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장-2
천류영이 있는 칸막이 내실과 복도를 사이에 두고 자리한 맞은편 자리.
그 자리에는 남장을 한 독고설이 자신의 호위무사 겸 현무단 오조 부조장인 조전후(趙全珝)와 마주 앉아 있었다.
조전후.
사문인 독고세가에 있는 열여덟 명의 일대제자 중 하나. 육 척 장신에 오 척의 어마어마한 대검을 사용하는 중년인.
그의 얼굴은 우락부락하고 뺨의 절반 가까이나 수염으로 뒤덮여 마치 흉신악살(凶神惡殺)을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길을 가다가 어린아이가 그의 얼굴을 보면 오줌을 지리거나 우는 일이 태반일 정도로 험상궂은 인물.
싸울 때는 오 척의 대검을 이용해 한 번에 세 명의 허리까지 양단한 적이 있을 정도로 괴력의 소유자였다.
입구에 발이 쳐 있었지만, 그들은 자신의 공력을 이용해 발 너머의 천류영 일행을 보는 건 일도 아니었다.
처음에는 별 희한한 사람들인가 싶었다.
복색은 남루한데 비싼 음식들을 잔뜩 시키고는 말도 없이 앉아만 있는 것이 신기했다.
특히나 묘하게 사람을 끄는 우울한 느낌이 신경을 거슬리게 했다.
그래서 독고설은 천천히 식사를 하며 귀를 쫑긋 세우고 옆자리의 대화를 훔쳤다.
한 사람이 표국에서 잘리고 다른 사람이 배웅하는 자리였다.
마흔 둘의 조전후가 혀를 차며 말했다.
“쯧쯧, 순진한 사람들입니다. 함께 일하는 표국 사람들이 없다고 저리 떠들어 대다니. 만약 근방에 표국과 관련된 사람이 있다면 저 모든 말이 국주에게 들어갈 터인데.”
조전후는 독고설이 맞은편 자리에 관심을 갖자 자신도 엿듣고 있던 것이다.
“그렇죠. 하지만 다행히 주변의 사람들은 평범한 사람들이라 우리처럼 엿듣는 자들은 없는 것 같네요.”
기감을 펼쳐 주변을 확인한 독고설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
“예, 그런 것 같습니다.”
조전후도 다행이라는 표정으로 슬쩍 입꼬리를 올렸다.
그도 독고설과 마찬가지로 기를 끌어 올려 주변 자리 사람들을 확인했던 것이다. 그러다가 둘의 시선이 허공에서 엉켰다.
둘 다 어처구니없다는 표정이었다.
왜 자신들이 저 사람들을 신경 쓰고 있는 것일까? 저들의 말이 표국에 알려져 치도곤을 당하든 말든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나 서로는 이내 웃음을 머금었다.
약한 자를 배려하고 보호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협객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었다.
물론 이 사소한 관심이 거창하게 협의지도(俠義之道)까지 내세울 수 있는 건 절대 아니다.
그래도 억울한 사정이 있는 저들이 괜한 보복까지 당하지 말기를 바라는 마음이 서로 통했다는 점에서 독고설과 조전후는 마주 보며 미소 지었다.
조전후가 화제를 돌렸다.
“아가씨, 가주님과 식사 한 끼도 안 하실 겁니까?”
“아저씨, 저는 사문이 아니라 무림맹의 일원으로 이번 싸움에 참가하는 거예요.”
“그래도…… 아까 가주님께서 목례만 하고 가시는 아가씨를 보시고는 섭섭해하셨습니다.”
“아저씨! 저는 이번 기회에 가문의 배경이 아닌 제 실력으로 우뚝 서고 싶다고 누누이 말했죠!”
“…….”
“그리고 아가씨라는 호칭은 그만두시라니까요.”
조전후가 덩치와 인상과는 어울리지 않게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아니, 그는 겉보기와는 달리 정말 여리고 섬세한 구석이 있는 사람이었다.
“예. 현무 오조장님.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아가씨도, 아니, 오조장님도 실언하셨습니다.”
“예?”
“아저씨가 아니죠.”
“아! 네, 부조장님.”
“하하하.”
“호호호.”
둘은 잠시 어색했던 분위기를 웃음으로 추스르고는 다시 식사를 하며 침묵했다.
애초에 두 사람은 식사를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사근사근한 성격은 아니었다.
물론 술을 마시게 되면 달랐지만…….
맞은편 내실에서의 수다는 계속됐다. 때로는 침묵이 그리고 다시 웃음이.
그들이 웃고, 울고, 말하는 것에 독고설은 어느새 다시 몰두하고 있었다. 가슴 한구석이 찡해졌다.
독고설이 입을 열었다.
“무림에 살면서 늘 긴장만 하다가 순수한 사람들의 때 묻지 않은 감정과 넋두리를 들으니…… 우리도 모르게 마음의 빗장을 저들에게 연 것 같아요. 그래서 계속 엿듣게 되는 것 같네요.”
“…….”
그녀는 사실 가장 치열하게 사는 사람은 자신처럼 무가에서 태어나 도삼검림의 무림에서 사는 무인들이라고 생각했다.
언제 죽을지 모르는 생사투(生死鬪)의 현장에서 사는 사람들.
하지만 저들의 대화를 듣고는 약간의 심경 변화가 일었다.
‘어쩌면 저들의 치열함도 나 못지않을 수도 있겠구나. 적어도 나는 가난 때문에 하고 싶은 것을 못하지는 않았으니. 가난이라…….’
무엇보다 막내라고 불리는 이가 하는 말은 뭔가 뭉클함을 느끼게 했다.
억지로 웃다가 그게 힘들어 못하겠다면서 우는 순수한 청년. 그리고 이어지는 동료들의 작은 오열.
콧잔등이 시큰해졌다.
저들은 일다경을 그렇게 아픈 울음을 꾹꾹 참다가 다시 웃었다. 그런데 그 웃음이 왜 더 아프게 다가오는 것일까?
“세상을 산다는 건 누구에게나 어려운 것이네요.”
“…….”
“뭐랄까…… 묘한 깨우침을 주네요. 적어도 우리는 가진 부류에 속하는 사람들이죠. 그러니 힘들다고 불평 말고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
조전후가 계속 묵묵부답이자 독고설은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녀의 맑고 시원한 눈이 경련을 일으켰다.
조전후.
그가 큰 주먹을 입에 틀어넣고는 꺽꺽거리며 울음을 참고 있었다.
“아가씨. 아니, 조장님.”
“…….”
“너무 슬픕니다.”
“…….”
“흑흑.”
조전후.
독고설은 저 사람의 별호가 야차검(夜叉劒)인 것에 심각하게 회의를 느꼈다. 자신이 바꿀 수 있다면 순정검(純情劒)으로 할 텐데.
독고설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다가 점차 맞은편의 천류영을 빤히 보게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모든 대화의 중심은 그였으니까.
비록 두 개의 발을 사이에 둔 것이지만 천류영을 정면으로 보았을 때의 느낌은 실망이었다.
들리는 그의 목소리는 꽤나 맑고 부드러웠다.
또한, 주변 동료들의 말을 듣자하니 엄청난 과장이 들어감직한데, 그럼에도 어느 정도 사실에 기반한 것일 터이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독고설.
그녀의 나이 스물한 살이었다.
방년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아름다운 여인이기보다 강한 무인을 꿈꾸는 검사였다.
그렇다고 해도 그녀가 여인이 아닌 것은 아니다.
이성에 대한 자연스러운 호기심.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천류영이 상당한 호남일 것이라 상상했는데 터무니없게 평범한 인상이었다.
차라리 기대가 없었으면 실망까지 할 얼굴은 아니었는데…….
독고설이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짓다가 천류영과 눈이 마주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천류영이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천류영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치렁치렁한 발이 시야를 막고 있었지만 작은 발 사이의 틈으로 자신을 보는 누군가의 시선이 의식된 것이다.
긴가민가하며 천류영은 자신을 향한 시선을 마주 보았다.
그에 독고설은 눈가를 찡그리며 고개를 돌렸다.
‘이런. 내가 계속 보고 있었다고 생각하겠군. 아니, 무공을 익히지 않았으니 그냥 느낌이 이상해 본 것일지도 몰라.’
기실 계속 보고 있던 것이 맞았다.
다만 얼굴을 보며 품평을 하느라 천류영이 이상한 낌새를 눈치챘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해서 그렇지.
독고설은 괜히 자리가 불편해져 슬슬 일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식사는 끝내고 차를 마시려는 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발걸음을 옆 좌석의 막내란 녀석의 말이 잡았다.
“우리를 살려 줘야 하는 그 네 가지 이유 있잖아요.”
궁금증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아소채의 채주는 모조리 죽인다고 했는데 이들을 살려 준 것이다.
첫 번째 이유와 두 번째 이유가 연이어 흘러나왔다.
연방 서로 감탄하며 늘어놓는 쟁자수들의 대화는 그녀의 둔부를 의자에서 떼지 못하게 만들었다.
조전후 역시 놀란 표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며 혀를 내둘렀다.
건너편 내실의 파오 영감이 물었다.
“세 번째 이유와 네 번째 이유는 대체 뭔가?”
“맞아요. 그거 궁금해 죽겠어요.”
“어떻게 아소채의 광혈창이 총표파자가 될 수 있다는 거지요?”
천류영이 단호하게 말했다.
“쉿! 그 얘기는 절대로 말하면 안 된다고 했잖아. 괜히 엉뚱한 말이 돌면 우리 목은 열 개라도 남아나지 못할 거야.”
천류영의 엄포에 모두가 찔끔하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의 사람만 모이고, 술이 들어가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이제 천류영을 마지막으로 보낸다고 하니 그가 누누이 경고했던 것을 깜박한 것이다.
한편 맞은편에 있는 독고설의 눈은 찢어질 듯이 커졌다. 조전후 역시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서 아예 문가로 붙었다.
아소채의 광혈창이 총표파자가 될 수 있다고?
이건 엄청난 사안이었다.
허풍일이지라도 확인이 필요한 일이다.
그때 천류영의 입이 열렸다.
“그렇게 궁금하세요?”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파호 영감이 침을 삼키며 말했다.
“지금 듣고 싹 잊어버리겠네.”
호기심이란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데 이 사람들은 순진하게 눈을 동그랗게 뜨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모두의 귀가 쫑긋 선 가운데 천류영이 피식 웃고는 답했다.
“어쨌거나 그건 비밀입니다.”
“에이, 형님!”
“류영이! 치사하게 그러긴가?”
“내 그것이 궁금해 며칠간 불면증에 시달렸는지 아는가?”
독고설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다가 결국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녀가 판단하기에 녹림의 제왕자리인 총표파자 얘기는 반드시 점검이 필요했다.
녹림십팔채는 사파이지만 다른 사파와 어울리지 않고, 정파와도 가급적이면 충돌을 자제했다.
먼저 건드리지만 않으면 시비 붙을 일 없다는 현(現) 총표파자의 선언에 강호의 문파들은 그들을 수수방관했다.
무림인들이 경멸하는 장사치 집단인 상단이나 표국에 통행세나 뜯는 것을 괜히 간섭해 잠자는 호랑이를 깨울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녹림십팔채의 동향은 많은 방파들의 관심사이기도 했다.
얽매이기 싫어하는 수많은 고수들이 그곳에 있었고, 녹림십팔채의 전 인원은 무려 일만에 육박했다.
그녀는 발을 헤치고 나아가 맞은편 칸막이 내실로 들어섰다. 그러고는 천류영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
“남은 두 가지 이유를 저에게 알려 주면 이쪽 음식 계산을 제가 하지요.”
그녀를 허겁지겁 따라온 조전후는 반색하며 기대에 찬 표정을 지었다.
천류영 일행은 얼어붙었다.
설마하니 자신들이 떠벌인 말을 누가 모조리 듣고 있는 줄은 짐작도 못한 것이다.
특히나 매끈한 피부를 보이는 절세미남자와 야차와 같은 거구의 사내는 각자 병장기를 소지하고 있었다.
무림인(武林人).
표국에서 일하면 많은 무림인들과 접촉하게 된다. 그러나 그들과 자신들은 한 공간에 있어도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반(半) 무림인이라고 할 수 있는 표사들도 제대로 쳐다보기도 힘든 사람들인데, 이렇게 표국이 아닌 장소에서 만나게 되는 무림인은 자칫 사소한 실수로 병신이 될 수도 있는 위험인물들이었다.
특히나 미남자 바로 뒤에 있는 중년 사내는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지경이었다.
쟁자수 모두가 파랗게 질린 얼굴이었지만, 천류영은 뜻 모를 한숨을 내쉬며 담담하게 말했다.
“휴우우……. 왠지 누군가가 나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 들더라니……. 진산 표국과 관련된 분이십니까?”
독고설은 호기심을 풀려는 마음에 너무 앞뒤 없이 급하게 다가선 것을 즉각 깨달았다.
그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천류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정중히 말을 이었다.
“사내들이 모인 술자리란 것이 으레 그렇듯이 과장과 허풍이 난무하는 법이지요. 혹여 오해하지 마시길 부탁드립니다.”
조전후가 인상을 긁으며 낮지만 카랑카랑한 어조로 말했다.
“우린 진산 표국 사람이 아니외다, 관련된 사람도 아니고. 괜한 의심은 하지 않아도 좋으니 그 네 가지 이유 중 남은 두 가지 좀 들읍시다. 특히 세 번째!”
그의 말은 오히려 분위기를 더 차갑게 만들었다.
확실히 저들은 자신들이 한 얘기를 다 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저들이 진산 표국과 관련된 사람이라면 순순히 그렇다고 밝히겠는가? 지금처럼 아무 상관도 없다고 잡아떼지.
파호 영감이 침을 꿀꺽 삼키며 입을 열었다.
“저, 저기…… 그러니까…… 강호의 대협에게 죄송한 말씀이지만 저희들은 진짜로 농담을 주고받고 있던 겁니다.”
조전후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을 받았다.
“이보시오, 정말 답답하네. 과장이 들어간 건 그렇다고 해도 나눈 대화가 실제 있었던 사실에 근거한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우리가 어리석어 보이오? 농담으로 그렇게 운다는 것이 말이 되오?”
파호 영감은 말문이 턱 막혔다.
그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천류영을 보았다. 결국 기댈 사람은 그밖에 없었으니까.
천류영이 독고설과 조전후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
“저는 오늘 진산 표국에서 나온 천류영이라고 합니다.”
통성명을 하자는 얘기다.
즉, 상대의 정체를 파악하려는 의도였다. 그 의미를 간파한 독고설이 싱긋 웃으며 입을 열었다.
가지런한 하얀 치아가 그녀의 뛰어난 용모와 어울리며 빛을 냈다.
그 모습에 쟁자수들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독고설을 보면 너무 아름다운 미남자라 놀라웠고, 그 뒤의 조전후를 보면 너무 무섭게 생겨 오싹했다. 그리고 이런 둘이 함께 다니는 것이 기괴했다.
“우리는 무림맹에서 파견 나온 현무단 소속의 무사요.”
그녀의 말에 쟁자수들은 가슴을 가득 드리우던 먹구름을 조금은 걷어 냈다.
사파가 아닌 정파, 그것도 무림맹 사람들이라면 괜한 시비를 걸어 몸을 상하게 하지는 않을 것이란 작은 믿음이 있던 것이다.
천류영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받았다.
“무림맹의 협객들이셨군요. 독고세가, 곤륜파와 함께 현무단이 성도에 들어섰다는 소문은 들었습니다. 무림맹 사천 분타로 가셔서 마교와 대적을 한다지요? 무운을 빌겠습니다.”
표국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그 누구보다 무림의 동향에 민감했다.
그렇기에 천류영은 이들뿐만 아니라 아미파도 무림맹 사천 분타를 지원하기 위해 북상 중인 것도 알고 있었다.
독고설의 눈에 이채가 스쳤다.
그의 말본새를 엿들으며 느낀 것이지만, 그냥 짐이나 나르는 쟁자수로 보기엔 언행이 매우 반듯했다.
또한, 표사가 아닌 일개 짐꾼이라면 아무리 표국에서 일한다고 해도 그저 자신의 일만 하지 세상 돌아가는 것을 세세히 파악하지는 않는다.
즉, 평범한 쟁자수가 아니다.
그건 동료 쟁자수들이 그의 무용담을 얘기한 것과 맞물리며 하나의 진실을 드러냈다.
저녁을 먹으며 이들이 나눈 대화가 어쩌면 상당 부분 사실일 것이라는.
아소채의 광혈창.
비록 사파인 녹림도지만, 분명 그는 절정의 고수였다.
자신은 아직 멀었고, 야차검 조전후도 감당하기 어려운 실전의 대가.
그런 자를 상대로 정말 세 치 혀만으로 살아 나왔다는 것은 간단히 넘길 사안이 아니었다.
이 사람…….
훌륭한 책사의 자질을 가지고 있지 않은가!
탐이 났다.
정말 이 사람이 역사상 최전성기를 구가하고 있는 녹림십팔채의 총표파자 자리를 얻을 수 있는, 실질적인 조언을 한 것일까?
이젠 단순한 호기심과 총표파자와 관련한 사실 여부를 점검하는 차원을 넘어섰다.
양질의 무사는 돈만 있으면 어느 정도 쉽게 구할 수 있으나 괜찮은 책사는 눈을 씻고 찾아도 보기 힘들다.
오죽하면 진정한 책사는 하늘이 내린다는 말이 있겠는가?
독고설이 잠시 침묵하자 성질 급한 조전후가 답답하다는 듯이 가슴을 치고는 끼어들었다.
“천류영! 우리 안부는 됐으니 어서…….”
그의 말을 독고설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녀는 머릿속으로 계산을 끝냈다.
지금껏 쟁자수들이 나눈 대화가 과장 없는 사실이고, 광혈창이 총표파자의 자리에 올라갈 책략을 천류영이 진짜 말했다면…… 이 사람을 결코 놓쳐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녀는 다시 한 번 편안한 느낌을 주는 미소를 짓고는 말했다.
“호기심이 지나쳐 결례를 저질렀습니다.”
그녀가 정중하게 허리를 숙였다.
그 모습에 조전후는 물론이고 천류영조차 눈가에 경련을 일으켰다.
쟁자수들은 눈을 까뒤집기 일보 직전이었다.
무림맹의 콧대 높은 현무단 무사가 일개 짐꾼에게 허리를 숙인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독고설이 눈을 빛내며 천류영을 향해 말했다.
“오늘 밤…… 우리는 즐거운 시간을 보내게 될 겁니다.”
조전후의 숨이 넘어갔다.
그러나 독고설은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다.
마치 흙 속의 진주를 찾아낸 것 같은 흥분이 그녀의 얼굴에 어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