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그 시각 11시 58분, 한 건물의 옥상
병원에서 나온 뒤로 남자는 한참 동안이나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평소 누리지 못했던 것들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즐기기 위해서였다.
원래 같았다면 병원 침대에 누워있을 시간이었겠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그는 남들이 다 가는 카페에 혼자 앉아 바깥 거리를 구경하기도 하고 먹어본 적 없던 길거리 음식을 사보기도 했다. 그래봤자 먹지는 못하지만- 상관없었다.
그저 그의 기억에 추억으로만 쌓아놓으면 될 것이었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어두워진 하늘을 바라보며 남자는 입을 열었다. 방금까지만 해도 중천에 떠있는 것 같았던 해는 어느새 시간이 지나 다 저버리고 없었다.
이제 시간이 다 된 듯했다. 형을 만나러 가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남자는 여러 차례에 걸쳐 주변을 둘러보다, 그나마 그의 기준에서 제일 높다고 생각되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망설임 없이 곧장 옥상으로 향했다.
그리고 현재.
그는 옥상 난간에 몸을 걸친 채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중이었다. 아래로 자그맣게 보이는 사람들은 개미보다도 훨씬 작아보였다.
마치 점을 연상시키는 그 모습에, 남자가 작게 헛웃음을 지어보였다.
세상은 한없이 큰데 인간은 그에 비해 너무나도 작았다. 악착같이 버텨왔던 20년이란 시간이, 그에게 있어서 조금 억울하게 느껴질 만도 했다.
“그냥 혼자가 되자마자 죽는 게 더 나았을 텐데.”
세상의 수많은 점들 중 하나로 기억되기 위해서, 작디작은 형태로 존재하기 위해서. 그동안 아등바등 살아온 자신이었나 싶어 그는 허무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제 한탄은 그만하는 게 좋겠지.’
그는 난간을 붙잡고 있던 두 손으로부터 점차 힘을 빼내기 시작했다.
“가자, 선우한.”
‘이제, 안녕.’
그렇게 선우한이라는 남자는 자신의 삶 또한 스스로에게 포기 당했다.
마침내 힘이 다 빠져버린 그의 몸은 어느 순간 정처 없이 아래로 기울어져 버렸다. 그 결과, 허공에 몸을 맡긴 채 그가 아래로 끊임없이 추락하고 있는 게 보였다.
“꺄아아악-!!!”
“저기 사람이 떨어진다!!!!!”
몇 초 뒤에 있을 신의 자비에, 기뻐하고 있던 사람들이었으나 이들은 그를 보자마자 경악으로 물들고 말았다.
맨 처음 그의 추락을 발견한 여자는 심하게 충격을 받은 탓인지 들고 있던 휴대전화를 바닥으로 떨어뜨려버렸다.
바닥에 닿자마자 산산조각 난 휴대전화의 액정 속에는 타이머가 작동되고 있었다.
현재 시각은 자정이 되기 2초 전.
선우한의 몸이 땅바닥에 거의 다 왔을 때쯤, 사람들의 머릿속에는 각인과 함께 소원자 발표가 시작되고 있었다.
그런데 그 순간.
그를 둘러싸고 있던 사방의 소음이 싸늘하게 고요해졌다. 아무런 소리도 선우한의 귓가에 들리지 않았다.
심지어 바닥에 곤두박질치며 떨어져야 했던 그가, 이상하게도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아무런 고통도 느껴지지 않아, 그는 꽉 감고 있던 눈을 살며시 떠보았다.
……!
“이럴 수가…….”
신기하게도 몸이 공중에 멈춰있었다.
선우한은 너무 놀란 나머지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놀란 이유는 이게 다가 아니었다.
선우한 뿐만 아니라 그를 바라보던 거리 위의 사람들도 모두 제자리에 서서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마치 시간이 멈추기라도 한 것처럼.
“…….”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그가 잠시 생각하는 사이, 어디선가 앙칼진 여자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왜 하필 이런 애가 소원자가 된 거야 정말…!”
삶을 포기한 애라니. 여자는 툴툴대며 선우한의 앞으로 가까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녀가 걸어오는 도중에 ‘소원자’를 언급하자, 선우한의 몸이 빳빳하게 굳어버렸다.
설마-
“…혹시나 해서 말하는 건데 나, 신 아니다?”
“…….”
굳어 있는 그를 보며 여자는 자기 뜻대로 해석한 건지 그가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엉뚱한 말을 내뱉었다.
“굳이 말하자면… 나는 신의 수행원 같은 거랄까. 아무튼 너가 생각하는 그거는 아니야.”
‘그럼 어쨌든 내가 생각하는 그게 맞는 건가.’ 선우한은 쿵쾅대는 심장을 애써 무시하고 겨우겨우 말을 꺼냈다.
“그, 그렇다면 지금 제가…”
“응. 이번 소원자는 너가 됐어.”
축하해- 그녀는 선우한의 물음에 무심히 답했다.
‘그러니까 전 세계를 범위로 돌리는 그 무작위에 내가 걸린 거라고?’
그는 손으로 얼굴을 쓸어대며 마른세수를 몇 번이고 해 보였다. 혹시 죽고 나서 꿈을 꾸는 것이 아닐까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럴 확률은 제로였다.
죽었어야 할 그가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있다는 것이 증거였다.
그가 혼란스러운 상태인걸 아는 것인지, 자신을 수행원이라 소개하던 그녀는 신속하게 자신의 업무를 진행했다.
“소원자의 특혜에 대해 알고는 있겠지?”
“…네.”
“그렇다면 바로 시작하자. 지금부터 너의 내면의식이 원하고 있는 걸 찾아낼 거야. 그러기 위해서는 마음을 오직 한 군데로 집중시키는 게 중요해.”
“…….”
내면의식.
아무리 본인이라 해도 자신의 내면의식이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기는 어려웠다. 그 때문에 소원의 결과는 아무도 가늠할 수가 없다. 다들 마음이 제각각일 테니까.
“아, 너무 야박한가? 생각해보니 많이 혼란스러울 수도 있겠어. 마음을 추스를 정도의 시간은 주도록 하지. 준비됐으면 말해.”
여자는 선우한을 바라보며 느긋하게 팔짱을 껴 보였다.
그녀의 모습은 마치 ‘나 지금 인심 쓰고 있어요.’라고 말해주고 있는 듯한 얼굴이었다.
선우한은 숨을 있는 힘껏 들이켜 마셨다.
이미 자신은 인생 그리고 삶을 포기한 뒤였다. 어떤 소원이라도 그에게 해를 가하지도, 이익을 주지도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냥 바로 해주세요.”
“…뭐?”
“지금 당장 해달라고요.”
살다 살다 이런 경우는 처음 본다는 얼굴을 하며 그녀는 인상을 대놓고 찌푸려댔다.
‘다들 생각할 시간 혹은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달라며 조르던데. 얘는 뭐지.’
그녀의 예상과 다르게 선우한은 오히려 이 상황이 어서 끝나기를 원하고 있었다.
“하‥ 그렇게 하길 원한다면야.”
그녀는 선우한의 가슴께로 손을 갖다 대었다. 그녀의 행동을 따라 선우한도 눈을 감아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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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눈감고 있는 사이, 어느새 그의 몸은 다른 장소에 도착해 있었다. 하지만 당사자인 선우한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르는 듯 했다.
그 시각, 그녀는 내면의식에 도착한 그를 확인하고서 곧바로 손을 때내었다.
사실 그녀의 눈에 보이는 상황을 말하자면 그의 몸은 가로로 붕 떠 있는 중이었다. 그는 언뜻 보기에 잠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럼 이제 신의 자비를 잘 즐겨봐.”
그녀는 그의 모습에 만족한 듯 손을 탈탈 털고서 그 자리를 떠났다.
그저 눈을 한 번 깜빡인 것뿐인데, 어느새 선우한은 다른 장소로 이동해있었다. 그리고 지금 그는 어지럽게 느껴지는 이상한 이곳을, 한참동안이나 자기도 모르게 걸어 다니고 있었다.
그러다 도착이라도 한 것인지, 갑자기 잘만 움직였던 몸이 우뚝 멈춰버렸다.
멈춰버린 그 순간.
어디에선가 눈부신 빛이 흘러나왔다.
뿌옇지도, 그렇다고 투명하지도 않은 빛이었다. 빛은 당연한 듯 목각처럼 서있는 선우한의 몸을 감싸오고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온몸은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환한 빛에 둘러싸여버렸다. 따뜻하면서도 차가운 그 느낌에, 선우한은 기분이 묘해졌다.
빛은 점점 은은한 빛깔을 띠며 그를 중심으로 서서히 흩뿌려지듯 사방으로 퍼져나갔다.
툭-
“……방금, 뭐지.”
선우한의 볼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그 물방울은 분명 자신의 눈에서 나온 것이었다.
지금 선우한은 정확히 ‘우는’ 중이었다.
눈물은 두 방울, 세 방울에 이어 쉴 새 없이 그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하, 하하… 몇 십 년 만에 우는 건가…….”
20년 전 ‘그날’ 이후로 울어본 적 없던 그였다.
어떤 감정을 느끼는 것인지는 자신도 모르겠으나 그는 순식간에 차오른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선우한은 갑자기 무의식중에 나지막이 입을 열어 말했다.
“돌아갈래.”
‘……!’
내가 지금 뭐라고 하고 있는 거지.
그는 전혀 의도하지 않은 말을 내뱉고 있었다. 겉모습과 속마음이 마치 따로 분리된 것 같았다.
겉모습의 선우한은 마지못해 팔을 들어 얼굴에 묻고서는 웅얼거리듯 훌쩍이며 말했다.
“데려다줘, 제발.”
몸이 전혀 말을 듣지 않은 채 스스로 움직이고 있었다. 아까 자신의 몸을 감싼 그 이상한 빛 때문일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계속해서 겉모습은 말을 이어나갔다.
“너무 가고 싶어…”
‘……그곳이 어딘데.’
그가 스스로에게 되물었다.
더 이상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는 내가- 도대체 어디를 가야하는데.
너는. 어디를 가고 싶은 거야, 선우한.
* * *
햇빛이 너무 강하게 내리쬐고 있던 탓에 방 창문에서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눈 부심들이 가득했다. 그리고 그 눈부심은 지안에게까지 전해져왔다.
덕분에 지안은 자고 있던 도중에 강제로 잠에서 깨어날 수밖에 없었다.
‘어제 잘 들어왔었나.’
그녀는 어제 있었던 일들을 곱씹어보듯 하나하나 짚어나갔다.
‘민아랑 카페 갔다가… 호프집을 갔고. 그러다 민아 보낸 후에 나는 집 대문 앞에서‥’
울었었지 참-
그렇게 펑펑 울고 집에 들어와 용케 방 안에서 잠든 것인가 싶어 지안은 스스로가 대견하게 느껴졌다. 이성이 감정보다 먼저라, 이건가.
“그나저나 오늘이 공휴일이라 망정이지…”
출근을 해야 하는 날이었다면 아마 오늘 하루는 최악의 날이 됐을 것이다.
1월 1일. 오늘은 새로운 해의 첫날이자 꿀 같은 휴식의 날이다. 맘껏 쉴 수 있는 그런 날.
이라고- 분명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서지안, 왜 안 일어나고 있어!!!!”
“……?”
“그러다 학교 늦는다!!! 얼른 나와!!!!!”
10년도 더 전에 졸업한 학교를 가라는 소리가 문밖에서 들려왔다. 지금 이 소리가 환청인가 싶어 지안은 잠시 귀를 막아 꾹 누른 뒤 다시 손을 떼었다.
“지각하면 벌점이라며!!!!!”
환청이 아니라고 말해주듯 목소리는 오히려 더 선명하게 들려오고 있었다.
‘누구 올 사람도 없는데…’
심지어 지안은 이 집에 혼자 산 지 10년째였다.
그녀가 당황해 어쩔 줄 몰라 하고 있는데 그 순간 지안의 방문이 덜컥-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목소리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사람이 그녀와 눈을 맞춰왔다.
“……!”
그런데 그 사람은, 지안이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
10년 전 지안을 두고 세상을 떠났던, 그녀의 엄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