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연재 > 판타지/SF
황녀는 날지 않는다
작가 : 여름별밤
작품등록일 : 2017.1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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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쟁이들의 왕 (2)
작성일 : 17-11-26     조회 : 362     추천 : 0     분량 : 4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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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케니아의 중앙에 위치한 동굴이 있었다. 자연적으로 생긴 동굴은 땅 밑으로 연결되어 있었는데, 드래곤 로드 아투스의 레어가 바로 이곳이었다. 그리고 그 곳에 두 남녀가 있었다.

 “어디까지 연결된 거야 대체......?”

 경악에 찬 목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퍼졌다.

 “그렇게 큰 편도 아니야. 본체의 모습으로는 이곳도 좁아.”

 태연히 받아친 아투스가 자신의 레어를 둘러보고 있었다.

 “그런데 과연 그 아이들이 잘 해낼 수 있을까.”

 그 곁에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테사나가 묻자, 아투스는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어쩔 수 없어. 당신도 알잖아. 당신의 예언이 가지는 의미가 어떤 것인지. 대재앙. 파멸. 우리에게 그런 걸 막을 힘이 남아있던가? 아우카와 루넬리아라고 했지. 당신이 제일 아끼는 아이들이지? 그 아이들 눈에는 당신과 내가 아직도 30년 전의 대악마를 쓰러트린 존재들로 보이는 것 같던데. 진실을 들려주지 않았군?”

 “당연하지. 당신 같으면 진실을 말할 수 있겠어? 그리고......그건 당신도 마찬가지잖아. 당신 아들은 당신의 힘이 그대로인 줄 알지?”

 테사나의 되물음에 아투스는 쓰게 웃고 말았다.

 “맞아. 나 역시 당신에게 뭐라 할 처지는 못 되는군.”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고, 아투스가 입을 열었다.

 “테사나. 당신 말대로 나 역시 걱정이 되지 않는 건 아니야. 하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별로 없어. 튀란누스가 쓰러진 이후 대악마들이 왜 이 대륙을 침공하지 않았을까? 우리 때문이야. 하지만 이제......”

 아투스는 차마 말을 잇지 못하며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한숨을 내쉬는 건 테사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서로 처음 만난 아이들에게 브뤤을 만나고 오라는 막중한 임무를 시켰어? 그것도 단순히 만나는 일도 아니고, 난쟁이 일족을 다시금 전쟁에 끌어들이는 임무를? 우리가 직접 가도 되잖아. 아니면 우리 일족을 보내던지.”

 “우리가 가면 좋겠지만 어쩔 수 없어. 당신도 느낄 테지? 마나의 흐름이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지.”

 그 말에 테사나의 얼굴에 옅은 그림자가 깔렸다.

 “당신이 30년간 잡아놓은 마나의 흐름이 다시금 뒤틀리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

 “그건 표면적인 이유야. 진짜 마나가 뒤틀리고 있는 이유를 아이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 허나 우리들은 알고 있잖아. 마나가 왜 뒤틀리기 시작했는지.”

 “......차원과 차원사이에 억지로 균열을 만들기 때문이지. 당신은 지난 30년간 그 균열을 막으러 다닌 거였고.”

 “그래. 그 덕분에 나는 힘을 상당히 소진했어. 지금까지는 어찌어찌 막아왔지만, 더 이상은 무리야. 곧 균열을 메우고 있던 힘이 약해진 것을 눈치 채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겠지. 어쩌면 벌써 대륙에 발을 내딛었을 수도.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뿐이야.”

 “그래서 그 할 수 있는 일이 뭔데?”

 테사나의 물음에 아투스는 말없이 손을 허공에 뻗었다. 푸른빛이 손끝에서 흘러나오며 동굴 안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강림을 막지 못했으니 다시 돌려보내야지. 그들이 있을 곳으로. 30년 전에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건 이미 준비하고 있는 일이잖아? 아이들을 브뤤에게 보낸 것도 그런 이유고.”

 의아하게 묻는 테사나에게 아투스는 고개를 저었다.

 “그 전쟁을 준비하기 위해서 브뤤에게 보낸 게 맞지. 하지만 그 전쟁을 위해서는 우리와 난쟁이들로만은 부족해.”

 푸른빛에 의해 일렁이는 허공에 어떤 장면이 떠올랐다. 그 모습을 본 테사나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진심이야?”

 “진심이야.”

 “제정신이야? 저놈들은 30년 전 대전쟁에 참전하는 것조차 거부했어! 이제 와서 뭐가 달라질 것 같아?”

 “테사나...... 당신 마음은 잘 알겠지만, 이번은 달라. 단순히 대악마 하나를 상대하는 데에도 엄청난 희생을 치러야만 했어. 하물며 그들이 몰려온다면? 그리고 저들도 30년 전의 비극을 눈으로 똑똑히 지켜보았어. 우리가 무너지면 다음은 그들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겠지.”

 “......좋아. 반대하지는 않겠어. 하지만 똑똑히 알아 둬. 저놈들은 스스로의 이익에만 움직이는 놈들이야. 언제 뒤를 칠지 모르는 놈들이라고.”

 아투스가 한숨을 내쉬었다.

 “나도 알아. 하지만 어쩌겠어. 딱히 다른 방법이 없는데.”

 두 사람이 바라보고 있는 것은 다부진 근육질의 몸 위에 뭉툭한 코, 무엇보다 다물고 있는 입에서 솟아나온 날카로운 송곳니를 가진 자들이었다. 그런 그들을 보며 테사나가 탄식을 내뱉었다.

 “많고 많은 종족 중에 하필 오크라니......”

 푸른빛이 약해지며 오크들의 모습도 서서히 사라졌다. 아투스가 입을 열었다.

 “그럼 가 볼까.”

 여전히 얼빠진 표정으로 중얼거리던 테사나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아투스의 손이 움직였고, 허공이 일그러지는가 싶더니 그곳에는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동굴 입구에서 들려오는 바람소리만이 맴돌고 있었다.

 

 

 

 

 “맙소사.”

 아우카는 감탄과 경악이 뒤섞인 눈으로 자신의 앞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것은 루넬리아와 아테란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의 시선이 집중된 곳에서, 레아가 마지막 남은 악마에게 검을 휘두르고 있는 참이었다. 악마는 발악하듯 창을 휘둘렀지만, 레아의 검은 간단히 창을 흘려보낸 후 악마에게 날아들었다.

 “크헉!”

 붉은 피와 함께 팔 하나가 떨어졌다. 비틀거리던 악마는 분노에 찬 듯 레아에게 달려들었지만, 순백의 섬광과 함께 가슴에서 피가 튀기며 악마가 무릎 꿇었다. 그런 악마를 일말의 감정조차 담지 않은 눈으로 내려다보며 레아가 말했다.

 “말해. 어디서, 어떻게, 왜, 누구의 명령을 받고 온 거지?”

 팔이 떨어져나간 어깨를 움켜쥐고 있던 악마는 고통 속에서도 냉소를 흘려보냈고, 그 바람에 기괴한 표정으로 레아를 바라보게 되었다.

 “죽여라, 인간. 네가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레아는 말없이 검을 들더니, 그대로 악마의 남은 팔 하나에 들이밀었다.

 “하나만 말해주지. 네가 지금부터 내 질문에 만족스러운 대답을 하면 편하게 보내주겠어. 하지만 지금처럼 입을 다물거나 헛소리를 지껄인다면.”

 레아가 싱긋 웃었다.

 “겪을 수 있는 모든 고통을 겪은 후 천천히 죽여주겠어.”

 그 광경을 지켜보던 아우카가 루넬리아에게 소곤거렸다.

 “누가 악마고 누가 인간인지 모르겠어요.”

 “아우카! 실례에요!”

 그런 아우카에게 루넬리아는 핀잔을 주었다. 그때 곁에서 지켜보고 있던 아테란이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황녀님. 이 녀석은 제게 맡겨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를 잠시 바라보던 레아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물러섰다. 악마는 코웃음을 치며 여전히 피가 뚝뚝 떨어지는 팔을 움켜잡고 있었다. 아테란은 품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연한빛의 녹색 보석이 박힌 목걸이였다. 그는 재빨리 그것을 악마의 목에 채웠다.

 “이게 무슨 짓거리......!”

 으르렁거리던 악마의 눈동자에 초점이 사라졌다. 그런 악마에게 아테란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자, 답해라. 누가 너희를 보냈지?”

 악마는 순순히 입을 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그 자리에 있던 모두에게 깊은 절망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팔시타스.”

 아우카와 루넬리아는 한숨을 내쉬었고, 레아는 굳은 표정으로 말없이 서 있을 뿐이었다. 아테란은 조용한, 여전히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을 이어나갔다.

 “대악마 팔시타스를 말하는 건가?”

 “그렇다.”

 “왜 너희를 보낸 거지?”

 “난쟁이들을 데려가기 위해서다.”

 “무엇을 하기 위해서?”

 그리고 아무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아테란은 당황하며 악마를 들여다보았고, 이내 고개를 저으며 레아를 바라보았다.

 “출혈이 너무 심한 나머지......”

 “죽었나요?”

 “아뇨. 하지만 이대로 놔뒀다가는 죽고 말 겁니다.”

 “잠시 나와 주세요, 아테란.”

 그렇게 말한 레아가 검을 들어올렸다. 아테란은 기겁하며 그녀를 막아섰다.

 “안됩니다! 아직 정보도 제대로 얻지 못했잖습니까.”

 “어차피 그 상태로는 제대로 된 정보도 얻지 못할 거 에요. 설사 우리가 치료해준다고 해도 그 자가 제대로 된 정보를 내놓으리라는 보장이 어디 있죠?”

 아테란은 조용히 대답했다.

 “황녀님. 주위를 둘러보세요.”

 레아는 자신의 주위를 휘 둘러보았다. 악마들의 시체가 나뒹굴고 있었고, 나무와 땅을 피가 흥건하게 적시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자신의 손을 보았다. 붉은 피가 흐르는 검을 보며 그녀는 문득 어지러움을 느꼈다.

 “조금 쉬고 계세요. 여기서부턴 제게 맡기기로 하셨잖습니까.”

 나지막한 아테란의 말에 레아는 들어 올린 검을 거두었다.

 “알겠습니다.”

 그리고 레아는 몸을 돌리며 한마디를 던졌다.

 “옳은 판단이리라 믿고 싶습니다.”

 그 말에 아테란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

 “믿으셔도 됩니다.”

 악마와 아테란을 뒤로 하고 레아의 걸음이 닿은 곳은 그때까지도 자신들을 가만히 지켜보던 한 남자의 앞에서 멈췄다. 자신보다 현저히 키가 작은 남자를 내려다보며 레아는 말했다.

 “그럼 우리는 우리의 이야기를 나눠보도록 할까요.”

 “......무슨 이야기가 하고 싶은 거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난쟁이족의 힘이 필요합니다.”

 “그건 내가 결정할 문제가......”

 “시치미 떼시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브뤤님.”

 그 말에 난쟁이는 붉은 수염을 만지작거리더니, 이내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부터 눈치 챈 건가.”

 “샐러맨더의 불을 그렇게 자유자재로 다룬다는 것은 적어도 난쟁이들 중에서도 수준급, 아니 최고의 대장장이라는 얘기니까요. 그리고 난쟁이족에서 최고의 대장장이가 뜻하는 것은 하나지요. 대장장이의 왕.”

 “......자네 말이 맞네. 아비를 닮아 눈치 하나는 빠르군.”

 그 말에 레아의 눈동자가 희미하게 흔들렸다.

 “제 아버지를 아십니까?”

 난쟁이가 장난스런 미소를 지으며 레아의 검을 가리켰다.

 “자신이 만든 물건도 알아보지 못한다면 그건 대장장이가 아니지.”

 그 말과 함께 난쟁이는 정중히 두 팔을 벌렸다.

 “작은 자들의 땅에 온 것을 환영하네, 제국의 황녀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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