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6
태양이 천공의 중심으로 달려가며 점차 뜨거운 빛을 대지 위로 뿌렸다.
전날 밤의 추위가 무색할 정도로 이제는 완연한 봄이 왔다는 느낌을 주는 날씨.
천류영은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말에서 내렸다.
산이 높지는 않았지만 가파르고 수목이 꽤나 우거졌다.
말을 타고 가기엔 무리가 있었다.
독고설 옆에 있던 야차검 조전후가 다가와 등을 내밀었다.
업히란 뜻이다.
천류영은 당혹스러웠지만 군말 없이 그의 등에 업혔다. 쓸데없는 객기를 부릴 때가 아니었다.
낮은 야산 너머에서 고함과 비명이 아스라이 들려왔다.
그 소리에 정파인들은 눈에 불을 켰다.
무려 한 시진 가깝게 뛰어온 그들이었지만 아미파가 죽어 가고 있다는 생각에 이를 갈았다.
천류영은 그들을 보며 자신도 꼭 무술을 익혀야겠다고 다짐했다.
같은 사내로서 저런 체력은 정말이지 부럽기 그지없었다.
어떻게 말을 타고 온 자신이 더 지쳐 있는지 남세스러울 지경이었다.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무적검 한추광이 선두로 뛰어나가며 말했다.
“갑시다.”
곤륜파와 현무단이 고개를 끄덕이며 거침없이 산을 올랐다.
독고세가는 야산을 우회해 샛길로 들어가기 위해 이미 갈라져 따로 움직였다.
천류영이 말을 타고 이동하면서 세 수장들에게 몇 가지 계책을 조언했고, 독고무영이 받아들인 것이다.
조전후 등에 업힌 천류영은 몰래 혀를 내둘렀다.
솔직히 그는 아미파가 이미 전멸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마교도들은 분명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습을 했을 터인데 아직까지 싸움이 끝나지 않았다? 아미파가 강한 것일까? 아니면 적들이 아미파를 과소평가한 것일까?’
천류영은 둘 다일 거라고 판단했다. 그의 눈이 조용히 빛을 발했다.
여기까지 왔다가 그냥 돌아가면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젠 발을 뺄 수 없게 되어 버렸다.
그렇다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이겨야 했다.
어쨌거나 혹시나 해서 독고세가를 분리시킨 일은 현명한 선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마검 백운회……. 그가 개입만 하지 않는다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
천류영은 자신이 보낸 서른 명의 인마가 충분한 시간을 벌어 주길 기원했다. 그러면서도 최악의 상황을 대비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천류영.
그는 자신도 모르게 진짜 책사가 되어 싸움에 몰입해 가고 있었다.
***
“왜 더 오지 않는 것이지?”
백운회는 삼백여 장 앞에서 멈춰 있는 서른 인마를 보면서 얼굴을 찌푸렸다.
저들이 도착한 지 일각.
지금쯤이라면 경공이 빠른 고수들이 속속 도착해야 할 시점이었다.
‘속은 것인가?’
백운회는 입술을 질끈 깨물었다.
계속 머릿속을 떠나지 않던 찜찜함의 이유가 이젠 명확해졌다.
어이가 없어 실소가 흘러나왔다.
싸움은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더구나 무적이라 불리는 사천 분타를 접수했다. 그런데도 묘한 패배감이 그의 가슴을 짓눌렀다.
그의 옆에서 함께 있던 초지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
“저놈들 속셈이 뭔지 모르겠군요. 서른 명이 이곳을 공격할 리는 만무하고……. 저들 뒤로 오는 인원들에 대한 보고도 전혀 없고.”
답답하다는 듯 말하는 초지명에게 백운회가 딱딱하게 말했다.
“속았소. 그 정체불명의 인물은…… 시간을 벌려고 저 서른 명을 이리 보낸 것이오.”
“예?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 서른 명을 제외하고는 지금 모두 아미파를 구하러 가고 있을 거요. 물론 지금쯤이면 아미파는 전멸했겠지만……. 만에 하나 그렇지 않다면 우리 쪽이 되려 위험에 처할 것이오.”
초지명의 얼굴도 덩달아 굳어졌다.
“설마요?”
백운회는 흑귀도 장로에게, 자존심은 잠시 접어 두고 냉혈쌍절 장로들과 힘을 합쳐 보현신니를 최우선적으로 제거하라고 조언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흑귀도 장로는 입으로는 그렇게 하겠다고 말했지만, 왠지 탐탁지 않아 보였던 그의 표정이 목에 가시처럼 걸렸다.
당시 그의 눈빛은 ‘백운회 너는 상대 수장과 늘 일대일 대결을 하면서, 자신은 위험하니 하지 말라는 것이냐? 천마신교의 장로를 대체 뭐로 보는 것이냐?’라는 힐난처럼 보였다.
백운회는 당시 불안감이 들면서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았다.
설사 흑귀도 장로가 보현신니를 홀로 상대한다고 해도 이기는 데에는 별문제가 없을 것이라 판단했던 것이다.
그런데 사달이 났다.
정체불명의 인물로 인해서 상황이 뒤틀어졌다.
만약 흑귀도 장로가 자신의 조언을 무시했다면 그 대가는 결코 싸지 않을 것이다.
흑귀도 장로야 자신의 과오로 죽어도 상관없지만, 애꿎은 수하들은 무슨 죄인가?
“아미파를 부수고 이리 오는 중이라면 문제없겠으나, 그것이 아니라면…….”
백운회는 입술을 깨물며 잠시 말을 끊었다가 이었다.
“아무래도 지원군을 보내야겠소. 관태랑!”
뒤에 있던 천랑 부대주 관태랑이 입을 열었다.
“하명하십시오.”
“내가 직접 천랑대 이백을 이끌고 가겠다.”
“존명!”
관태랑이 대답과 함께 뒤돌아섰다.
그 순간 초지명이 끼어들었다.
“잠깐만!”
흑랑대주의 갑작스러운 제지에 백운회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뜻이오?”
초지명이 백운회의 눈을 정면으로 보며 말했다.
“이건 내가 해야 할 일인 것 같군요.”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소.”
“그곳에는 흑랑 부대주이며 내 친동생인 초지곽이란 놈이 있습니다.”
“음…….”
백운회는 낮게 신음을 흘렸다.
초지명이 자신의 하나뿐인 혈육을 얼마나 아끼는지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백운회는 잠깐 고민을 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소. 이곳에 있는 흑랑대 삼백을 모두 데리고 가시오. 만약 흑귀도 장로가 쫓기고 있으면 합류해 적을 막되, 무리한 공격은 절대 하지 마시오. 이곳까지 신속한 퇴각이 가장 중요하오. 소교주가 이끄는 본 교의 주력이 도착할 때까지 우리는 이곳을 사수해야 할 책임이 있으니까.”
“명심하리다.”
“그리고…… 나는 흑랑대주 초지명 같은 용장을 잃고 싶지 않소.”
담담한 말투였다.
하지만 그 말에는 무한한 신뢰와 정이 숨겨져 있었다.
초지명은 순간적으로 가슴속에서 뭔가가 울컥하는 것을 느꼈다.
함께 야전에서 몇 년을 동고동락했지만, 이런 말은 처음이었다.
“고맙습니다. 마교에서 평무사로 출발해 지금까지 삼십 년 가까이 야전에서 살아왔소. 경험이나 나이는 제가 더 많지만 사실 천랑대주를 존경해 왔다는 것을 꼭 말씀드리고 싶었습니다. 상관이라서 아니라, 나는 반드시 천마검이란 이름과 함께 마교천하를 이루고 싶은 꿈이 있으니까. 그러니 그전에는 당연히 죽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초지명은 뜨거운 어조로 말을 하고는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
그리고 돌아서며 담담하게 말했다.
“흑랑대 이백만 데리고 가겠습니다. 이 큰 요새에 겨우 삼백만 남겨 둔다는 건 말도 안 되지요.”
백운회가 놀라 만류하려던 순간 초지명이 바로 말을 이었다.
“저는 흑랑대주 초지명입니다.”
그의 말에 백운회는 쓴웃음을 깨물었다.
초지명은 누구보다 강한 전사였다.
또한 오랜 세월 야전에서만 살아왔기 때문에 위기와 기회가 시시각각 변하는 전장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를 자연스럽게 체득한 사람이었다.
백운회는 내실을 빠져나가는 초지명을 보며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꼈다.
만약 그의 동생이 죽었다면 참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그가 보여 준 과감함과 노련함을 믿고 싶은 감정이 일었다.
‘만약 흑랑대주가 죽는다면?’
순간적으로 든 생각에 백운회는 고개를 저었다.
쉽게 죽을 사람이 아니고, 또한 죽어서는 안 되는 인물이었다.
자신과 주도권을 다투고 있는 소교주와의 보이지 않는 권력 다툼에서 흑랑대주는 자신의 편이 되어 줄 사람이니까.
초지명은 마교가 가지고 있는 외곽부대를 두루 거치면서 상당한 인망을 얻은 야전의 맹장.
초지명의 지지를 얻는다는 것은 수많은 외곽부대원들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말과 일맥상통했다.
그가 위기에 빠진다면…… 어떻게 해서든 살려야 할 것이리라.
그는 정말 괜찮은 장수였으며 훗날 백운회 자신이 마교의 대권을 쥐게 된 다음에도 인재로서 해야 할 일이 많은 자였다.
백운회는 고개를 돌려 저 멀리 떨어져 있는 서른 인마를 보았다.
일단 저들부터 없앤 다음에 뒤따라가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었다. 저들에게 궁금한 것도 있고 말이다.
서른 명.
저들은 별 시답지 않은 욕설을 계속 퍼붓고 있었다.
백운회는 서늘한 미소를 지으며 검좌대에 걸쳐 있는 자신의 검을 잡았다.
“관태랑!”
“예, 대주님.”
“천랑대 이백을 출격 준비시켜라.”
관태랑의 눈가가 경련을 일으켰다.
그렇게 되면 이곳은 고작 이백 명만 남는다.
만약 예상치 못한 정파인의 기습이 있다면 이 넓은 요새를 이백 명으로 막는다는 것은 절대 무리다.
그러나 관태랑은 허리를 숙이며 답했다.
“알겠습니다.”
명하는 사람은 천마검 백운회, 자신의 직속상관이었다.
지난 십 년간 모시며 늘 경탄하게 만든 그 사람. 천하일통이라는 엄청난 꿈을 꾸게 한 인물이며, 그가 펼칠 새로운 세상을 기대하게 만들어 주었다.
백운회가 싱긋 웃으며 관태랑을 보았다.
“무슨 걱정하는지 알아. 그러나 흑랑대주 초지명은 이깟 사천 분타보다 수십 배 중한 사람이야. 어떤 요새라도 다시 탈환할 수 있지만, 사람은 한 번 잃으면 두 번의 기회가 없어.”
백운회의 수하 사랑과 더불어 유명한 인재 사랑이다.
그는 적이라도 능력이나 인품이 탁월한 자라면 존중해 주는 사람이었다.
“예. 저에게 부연 설명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저는 그저 대주님이 시키는 대로 움직일 뿐입니다.”
백운회가 관태랑의 어깨를 손으로 툭툭 치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나는 그대에게 지금까지 해 왔듯 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말할 거야. 왜냐하면 그대는 나와 같은 꿈을 꾸며 달려가는 동반자니까.”
관태랑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마교의 수많은 고수들은 수하들을 소모품으로 여긴다.
그러나 이 사람은 다르다.
사람을 아낀다.
무인에게 있어 자신을 알아봐 주는 장수가 있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관태랑이 설레는 표정으로 말했다.
“알겠습니다. 저는 대주님이 없는 동안 이곳을 지키겠습니다. 아무 걱정 마시고 하고자 하는 일을 하십시오.”
“고마워. 하지만 나나 이곳이나 모두 별 일 없을 거니까 너무 우려하지 말라고. 그럼 나는 저들에게 잠깐 용무 좀 보고 올 테니 그때까지 출동 준비를 마치도록.”
백운회는 말을 마치고 창가로 달려갔다.
그리고 바닥을 치고 창밖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휘이이익!
높고 긴 휘파람 소리.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흑마가 백운회에게 달려왔다.
금광구가 그의 머리 위에서 빙빙 선회했다.
독고세가의 총관 황하성과 부총관 이민걸은 스물여덟의 수하들을 시켜 걸쭉한 욕설을 뱉으라고 명하고는 일각 동안 하는 일 없이 사천 분타를 보았다.
원래라면 무림맹 분타의 깃발이 나부껴야 할 그곳에 지금은 천마신교라 쓰여 있는 기가 꽂혀 있었다.
황하성이 치욕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원통하군. 저 마교의 졸개들에게 백 년간 무적의 분타라고 불렸던 곳을 내어 주다니.”
무적의 무림맹 사천 분타.
그건 정파인들에게 늘 두려움의 대상이었던 마교를 잇달아 격퇴시켰던, 자부심이 서려 있는 곳이다.
이민걸이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다시 찾아와야지요.”
“그래, 그래야지.”
말은 그렇게 했지만 가슴은 더할 나위 없이 답답했다.
저 깎아지를 듯한 높은 언덕에 위치한 요새를 점령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적지 않은 피해가 불 보듯 빤했다.
“그나저나 천마검은 대체 무슨 잔꾀로 저곳을 점령했을까요?”
“글쎄…… 대체 그걸 누가 알겠는가? 혹시 모르지. 그 천류영이란 청년은 알지도.”
황하성의 말에 이민걸이 작은 미소를 지었다.
“그 청년. 정말 대단하더군요. 정말 표국의 쟁자수였을까요? 그런 재주를 가진 사람이 어떻게 짐꾼일 수가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고 뛰어난 인재는 숨어 있어도 드러나기 마련인데 말입니다.”
황하성도 공감하며 말을 받았다.
“동감이야. 표국의 높은 사람에게 단단히 찍히지 않는 이상…….”
황하성은 말을 하다가 피식 웃었다.
자신의 말에 답이 있었다.
이민걸도 따라 웃으며 말을 받았다.
“찍혔나 보군요. 흠……. 인성에 무슨 문제가 있었을까요?”
“모르지. 국주의 그릇이 천류영이란 청년을 담을 수 없어 질투했었을지도. 어쨌거나 이제 슬슬 돌아가세.”
원래 천류영은 당도하자마자 돌아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황하성과 이민걸은 사천 분타에 꽂혀 있는 마교의 깃발을 보고는 울화통이 터졌다.
결국 그 둘은 욕이라도 실컷 하고 돌아가자고 의기투합한 것이다.
황하성이 수하들에게 그만하고 돌아가자며 말머리를 돌리는 순간, 사천 분타에서 한 사람이 말을 타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독고세가의 서른 명은 흠칫하고 놀랐다가 그 뒤로 아무도 따라오지 않는다는 사실에 적잖이 가슴을 쓸어내렸다.
“빠른 속도로 돌아간다.”
황하성이 명을 내리자 모든 인원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때 홀로 나온 이가 큰 소리로 외쳤다.
“멈춰라. 나는 천마검 백운회다. 오는 것은 마음대로 왔어도 결코 너희들 뜻대로 갈 수는 없지.”
“천마검 백운회?”
황하성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이민걸을 보았다.
이민걸도 황당하긴 마찬가지였다.
적장이 홀로 이렇게 달려오는 것이 믿겨지지 않았던 것이다. 이민걸이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급히 말했다.
“총관님, 후퇴해야 합니다. 정말 천마검인지도 의심스럽지만, 적장을 잡을 기회라 생각하고 놈을 기다렸다가는 자칫 저들의 술수에 말려들 수 있습니다.”
달려오는 이의 정체는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 상당한 고수일 것이다. 합공을 한다면 어렵지 않게 제거할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다가 적들이 쏟아져 나오면 상황이 곤란해질 수 있었다.
이민걸의 말에 황하성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타고 있는 말의 배를 힘차게 찼다.
“이랴!”
두두두두.
서른 필의 말이 지축을 울리며 움직이자 뿌연 흙먼지가 일었다.
독고세가 일행은 거침없이 질주하면서도 종종 뒤를 흘낏 보았다.
정체불명인 자는 홀로 계속 자신들을 따라왔다.
놈의 말이 상당한 명마인지 거리가 갈수록 줄어들었다.
아마 자신들이 탄 말이 조금 전까지 적지 않은 거리를 달리느라 지친 이유도 있을 터였다.
황하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뭔가 기분이 더럽군.”
마치 한 명에게 서른 명이 쫓기는 모양새니 그런 마음이 드는 것도 당연지사.
이민걸도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했다.
“사천 분타와의 거리가 이젠 제법 됩니다.”
이민걸의 말은 저자를 생포하거나 처치하자는 것이다.
황하성은 순간 천류영의 말이 떠올랐다.
죽어라 갔다가 꽁지 빠지게 돌아오라는.
천류영은 별 생각 없이 한 말이었겠지만, 듣는 사람은 꽤나 자존심이 상하는 말이다.
또한 아미파를 구하러 간 동료들은 목숨을 건 싸움을 할 터인데 자신들은 하는 일 없이 말 타고 왔다 갔다만 한다는 것도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
황하성이 우물거리다가 말했다.
“부총관, 저놈을 잡을까?”
이민걸이 마치 그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냉큼 답했다.
“그게 좋겠습니다. 저 한 놈이 두려워 도망가는 것 같은 모양새가 영…….”
“만약 저놈이 정말 천마검 백운회라면?”
“그럴 리야 없겠지만…… 만약 그렇다면 큰 공을 세울 기회지요.”
천류영은 서른 명 중 고수는 약간만 있으면 된다고 했다.
그러나 기실 이번 독고세가의 무사들은 마교와의 싸움을 대비해 정예들만 추렸다.
당연히 자신들과 함께 있는 스물여덟의 수하들도 한 가닥 하는 이들이었다.
빠르게 말을 모는 와중에도 둘의 대화를 듣고 있던 수하들 몇 명이 입을 열었다.
“총관님. 저놈이라도 해치우고 가지요.”
“예, 그게 좋겠습니다.”
“우리도 뭔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수하들의 이구동성(異口同聲)에 황하성과 이민걸이 빙그레 웃었다.
황하성이 손을 들며 외쳤다.
“잠시 멈춰 저놈을 후딱 해치우고 다시 가자! 생포한다면 더욱 좋겠지. 사천 분타를 어떻게 점령했는지 물어볼 수 있을 터이니.”
“복명!”
스물여덟 수하가 동시에 외치며 말고삐를 쥐었다.
히이이힝.
서른 필의 말이 울음을 토하며 자리에서 급히 멈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