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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왕의 별
작가 : 강호풍
작품등록일 : 2016.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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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 화
작성일 : 16-08-18     조회 : 750     추천 : 0     분량 : 6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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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4장 아미파의 위기

 1

 

 

 

 청해 땅에 위치한 곤륜파(崑崙派)는 이 년 전 천마검이 이끄는 천랑대에 의해 무너지고 장문인까지 죽음을 당했다.

 살아남은 도가 제자들이 사천성 성도로 피신해 왔을 때, 정파 무림은 외면하지 않고 따뜻하게 맞아 주었다.

 부자가 가난해지면 사람들이 외면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

 그런데도 정파가 곤륜파를 정성스럽게 대접한 이유는 한 명의 인물이 건재했기 때문이었다.

 무적검(無敵劒) 한추광(漢秋光).

 십 년 전만 해도 후기지수의 가장 상석(上席)에 있던 인물로, 차기 곤륜파 장문인으로 내정되어 있던 인물.

 곤륜의 대표적인, 그러나 아무도 익히지 못해 사실상 실전되었던 내공심법인 무상대능력(無上大能力)을 이백 년 만에 부활시킨 천재였으며, 그 심법을 바탕으로 운룡대팔식(雲龍大八式)이란 곤륜 최고의 절학을 사백 년 만에 대성한 장본인.

 사람들은 곤륜이 무너졌을 때, 한추광이 무림맹을 방문하느라 자리를 비웠던 것을 안타깝게 여기며 궁금해했었다.

 과연 한추광이 곤륜에 있었다면 결과가 어땠을지.

 천하의 천마검도 어쩔 수 없이 패배하고 물러났을 것이란 말과, 제아무리 무적검이라도 역부족이었을 것이란 말들이 팽팽하게 맞섰다.

 그는 이미 팔 년 전, 불과 서른하나의 나이에 절정의 경지에 오른 고수였다.

 마흔도 되지 않은 이가 세상으로부터 이 정도 존경을 받는 것은 결코 흔치 않았다.

 오죽하면 ‘곤륜의 진정한 힘은 무적검 한추광이 있어야 빛을 발한다!’는 말이 회자했을까?

 곤륜의 제자들이 그를 바라보는 눈길은 존경을 넘어 희망이었고 숭배였다.

 원수를 갚아 곤륜산에 돌아가는 날까지 도복을 입지 않겠다고 선언한 한추광은 갑주를 착용했다.

 그는 잘 때조차 검을 품에 안고 자며 이를 갈았다.

 공석인 장문인 자리도 그날 오르겠다고 천명한 그는, 천류영의 말에 황당해하면서도 주먹을 뻗지 못했다.

 대체 이 남루한 사내는 뭔가?

 관자놀이에 태양혈이 솟아오른 것도 아니고, 무림인만이 갖는 특별한 기도도 없는 평범한 인물.

 “열 가지 이유라고 했느냐?”

 한추광은 천류영을 뚫어지게 보며 물었다.

 그러자 천류영이 자신의 목을 움켜쥐고 있는 한추광의 손을 툭툭 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런데 숨 막혀 죽을 것 같은데 이것 좀 풀어 주시면 안 됩니까?”

 한추광은 잠깐 머뭇거리다 손을 놓았다.

 “말하라! 만약 순간의 위기를 피하고자 헛소리를 한 것이라면, 내 결코 너를 용서하지 않으리라.”

 천류영은 벌겋게 달아오른 목을 쓱쓱 문지르며 두 차례 심호흡을 했다.

 “저 비구니의 언행에 다 있습니다.”

 “…….”

 한추광은 침묵했다.

 아미파 비구니가 달려와서 말한 건 몇 마디에 불과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그녀의 모습에 열 가지 허점이 있었다는 얘기다.

 너무 기가 차면 말이 나오지 않는 법이다.

 문득 독고설이 아까 외쳤던 말이 떠올랐다.

 ‘사기꾼!’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한추광은 스스로에게 화가 났다.

 이 빌어먹을 인간이 자신을 농락한 것이 아닌가? 그의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르며 다시 출수가 이어지려는 때에 독고무영이 다가와 만류했다.

 “한 대협. 잠깐만 기다려 보게.”

 “가주님! 하지만 이놈은…….”

 “급할수록 돌아가란 말이 있네. 이 청년이 죽고 싶어 안달이 난 것이 아니라면.”

 독고무영이 천류영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눈을 돌려 자신의 딸을 보았다.

 사내들이 보는 눈길이 싫어서 늘 남장만 하고 다니는 설이가 독고무영은 마뜩치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을 가지고 시비를 걸 때가 아니었다.

 “이자가 누구냐?”

 질문을 받은 독고설은 난감했다.

 사실 그녀가 천류영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모두 저자 스스로 뱉은 말에 근거했다.

 이미 천류영은 그녀에게 사기꾼으로 찍혀 있는 상태.

 객관적인 사실은 하나였다.

 “그자는…… 진산 표국에서 쟁자수로 일하다가 어제 쫓겨난, 천류영이라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의 머리에 표국에서 부지런히 짐을 나르는 쟁자수의 모습이 떠올랐다.

 결국 자신들은 이 귀한 시간을 짐꾼 따위의 말에 현혹당해 허비하고 있었단 말이 아닌가.

 어지간해서는 평상심을 잃지 않는다는 독고무영의 얼굴도 짐짓 구겨졌다.

 한추광이 이마에 핏대를 세우며 말했다.

 “이놈이야말로 천마검의 간세일지 모릅니다. 잠깐의 시간이라도 지체시키려는…….”

 천류영이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첫 번째 이유!”

 그의 외침에 사람들이 모두 천류영을 노려봤다.

 천류영은 그 싸늘한 시선을 받으면서 말했다.

 “저 비구니는 여기에 도착하자마자 독고가주님이 건네준 수통을 한 통 다 마셨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에 살기가 담겼다.

 저 무슨 허튼소리란 말인가. 대체 그게 무슨 문제란 말인가.

 침묵하며 천류영을 보던 비구니가 원통한 어조로 끼어들었다.

 “시주께서는 저에게 무슨 억하심정이 있다고 그런 말을 하시는 겁니까? 저는 사천 분타까지 거의 한 시진 가까이 쉬지 않고 달렸고, 또한, 이곳까지 다시 한 시진이나 죽을힘을 다해 달려온 사람입니다.”

 무려 이백 리를 두 시진에 돌파한 그녀다.

 과연 아미파 장문인이 믿고 보낼 만한 경공술의 달인이었다.

 또 한편으로는 얼마나 절박하고 힘들었을까, 라는 딱한 마음도 들었다.

 천류영은 온몸이 따끔거리다 못해 아파 왔다.

 그는 이게 많은 이들이 자신을 향해 일으킨 살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무림인들의 살기란 것은 그렇게 무서운 것이다.

 “예, 당연히 갈증이 심하겠지요. 하지만 지금 아미파가 포위되어 공격받고 있다고 하신 분이 수통 하나를 다 드실 정신이 있습니까?”

 “……!”

 “장문인과 스승님, 사형, 사제들이 죽고 있을 터인데, 그것을 알기에 이백 리를 뛰고, 또 뛰신 분이 말입니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지신 분이라면 물보다 상황 전달이 먼저입니다. 몇 마디면 되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갈증이 심해도 한두 모금만 축이고 말하는 것이 상황과 사람 심리에 맞습니다.”

 천류영은 자신이 말을 마치는 순간 전신을 옥죄던 살기가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휴우우…….”

 절로 안도의 한숨이 입술 사이로 비집고 나왔다.

 수많은 무사들은 의아한 시선으로 비구니와 천류영을 번갈아 보았다.

 억울한 표정의 비구니와 점차 신색을 회복하는 천류영.

 사람들은 천류영의 말이 그럴듯하다고 여겼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비구니를 간세로 몰고 가기엔 과하다는 생각도 동시에 들었다.

 그들의 생각을 짐작한다는 듯 천류영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

 “두 번째. 적의 인원을 너무 상세히 파악하고 있습니다. 아마 어떤 것을 설명할 때 숫자나 통계를 동원하면 사람들의 믿음이 높아지는 심리를 노린 거겠지요. 아미파를 동원한 흑의인이 육백 명이라……. 비구니께서는 빠져나오면서 사람들 수를 세어 보기라도 한 것입니까?”

 비구니가 곧바로 대꾸했다.

 “그건 대충 어림잡아…….”

 천류영이 고개를 저으며 그녀의 말꼬리를 잘랐다.

 “매복하고 있던 이들이 갑자기 습격을 한다면 적의 인원을 아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특히나 포위까지 당하면 사방이 적인지라 심리적으로 쫓기게 되어 더욱 그렇지요.”

 “…….”

 “비구니께서는 이렇게 말해야 옳습니다. 아미파의 인원들보다 훨씬 많아 보이는 적들이라고. 아무리 좋게 사정을 감안해도 두 배는 많아 보였다고 말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육백 명이라고 딱 잘라 말하시다니. 숫자를 동원할 때는 늘 조심하는 것이 좋습니다. 양날의 검이니까요.”

 천류영 앞에 있는 한추광 그리고 그의 곁에 있는 독고무영은 멍한 표정이 되었다.

 듣고 보니 이번 말도 일리가 있지 않은가?

 말 위에 있던 독고설도 놀란 얼굴로 눈을 치켜떴다.

 그녀에게 옆의 조전후가 속삭였다.

 “어제도 느꼈지만, 정말 보통 젊은이가 아닙니다. 과연 조장님께서 술을 살 만하셨습니다.”

 “어? 아! 그, 그렇죠.”

 “그런데 왜 아까 사기꾼이라고…….”

 “…….”

 독고설은 머릿속이 어지러워졌다.

 대체 저 인간은 뭔가? 그렇게 만취한 상태에서도 거짓을 읊은 것인가?

 모두가 천류영의 말을 듣고서야 비구니의 언행에 문제가 있음을 눈치챘다.

 그전에는 전혀 인식하지 못했던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이다.

 더욱 기가 막힌 건, 천류영은 열 가지 이유라고 했다.

 그리고 지금은 고작 두 가지가 나왔을 뿐이다.

 열 가지 이유라니!

 대체 이게 말이 되는 건가?

 아무렇지도 않아 보였던 짧은 언행 속에 그 많은 허점이 있었단 말인가?

 독고설은 묘한 눈빛으로 천류영을 주시했다.

 천류영은 잠시 숨을 고르고 비구니가 억지라고 외치는 것을 무시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세 번째 이유는…….”

 모두가 귀를 쫑긋 세웠다.

 순간 주변에 정적이 맴돌았다.

 비구니조차 입을 다물고 천류영의 입을 주시했다.

 대체 저 입에서 이번엔 무슨 말이 쏟아질까?

 “비구니께서는 천마검 백운회가 성도에 잠입한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죠?”

 비구니가 대꾸했다.

 “그래요,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게 당최 무슨 문제가 있다는 것이죠?”

 천류영이 귀밑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했다.

 “거기까지는 괜찮았습니다. 문제는 이어지는 말에 있었죠. 바로 다음에 천마검 백운회가 사천 분타를 공격하고 있다는 대목 말입니다.”

 “……?”

 비구니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의아한 눈빛으로 천류영을 보았다.

 ‘대체 그게 무슨 문제지?’라는 표정이 각자의 얼굴에 가득했다.

 천류영은 여승을 뚫어지게 보며 설명했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긴박한 상황에서 하나의 사건을 말할 때 추정과 사실을 동시에 얘기하지 않습니다. 이치에도 맞지 않지요. 보통은 이렇게 말을 합니다. 천마검이 성도해 잠입해 있었다. 그래서 지금은 사천 분타를 공격 중이다.”

 “…….”

 “비구니께서는 긴박한 상황에서도 모호한 추측과 확실한 사실을 시간 차이도 없이 바로 이어 말을 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건, 원하는 어떤 것을 이루기 위해 사실을 조작했다는 거지요. 비구니께서는 이 일을 누군가에게 명령받았고, 기계적으로 상황을 외웠을 뿐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무림인들 중 몇몇 사람들이 탄성을 터트렸다.

 이제 아미파의 비구니를 향한 사람들의 의심이 점점 커져 갔다.

 비구니 곁의 현무단주 능운비는 어느새 자신의 옆구리에 차고 있는 검을 쥐고 있었다.

 여차하면 발검 하겠다는 기세가 그의 전신에서 피어올랐다.

 궁지에 몰려가는 비구니는 속으로 이를 갈았다.

 그러나 더욱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려 애쓰며 말했다.

 “시주께서는 사람을 몰아붙이는 데 일가견이 있는 분이군요. 긴박한 상황에서 말을 하다 보면…….”

 천류영이 비구니의 말허리를 잘랐다.

 “네 번째!”

 사람들이 다시 숨을 죽이고 귀를 쫑긋 세웠다.

 독고무영과 한추광은 천류영을 새삼스러운 시선으로 보았다.

 “사천 분타주인 철혈께서 그곳도 접전 중이라 이곳으로 구원을 요청하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죠?”

 비구니는 입술을 깨물었다.

 천류영의 질문에 답하기가 꺼려졌다.

 그녀는 난생처음으로 칼보다 세 치 혀가 더 무섭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계속 침묵한다면 의심만 더 살 뿐이다.

 “그게…… 무슨 문제죠?”

 “제가 알기론, 사천 분타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는, 마교를 막기 위해 세워진 요새입니다. 보통 그런 자리에는 아무 사람이나 앉히지 않지요.”

 천류영의 지적대로 철혈 맹천후는 신중하기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오죽하면 전날 밤도 경계를 두 배나 강화하라는 명을 내렸을까?

 모든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천류영이 말을 이었다.

 “그런 자리에 있는 분이 과연 백 리 길을 달려온 사람을 다시 백 리나 달리게 할까요? 사천 분타의 깃발을 내어 줄 정신은 있으면서 새로운 사람을 급파할 생각은 못했을까요?”

 비구니의 얼굴에 마침내 곤혹스러움이 드러났다.

 “그, 그거야…… 내가 경공술이 탁월하니까 내가 가겠다고 한 것입니다!”

 아미파의 반박은 마치 악다구니를 쓰는 것 같았다.

 그러나 천류영의 음성은 대조적으로 차분했다.

 “제가 아무리 무림인이 아니지만 그건 좀 터무니없게 들리는군요. 제가 철혈 분타주님이라면 땀으로 흠뻑 젖어 헉헉거리는 사람을 결코 다시 등 떠미는 짓은 하지 않을 겁니다. 삼척동자라도 그런 우매한 짓은 하지 않아요.”

 “시주! 내가 연거푸 자청했단 말이에요.”

 “정 그랬다면…… 저 같으면 말이라도 한 필 내어 주었을 텐데.”

 “…….”

 “독고가주님에게 전서구도 띄웠을 테고.”

 비구니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러나 이내 자신을 향한 살기를 느낀 그녀는 억지로 입을 열었다.

 “처, 철혈 분타주께서는 전투를 지휘하시느라 정신이 없으셨습니다.”

 그 말에 천류영이 ‘풋!’하고 어이없다는 실소를 뱉었다.

 비구니는 그 작은 실소가 심장을 찌르는 비수 같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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