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쟁이들의 왕 브뤤에게는 독특한 능력이 있었다. 다른 난쟁이들에 비해 월등히 육감이 좋다는 것이었다. 태어날 때부터 그런 건지, 아니면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생겼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의 감은 타고난 편이었다. 30년 전 대전쟁이 일어나기 전 그는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고, 튀란누스에 의해 대륙이 짓밟히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지 않은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최근 들어 그 불안감이 다시 자신을 엄습하는 것을 느꼈다. 그러던 중 난쟁이들이 실종되기 시작했다. 자신을 짓누르는 불안감과 실종되고 있는 난쟁이들에 대한 걱정으로 피폐해져가는 그를 일으켜 세운 것은 또 다른 감이었다. 이번에는 다행히 불안감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이 두근거렸다. 긍정적이면 긍정적이랄 수 있는 감에 어느새 자신의 발은 난쟁이들이 마지막으로 실종되었던 공방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곳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얼마 전 자신이 보았던 모습 그대로, 부서진 조각상만이 나뒹굴고 있는 모습이었다. 실망하고 발걸음을 돌리던 그 때, 수평선 너머에서 무언가가 빠르게 날아오고 있었다. 태양의 섬광마저 몰아내는 그 검은 존재는 서서히 공방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착륙했다. 브뤤은 재빨리 몸을 숨겼고, 이내 그의 눈에 네 명의 남녀가 들어왔다. 그리고 그는 똑똑히 볼 수 있었다. 30년 전 자신이 만든 검이자, 대악마를 쓰러트렸던 용감한 인간에게 우정의 증표로 건넸던 검을. 그 검은 인간 여자의 허리춤에 매달려있었다. 처음 보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도 낯설다고 느끼지 않았던 까닭은 아마도 아르도르의 모습이 언뜻 보여졌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확신이 필요했다. 그녀가 아직 아르도르의 딸이라는 증거도 없으며, 검을 가질만한 자격이 있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브뤤은 지팡이를 들어올렸다.
“그 다음은 자네들이 알고 있는 대로일세.”
브뤤이 붉은 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있던 레아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대꾸했다.
“확인 치고는 거창하게 한 방 날리셨군요.”
브뤤이 껄껄 웃었다.
“미안하이. 맨 처음에는 엘프 아가씨의 도움을 받기에 살짝 의심도 들었지만, 악마들을 베어 넘기는 모습은 자네 아버지의 젊을 적 모습 그대로더군, 거기서 확신했지. 아르도르의 딸이 틀림없다고.”
“그런데, 난쟁이들의 실종이라니. 역시 저들과 관련이 있는 걸까요?”
어느새 두 사람 곁으로 다가온 루넬리아가 쓰러진 악마들을 가리키며 묻자, 브뤤의 얼굴은 딱딱하게 굳었다.
“아마도 그렇겠지. 저들은 30년 전에도 우리 난쟁이들의 기술을 탐냈으니까. 아까 자네들을 보고 난쟁이들이 아니라며 전부 죽이려고 하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째서 이제 와서 저들이 나타난 건지......”
“우리가 찾아온 건 그 때문입니다.”
의아해하는 브뤤에게 레아가 말을 이어나갔다.
“이미 느끼셨다고 하니 말씀드리겠습니다. 30년 전의 대전쟁보다 더 큰 재앙이 일어날 겁니다. 우리는 그걸 막기 위해서 이곳에 온 거고요. 하지만 악마들이 한발 빨랐군요.”
레아의 검은 두 눈동자가 브뤤에게 똑바로 향했다.
“도움이 필요합니다, 브뤤님.”
스킨틸라의 황궁. 그 곳의 그랜드 홀(Grand Hall). 평소라면 황제를 알현하러 온 귀족들이 질서를 지키고 서 있어야 할 장소였지만, 오늘은 그저 두 명의 남녀만이 그 자리를 채우고 있었다.
“그래, 용기병들을 데려가겠다고?”
의자에 앉아있던 루마의 입이 열렸다.
“그렇습니다.”
간단히 대답한 엘타가 그녀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루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마주보았다.
“좋아. 데려가거라.”
간단히 고개를 숙여 보인 엘타가 몸을 돌려 홀의 문으로 향했다. 그런 그의 뒤에 루마의 목소리가 날아들었다.
“부디 실망시키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아들아,”
걸음을 멈춘 엘타가 뒤돌아보지 않은 채 대꾸했다.
“제가 했던 말이나 잊지 마시길.”
“......북부군에 관해 말했던 것 말인가. 알겠다. 내 그리 하겠다.”
이내 묵직한 것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넓은 홀 안에 루마만이 홀로 앉아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입을 열었다.
“언제까지 숨어 있을 겁니까, 울투르.”
루마에게서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홀의 기둥 뒤에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 짧고 붉은 머리카락과 잘 어울리는 다갈색 피부의, 다부진 몸의 남성이었다. 그의 연한 금빛 눈동자가 엘타가 나간 문을 향했다.
“결국 황후마마가 원하신 대로 흘러가는군요.”
“중요한 건 저 아이가 황위에 앉는 것이니까요. 황제의 상징이 없다면 그에 준하는 공을 세우면 됩니다.”
그 말에 울투르는 루마를 바라보았다.
“그 공이란 것이 전쟁을 일으키는 것입니까.”
“정확히는 ‘그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라고 불러야 맞겠지요.”
“......황자님이 연방을 무너트릴 수 있다고 보십니까.”
울투르의 물음에 루마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가늘게 떴다.
“무너트릴 수 없다면 저는 저 아이를 부르지도 않았을 겁니다.”
담담하지만 확신이 담긴 목소리에 울투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이제 본론으로 넘어갈까요, 저를 부르신 이유가 뭡니까.”
“당신 용병단이 제 의뢰를 실패한 건 알고 있나요?”
“황녀님이 소드 마스터라는 사실은 알려주지 않으셨잖습니까. 덕분에 우리 용병들만 다쳤고요. 의뢰를 실패했기에 치료비와 의뢰비는 받지 않겠습니다만, 다음부터는 적어도 의뢰 대상에 대한 정보를 좀 더 주셨으면 합니다.”
울투르의 핀잔에 루마는 고개를 한숨을 내쉬었다.
“......좋습니다. 그건 제 불찰입니다.”
그리고 루마는 곁에 있던 탁자 위에 놓여있던 가죽 주머니를 집어 들었고, 이내 그 속에서 무언가를 꺼내 던졌다. 가볍게 그것을 받아낸 울투르는 의아함과 당혹함에 찬 눈빛을 루마에게 보냈다.
“그게 뭔지 궁금하겠죠.”
루마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울투르의 손에는 휘황찬란한 빛을 뿜어내고 있는 보석이 들려있었다.
“시데랄리스 왕국의 다이아몬드. 의뢰했던 비용의 몇 배는 될 겁니다.”
“......의뢰비는 받지 않는다고 했을 텐데요.”
루마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고, 울투르는 표정을 굳혔다.
“원하는 게 뭡니까.”
“당신이 용병단을 이끄는 이유를 알아보았는데.”
질문의 의도와 빗나간 대답이었지만 울투르의 표정은 더욱 더 굳어졌다.
“뒷조사를 하신 겁니까.”
“너무 기분나빠하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당신들을 고용하려면 당신들이 어떤 용병단인지는 알고 고용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루마의 대답에 울투르는 여전히 불만에 가득 찬 얼굴이었지만, 입을 다물었다. 그 모습에 루마는 희미하게 미소를 띠었다.
“여동생분이 많이 아프다고 들었어요.”
순간 울투르의 눈이 루마를 날카롭게 쏘아보았다. 그러나 루마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나갔다.
“그것도 상당히 희귀병이라, 특별한 약이 필요하다고 들었습니다. 당신은 그 약값을 대기 위해 용병단을 이끌고 있는 거고. 하지만 단원들에게 몫이 돌아가면 당신에게 돌아오는 건 별로 없죠.”
“본론만 말씀하십시오.”
낮게 으르렁거리는 울투르에게 루마는 무표정한 얼굴로 한마디를 던졌다.
“당신 여동생을 고쳐주겠어요. 대신.”
루마의 손가락이 그녀의 뺨을 톡톡 두드렸다.
“황녀의 검과, 드래곤 하트를 가져 오세요.”
“......불가능합니다, 황후마마. 우리 단원들이 실패하는 것을 보셨지 않습니까.”
“‘당신’이라면 가능하지요.”
자신의 대답을 부정하는 말에 울투르의 입술이 꿈틀거리며 열렸지만, 루마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드래곤 슬레이어(Dragon Slayer) 울투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