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연재 > 무협물
패왕의 별
작가 : 강호풍
작품등록일 : 2016.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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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6 화
작성일 : 16-08-18     조회 : 733     추천 : 0     분량 : 78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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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장-3

 

 

 

 자리가 옮겨졌다.

 성도 최고의 기루인 성월루(成月樓).

 그곳에서도 최고급 손님들만 받는다는 팔층의 한 방에 천류영과 독고설, 그리고 조전후가 마주 보고 앉았다.

 담백한 수묵화가 그려져 있는 병풍이 서 있고 오색 비단이 천장에 휘장으로 흩날렸다.

 고가의 도자기와 가구들이 배치되어 있고, 셋 사이에 차려진 산해진미는 보는 것만으로도 침이 넘어갈 정도였다.

 아까 객잔에서 먹었던, 비싸다고 생각한 음식은 성월루에서 내어 온 것에 비하면 만월(滿月) 앞의 반딧불이에 불과할 지경.

 독고설이 독한 금홍주(金紅酒)를 천류영 앞에 놓인 잔에 따르고 말했다.

 “동료 분들은 옆방에 똑같은 상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게다가 옆에 아리따운 기녀들도 한 명씩 꽂아 드렸고요.”

 천류영은 가타부타 말없이 앞에 놓인 술을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붉은 빛깔에 얼핏얼핏 황금빛이 반짝거렸다.

 핏빛 술이라……. 왠지 무림인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그가 침묵하자 독고설은 넌지시 물었다.

 “천 공자께서도 기녀가 필요하십니까?”

 피식.

 천류영은 실소를 흘렸다.

 그 반응에 조전후가 발끈했지만, 입술만 깨물고 상 아래로 주먹을 쥐었다. 절대 끼어들지 말라는 독고설의 엄명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천류영이 고개를 들어 허리를 꼿꼿이 폈다.

 “공자라니 과분한 호칭입니다. 또한, 제가 기녀를 원한다고 해서 불러 주시겠습니까?”

 “…….”

 “다른 사람은 몰라도 저는 안 되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독고설이 묘한 눈빛과 미소로 반문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제가 광혈창 채주에게 말한 얘기가 다른 곳으로 새어 나가지 않기를 원할 테니까요.”

 독고설이 자신의 앞에 놓인 금홍주를 비우고는 흡족하게 웃었다.

 역시 똑똑한 인물이다.

 정말 괜찮은 책사가 될 자질이 충분해 보였다.

 독고설은 지금 쓴 거금이 훗날 충분한 보상으로 돌아올 것이라는 확신을 했다. 물론 그전에 녹림십팔채에 관한 진실부터 들어야 했지만.

 ‘거짓이 없는 진실을 들어야 해! 녹림십팔채……. 그들은 잠자고 있는 호랑이. 책략을 써서 총표파자의 자리를 훔칠 수 있다면…… 그 틈을 우리 정파도 노릴 수가 있어. 그들을 우리 뜻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대륙을 삼키려는 흑도인들에게 결정타가 될 것이지. 이건…… 정말로 엄청난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일지도 몰라. 그리고 괜찮은 책사도 구하고. 이거야 말로 진정한 일석이조(一石二鳥)야!’

 야심에 찬 독고설은 자꾸만 흥분됐다. 그것을 가라앉히기 위해 억지로 심호흡하고 웃으며 술잔을 들이켰다.

 한편 독고설의 웃는 모습에 천류영은 속으로 욕을 했다.

 ‘무슨 사내가 저리도 예쁘단 말인가? 쯧쯧. 나도 장가갈 나이가 된 것인가?’

 혼인이라…….

 그것도 돈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세상이었다.

 가난한 천류영에겐 꿈같은 일.

 그는 속으로 안타까웠다.

 이 상에 들어간 돈이 얼마나 될 것인가? 차라리 은자로 주었으면 몇 달은 일을 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으리라.

 독고설은 비어진 잔을 스스로 채우고 팔을 내밀었다.

 건배하자는 얘기다. 천류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함께 술을 마셨다.

 그렇게 둘은 한참을 말없이 술잔을 나눴다.

 천류영은 머리가 띵한 것을 느끼며 고개를 저었다.

 태어나 처음으로 마시는 독한 술이라 취기가 빨리 올랐다.

 무슨 말이라도 해야 이들은 자신을 풀어 줄 것이다.

 “말해 드리겠습니다.”

 독고설이 웃으며 말했다.

 “천천히 해도 상관없습니다.”

 “아뇨, 그러나 두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뭐죠?”

 “한 사람만 남을 것. 그리고 제 말을 들은 사람은 누구에게도, 지금 옆의 동료에게도 말하지 말 것.”

 조전후의 굵은 검미가 꿈틀거렸다.

 자신은 독고설의 호위로 그녀 곁에서 떨어질 수 없었다.

 하지만 독고설은 고개를 끄덕이며 넙죽 제안을 받아들였다. 아니, 오히려 이쪽에서 하고 싶었던 말이다.

 둘이서 허심탄회하게 술 마시며 친해지면 그를 사문의 예비 책사로 채용하는 것이 한결 쉬워질 테니까. 아무래도 조전후의 험상궂은 인상은 천류영의 경계심만 높일 공산이 컸다.

 “부조장님은 먼저 복귀하세요.”

 “조장님!”

 “가볍게 식사만 하러 나온 우리입니다. 시간이 늦어져 조원들이나 다른 조장들이 걱정하고 있겠지요.”

 맞는 말이다.

 조전후가 말문이 막혀 대꾸를 못하자 독고설이 씩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저는…… 강합니다.”

 “…….”

 “또한, 지금 성도는 정파 무사들이 가득합니다. 무슨 걱정을 하시는지 알겠는데 저를 그렇게 온실 속의 화초로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게 싫어 무림맹 밑바닥부터 시작한 접니다.”

 그랬다.

 독고설은 자신의 정체를 숨기고 오로지 자신의 실력으로 그 들어가기 까다롭다는 현무단에 입성했다.

 결국 현무단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 정체가 밝혀졌지만, 세상은 그런 독고설을 속였다고 노여워하기보다는 강단 있다며 칭찬했다.

 물론 그건…… 그녀가 무림오화에 속하는 미인이고, 사문이 팔대세가 중 하나인 독고세가였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원래 세상은 그렇게 가진 자에게 관대한 법이니까.

 조전후는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아무리 독고설의 말이 모두 맞다 해도, 그녀는 아직 스물하나의 앳된 처녀.

 그 나이 때에는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고 종종 느낀다.

 두려움이 없고 거침이 없다. 그러나 세상의 현실이란 그리 녹록한 것이 아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세상의 어려움에 대해 알게 되는 것. 그래서 겸손해지는 것.

 그게 인생이다.

 조진후가 계속 머뭇대자 독고설이 쐐기를 박았다.

 “부조장님, 내일 사시(巳時: 오전 10시)에 출발해야 하는데 몇 가지 처리해야 할 서류가 있는 거 아시죠? 대신 해 주십시오.”

 “끄응.”

 이렇게 되면 어쩔 도리가 없다.

 조전후는 독고설이 걱정됐고, 천류영의 뒷얘기도 궁금했지만 눈물을 삼키며 일어섰다.

 그는 독고설을 보았다.

 말술인 그녀였다. 자신조차 감당할 수 없는.

 그녀는 여전히 말짱한 눈빛으로 조전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자신을 믿고 가도 된다는 뜻이었다.

 조전후는 시선을 옮겼다.

 사내이기는 하나 한 주먹거리도 안 되는 녀석이다. 그리고 벌써 눈이 풀린 게 조만간 쓰러질 것 같았다. 하긴 이미 객잔에서부터 퍼 마셨으니.

 “알겠습니다. 그럼 너무 늦게 오지 마십시오.”

 조전후가 나가자 독고설이 다시 잔에 술을 따랐다.

 “마시죠.”

 “하아아…… 대체 왜?”

 천류영은 관자놀이가 지끈거리며 아파 왔다.

 “지금 얘기를 해 드리겠다는데 왜 자꾸 술을 권하시는 겁니까?”

 독고설이 눈웃음을 치며 말했다.

 “당신은 절대 쟁자수 따위를 할 사람이 아닙니다.”

 그 말에 욱한 천류영이 금홍주를 단숨에 비웠다.

 독한 술이 식도를 짜르르 울려 댔다. 누구는 쟁자수를 하고 싶어서 하겠는가?

 “호오, 술이 센 편이군요.”

 그녀도 술을 마시고는 말을 이었다.

 “왜 이렇게 술을 권하냐면, 당신이 아주 똑똑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

 “당신은 나에게 들려줄 얘기를 충분히 거짓으로 포장할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만취 상태에서라면 그나마 소설을 쓸 확률이 적어지지 않을까요? 거짓을 말해도 허점이 많아 내가 눈치채기 쉽겠고.”

 천류영의 목젖이 흔들렸다.

 자신의 속내를 이미 상대는 간파하고 있었다.

 ‘만만치 않은 상대다. 하지만…… 이건 광혈창 채주와 나와의 약속. 깰 수 없다.’

 독고설은 그런 천류영의 미세한 표정 변화를 놓치지 않고 웃었다.

 “하하하, 정말 날 속일 생각을 했나 봅니다.”

 “아닙니다. 그저 왜 그런 황당한 생각을 하는지 곤혹스러웠을 뿐입니다.”

 “그렇습니까? 그럼 마시지요. 숨길 것이 없는데 마시지 못할 이유가 뭐가 있겠습니까?”

 “좋습니다.”

 천류영은 방법이 하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상대는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놈이었다. 자신이 비록 술이 센 편은 아니지만, 정신만 바짝 차리면 저런 놈쯤이야 이길 수도 있으리라는 판단이 섰다.

 주거니 받거니 쉴 새 없이 독한 금홍주 몇 병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독한 놈!’

 ‘독한 인간!’

 서로를 노려보며 속으로 욕을 해 댔지만 겉으로는 계속 웃음을 머금었다.

 다시 술잔이 돌았다.

 그냥 이런 저런 신변잡기를 얘기해 가며 서로를 먼저 취하게 하려고 연신 술을 권했고, 또 마셨다.

 천류영은 눈이 감기려는 것을 힘겹게 부여잡으며 말했다.

 “내가 표국에서 오래 일하며 들은 말이 있는데……. 꺽.”

 독고설도 풀린 눈으로 대꾸했다.

 “뭡니까? 끅.”

 “불공평하지 않습니까? 꺼억.”

 연신 트림을 해 대는 두 사람. 그러나 이미 인사불성에 가까운지라 부끄러움도 없었다.

 “내공 고수는 뭐냐? 운기행공인가 뭔가 그걸 하면 주독을 몰아낼 수 있다며? 이거 너무 불공평한 거 아닌가?”

 가물거리는 정신줄을 잡고 있는 천류영은 필사적이었다.

 만약 상대가 그것이 가능하다면 지금 술 시합은 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그냥 입 다물고 술에 취해 뻗어 버리는 것이 속편했다.

 “푸하하하! 그건 절정의 경지나 다다라야 가능한 거지. 절정의 경지가 어떤 건지…… 꺼억. 알아? 절정(絶頂). 배운 무공의 성취가 정상이란 말이야. 십이 성 대성해야 가능한 경지라고. 끅.”

 “그래도 운기행공을 하면 조금 낫지 않나?”

 독고설이 실소를 흘리며 대꾸했다.

 “킥킥, 멍청한! 끅. 운기행공이 장난인 줄 알아? 구결을 암송하며 몸의 기운을 세심하게 움직여야 하는 거라고. 그런데 절정고수도 아닌 자가 만취해서 운기행공을 해? 푸하하하! 주화입마 당해서 폐인 되기 딱 좋지. 끅끅.”

 “그런 건가?”

 “그리고 제대로 된 운기행공은 시간만 반나절 걸려.”

 “좋아. 그렇다면 내가 질 수 없지. 네가 무림인이라고 해도…… 꺼억. 술은 공정한 싸움이라 이거지? 자, 마셔라.”

 “좋아! 마셔!”

 다시 그렇게 몇 순배의 술잔이 오갔다.

 독고설은 순간 본능적인 위험을 느꼈다. 이러다가는 정말로 취해 버려 자신이 먼저 뻗을 수도 있다는 경고가 머릿속에서 켜졌다.

 “천류영! 끅.”

 “왜?”

 “이젠 말해 봐.”

 “뭘?”

 천류영은 몸이 뜨거워서 상의의 매듭을 풀고 하품을 하며 물었다.

 그러나 독고설은 무공을 익히며 사내들의 단단한 맨몸을 수도 없이 본지라 딱히 반응이 없었다. 아니, 저딴 볼품없는 몸도 몸이냐는 생각에 코웃음까지 일었다.

 “흥! 한심한 몸이로군.”

 “내 몸이니 신경 꺼라.”

 “끅. 뭐, 그건 그렇지. 좋아. 광혈창에게 대체 무슨 얘기를 한 거지?”

 천류영은 정신의 끝이 가물거리며 금홍주에 녹아내렸다.

 “하하하. 그거? 별거 아니야.”

 “끅끅. 그러니까…… 별거 아닌 그게 뭐냐고?”

 “좋아. 얘기해 줄 테니 나한테 무공 좀 가르쳐 줄래?”

 “뭐? 네 주제에 무슨…… 끅.”

 “하하하. 근데 솔직히 배운 적은 없지만 몇 번 고수들 싸움을 본 적이 있는데…… 다 보이던데? 꺼어억.”

 “보인다고? 뭐가?”

 “그러니까…… 맞아, 허점들이.”

 “푸하하! 염병! 미친 놈! 고수가 아니라 시정잡배들 싸움을 봤겠지. 헛소리 말고 빨리 하라는 말이나 하라고! 엉!”

 독고설이 언성을 높이며 짜증을 냈다.

 딱 봐도 술주정이었다. 그러자 천류영이 찔끔했다가 이내 바보처럼 웃으며 대꾸했다.

 “히히히. 그러니까…… 총표파…… 그 뭐냐? 대빵한테 가서 자신을 후계자로 점찍어 달라고 아부 떨라고. 그게 다야.”

 천류영.

 그는 과연 신뢰의 사나이였다.

 독고설의 눈에 쌍심지가 켜졌다. 그러나 그것도 금홍주의 취기에 눈 녹듯 사라졌다.

 “이 새끼. 장난해? 끅.”

 “하하하, 진짜야.”

 “뻥!”

 “진짜라고. 끄윽.”

 “정말이야?”

 “그래.”

 “근데 광혈창이 그걸 수긍해? 끅.”

 독고설은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어느새 평소의 명민한 그녀의 두뇌는 기능을 상실해 버린 것이다.

 “아니, 말도 안 된다고 웃더라고.”

 “응? 왜? 아부가 최고지.”

 “하하하. 맞아. 그런데 자신은 그 짓 못한데.”

 “흠, 맞아. 광혈창의 자존심이 대단하다고 들었어. 끅끅. 어휴, 죽겠다. 그런데 널 왜 살려 준 거야?”

 천류영은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이성을 모조리 소진하며 말했다.

 “앞의 두 가지 이유와 자신을 대빵의 자격이 있다고 인정해 준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하아. 겨우 그거였나?”

 독고설은 허탈감이 물밀듯 몰려왔다.

 쟁자수 따위에게 자신이 대체 뭘 기대한 건가? 대체 왜 자신은 이따위 놈에게 괜찮은 책사의 자질을 느꼈던 거지?

 결론은 사기꾼인 놈이었다!

 물 쓰듯 쓴 돈이 너무 아까웠다. 둔기로 뒤통수를 맞는다는 느낌이 이러할까?

 자신의 섣부른 판단이 시간 날리고, 돈 날리고, 몸까지 축나게 했다.

 문득 아버지의 말이 떠올랐다.

 너무 자신의 느낌과 능력을 과신하지 말라고. 너는 아직 애송이일 뿐이라고.

 입맛이 썼다.

 아버지에게 뭔가 보여 주고 싶은데……. 자신을 풋내기로만 보는 당신에게 큰 공을 세워 보이고 싶은데.

 그리고 그녀의 눈꺼풀이 내리며 닫혔다.

 천류영 역시 뒤로 쿵하며 머리를 찧고는 자빠졌다.

 

 반 시진 후.

 내실의 문이 드르륵하며 열렸다.

 성월루의 루주와 점소이였다.

 둘은 들어서면서 코를 찌르는 주향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대체 얼마나 마셨기에?”

 점소이가 혀를 내두르며 답했다.

 “말도 마십시오. 이 두 인간이 금홍주 서른 병을 마셨습니다.”

 “헉!”

 루주는 기겁해 급히 독고설과 천류영의 코에 손을 댔다.

 이 둘이 마신 양은 확실한 치사량이었다. 아니, 치사량을 넘어 곰이라도 죽일 수 있으리라.

 다행히 둘은 고른 숨을 쉬고 있었다.

 “휴우우. 송장 치우는 줄 알고 식겁했네. 이 인간들 완전히 주귀주신(酒鬼酒神)이네. 내 평생에 이렇게 술에 환장한 놈들은 처음이야. 그나저나 돈은?”

 “미리 넉넉히 받아 뒀습니다. 남은 은자는 나갈 때 받겠다고.”

 “그래? 다행이군. 이 정도 먹고 마셨으면 꽤나 나왔을 터인데.”

 점소이가 누런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었다.

 “삼 년 만에 최고의 봉이었습니다. 저들의 동료들까지 합치면, 어휴우…….”

 어지간한 사람이 이 년은 벌어야 할 은자가 하룻밤 술잔치로 날아간 것이다.

 루주는 점소이의 말을 듣고는 안색을 굳혔다.

 이 정도의 거금을 부리는 사람이라면 허투루 대해서는 안 된다.

 “이들을 위층으로 옮겨.”

 성도 최고의 주루인 이곳에서 최고 귀빈이 묵는 장소다.

 점소이는 이미 예상하고 있다는 듯이 냉큼 대답했다.

 “예. 그런데 방을 어떻게 할까요? 한 방에, 아니면 두 방에 따로?”

 루주는 엎어져 자는 사내와 자빠져 자는 사내를 물끄러미 보며 침묵했다.

 점소이가 말을 덧붙였다.

 “두 방으로 나누는 게 값이 더 올라가죠.”

 루주가 고개를 저었다.

 “과한 욕심은 화를 부르는 법이야. 엄청난 돈을 쓴 사람들이니 배경이 어디일지 몰라도 우리가 바가지를 씌웠다고 꼬투리를 잡으면 성가셔진단 말이지. 하룻밤 숙박비는 그냥 무료로 해 주는 게 좋겠다.”

 점소이는 아까운 표정을 지었다.

 다른 곳도 아닌 성월루의 최고 숙소인데. 그러나 루주의 판단이 옳았다.

 “그렇겠군요. 그런데 이 사내들은 무슨 사이일까요? 이렇게까지 술을 마셔 댔으면 뭔가 사연이 있는 깊은 벗인 것 같은데…….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던 죽마고우(竹馬故友)인 것도 같고. 한 친구는 성공했는데 한 사람은 실패해서…….”

 점소이는 확연히 다른 둘의 복색을 보며 주저리주저리 소설을 읊었다.

 루주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고는 말했다.

 “과거의 친한 벗이 오랜만에 만나 회포를 풀었다? 내가 보기도 그런 것 같군. 애들을 시켜 한 침상에 뉘어.”

 

 독고설.

 그녀는 항상 혼자 잔다.

 자기 전 운기조식을 하고는 옷을 벗고 자는 오랜 습관이 있었다.

 깜빡 잊고 자더라도 자신도 모르게 일어나 거추장스러운 옷을 벗어 던지고 잠자리에 드는 버릇이 있었다.

 

 천류영.

 그는 대부분을 표행 중 많은 사내들과 부대끼며 잤다.

 그래서 겨울이거나 날씨가 쌀쌀할 때면 사내끼리도 앞사람의 등을 끌어안고 잤다. 그렇지 않으면 추운 날씨에 감기 걸리기 딱 좋았으니까.

 

 그날 밤, 성도는 유달리 추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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