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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의 별
작가 : 강호풍
작품등록일 : 2016.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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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8 화
작성일 : 16-08-18     조회 : 901     추천 : 0     분량 : 1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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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장-2

 

 

 

 독고설은 아랫입술을 윗니로 꽉 깨물었다.

 어찌나 세게 물었는지 붉고 도톰한 입술에서 핏방울이 맺힐 정도였다.

 “아아. 대체 이제…… 어쩌란 말이냐?”

 그녀의 잘 벼린 칼이 결국 천류영 옆 침상 위로 떨어졌다.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쉰 다음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렇게 앉아서 자고 있는 천류영을 무섭게 쏘아보았다.

 그가 너무나 태연하게 잘 자는 것이 화가 치밀어 칼은 아니더라도 주먹이라도 날리고 싶은 심정이었다. 이미 속으로는 백 번도 넘게 발길질을 해 댔다.

 독고설은 침상에서 빠져나와 창문을 열었다.

 서늘한 새벽 공기가 그녀의 매끈한 나신을 적시며 어지러운 정신을 일깨웠다.

 전날 밤 나눴던 대화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나는…… 오만했어. 그래서 저런 사기꾼에게 당한 거지. 녹림십팔채? 훌륭한 책사? 큭, 크크크큭.”

 그녀는 동녘 하늘을 보며 자책했다.

 놈에게 어제 치른 은자를 몽땅 받아 낼까? 그래서 평생 빚을 갚다가 고통스럽게 살다가 죽게 할까?

 놈은 감히 무림맹 현무단 오조장을 상대로 사기를 친 인간이다. 그 정도의 벌은 약소한 것이다. 아니면 손목 하나를 받아 낼까?

 그러나 독고설은 이마를 짚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이 무슨 유치한 짓인가.

 자신이 사람을 잘못 판단하고 저지른 과오를 남에게 넘기는 추태라니.

 그리고 어제 나눈 대화 중 그가 먹여 살려야 할 홀어머니와 여동생에 대해 말한 것이 떠올랐다.

 이 사람이 다치거나 죽으면 그 사람들은 어떻게 한단 말인가.

 자신의 분풀이를 하자고 죄 없는 여인 둘을 나락으로 떨어지게 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천류영이 갑자기 뒤척거리며 소리를 냈다.

 “음냐. 음냐.”

 그러더니 이불을 똘똘 말았다.

 독고설이 창문을 열어 내실이 서늘해지자 본능적으로 움직인 것이다.

 그녀는 그제야 자신이 아직도 나신인 채로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욕감과 분노에, 한 공간에 사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옷 입는 것을 깜빡한 것이다.

 그녀는 창을 닫고는 급히 옷을 입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입 다물고 돌아가는 것이 상책이었다. 일을 키우면 망신살은 결국 자신에게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남자와 남자가 잔 거야. 아무 일도 없었고. 나만 입 다물면 되는 거야.”

 옷매무새를 다듬은 그녀는 나가려다가 멈췄다.

 천류영이 불쑥 잠꼬대를 한 것이다.

 “음냐. 배고프다. 수연(水蓮)아, 오빠가 맛난 거 사 줄게.”

 천수연.

 그의 여동생 이름이라고 했었다.

 독고설은 실소가 흘러나왔다.

 어제 그렇게 먹고 마셨는데도 배가 고픈가? 평소 얼마나 제대로 먹지 못했으면 저런 잠꼬대를 할까?

 우스우면서도 찡했다.

 자신이 배고픈데도 여동생에게 맛있는 거 사 준다고 하는 그가 안쓰러웠다.

 독고설은 몸을 돌려 여전히 잠에 취해 있는 천류영을 보았다.

 이 사람 표국에서 고생하면서 모은 대부분의 돈을 집에 부쳤을 것이다.

 “나쁜 사람은 아닌 것 같은데……. 아니야, 이런 사기꾼을 동정할 수는 없어. 내가 실수한 것이니 용서해 주지만 그래도 내 가슴을 제멋대로…….”

 그녀는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화가 나고, 안쓰럽고, 그리고…… 다시 울화통이 치밀고.

 따지고 보면 그의 나이가 자신보다 네 살이나 많았다.

 물론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만은, 만약 자신이 독고세가가 아닌 천류영처럼 몰락한 유생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그처럼 어려서부터 자기희생을 해서 집안을 위해 살 수 있었을까?

 못했을 것이다.

 자신이 얼마나 야심가인지는 스스로 잘 알고 있는 독고설이었다.

 “잊자. 다 잊어. 젠장! 지나가던 개한테 물렸다고 치면 되는 거야. 천류영! 너는 이제부터 나에게 개다. 물론 앞으로 만날 일은 결코 없겠지만.”

 드르륵.

 그녀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그녀가 사라진 내실에는 코고는 소리만 낮게 울렸다.

 

 묘시초(卯時初: 새벽 5시)

 성월루의 일층에 내려선 독고설은 혀를 내둘렀다.

 아직도 여러 손님들이 술을 마시거나 해장국을 먹으며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인생을 낭비하는군.’

 다섯 살 때부터 목검을 쥐고 쉬지 않고 달려온 그녀의 가치관으로는 도저히 이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벌써 가시게요?”

 입구의 계산대에서 반쯤은 졸고 있던 점소이가 눈을 부비며 독고설에게 말했다.

 독고설은 주먹을 입에 대고는 헛기침을 했다.

 “바쁜 일이 있어서.”

 “친구 분은?”

 독고설은 뭔 소리냐는 듯이 눈을 껌뻑거리다가 점소이가 한 말을 알아챘다.

 약간 자존심이 상했다. 자신이 남장을 했다지만 딱 봐도 몇 살 차이는 날 터인데.

 “알아서 일어날 때까지 깨우지 마시오.”

 “그러지요.”

 점소이는 뭔가를 주섬주섬 챙기더니 입구를 나가려는 독고설을 불렀다.

 “무사님.”

 “또 뭐요?”

 독고설은 괜히 짜증이 났다.

 아주 잠깐이라도 이 빌어먹을 공간에 있기 싫은데 왜 자꾸 말을 거냔 말이다.

 점소이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거스름돈입니다.”

 독고설은 그의 손을 물끄러미 보았다.

 십 냥짜리 전표 열 장과 은자 다섯 냥.

 총 은자 일백다섯 냥.

 평범한 사람들이라면 한 식구의 일 년 가까운 생활비가 되는 큰 액수.

 점소이가 헤헤 웃으며 말했다.

 “저희 루주님께서 본 루의 최고급 숙박비는 그냥 무료로 해 드리라고 했습니다. 죽마고우가 오랜만에 회포를 푸셨는데 그 정도는……. 무사님께서 들어오실 때 주신 삼백 냥에서 남은 거지요.”

 삼백 냥.

 아무래도 사문의 집사에게 나중에 된통 한 소리를 들을 것이다. 아버지에게도 욕을 먹기 십상이고.

 중얼중얼 말하는 점소이는 아무 말 없이 손에 들린 돈만 바라보는 독고설을 보며 불안해졌다.

 루주가 우려한 것처럼 바가지라고 따지려는 것은 아닐까?

 그러나 독고설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역시 천류영과 자신을 벗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끝까지 그렇게 믿게 해 주는 것이 좋았다. 무엇보다 어젯밤 일과 관련한 건 뭐든지 꼴도 보기 싫었다.

 점소이가 초조한 기색으로 변해 갈 때,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 친구의 사정이 딱하오.”

 “아! 그럼 이 돈은 손님 친구 분에게?”

 독고설이 고개를 끄덕이자 점소이가 탄복한 얼굴로 말했다.

 “화통하시군요. 과연 잘생긴 분은 뭐가 달라도 다릅니다. 저에게도 무사님 같은 친우가 있었더라면. 헤헤, 알겠습니다. 제가 이 돈을 직접 전해 드리지요.”

 그는 웃으면서 다섯 냥은 꿀꺽하려는 생각을 했다.

 설마하니 이렇게 큰돈을 쓰는 사람이 나중에 다섯 냥까지 챙기며 물을 리 없었다.

 독고설은 마침내 아직 어두운 밖으로 나왔다.

 그녀는 옷을 여미며 차가운 바람을 맞다가 고개를 돌려 성월루의 최고층인 구층을 보았다.

 저곳에 천류영이 자고 있다.

 “천류영, 너를 향한 내 안쓰러운 마음은 일백 냥으로 계산 끝냈다. 또한, 내 과오에 대한 비싼 비용을 두고두고 교훈으로 삼기 위해서기도 하고. 이제…… 남은 건 사기꾼을 향한 노여움뿐이니 행여 우연히 라도 나와 길에서 마주치지 말기를.”

 그녀가 빠른 걸음으로 사라졌다.

 

 천류영이 늦은 아침에 일어나서는 한참 동안 물을 마시며 깨질 것 같은 머리를 감싸 쥐었다.

 “젠장, 대체 어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몇 번이나 고심한 끝에 그는 마지막에 독고설과 나눴던 대화를 기억해 냈다.

 불끈 주먹을 쥐는 천류영.

 “후후후, 기생오라비 같은 놈! 나는 너에게 이겼다.”

 끝까지 비밀을 털어 놓지 않은 천류영은 희희낙락하며 일어났다.

 그러나 덜컥 찾아오는 두려움.

 “혹시 계산을 하지 않았다면?”

 마음속 날씨가 화창한 봄에서 삽시간에 폭풍우가 치는 컴컴한 밤으로 변했다.

 자신이 잔 내실을 보니 기가 질릴 정도로 고급스러웠다. 평생 가도 이런 곳에서 잔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을 만큼.

 “아아, 만약 그렇다면 나는…….”

 천류영은 우울한 신색으로 조용히 성월루의 일층으로 내려섰다.

 그가 침을 꼴깍 삼키고 계산대의 눈치를 살피며 걷자 점소이가 반색하며 달려왔다.

 “공자님!”

 “헉! 예. 무, 무슨 일이라도…….”

 천류영은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식은땀을 느꼈다.

 공자님이라고 불리는 순간 자신이 이 사람들에게 봉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품속에 있는 은자는 여덟 냥.

 성도에서 남쪽으로 이틀거리에 있는 고향, 사한현(砂閑縣)으로 돌아갈 여비와 가족이 한 달간 쓸 생활비였다.

 점소이는 천류영의 남루한 옷을 손으로 툭툭 털며 말했다.

 “헤헤, 정말 멋진 벗을 두셨습니다. 정말로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

 “친구 분께서 공자님의 사정이 어렵다고 거금을 쾌척하셨습니다.”

 “예?”

 천류영의 평범한 크기의 눈이 찢어질 듯이 커졌다.

 “왜 이제야 나오셨습니까? 친구 분의 순수한 우정에 감동한 나머지 제가 직접 드리려고 여태 안 자고 버티고 있었다는 것 아닙니까?”

 그는 허리춤에 매여 있는 주머니에서 전표 열 장을 꺼냈다. 그 액수를 본 천류영은 잠시 숨이 막혔다.

 백 냥!

 천류영이 오도카니 서서 아무 말도 못하자 점소이가 억지로 손에다 쥐어 주었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인연 중 하나가 벗이라던데, 공자님은 그런 의미에서 인생을 제대로 사신 겁니다.”

 천류영은 손에 쥐어진 거금을 보며 아무 말도 못했다.

 대체 그 기생오라비가 왜 자신에게 이 돈을 준 것일까?

 설마 자신이 비밀을 실토했단 말인가?

 아니, 그건 아니었다. 아무리 만취했어도 그것만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왜?

 천류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정말 대취해서 말하고도 기억 못하는 것일지도…….

 그는 머릿속이 핑핑 돌았다.

 만약 자신이 그놈, 즉, 무림맹 현무단 무사에게 진실을 말했다면 사안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었다.

 녹림십팔채에서 살수를 보낼 수도 있었다.

 녹림이 아니라 하더라도 쓸데없는 입을 놀린 대가로 자신을 죽이려는 자들이 어디에서든 출몰할 수 있었다.

 그런 곳이 무림이란 곳이다.

 때늦은 후회가 막심했다.

 비록 쟁자수였지만, 표국에서 일했다. 그래서 무림의 동향에 늘 촉각을 세우고 있던 그였다.

 그런데도 무림과 자신은 별개라고 안이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진산 표국을 나오면서 그런 생각이 더 커졌을 터이고.

 천류영은 성월루를 빠져나와 멍하니 터벅터벅 걸었다.

 정말 말했을까? 아닐 수도 있었다.

 어제 봤던 그놈은 돈 못 써서 환장한 귀신이 들러붙은 것 같았다.

 혹시 운 좋게 아무렇게나 돈을 펑펑 쓰는 인간을 만난 건 아닐까?

 아니, 그건 아닌 것 같다.

 그 기생오라비가 돈을 펑펑 쓰기는 했지만 순간순간 보이는 심계는 남다른 면이 있었다.

 그런 자가 선선히 포기하고 돈까지 안겨 준다는 것은 길을 걷다 황금 덩어리를 줍는 행운을 기대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그와 자신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것일까?

 그렇게 무턱대고 걷던 천류영은 익숙한 건물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성도의 서쪽 끝, 대로(大路) 옆에 서 있는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낡은 판자집.

 국밥이 철전 일 문밖에 하지 않아 자신이 종종 발품을 팔아 허기를 채우던 식당이다.

 싼 곳은 이유가 있다.

 우선 맛이 별로다.

 그리고 식당이라면 갖춰야 할 흔한 탁자 하나 없다. 그냥 주변 길바닥에 앉아서 먹는 곳이다. 다만 싼 것 말고도 큰 장점이 있다.

 양이 푸짐하다는 것.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판자집 주변에 죽치고 앉아 국밥을 퍼먹고 있었다.

 그중엔 거지도 적지 않았다.

 천류영은 일단 해장국밥을 한 그릇 먹으면서 생각하기로 결정했다.

 

 따각따각.

 말발굽 소리가 대지를 울렸다.

 독고세가 무사 삼백 명, 곤륜파 사백 명, 현무단 백오십 명. 총 팔백오십의 무림인이 육 열로 대로를 관통했다.

 선두에서 말을 타고 있는 서른 명의 수뇌부들은 형형한 눈빛으로 길 좌우에서 구경하는 사람들을 압도했다.

 마침내 도시에서 황량한 초원으로 나가는 길목.

 선두에 있던 독고세가의 가주 독고무영이 갑자기 손을 들고는 다른 손으로 말고삐를 잡아챘다.

 “잠깐.”

 그의 말에 바로 뒤편에 있던 독고세가의 총관 황하성이 큰 목소리로 외쳤다.

 “전원 잠시 멈춘다!”

 말을 타고 있는 이들 중에서도 최선두는 삼 인이었다.

 독고세가 가주, 독고무영.

 곤륜파를 이끄는 무적검 한추광.

 무림맹 현무단의 단주, 능운비.

 한추광이 눈을 가늘게 뜨며 입을 열었다.

 “저 깃발은 무림맹 사천 분타의 것이 아닙니까?”

 지평선 저 멀리에서 깃발 하나를 들고 달려오는 하나의 인영이 보였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저 점으로 보일 텐데 한추광의 안력은 남달랐다.

 현무단주 능운비가 공력을 끌어 올려 눈에 힘을 주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리고 더 기이한 건 깃발을 들고 있는 사람이 여승이라는 겁니다.”

 행렬을 멈춰 세웠던 독고무영이 말을 받았다.

 “아무래도 우리에게 뭔가 전달하려는 것 같은데. 잠시 기다려 봅시다.”

 그때, 대로의 옆 길바닥에서 삼삼오오 모여 국밥을 먹던 이들 중 한 청년이 부리나케 뛰어나왔다.

 천류영이다.

 그는 말을 타고 있는 서른 명 중 가장 후위에 있던 독고설에게 곧장 달려가며 외쳤다.

 “이봐! 아, 아니. 이보시오!”

 천류영은 다급했다.

 그도 무림인 행렬 사이로 뛰어든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짓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그런 것을 계산할 정신이 없었다.

 한편 독고설은 기가 막혔다.

 다시는 보지 말자고 하늘에 기원한 지가 채 세 시진도 지나지 않았다.

 그런데 이 무슨 개 같은 경우인가?

 그녀 뒤편에 있던 무사 둘이 인상을 쓰며 손을 들어 더 이상 접근하지 말라는 경고의 눈빛을 보냈다.

 물론 병장기를 뽑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금 과장을 하면 딱 거지꼴인 그를 경계할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으니까.

 대신 의아한 눈으로 천류영을 보았다. 대체 이자가 무슨 정신머리로 이런 짓을 하는 것일까?

 천류영은 자신을 막는 서슬 퍼런 기세의 무사를 보고는 주춤하며 멈췄다.

 그러나 이미 내디딘 걸음. 의혹은 풀어야 했다.

 이건 자신의 생사가 달린 문제니까.

 “은자 백 냥은 뭡니까?”

 그의 질문은 허공을 넘어 독고설을 향해 직선으로 꽂혔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천류영에서 독고설에게 넘어갔다.

 모두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

 저 남루한 사내가 검봉 독고설을 안단 말인가?

 독고설은 부끄러움과 곤혹스러움 그리고 노염으로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그의 옆에 있는 조전후도, 앞에 있는 아버지, 독고무영도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천류영은 이상한 낌새를 느꼈지만 절박했다.

 “말해 주시오. 은자 백 냥의 의미가 뭐요?”

 독고설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시선을 느끼며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가 말했다.

 “꺼져라, 사기꾼 놈아! 다시는 너와 상종도 하고 싶지 않다!”

 사람들의 시선은 다시 천류영에게 돌아왔다.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조화인가.

 욕을 먹은 천류영의 얼굴이 오히려 환해지지 않는가.

 ‘아아! 사기꾼이라 말하는 것을 보니 나는 비밀을 털어놓지 않은 것이다.’

 계속 가슴에 드리웠던 폭풍의 먹구름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러나 의문은 남았다.

 “왜 백 냥을 준 거요?”

 독고설은 주변의 의혹 어린 눈초리를 의식하며 한숨을 삼켰다.

 저 찰거머리는 자신이 뭔가 대답하지 않으면 끝까지 들러붙을 태세였다.

 “사기나 치고 다니는 네가 불쌍해서 준 거다. 그 돈으로 다시는 남을 속일 생각 말고 네 홀어머니와 여동생을 생각해 바르게 살아라.”

 “그런 거요? 과연 부자들은 씀씀이가 다르군요. 고맙소. 하지만 액수가 너무 커서…… 술값도 만만치 않았을 터인데…….”

 “됐다. 다시 한 번만 내게 말을 걸면 돈을 회수하고 주리를 틀고 말겠다.”

 천류영의 목이 자라처럼 쏙 들어갔다.

 그는 미안하다는 표정으로 뒤로 물러났다.

 한차례 황당한 소란이 지나가자 독고무영은 고개를 저으며 혀를 찼다.

 “쯧쯧. 홀로 자립해 보겠다더니 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건지…….”

 그 모습에 독고설은 더욱 분한 모습으로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다행이라면 모두의 관심이 앞에서 깃발을 들고 뛰어온 한 인물에게로 이동한 것이었다.

 깃발을 들고 새처럼 날듯이 달려온 사람은 비구니였다.

 온통 땀으로 절은 승복을 걸친 그녀는 급히 입을 열었다.

 “헉헉, 누, 누가 독고가주님이십니까? 곤륜의 무적검 대협은 누구십니까? 큰 변고가…….”

 여승은 무척이나 숨이 차다는 듯 제대로 말을 잇지 못했다.

 그에 독고무영과 한추광 그리고 능운비가 급히 하마해서 다가갔다.

 “아미파에 계신 분이 아니십니까? 그런데 어찌 사천 분타의 깃발을 들고…….”

 독고무영은 수통을 건네주며 물었다.

 그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비구니는 수통을 받아 입에 대고 물을 마시기 시작했다.

 꿀꺽, 꿀꺽…….

 어찌나 맛있게 마시는지 갈증이 없는 이들까지 물을 마시고 싶다는 충동이 일게 만들었다.

 한 번도 입을 떼지 않고 수통을 비운 그녀는 그제야 숨통이 트인다는 듯 심호흡을 해 댔다.

 한추광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걱정스럽게 물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비구니가 급하다는 듯이 얼른 외쳤다.

 “큰일 났습니다. 지금 저희 아미파가 사천 분타 남쪽 일백 리 지점에서 흑도놈들에게 포위되어 있습니다. 어서 가서 구해 주십시오.”

 팔백오십의 무림인들이 거의 동시에 술렁였다.

 독고무영도 화들짝 놀라 다급하게 물었다.

 “지, 지금 뭐라고 했소? 아미파가 공격을 받고 있단 말이오?”

 비구니는 고개를 끄덕이며 황급히 답했다.

 “그렇습니다. 사천분타를 향해 일찍 길을 나섰는데 갑자기 육백 가량의 흑의인이 산속에 매복하고 있다가 저희를 공격했습니다. 본 파가 모두 정예라고는 하나, 저들 역시 모두 정예였고, 그 수가 두 배인 육백 명이나 되는지라 역부족입니다. 이에 장문인께서 사태의 위급함을 아군에게 알리라 저를 급파한 것입니다. 어서 빨리 도와주십시오.”

 한추광이 격분하여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이런 일이 있나? 마교 놈들은 아무리 빨라도 내일 늦게나, 모레 당도할 것인데……. 헉! 그렇다면 숨겨 놓은 놈들이 있었다는 말이오?”

 비구니와 한추광의 이어지는 말에 정파인 모두가 얼어붙었다.

 비구니가 얼굴의 땀을 씻어 내며 말했다.

 “그렇습니다. 천마검 백운회가 미리 성도 주변에 잠입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제가 사천 분타에 도움을 청하러 갔을 때 이미 그곳도 천마검에 의해 공격당하고 있었습니다. 도움을 요청했지만, 철혈 분타주께서는 적들과 현재 팽팽한 접전 중이니 독고세가와 곤륜, 현무단에게 도움을 청하라고 하셔서 이렇게 계속 달려온 것입니다.”

 그녀의 말에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천마검 백운회!

 마교가 자랑하는 불패의 장수가 아닌가.

 새외 무림을 휩쓸던 그가 마침내 중원 무림을 향한 공격을 감행했단 말인가?

 무적검 한추광이 이를 갈며 살기 어린 눈빛을 지었다.

 천마검은 곤륜파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안겨 준 장본인이었다.

 구파일방 중 유일하게 새외의 서장 무림에 자리하고 있던 곤륜파.

 그곳을 천마검이 불태웠었다. 그래서 지금 곤륜파는 사천성 성도로 거처를 옮겨 와 있던 것이고.

 “천마검! 드디어 네놈에게 복수할 기회가 왔구나.”

 하필 백운회가 곤륜을 침공할 때, 곤륜이 배출한 사상 최고수이며, 패왕의 별 후보자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한추광은 자리를 비웠던 것이다.

 그는 독고무영을 보고 급히 말했다.

 “가주님, 저는 곤륜을 이끌고 사천 분타로 달려가겠습니다. 가주께서는 현무단과 함께 아미파를 구하러 가시지요.”

 한추광의 의견을 독고무영이 즉각 받아들였다.

 “그리하세. 시간이 없는 것 같으니 서둘러야겠어. 사천당문에는 내가 전서구를 띄우지.”

 독고무영도 전날 밤에 사천당문이 전격적으로 합류하겠다는 통보를 받은 것이다.

 “예, 가주님. 그럼 조심하십시오.”

 “그래, 건투를 비네.”

 모두의 얼굴에 비장한 표정이 서렸다.

 그때였다.

 갑자기 천류영이 독고설을 향해 양손으로 입 주변을 모으고 낮지만 강하게 소리친 것은.

 “이봐! 너는 빠져!”

 들릴 듯 말 듯한 작은 외침.

 사람들은 자신들이 잘못 들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독고설조차 환청을 들었다고 생각하며 아미를 찡그린 채 고개를 돌렸다.

 천류영은 독고설이 자신을 보자 다행이라는 안도의 기색으로 손을 들어 흔들었다가 다시 입가로 손을 모아 낮게 외쳤다.

 “너는 빠지라고!”

 환청이 아니었다.

 독고설은 순간 혈압이 하늘 끝까지 치솟았다.

 저 빌어먹을 인간은 왜 계속 자신에게 들러붙어 곤혹스럽게 만드는 건가?

 벌써 한추광을 비롯한 많은 무사들이 천류영과 독고설을 잡아먹을 듯이 쏘아보았다.

 그걸 느낀 천류영은 급히 말했다.

 “마지막 경고야. 네가 준 돈 값은 해야 나도 발 뻗고 잘 테니까. 죽기 싫으면 빠져.”

 결국 독고설이 폭발했다. 대체 저 인간은 왜 자신을 못 잡아먹어 안달인가?

 “야 이, 미친놈아! 당장 꺼지지 못해?! 지금 나보고 겁쟁이가 되라고 하는 거냐?”

 천류영은 찔끔했지만 버티며 말했다.

 일 년간 벌어도 못 벌 큰 돈을 준 그를 이렇게 사지로 보낼 수는 없다는 의지였다.

 그가 준 돈은 여동생에게 처음으로 제대로 된 보약을 지어 줄 수 있었다.

 “저 비구니 가짜라고.”

 “뭐?”

 “가짜! 필시 천마검 백운회가 보낸 간세일 거야.”

 “그게 무슨 개소리…….”

 독고설이 욕설을 채 끝내기도 전에 천류영 앞으로 바람이 확 불었다.

 무적검 한추광이 마치 전광석화와 같은 경신술로 움직여 천류영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네놈이 감히 무슨 말을 지껄이는지 알고 있나? 여기가 어디라고 헛소리로 군기를 문란케 하는 것이냐?”

 “컥컥! 저는 사실을 있는 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이놈이 감히 그래도?”

 한추광은 멱살을 쥐지 않은 손으로 주먹을 쥐었다.

 독고설과 아는 사이라고 해도 이건 용납할 수 있는 단계를 이미 넘어섰다.

 천류영의 얼굴에 그 매서운 주먹이 꽂히기 직전, 그가 황급히 말했다.

 “이, 이유가 있습니다!”

 한추광의 미간이 좁혀졌다.

 “뭐라고?”

 “저 비구니가 천마검의 간자인 열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

 한추광의 몸이 돌처럼 굳었다.

 모두가 황당해 눈을 치켜떴다.

 그 순간 아미파 비구니의 눈빛이 거칠게 흔들리는 것을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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