습니다.”
“그래요? 어차피 아버지를 가장한 어머니의 명령이겠지만. 어디 있죠?”
말없이 여자가 내민 봉투를 받아든 남자는 밀봉을 뜯고 그 속에서 나온 편지 한 장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잠시 방 안에 침묵이 흐르고, 남자의 시선이 편지의 끝부분에 찍혀있는 불꽃모양의 인장에 멈추자 그는 편지를 책상에 내려놓으며 피곤한 듯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가 손 안에서 불분명하게 울리는 발음으로 말했다.
“결국 라우스 연방을 침공하시겠다는 말씀이신가.”
“......이미 불가능하다고 총사령관님께서 답신을 보냈던 안건 아닌가요?”
여자의 조용하지만 분노가 섞인 목소리에 남자는 헛웃음을 지었다.
“뭐 어쩔 수 있나요. 황제 폐하의 명령인데.”
“황제 폐하가 아니라 황후마마의 명이겠지요! 이건 불가능한 싸움입니다! 총사령관님이 누구보다 잘 아시지 않습니까! 중앙군과 귀족들의 사병들까지 전부 끌어 모은다 해도 드라케니아를 뚫을 수 없습니다! 설사 운 좋게 비공정 몇 척이 드라케니아를 뚫고 지나간다 해도, 라우스 연방을 칠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대륙민들의 원망과 피가 대륙을 물들일 겁니다! 황후마마의 헛된 이상 하나 때문에!”
“리페.”
결국 폭발하고 만 여자의 분노에 남자가 대답한 한 마디였다. 그리고 그 한마디는 여자를 진정시키는 데 충분했다.
“......죄송합니다. 결례를 범했습니다.”
“아니에요. 저도 어머니의 이상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해요. 제국민들을 생각하시는 것 까지는 옳았지만, 그 방법이 잘못되었죠. 그렇다고 황제 폐하의 인장까지 써서 명을 내리신 이상 움직이지 않으면 안 되겠지요.”
“그럼......결국 이기지 못할 싸움에 목숨을 거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여자가 슬픔과 원망의 눈길로 남자를 바라보자 그는 그녀를 마주보며 미소 지었다.
“리페. 내가 언제 이기지 못할 수를 두는 걸 본 적 있나요?”
“......물론 총사령관님의 실력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리페는 예나 지금이나 걱정이 많군요. 나를 처음 만났을 때도 그랬죠.”
여자의 곱고 흰 얼굴이 그녀의 눈동자 색을 닮아갔다. 그런 여자를 보는 것이 즐거운 듯이 남자는 장난스럽게 웃고는 책상위에 두 팔을 놓고 그 위에 얼굴을 파묻었다. 두 눈동자만이 그녀를 보며 웃고 있었다. 여자의 얼굴이 더욱 달아오르는가 싶더니 그녀는 결국 고개를 돌려버렸다.
“절 희롱하시는 거라면 이만 나가보겠습니다.”
“아니에요. 희롱이라니. 전 그런 리페의 점이 참 좋아요. 걱정이 많다는 것은 신중하다는 뜻이니까. 10년 전 우리의 첫 만남에서 리페가 계단을 빠르게 뛰어 다니는 저를 보고 말했죠.”
“총사령관님! 주제에서 어긋난 이야기는 삼가 해 주십시오!”
붉게 달아오르다 못해 폭발하기 일보 직전인 얼굴로 여자가 외쳤다. 하지만 남자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끝맺었다.
“‘저러다 코가 박살나봐야 정신을 차리지’라고. 그 때의 리페는 참 귀여웠는데. 지금은 너무 차가워진 것 같아요.”
시무룩한 얼굴의 남자에게 아직도 붉은 기운이 남아있는 얼굴로 여자가 톡 쏘았다.
“그때야 철없이 황궁 안에서 뛰어다니는 한심한 인간이 황자라고는 상상도 못 했으니까요.”
“어쨌든 그 만남을 기점으로 우리는 급속도로 친해졌죠. 어릴 때는 내 이름을 잘만 불렀는데.”
“엘타.”
여자가 꺼낸 이름을 듣고 남자는 멈칫했다. 이내 그는 환하게 미소 지으며 대답했다.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네요. 나랑 단 둘이 있을 때는 그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리페.”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여자가 대답했다.
“아직도 어린아이네요, 당신은. 그래서 이 승산 없는 전쟁에서 이길 수 있는 방법이 뭔지 들려주시죠, 총.사.령.관.님.”
끝의 단어에 힘을 주면서 남자를 부르자 그는 씁쓸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벽난로로 시선을 옮겼다.
“육로로는 드라케니아를 거쳐야 라우스 연방으로 갈 수 있죠. 그렇지 않고서는 갈 수 없으니까. 그리고 그건 미친 짓이죠. 제국군의 전력을 걸고 드래곤들과 맞서야 하니까. 물론 승산은 없습니다. 리페 당신이 말한 것처럼 몇 마리를 쓰러트리는 게 고작이겠죠.”
여자는 남자의 말을 말없이 듣고 있었다. 남자는 다시 벽난로에서 시선을 돌려 여자를 마주보았다.
“그리고, 설사 드라케니아를 돌파하는 데 성공한다 해도, 그때쯤이면 이미 라우스 연방을 무너트릴만한 전력은 없겠죠.”
“그럼 어떻게......”
“우리는 바다로 갑니다.”
순간 여자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뭐라고 하셨습니까?”
“바다로 간다고 말했습니다.”
“설마 대륙을 돌아가실 셈인가요?”
“맞습니다.”
예상했던 답변에서 빗나가다 못해 부수고 뛰어넘어버린 답변에 여자는 멍하니 남자를 바라보다가, 한마디를 내뱉었다.
“미치셨습니까?”
“보다시피 정상입니다만.”
“총사령관님! 대륙을 돌아간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알고 계십니까! 아무리 우리 제국의 비공정들이라 해도 대륙을 돌아갈 정도의 마력석을 실을 수는 없습니다! 게다가 배에 싣는다고 해도 우리 제국에는 해군이 없습니다! 그 많은 배들을 어디서 구합니까!”
남자는 톡톡 책상을 두드리다가, 빙긋 웃어보였다.
“그 많은 마력석을 꼭 배에다 실으라는 법은 없죠.”
미친 사람을 보는 듯 하는 눈길로 그를 바라보던 여자가 대답했다.
“그럼 어디에 실으려 하십니까? 아무리 총사령관님의 지략이 대단하다 해도, 이번만은 그냥 넘길 수가 없군요.”
“리페. 아까 내가 뭐라고 말했었죠?”
의아해하는 여자에게 남자는 두 손을 모아 턱을 괴며 말했다.
“나는 이기지 못할 수는 두지 않습니다.”
벽난로의 불꽃이 조용히, 매섭게 타오르고 있었다. 남자의 두 눈동자 역시 그 불꽃을 닮아있었다.
볼룬타스 고원의 밤은 고요하지만 어둡지 않았다. 제국군의 야영지로 변모한 그 곳은 곳곳에서 불꽃이 타닥거리며 어둠을 태우고 있었고, 보초를 서는 병사들 이외에는 대부분의 이들이 꿈에 사로잡힌 시간이었다. 그러나 다른 곳 보다 조금 더 큰 천막에서는 불빛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그래서...... 드래곤하트와 검이 있어야 황위 계승식이 가능하다? 그래서 황후가 너를 쫓는 거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던 레아를 보며 아투스가 이를 으득 갈았다.
“내가 당장 이년을 찢어죽이겠다! 친우를 볼모로 삼은 것도 모자라 그 딸을 죽이려 해?”
분노에 찬 외침과 함께 무시무시한 살기가 그 곳에 있던 모든 이를 짓눌렀다. 황금빛 눈동자는 분노를 뿜으며 타오르고 있었다.
“그런데 왜 자신의 아들을 황제로 세우려는 걸까.”
테사나의 의문에 아투스는 한숨을 내쉬며 천막 안에 있던 등받이 의자에 몸을 기댔다.
“황제의 자리는 하나니까. 그리고 레아가 황제가 된다면 황후의 자식은, 그것도 2황후의 자식들은 그저 황족으로 남아있어야 할 뿐이야.”
“몇 백 년을 그들과 함께 살아왔건만, 아투스 당신 말대로 인간들은 이해하지 못하겠어. 모든 이들의 정점에 서 있다는 것은 반대로 그 모든 이들을 짊어지겠다는 이야기야. 차라리 황족으로 남아서 편하게 일생을 누리는 것이 훨씬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지도자의 자리가 뭐가 좋다고 그리 집착하는 걸까, 황후는.”
“......마지막 말씀은 여왕님을 믿고 있는 우리 종족을 배신하는 말 아닌가요?”
곁에 있던 아우카의 말에 테사나는 활짝 웃어보였다.
“걱정 마! 아우카랑 루넬리아는 내가 끝까지 책임질게!”
“그게 아니잖습니까!”
티격태격하는 둘을 뒤로 하고 루넬리아가 레아에게 다가왔다. 깊고 푸른 눈동자가 레아를 따뜻하게 감싸 안았다. 그녀가 입을 열었다.
“엘프인 제가 이런 말을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그 동안 정말 고생하셨습니다.”
그 말에 레아는 또 다시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간신히 그것을 억누른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감사합니다, 루넬리아씨.”
“그래서 이제 어쩔 셈이지? 내 레어로 올 텐가? 지내는 데 불편함은 없을 거야. 아니면 조금 위험하더라도 북부군의 성에 있다가 아르도르를 구출할 텐가? 그것도 아니면 엘븐퀸덤? 여성들이 많이 있어서 지내기에는 제일 편할지도 모르겠군.”
“나는 언제든지 환영이야!”
두 팔을 벌려 레아를 끌어안으려던 테사나는 아우카와 루넬리아에 의해 저지당했다. 그런 테사나를 보며 레아는 깔깔 웃었다. 참으로 오랜만에 크게 웃어보는 것 같았다. 웃음을 멈추고 레아가 말했다.
“제가 어디로 가던 현재로서는 제일 안전한 곳들이겠지요. 하지만 어디에 머물던 잠시뿐입니다. 최종적으로는 황궁을 탈환해야하니까요.”
“그럼 우리 성에 머무시지요. 빠른 시일 내에 황궁으로 향할 수 있도록 준비해놓겠습니다.”
카탄의 말에 레아는 고개를 저었다.
“아뇨, 카탄의 호의는 고맙지만 북부군이 수도로 향한다면 황후가 정말로 어떻게 나올지 모릅니다. 그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전에, 아투스님. 이제 아까 했던 대악마와 관련된 이야기를 마저 해 주시지요.”
“흠? 나야 상관없다만 아버지를 구출하는 일이 우선 아닌가?”
“물론, 당장이라도 북부군을 이끌고 아버지를 구해내고 싶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아버지를 구출하고 제가 황제의 자리에 올라선다 해도, 대악마들이 대륙에 강림하는 순간 모든 것은 수포로 돌아갑니다. 대륙이 존재해야 대륙민들도 존재하고, 제국도 존재하겠지요.”
아투스가 씩 웃어보였다.
“참으로 똑똑한 아이야.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드는군. 좋아, 이야기해주지.”
표정을 굳힌 아투스가 입을 열었다.
“30년 전, 대전쟁이 막을 내린 후, 아르도르는 제국으로 돌아갔고 우리와 브뤤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지. 대륙 곳곳에서 비정상적인 마나의 흐름이 감지되고 있었어. 마나가 아예 흐르지 않는 곳도 있었고, 과도하게 마나가 뭉쳐있는 곳도 있었지. 자연스레 흘러가야 할 마나가 마치 누가 일부러 끊어놓고 비틀어놓은 듯이.”
“그런 마나의 흐름을 되돌려놓으려고 아투스는 대륙 곳곳을 돌아다녔어요. 원인은 아직까지 찾지 못 했지만. 저 역시 엘븐퀸덤에서 마나가 비정상적으로 흐른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지만, 함부로 움직일 수 없었어요. 개개인으로 생활하는 드래곤과는 달리, 저는 저를 믿고 따르는 이들이 있었으니까요. 간간이 연락만 하며, 아투스가 대륙의 마나가 정상적으로 흐를 수 있도록 힘쓰고 있는 것을 지켜볼 수 밖 에는 없었어요. 그렇게 30년이 흐르자, 대륙의 마나는 서서히 흐름을 되찾아가기 시작했어요.”
테사나가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이어받았다.
“그러던 와중 얼마 전의 일이었어요. 저는 꿈을 하나 꿨어요.”
그녀의 얼굴은 더욱 어두워졌다.
“그 꿈에서 제가 본 것은 파멸이었어요. 살아있는 생명은 없었어요. 인간, 엘프, 난쟁이, 드래곤, 악마들의 시체가 산을 쌓고 있었어요. 그리고 그 시체 위에 서 있던 건......”
“......대악마들.”
굳다 못해 일그러진 얼굴로 이야기를 듣고 있던 카탄이 대답했다. 그러나 테사나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저 아이였어요.”
테사나의 손가락이 가리킨 건 아투스의 옆에 말없이 서 있던 소년이었다. 그 말에 모든 이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제일 황당해하는 것은 소년이었다. 그는 거의 말을 하지 않고 가만히 생각에 빠져있던 터라 사람들은 그의 존재를 잠시 잊고 있었다. 아투스도 맨 처음에 자신의 아들이라고만 소개했을 뿐 별다른 말이 없던 터였다.
“저요?”
테사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탄은 어쩔 줄 몰라 하며 입을 열었다.
“뭐...... 아직 어린 소년이시긴 하지만, 다름 아닌 드래곤 로드의 아들이시니...... 그렇지만 대체 왜......”
“저...... 테사나님. 무례하게 들릴 수 있지만 한낱 꿈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레아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아우카가 담담히 대답했다.
“황녀님, 여왕님은 미래를 볼 수 있으십니다. 포레스티스님의 첫 번째 딸들이 대대로 물려받은 능력이지요. 그리고 미래를 볼 수 있는 매개체는 다름 아닌 ‘꿈’입니다.”
“한번만 더 실례를 무릅쓰고 묻겠습니다. 그 예언들은, 항상 들어맞았습니까?”
이번에는 루넬리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리고 그 꿈들은...... 엘프 종족의 운명이 걸려있는 사건들을 예언해왔습니다.”
“30년 전 대전쟁도 꿈에서 볼 수 있었어요. 그 꿈의 결말은 레아 당신이 아는 대로였어요. 그리고 저는 이번 꿈을 꾼 후 자주 잠에 들어요. 행여 예언이 바뀔까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하지만 바뀌는 건 없었죠. 예언을 보지 못하면 그저 아무 꿈도 볼 수 없어요. 그래서 나는 다른 꿈을 꿀 수 없죠. 제가 이 능력을 싫어하는 이유에요.”
가라앉은 목소리로 대답하는 테사나에게 레아는 작은 탄식을 내뱉었다.
“죄송합니다, 여왕님. 그런 줄도 모르고 쓸데없는 소리를......결례를 용서해 주십시오.”
그녀의 사과에 테사나는 살며시 웃어보였다.
“아니에요. 괜한 푸념을 늘어놓았네요.”
“그럼 요즘 자주 잠드시던 이유가......”
루넬리아가 안타까운 듯 말을 잇지 못하자 테사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걱정 마. 몸에 무리가 오거나 그런 건 없으니까. 그저 꿈을 꾸지 못한다는 게 안타까울 뿐이야.”
그리고 아투스가 입을 열었다.
“그 예언이 들어맞는 이유가 있지. 대륙의 마나가 또 다시 뒤틀리기 시작했어.”
“그럼 여왕님이 상황이 악화되셨다고 한 게......”
아우카가 탄식하자 아투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마나가 뒤틀리면 무슨 문제라도 생기는 겁니까?”
카탄의 물음에 아투스는 자신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마나라는 것은 세계를 순환하는 생명의 흐름과도 같지. 흐름이 끊기면 당장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아. 하지만 점점 그 흐름이 뒤틀리면, 마법사들은 마법을 사용할 수 없게 되고, 식물이나 동물들도 태어나지 않아. 뭔가 설명하기 어렵지만, 그 뒤틀림이 반복되다 보면 세계는 점점 혼돈에 잠식되겠지. 그리고 그 광경을 마계의 주인들이 가만히 보고만 있을 것 같나? 또다시 전쟁이 일어나겠지. 물론 테사나의 꿈에서는 대악마들은 없었지만, 대륙 자체를 초토화시킬 존재라면 그들 외에 생각해 볼만한 이들은 없지. 그런데 하필 왜 내 아들인가. 내 아들이 그 파멸을 주도하기라도 한다는 건가? 이 녀석은 그럴 능력이 없어.”
“......당사자 앞에서 대놓고 말씀하시네요.”
아투스의 곁에 서 있던 소년이 입을 열었다. 카탄은 그런 소년을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로드의 아들분이시잖습니까? 로드 못지않은 힘을 가지고 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입니다만. 아 물론 정말로 대륙을 멸망시키실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 말에 아투스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고, 소년은 쓰게 웃었다.
“죄송하지만 저는 그런 힘이 없습니다.”
아투스가 소년의 머리에 손을 툭 얹으며 말했다.
“이 녀석은 마법을 사용하지 못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