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안과 훈은 서로 다른 차를 타고 이동해야 했다.
‘아저씨, 지안이 잘 데려다 주셔야 돼요!’
‘아이고… 알겠네요, 걱정 말고 어여 가봐.’
‘네….’
그가 어두운 얼굴로 말끝을 흐렸다. 지안은 차에 탄 채로, 그런 선우훈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
‘잘… 가. 내일보자.’
내심 인사를 할까 말까 머뭇거리는 듯한 말투였다.
그녀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고 있는 것인지, 선우훈은 곧장 뒤돌아 다른 차로 뛰어가버렸다.
사실, 아직도 믿기지가 않았다.
‘솔직함을 빼면 시체일 것 같은 애가 비밀을 만들다니…’
물론 자신도 비밀이야 무척 많긴 했다.
지금도 과거로 돌아온 사실을 비밀로 숨기고 있고, 원체 속에 쌓아두고 사는 성격 탓에 알려주지 않은 것들이 수두룩했다.
하지만-
‘과거로 돌아왔다고 어떻게 말해…….’
말할 수 없는 것과 말하지 않는 것은 너무나도 큰 차이였다.
나 상처 받을 거 같아-
“선우훈, 너무해…….”
목이 점점 메여왔다. 지안은 목 주변을 만지작거리며 창문에 힘없이 머리를 기대보였다.
선우훈을 태운 차가, 자신으로부터 점차 멀어지고 있었다.
“…도련님 친구는, 집 갈 준비 됐니?”
운전기사는 그런 지안에게 조심스레 출발여부를 물었다.
아까 둘 사이에 흘렀던 적막감이 눈에 훤히 보였기에, 그는 이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
‘…….’
내가 다 긴장이 돼서 원-
어찌나 그리도 심각한 표정을 짓던지. 마치 회장님과 사모님을 모실 때처럼 온몸의 신경이 곤두 서는 기분이었다.
‘고작 9살 먹은 애들인데도 어른같이 느껴지다니….’
그는 고개를 빳빳하게 세우고선 핸들을 다시 고쳐 잡았다.
그래, 본업에만 충실 하는 거야-
“지안양…? 출발해도, 되죠?”
“……네.”
지안은 여전히 시선을 창문에 향한 채로, 운전기사에게 무심히 답했다. 그러자 은색의 중형차가 부드럽게 바퀴를 굴리며 동네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반대편으로 달려가고 있을 두 차를 생각하자니 지안은 조금 씁쓸해졌다.
* * *
드르륵-
선우훈이 병실 문을 다소 거칠게 밀어냈다.
“허헉, 후우우…….”
급하게 뛰어온 탓에 호흡이 불규칙하게 내뱉어졌다.
문이 옆으로 사라지자 바로 앞에 커다란 침대가 놓여있는 게 보였다.
“형, 왔어?”
그 위에는, 침대와 대조되어 아주 조그맣게 보이는 남자아이가 앉아있었다. 그가 선우훈을 향해 반갑게 인사를 건넸다.
“…몸은?”
“다시 괜찮아졌어. 아까는 숨도 못 쉴 정도여서 힘들었는데 말이야….”
“……그렇구나.”
“응, 이상하지.”
남자아이는 말을 마치자마자 침대에 벌러덩- 누워 큭큭거렸다.
“큰일 난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데…!”
선우훈이 그제야 안심한 표정으로 그의 옆에 앉으며 말했다.
“…한이 너 나빴어.”
“에이, 그럼 형도 나쁜 거네.”
“에? 대체 왜?”
“그야 우린…….”
둘은 동시에 입을 뻥긋거렸다. 그러자 서로가 서로에게 텔레파시를 보낸 듯 똑같은 말이 흘러나왔다.
“쌍둥이니까.”
“쌍둥이니까?”
역시-
“……푸흡.”
“……큭흡.”
병원복을 걸친 남자아이의 이름은 선우한.
1분차로 더 늦게 태어난, 선우훈의 일란성 쌍둥이 동생이었다.
.
.
.
.
.
나 잠깐만 물 좀 받아올게-
선우훈이 물병을 들고 잠시 병실 밖으로 나갔다.
드르륵-
탁-
“흐음….”
문이 완전히 닫히자, 선우한은 침대에서 일어나 전신거울이 있는 곳으로 몸을 옮겼다. 그리곤 앞에 서서 몸을 몇 번이고 빙그르르 돌아보았다.
“3일이나 지났지만….”
그가 혼잣말로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어려진 몸은 여전히 낯설어-
선우한은 다시 침대로 돌아와 털썩- 앉았다. 그리곤 주먹을 쥐었다 펴보며 자신의 손 크기를 유심히 관찰했다.
“소원, 그거 되게… 쓸모 있는 거였네.”
선우한이 피식 웃어보였다. 지치고 지친 마음 때문에, 소원자 발표에도 사실 별 감흥이 없었던 그였다.
하지만 소원은 그의 생각과 다르게 많은 것을 바꿔놓았다.
형과의 재회. 그리웠던 시절로의 회귀. 이것은 선우한에게 있어서 삶의 전부와도 같은 존재였다.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바싹 말라버린 입술을, 아프지 않게 깨물어보였다.
‘아마 난 이 세상에 없었을 거야.’
차가운 바람. 숨 막힐 듯 아찔한 높이. 그 속에서 추락한 나.
선우한은 눈을 천천히 감았다, 아주 조심스럽게 다시 뜨곤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행히도 이곳은 현실이었다.
자신이 되돌린 과거의 현실.
때마침 선우훈이 다시 병실로 들어와 가져갈 짐을 꼼꼼하게 눈으로 훑었다.
“음, 다 챙겼네. 이제 같이… 집에 가는 거야!”
“…그래.”
선우한에게 내려진 조치. 충분한 휴식과 절대안정.
이 때문에 그는 더 이상 병원에 있을 필요가 없었다.
병원에 남는다 해도 딱히 무언가가 크게 좋아지거나 하지는 않을뿐더러, 오히려 정신만 피폐해질 뿐이었다.
“집, 진짜 오랜만이다….”
9살 이후로 집에 잘 들려본 적 없던 그였다. 선우한은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애틋한 감정에, 새삼 코끝이 찡해졌다.
“맞아! 그동안 너 병원에 있어서 얼마나 심심했는데!!”
“말로만…. 형은 친구들한테 인기 많으면서.”
“…나 친한 친구는 한 명밖에 없는데!”
선우훈이 억울한 듯 입을 비죽거렸다.
“서지안이라고, 저번에 말해준 애 있잖아….”
“……그랬었나?”
20년 전이라 기억이 흐릿했다. 사실은 흐린 정도가 아니라, 아예 사라졌다고 하는 편이 맞았다.
“으응, 지안이가 나랑 제일…,”
“제일?”
선우훈이 갑자기 말을 하다말고 표정을 차갑게 굳혔다. 그리곤 혼자 작게 웅얼거렸다.
“많이 실망했겠지……?”
“…혼자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아까, 지안이랑 집에 같이 있었거든. 근데 너 쓰러졌단 소식듣자마자…….”
“…….”
“너무 급해서… 아무 말도 없이 그냥 돌려보내버렸어…….”
선우훈이 힘없이 등을 벽에 기댔다.
일종의 고민 상담처럼 말을 내뱉은 그였지만, 사실 동생으로서 선우한이 그를 도와줄 방법은 딱히 존재하지 않았다.
형이 잘못한 건 분명한데, 뭐라고 해줘야 되지-
선우한은 훈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하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러나 예상외로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답은 하나로 정해져 있었다.
“형, 나 궁금한 게 있는데.”
“…응.”
“지안이라는 애랑, 정말… 친한 거 맞아?”
“……어?”
그가 되물어봄과 동시에 선우한이 고개를 내젓고선 한숨 쉬듯 말을 이어나갔다.
후우-
“형은 형이랑 정말 친한 사람한테… 중요한 비밀이 있다고 하면, 어떡할 거야?”
“어, 음….”
“일단 그 비밀이 궁금하진 않고?”
순간 고개를 든 선우훈이 눈을 번뜩였다.
“…그러게. 궁금할 것 같아.”
“나라면,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어디가 힘든 건지. 그 사람을 걱정하면서 물어봐줄 것 같은데.”
“…….”
“그리고 그 사람과 눈을 마주치며 천천히 대답을 기다려주겠지. 고민은… 서로 나눌수록, 더 가벼워지니까.”
“……아.”
갑자기 선우훈은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지는 느낌이었다.
‘…말해줄 수는, 없는 거야?’
동시에 지안의 얼굴도 퍼뜩 떠올랐다.
‘…누구 전화야?’
걱정 섞인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며 눈을 제대로 맞추려하던 지안의 몸짓이, 주마등처럼 그의 눈앞에서 스쳐지나갔다.
당시 선우훈은 사실을 숨기기에만 급급해, 지안에게 아무것도 말해준 게 없었다.
‘지안이까지 힘들게 하면 안돼.’
‘이건 내 문제야’
그가 늘 머릿속에 되뇌어오던 것이었다.
그러나 선우훈은 자신이 했던 다짐들에 대해 차차 의심을 품기 시작했다.
‘정말 지안이를 위해서일까?’
‘계속 나 혼자 감당하다가, 지치면 어떡하지.’
마침내 선우훈은, 그동안 자신이 살아왔던 방식에 대해 깔끔하게 결론 지을 수 있었다.
‘사과를… 해야 해.’
“형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 이제 알 것 같아?”
“…응.”
선우훈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에 선우한이 옅은 웃음을 띠며 말했다.
“그러면, 어서 가봐.”
“…그래도, 될까?”
굳이 자세하게 말을 안 해도, 그 의미를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지안이에게 지금 사과해도, 늦지 않은 걸까?
널 두고 지안이에게 가도, 되는 거야?
너무 착해서 탈이야-
선우한은 어깨를 으쓱여보였다.
“…내가 무슨 상처라도 받냐. 막 형을 뺏겼다고, 이제는 형에게 일 순위가 아니라며 난리칠 애로 보여?”
“풉……아니.”
오버스러운 그의 제스처에, 선우훈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형은 가끔씩, 너무 무리할 때가 있어.”
“…….”
“남한테 무조건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하지 말라고.”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야-
선우훈은 끝까지 뒷말을 하려다 결국 입을 닫았다. 아픈 동생이 알고 있을 정도면, 지안이는 아마도-
“모를 리가 없어….”
입술을 가볍게 만지작거리다, 이내 그가 몸을 돌려 현관문을 향해 있는 힘껏 뛰어가기 시작했다.
“…….”
형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져 안보일 때까지, 그는 제 자리에 서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다. 조금 마음이 저릿했으나 아쉬울 건 없었다.
“너는… 내가 지켜줄게.”
그러니까-
“…마음껏 행동해. 하고 싶은 것을 하며, 행복하게 살아…… 형.”
그동안 배려를 받아온 만큼, 그가 선우훈에게 다시 줄 차례였다.
* * *
지안이 가볍게 얼굴을 수건으로 문지르며,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툭, 툭-
다 말리지 않은 머리 때문인 것인지, 지안의 모발 끝에선 바닥으로 물이 톡톡- 떨어지고 있었다.
[받은 메시지 0통]
“…….”
이 와중에도 그녀는 손에서 휴대폰을 내려놓을 줄을 몰랐다.
왜 연락이 없지-
지안은 애꿎은 입술만 잘근- 물어 보이기를 반복했다.
“진짜 안 알려줘…? 정말로……?!”
망연자실한 기분이었다. 그 흔하디흔한, 사과의 문자 한 마디도 오지 않고 있었다.
‘제발, 제발, 제발……!’
마치 주문을 외우기라도 하는 듯 지안은 눈을 꼭 감은 채 오작 같은 말만을 속으로 반복해보였다.
‘와라, 와라, 와라……!’
지잉-
그 순간, 메시지 도착을 알리는 진동음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
지안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고서 천천히 버튼을 눌렀다.
[나 신주연인데, 내일 방과 후에 3층 다용도실에서 좀 볼 수 있을까?]
“아, 뭐야…!”
탄성소리가 저절로 새어나왔다. 얘는 뭔데 지금 상황에 문자를 보내는 거야!
‘……아아악!!!!’
지안은 참다못해 휴대폰을 침대에 던져버리고 말았다. 심란하면서도 복잡한 심정이었다. 말로는 표현해내기 부족한 답답함을 느끼는 것 같았다.
“…그냥 잠이나 자자.”
지안은 침대에 풀썩- 누워 잠을 청했다.
동시에 그 반동으로, 벽에 붙어있던 포스트잇 한 장이 침대 가장자리 안쪽으로 떨어져버렸다.
그것은 지안이 과거의 사건들을 정리하여 붙어놓은 것들 중 하나였다.
「2009년 10월 15일쯤. 자세히는 기억안남. 지금으로부터 약 한 달 뒤 사물함 사건 발생.」
그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신주연이라는 아이의 문자로 인해, 앞으로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