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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의 끝에서
작가 : 하담
작품등록일 :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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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 시작된 비밀
작성일 : 17-12-14     조회 : 248     추천 : 0     분량 : 5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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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들 성현이한테 잘 좀 해주고, 바로 수업하게 책 꺼내놓고 있어!”

 

 급한 일이 있는 것인지, 말을 마치자마자 담임 선생님은 서둘러 교실 밖으로 나가버렸다.

 

 이와 동시에 지안의 옆자리는 결국 이성현의 차지가 되었다.

 

 “하….”

 

 선우훈은 꽤나 분한 표정으로 가방과 함께 주섬주섬 짐을 챙겨 일어났다.

 

 “훈아 너 내 옆자리로 옮기면 된대!!”

 “……응.”

 “잘 부탁해 훈아!”

 

 침울한 그와 달리, 그동안 짝이 없었던 여자애는 무척 기뻐하고 있었다.

 

 안타깝게도 선우훈이 앉을 자리는 지안과 거리가 가장 먼 곳이었다.

 

 떠나기 전, 선우훈이 미련 가득한 얼굴로 지안에게 웅얼거리듯 말했다.

 

 “…쟤랑 안 친하게 지내면 안 돼?”

 “…….”

 “말 걸면 대답하지 말고, 쳐다보면 무시하고, 건드리면 쳐버리고, 웃으면 얼굴을 그냥-”

 “…알겠으니까 그만해.”

 “으응…….”

 

 누가 보면 정말 생이별이라도 하는 줄 알 것이다.

 

 오버하지 말라며 인상을 찌푸리긴 했지만, 지안은 사실 그런 선우훈의 마음을 한 편으론 이해했다.

 

 그는 지금까지 지안의 옆자리를 단 한 번도 놓쳐본 적이 없었다. 친구가 된 그날부터, 현재까지 쭉.

 

 물론 짝꿍이 안 될 수도 있었지만-

 

 ‘저기, 나랑 번호표 바꾸면 안 될까?’

 ‘…으, 응? 그, 그럴까?!’

 ‘주연이라고 했지? 진짜 고마워!’

 

 해맑게 웃으며 말하는 그에게, 거절을 표할 이는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아, 참. 너가 저번에 갖고 싶다고 했던 거, 나 두 개 있는데!’

 ‘……!’

 ‘하나 너 줄게.’

 ‘저, 정말? 그거 한정판이라 못 구할 텐데…’

 ‘아는 분이 주셔서. 자리 바꿔주는 대신 주는 거야!

 ‘나야 고맙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갖고 싶은 것을 얻게 된다.’

 

 암묵적으로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이는 공식과도 같았다.

 

 지안이 지금까지의 상황을 관찰해본 바 선우훈은 상대방과 자신의 위치를 뒤바꿔버릴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지안에겐 전혀 통하지 않는 것이었다.

 

 선우훈은 유일하게 지안 앞에만 서면 무장해제 되어버리곤 했다.

 

 ‘지안아, 너랑 나랑 또 짝꿍이래! 기념으로 갖고 싶은 거 없-’

 ‘맨날 그 소리야…. 됐고, 자리나 정리하자.’

 ‘응! 아, 너무 좋다…….’

 

 이렇게나 지안을 좋아하는 그가, 이제는 그녀와 멀리 떨어진 자리에 앉아야 했다.

 

 “지안이, 많이 좋아하나보네.”

 “……?”

 

 옆에서 둘의 광경을 지켜보던 이성현은 무심히 턱을 괴며 말했다.

 

 “딱… 티가 나.”

 “…….”

 

 무슨 소리지-

 

 지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선우훈을 빤히 바라보았다.

 

 “뭐, 뭐라는 거야…….”

 

 시선이 느껴지자 선우훈의 얼굴빛이 점점 붉게 물들어갔다.

 

 그는 한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마저 정리를 하려했지만 때마침 들려온 말 한마디로 인해 움직임을 완전히 멈춰버렸다.

 

 “땡땡이 쳤던 서지안, 선우훈은 선생님 따라와라!!!!”

 

 아예 나간 줄만 알았던 담임 선생님이 다시 교실 안으로 들어와, 누구나 다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소리로 이들에게 말했다.

 

 “……아.”

 “……윽.”

 

 지안과 훈은 동시에 탄성을 지르며 서로를 쳐다봤다. 경쾌하게 들려오는 소리에 반 아이들이 한층 더 시끄러워졌다.

 

 “쟤네, 어제 왜 나간 거래?”

 “서지안이 억지로 끌고 갔다나 봐.”

 “훈이를? 협박이라도 한 거야?!”

 “응, 그렇다는데…!”

 

 당사자가 모르는 소문들이 곳곳에 퍼져있는 듯 했다. 유독 그녀에 대한 것들만 흉흉했다.

 

 끌고 가긴 누가 끌고 가-

 

 지안은 저도 모르게 양손에 주먹이 꽉 쥐어졌다.

 

 “…….”

 

 이성현은 그 어떠한 말에도 일절 동요하지 않는 듯 보였다. 그는 오직 지안만을 향해 턱을 괸 채 그대로 앉아 있을 뿐이었다.

 

 그의 입가엔 언뜻 미소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옅게 서려있었다.

 

 * * *

 

 1교시 수업이 시작된 지 약 5분쯤이 지난 상태였다.

 

 싸늘하게 식은 복도가 안 그래도 별로인 날씨에 더욱 우중충한 분위기를 만들어냈다. 그 속에선 지금, 지안과 훈이 걸어가고 있는 중이었다.

 

 선우훈은 지안을 흘긋흘긋 바라보다 이내 입을 열었다.

 

 “…지안아, 우리 집 가서 같이 쓸래?”

 “…….”

 

 그의 목소리가 가늘게 떨려왔다. 아마도 지안의 눈치를 보고 있는 듯싶었다.

 

 “하아…….”

 

 지안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곤 제자리에 우뚝 서버렸다. 덩달아 선우훈도 이에 흠칫하며 걸음을 멈췄다.

 

 “왜 그래…?”

 “……미안해, 훈아.”

 

 선우훈은 자신을 향해 고개 숙이고 있는 지안을, 빤히 쳐다보았다.

 

 “…….”

 

 지안은 아까부터 마음속에 맴돌고만 있던 말들을, 결국 입 밖으로 꺼내보였다.

 

 “정말… 미안해…….”

 

 .

 .

 .

 .

 .

 

 선생님께 불려간 결과 지안과 훈은 반성문을 피할 수가 없었다.

 

 ‘지안이 너가, 훈이 데리고 같이 나갔다면서?’

 ‘……아니요, 그게-’

 ‘그게 아니든 맞든, 땡땡이 친 건 인정하는 거지?’

 ‘…….’

 ‘자.’

 

 선생님은 지안과 훈을 호되게 혼내는 대신, 반성문 5장씩을 손에 쥐어주었다.

 

 ‘지안이도, 훈이도 잘 지내는 것 같았는데… 선생님 많이 실망했어. 특히 훈이. 원래 안 그러던 애들이 이렇게 엇나가기 시작하면, 한도끝도 없다던데….’

 ‘저……읍.’

 

 입을 뻥긋거리며 무슨 말을 꺼내려 하던 선우훈을, 지안이 손을 들어 제지했다. 그리곤 그녀가 먼저 고개를 푹 숙이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순간 선우훈의 표정이 굳었다 풀어졌다.

 

 “…….”

 

 ‘알겠으니까, 죄송한 만큼 빽빽하게. 진심을 다해서 써 와.’

 

 .

 .

 .

 .

 .

 

 지안은 선생님이 했던 말들을 계속 머릿속에 되뇌었다.

 

 ‘특히 훈이. 원래 안 그러던 애들이 이렇게 엇나가기 시작하면, 한도끝도 없다던데….’

 

 ‘이렇게 엇나가기 시작하면, 한도끝도 없다던데….’

 

 ‘한도끝도 없다던데….’

 

 한순간에 어지럼증이 몰려올 만큼 머릿속이 점점 복잡해져갔다.

 

 내 생각만 하느라 바빠서, 미처 선우훈 생각은 하지도 못하고-

 

 “…그냥 나만 갔다 올 걸 그랬나봐.”

 “…….”

 

 모범생에서 벗어나지 않던 그를, 자신이 망쳐놓은 것 같았다.

 

 “…미안하면, 이렇게 해.”

 “…?”

 “우리 집 가자. 가서, 반성문 같이 써.”

 “…….”

 

 선우훈은 좀 전까지만 해도 우물쭈물 하던 얼굴이었지만, 더 이상 그런 흔적이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았다.

 

 “갈 거지?”

 “……그래.”

 

 확답을 원하는 물음에 지안이 작게나마 고개를 끄덕였다.

 

 학교가 끝난 후, 선우훈은 지안의 손을 붙들고 곧장 집으로 향했다.

 

 “우리 집에 놀러오는 거, 2학년 올라와서 처음인 거 알아?”

 “반성문 쓰러 온 거잖아.”

 “에이… 반성문도 쓰고, 놀기도 하면 되지!”

 

 거의 다 와갈 때쯤, 조용히 침묵을 지키던 그가 다시금 재잘거리기 시작했다.

 

 “그냥 우리 집에서 같이 수업하고, 짝꿍도 하고, 밥도 먹고 숙제도 같이 했으면 좋겠-”

 “푸흡… 또 그런다.”

 “어? 웃었다!”

 

 선우훈이 해맑게 미소 지었다. 그러다가도 갑자기 진지한 얼굴을 하며 말을 이어나갔다.

 

 “나는 지안이가 계속 웃기만 했으면… 좋겠어.”

 “내가, 잘 안 웃어?”

 “아니. 저번 주까지는 되게 밝고 잘 웃었어. 근데…….”

 “근데?”

 

 지안은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어 침을 꼴깍- 삼켰다.

 

 “이번 주는 뭔가 어른스러워졌달까. 고민도 많이 하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컥, 쿨럭…!”

 

 정확히 허를 찌르는 말에, 그만 불안정하게 사례가 들리고 말았다.

 

 “커헉, 컥…….”

 “…괜찮아?!”

 “어, 어… 그나저나, 저기 앞에 집 한 채 보이는데. 저 집 맞지?”

 

 가슴을 두드리며 얼른 화제를 바꿔버렸다. 예상치 못한 대답에 본의 아니게 당황한 셈이었다.

 

 겨우 숨을 돌린 지안이 스스로에게 몇 차례나 더 경고했다.

 

 ‘절대, 절대로. 들키면 안돼.’

 

 

 

 “어, 다 왔다! 나 주방 아주머니한테 얘기 좀 하고 올 테니까, 먼저 올라가 있어!”

 “…알겠어.”

 

 집 한 번 되게 크네-

 

 선우훈에겐 1년 전이겠지만 지안에겐 21년 만에 와본 곳이었다. 마치 드라마에나 나올법한 집이 이렇게 눈앞에 존재하고 있으니까, 뭔가 기분이 묘했다.

 

 ‘여기가 맞나…?’

 

 지안은 이 층으로 올라가 선우훈의 방으로 예상되는 곳을 조심스레 열어보았다.

 

 “맞나보다.”

 

 책상에 놓인 액자에 그의 사진이 떡하니 놓여있었다. 한 다섯 살쯤으로 보이는 아이의 사진이지만, 아주 당연하게 선우훈을 떠올릴 수 있었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저절로 좋아지는 얼굴이라던가, 특유의 환한 미소라던가-

 

 “큭, 어릴 때랑 지금이랑 변한 게 없어….”

 

 머리스타일이 조금 달라지긴 했네-

 

 지안은 조심스럽게 액자를 손가락으로 툭툭 건드리다가, 무의식중에 입을 열어 말했다.

 

 “29살의 너도… 보고 싶다.”

 

 액자를 아예 두 손으로 들어보았다. 눈가가 조금씩 뜨거워지고 있는 것 같았다.

 

 눈물이 날까봐 지안은 액자를 그만 제자리에 갖다놓았다. 그리곤 선우훈을 보러 급하게 방문 밖으로 향했다.

 

 * * *

 

 “뭐 더 먹고 싶은 거 없어?”

 “없는데, 왜?”

 

 이미 쿠키와 음료수, 그리고 과일까지 충분한 상태였다. 그런데도 선우훈은 불만족스럽다는 듯이 투덜거렸다.

 

 “난 너가 더 먹었으면 해서….”

 “나 배탈 나라고…?”

 “아, 아니! 그런 소리가 아닌데…….”

 

 뭐야-

 

 지안이 작게 웃어보였다. 입술을 비죽 내민 채 불만을 토로하고 있는 그가, 자신을 위해 행동하고 있는 게 고스란히 느껴져서였다.

 

 “근데 있잖아, 훈아.”

 “응?”

 “너 방, 여기 아니지 않아?”

 

 그러고 보니 지금 지안과 훈이 있는 방은 아까 그녀가 들어갔던 곳이 아니었다.

 

 물론 여기에도 훈의 사진이 있긴 하지만-

 

 분명 거기에도 훈의 사진이 있었다.

 

 “……그건, 왜?”

 “다른 방에도 너 사진이 있길래.”

 “…….”

 “아니면 거기도 너 방인가?”

 “그런… 셈이지.”

 

 선우훈의 표정은 약간 애매모호한 느낌이었다. 그러나 지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별다른 의심 없이 넘어갔다.

 

 ‘이렇게 넓은 집에 방을 하나만 가지고 있는 게 이상하지.’

 

 오히려 한 개보다 두 개를 가지고 있다는 게 더 어울렸다. 집이 하도 궁전처럼 넓으니까.

 

 둘의 대화는 사소한 소재들로 계속 이어졌다. 예를 들어 어제 있었던 일이나, 가족들이랑 주말을 어떻게 보냈는지 같은.

 

 “아! 다 끝이다!!”

 “동시에 다 썼네.”

 

 그러다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다. 시계의 큰 바늘이 6에 가까워지는 중이었다.

 

 “저녁도 먹고 가면 안돼?”

 “……음, 잠깐만.”

 

 지안은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들어 엄마에게 문자를 치기 시작했다.

 

 [엄마 나 훈이네 집 놀러왔는데 여기서 저녁까지 먹_]

 

 띠리링- 띠리링- 띠리링-

 

 계속 타자를 치는 중에, 갑자기 어디선가 벨소리가 흘러나왔다.

 

 “…? 내꺼는 아닌데.”

 

 그렇다면 선우훈의 휴대폰이 울리는 중일 것이다.

 

 “네, 여보세요.”

 

 그가 책상에 얼굴을 묻은 채 대충 휴대폰에 손만 뻗고선 통화버튼을 눌러 대답했다.

 

 “제가 선우훈 맞는데요. 네, 네…?”

 “…?”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갈게요.”

 

 순식간에 선우훈의 표정이 싸늘해졌다. 전화를 끊고 한참 동안이나, 그는 말을 하지 않았다.

 

 “…….”

 

 그저 무표정만이 그의 얼굴에 드리워져 있을 뿐이었다.

 

 “…누구 전화야?”

 

 보다 못한 지안이 결국 말을 건넸다. 항상 미소만 띠던 선우훈에게, 이런 표정을 짓게 할 사람이 누굴 지 궁금했다.

 

 한편으론 그가 걱정돼서 물은 것이기도 했다.

 

 “그… 미안…….”

 “…….”

 “저녁은 다음번에 놀러오면 꼭 같이 먹자.”

 “…어?”

 

 선우훈은 제대로 된 답변을 하지 않고 있었다. 질문의 핵심을 얼버무리기 바빠 보였다.

 

 “나… 급하게 가야될 곳이 있어.”

 “…말해줄 수는, 없는 거야?”

 

 지안은 선우훈을 똑바로 쳐다보며 그와 눈을 맞췄다.

 

 “…….”

 “…….”

 

 둘 사이에 짧은 눈길이 오갔다. 그러나 선우훈이 먼저 고개를 돌린 채로, 입을 열었다.

 

 “지금은… 알려줄 수가 없어.”

 “……!”

 “미안해.”

 

 지안은 놀란 나머지 입이 약간 벌어지고 말았다. 그와 동시에 입술 틈 사이로 힘겨운 숨이 흘러나왔다.

 

 하-

 

 ‘이런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선우훈이, 처음으로 자신에게 비밀을 만드는 순간이었다.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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