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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의 끝에서
작가 : 하담
작품등록일 : 2017.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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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빈자리의 무게
작성일 : 17-12-17     조회 : 256     추천 : 0     분량 : 72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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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훈이가, 개인적으로 일이 좀 있대서… 아마 늦게 올 듯싶다. 훈이 오면, 선생님한테로 좀 오라고 말해줘. 알겠지?”

 

 네에-

 

 “이상이야. 다들 부지런히 수업 준비하고 있어!”

 

 선우훈이 학교를 오지 않았다. 개인사정이라고 했다.

 

 나한테 알려주지도 않고-

 

 “…….”

 

 지안은 애꿎은 입술만 손으로 잡아 뜯을 뿐이었다.

 

 “그거 버릇 들면 안 좋아.”

 

 옆에 있던 이성현이 지안의 손을 책상 아래로 내렸다.

 

 벌써 피 나잖아-

 

 얼마 안 있어, 입술 군데군데에 새빨간 물방울이 고이기 시작했다. 그 광경을 보다 못한 이성현이 가방에서 휴지를 꺼내 지안에게로 건네 보였다.

 

 “……이거 버릇 아닌데.”

 “그러면?”

 “그냥, 나는…….”

 

 말끝이 점점 흐려졌다. 이대로 입을 열게 되면 자신이 왜 이런 행동을 하고 있는 지에 대해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지안은 아무에게도 이 사실을 말하고 싶지 않았다.

 

 어렸을 때부터 친했던 소꿉친구가, 자신에게 비밀을 만들고 알려주지 않은 것. 내내 연락 한 마디도 없다가 말도 없이 오늘 학교를 빠져버린 것.

 

 미워죽겠는데, 이것마저 걱정이 돼 속으로 나 혼자 끙끙 앓고 있다는 것.

 

 이걸 어떻게 말해-

 

 입을 뻥긋하지도 못한 채 지안의 눈이 점차 흐려졌다. 동시에 시야가 뿌옇게 변해버리고 말았다.

 

 “…….”

 

 보여야 할 앞이 어느새 무언가로 가득 차 있는 느낌이었다.

 

 “…울고 싶으면, 울어도 되는데.”

 “뭐…?”

 

 이성현이 지안의 손에 아까보다 더 많은 휴지를 쥐어주며 말했다.

 

 “선우훈이 안 와서 우는 거야?”

 “…그것 때문은 아니고…….”

 “그럼, 선우훈 때문인 건 맞구나.”

 “…….”

 

 좀 더 신중하게 답할 걸 그랬다.

 

 어째서인지, 지안은 점점 그에게 밀리고 있는 것 같았다. 그가 계속해서 말을 이어나갔다.

 

 “뭐… 그럴 만도 하겠네.”

 “……?”

 “걔가 워낙 답답해야지. 맨날 남한테 맞춰주기만 하고. 눈치는 뭐 그리 쓸데없는 데서만 잘 채던지, 그래놓고 자기얘긴 절대 안 해.”

 “…그걸 어떻게-”

 

 정확하면서도 너무 디테일한 그의 설명에, 지안이 할 말을 잃은 채로 눈을 깜빡여보였다.

 

 전학을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에서, 그가 선우훈을 정확히 꿰뚫어보고 있다는 건 정말 대단한 관찰력이 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이런 나이에는 더더욱.

 

 “자기얘긴 절대 안 한다는 거. 이게 확실히 문제 같은데, 걔는 아마 이걸로 친구들이랑 많이 싸울 거야.”

 “…….”

 “그렇지 않아?”

 “…응.”

 

 허를 찌르는 물음에 지안의 표정이 빠르게 굳어갔다. 앞에 거울이 있는 것만 같았다.

 

 “어떻게… 잘 아는 거야? 너는 전학도 온지 얼마 안됐는데…….”

 “…그러게 말이야.”

 “…어?”

 “그냥, 눈에 보여.”

 “…….”

 “속마음이 들리는 것 같달까?”

 

 지금 뭐라고-

 

 누가 들으면 장난인 줄 알고 웃어넘기겠지만, 지안에겐 전혀 그렇게 들리지가 않았다.

 

 애초에 그럴 수가 없었다.

 

 ‘속마음이 들린다고…?’

 

 입가에 웃음이 걸려 있는 그를, 대놓고 빤히 바라보았다. 그러자 이성현도 턱을 괴며 지안에게 눈을 점점 맞춰왔다.

 

 “너는… 너무 진지해서 문제야.”

 “……허?”

 “푸흡… 내 말을 다 믿어버리면 어떡해.”

 

 방금한 말이 농담이었단 걸 알게 되자, 인상이 절로 찌푸려졌다.

 

 이게 뭐야-

 

 지안은 휴지가 있던 손을, 자기도 모르게 주먹으로 바꿔보였다.

 

 “거짓말로 놀리면 진짜 잘 속겠다, 지안이는….”

 “…….”

 

 그리곤 이성현이 있는 쪽을 향해, 책상을 세게 내리쳐버렸다.

 

 쾅-

 

 “…까, 깜짝이야.”

 “앞으로 그런 말, 하지 마……,”

 

 있는 힘껏 이성현을 째려보며, 지안이 입을 열었다.

 

 “…으응, 미안…….”

 

 그토록 태연하게 반응하던 이성현도, 지안의 앞에선 겁먹은 고양이가 돼버리는 순간이었다.

 

 * * *

 

 “시간을 바꾸자. 점심시간 동안으로.”

 

 잘 정돈된 손톱을 가볍게 튕겨내며 그녀가 말했다.

 

 “생각해보니까, 방과 후는 너무 늦어.”

 

 입가엔 일그러진 미소를 잔뜩 담은 채였다.

 

 “주연아… 그러면 보는 애들이 많아질 텐데…….”

 

 신주연.

 

 그녀의 가슴께엔 이미 명찰이 어디론가 떨어지고 없었다.

 

 “마, 맞아. 그래서 방과 후로 정한 거였잖아.”

 “난 솔직히, 지금 방법도 조금 무서워….”

 

 시간을 앞당기자는 제안에, 여자애들은 하나둘 항의하기 시작했다.

 

 “너네도 서지안이 싫다며.”

 “…….”

 “아니야?”

 

 서주연이 애들을 향해 차갑게 쏘아붙였다. 그러자 순간 정적이 흘렀다.

 

 “…….”

 

 다용도실 밖은 무척 시끄러웠으나, 안쪽에선 차디찬 고요가 흐르고 있는 중이었다.

 

 “싫은 건 맞는데….”

 “직접 동참하기가 싫은 거야?”

 “아, 아니…!”

 

 한 여자애는 다급하게 말을 얼버무리고 있었다.

 

 “그, 그렇단 게 아니고!! 난 그냥 들키면 큰일 날 것 같아서!!!”

 “……안 들켜.”

 

 확신하는 말투로, 그녀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선우훈이 있는 것보단… 없을 때 하는 게 더 나아.”

 

 ‘선우훈이 붙어있지 않을 때, 서지안을 노린다.’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었다. 생각만 해도 흥미진진한 느낌이었다.

 

 “…그럼 그냥, 그렇게 할게.”

 “어… 나도.”

 “너, 너만 믿을게…!”

 

 모두가 결국 그녀의 의견에 동의했지만, 여전히 불안해하는 기색을 보이고 있었다.

 

 그러나 전혀 개의치 않아 보였다.

 

 그저 낮게 웃을 뿐이었다.

 

 소름이 끼칠 정도로, 그녀와 잘 어울리는 웃음이었다.

 

 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덧 12시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점심, 먹을 거지?”

 

 이성현이 책을 덮으며 지안에게 물었다.

 

 “음… 아니.”

 “안 먹게?”

 “그러려고. 속이… 좀 안 좋은 것 같아.”

 

 지안이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오늘은… 다른 애들이랑 먹고 와. 내일은 꼭 같이 먹자.”

 

 그가 대답 대신 고개를 작게 끄덕여 보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남자애들 무리 속에 섞였다.

 

 “조금 미안하네….”

 

 지안은 혼자만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작게 중얼거렸다.

 

 이성현이 전학 온 뒤로 늘 셋이서 같이 점심을 먹었었다. 구면은 구면인지라, 왠지 모르게 정이 가는 탓이었다.

 

 ‘앞으로 나, 너랑 점심 먹고 싶은데. 그래도 돼?’

 

 또한 그가 지안과 함께 먹길 자처한 탓도 있었다.

 

 “……속 울렁거려.”

 

 미안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오늘 점심을 같이 먹기엔 속이 너무 좋지가 않았다.

 

 지안은 힘없이 책상바닥에 얼굴을 기대 누웠다.

 

 “점심시간에 온댔지…….”

 

 생각해보니 얼마 안 있으면 선우훈이 올 예정이었다.

 

 지안은 눈을 몇 번 깜빡여보다, 이내 깊게 눈꺼풀을 아래로 내렸다.

 

 .

 .

 .

 .

 .

 

 “야, 일어나보라니까?!”

 

 누군가가 몸을 툭툭- 건드는 게 느껴졌다.

 

 “으, 뭐야….”

 

 덕분에 잘 자고 있던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워야했다.

 

 “귀머거리야 뭐야, 몇 번이나 불렀는데.”

 “……뭐?”

 

 꽤나 거슬리는 말투에, 지안은 비몽사몽해있던 기색을 빠르게 굳혔다

 

 “…문자 봤잖아. 방과 후 말고 점심시간 때 보자고.”

 

 문자?

 

 서랍에 처박아뒀던 핸드폰을 바깥으로 꺼내보였다. 켜보니 문자가 한 통 와있었다.

 

 [시간을 바꿨으면 해. 점심시간에 다용도실에서 만나자.]

 

 “…….”

 “문자, 안본거야?”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귓가에 박혔다. 그녀는 퍽 억울해하는 눈치였다.

 

 아, 혹시-

 

 [나 신주연인데, 내일 방과 후에 3층 다용도실에서 좀 볼 수 있을까?]

 

 어제, 선우훈의 연락인 줄 알고 봤다가 실망했던 문자가 생각났다.

 

 “…신주연?”

 “맞아. 그런데 우리, 다용도실로 장소 좀 옮길까?”

 

 지안이 인상을 조금 찌푸렸다.

 

 굳이 다용도실까지 왜-

 

 그냥 여기서 말하라고 하려다, 먼저 고개를 돌려 시간을 확인했다.

 

 12시 25분.

 

 점심시간은 1시에 끝이 나니까, 시간은 넉넉하게 남아있는 셈이었다.

 

 “……그러던가.”

 

 지안은 흐트러진 머리를 넘기며 의자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서주연이 조금 멍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

 “안가?”

 

 안가냐는 지안의 물음에, 서주연이 멈칫하고선 곧바로 반응을 보였다.

 

 “…아니, 가야지.”

 

 둘은 교실과 같은 층에 있는 다용도실로, 걸음을 옮겼다.

 

 끼이익-

 

 기분 나쁜 소리를 내며 문이 열렸다.

 

 “…왜 굳이 여기서 보자고 한 거야?”

 

 장소도 도착했겠다, 지안은 빠르게 본론부터 꺼내며 말을 시작했다.

 

 “우리가 친한 사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또 관계가 안 좋은 것도 아니잖아. 용건이 대체 뭐길래 이렇게 낡아빠진 데서….”

 

 지안은 주변을 삥- 둘러보곤 이내 작게 기침을 내뱉었다. 신주연이 그런 그녀를 위아래로 훑으며, 웃기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우리 관계가, 좋은 건 아니잖아.”

 “…싸우기라도 했단 소리야?”

 “아니지. 오히려 그 반대지.”

 “……?”

 

 도통 알 수 없는 말들만 뱉어내는 신주연을, 그저 물끄러미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내 말은, 싸우지 않고서도 너가 이미 미움을 샀단 소리야.”

 “…….”

 “선우훈과 이성현을 제외하면, 널 좋아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단 뜻이지.”

 “하….”

 

 지안이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못됐다, 진짜-

 

 ‘초등학교 2학년 맞는 거야?’

 

 생각보다 지적능력이 꽤 높은 것 같았다. 초등학생은 무슨, 그냥 고등학생이랑 얘기하는 느낌이었다.

 

 지안이 침묵할 동안 신주연은 자신이 분명 그녀의 정곡을 찌른 것이라고, 스스로 확신을 하고 있었다.

 

 “너, 특기생으로 입학했다며?”

 “…….”

 “그것도 연기로.”

 “…….”

 “근데 난 왜, 너가 연기하는 모습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지?”

 

 그야 난 오빠 빽으로 들어왔으니까-

 

 “…….”

 

 지안은 입을 뻥긋거리다, 이내 말하는 것을 관뒀다.

 

 ‘이래서 내가 여기 안가겠다고 한 건데….’

 

 완강한 부모님의 의사표시와 오빠의 징징거림으로 인해 어쩔 수없이 선택한 길이었다. 그리고 언젠가는 나아질, 거지같은 연기력에 대해서 희망도 조금 있었다.

 

 하지만 내내 걱정했던 일이 결국 이렇게 일어나고야 말았다.

 

 아, 난 몰라-

 

 지안은 이렇게 된 이상, 가만히 있지 않기로 결심했다.

 

 “왜 말이 없어? 속으로 찔려서 그러는 거야?”

 “…너는 그냥, 내 존재가 마음에 안 들지.”

 “……!”

 

 낮게 목소리를 깔며 말을 계속해나갔다.

 

 “솔직히 말해봐. 내 연기력 판단하려고 여기로 불렀어?”

 “뭐라고…?”

 “아니잖아. 할 말은 따로 있잖아.”

 “…….”

 

 지안의 당당한 태도에, 신주연이 퍽 당황한 얼굴을 해보였다.

 

 지금쯤이면 원래 기가 팍 죽은 채로 자신의 말을 고분고분 듣고 있어야 하는데, 서지안은 오히려 밟으면 밟을수록 곱게 펴지고 있는 느낌이었다.

 

 “혹시 선우훈, 좋아해?”

 “…….”

 “아니면 이성현?”

 “…….”

 

 보통 다 이런 걸로 불러내던데, 아닌가-

 

 지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물었다.

 

 “설마… 둘 다 좋아해?”

 

 신주연의 얼굴이 점점 창백해졌다. 그런 그녀를 보며, 지안은 대충 상황을 눈치 챘다.

 

 “내가, 질투 나는구나?”

 “무, 무슨….”

 

 마침내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지는 그녀였다.

 

 이게 아닌데-

 

 상황이 엇나가고 있었다. 그녀가 계획한 것은 절대 이런 게 아니었다.

 

 “표정이 왜 그래? 속으로 찔려서 그러는 거야?”

 “…….”

 

 ‘왜 말이 없어? 속으로 찔려서 그러는 거야?'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아까 자신이 서지안한테 했던 말이었다.

 

 “아무튼 뭐… 짝사랑 열심히 해보고, 이왕이면 고백도 성공해보던가.”

 “…….”

 “그런데 말이야. 걔네가 받아줄 지는…… 잘 모르겠네.”

 “너…!”

 “대화 끝난 것 같은데, 난… 간다.”

 

 지안은 말을 마치자마자, 다용도실에서 나와 교실로 향했다.

 

 얼마 걷지 않아 교실 밖에 놓인 개인사물함이 보였다. 이제 거의 다 온 거나 마찬가지라, 지안은 빠르게 걷던 걸음을 다시 천천히 늦춰갔다.

 

 그런데 그 순간.

 

 촤악-

 

 “……!”

 

 누군가가 지안의 머리 옆으로, 책 한 권을 세게 던져버렸다.

 

 “후우…… 야!”

 

 잠깐 숨을 죽였다가, 지안이 소리를 높인 채 뒤를 돌아보았다.

 

 뻔하지, 누구겠어-

 

 “신주연, 너 미쳤어?!”

 “대화 끝났다고 가버린 사람이 누군데!!!!”

 “…….”

 “아직, 안 끝났어…!”

 

 신주연의 몸 전체가 부들부들 떨려오고 있었다. 아무래도 자신이 너무 자극을 준 듯싶었다.

 

 ‘이대로 가다간, 일 낼 것… 같은데.’

 

 복도를 지나가던 애들이 점점 이쪽을 주목해보였다. 그리곤 저들끼리 모여 점점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지안은 주위를 둘러보다, 이내 곤란한 얼굴로 그녀에게 말을 건넸다.

 

 “일단은 진정하고… 다용도실로, 다시 갈래?”

 “…아까부터 왜 그렇게 당당해? 믿을 것 하나 없는 애가……!”

 “…뭐?”

 “솔직히 너가 집안이 돼, 능력이 돼! 아무것도 아니잖아!!”

 

 애들이 몰리면 몰릴수록, 그녀의 말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남이 상처받을 건 전혀 신경 쓰고 있지 않는 듯 보였다.

 

 하아-

 

 지안은 잠시 자신의 옆에 떨어진 책으로, 시선을 옮겨보였다.

 

 “……!”

 

 서지안의 연기노트.

 

 자신이 초등학교를 입학하자마자, 오빠에게 연기를 배우며 꾸준히 써왔던 것이었다.

 

 이게 왜 신주연한테-

 

 “허…… 능력이 없어도, 그게 밟히면… 기분이 나쁜가보지?”

 “미쳤구나, 진짜…….”

 

 숨이 턱 막혀왔다. 하마터면 지안은 그대로 이성을 잃을 뻔했다.

 

 지나친 것도 정도가 있지, 이건 정말 사람이 돼서 할 짓이 아니었다. 흐트러지는 지안을 보고선, 신주연이 이내 기세등등하게 소리쳤다.

 

 “내가 그것만 한 줄 알아?!”

 “…….”

 “사물함 가봐, 아주 많이 해놨어! 무엇하러 그런 노트들을 만드는 거야? 어차피 다 쓸모없을 거…….”

 

 순간 눈동자가 흐려졌다. 그와 동시에, 지안이 다급하게 자신의 사물함으로 뛰어가 그 앞에 섰다.

 

 이에 그녀가 기다렸다는 듯 눈을 번뜩거렸다.

 

 ‘그래, 어서! 어서 열란 말이야…!’

 

 지안이 문을 열려고 하는 순간.

 

 “열지 마, 지안아.”

 “……?”

 

 지안의 뒤에서 제법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열지 마.”

 “……훈아.”

 “내가 열 테니까, 제발… 열지 마.”

 

 선우훈이 울듯한 목소리로, 지안을 향해 말하고 있었다.

 

 “…….”

 

 그를 발견하자마자, 신주연은 얼음장처럼 싸늘하게 굳어버렸다.

 

 “아, 안돼……!”

 

 반쯤 정신이 나간 듯 그녀가 계속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손잡이에…… 칼심… 다치면, 안돼…!”

 

 ‘손, 칼심…?’

 

 이를 언뜻언뜻 들은 지안이 설마- 하는 마음에 자신의 사물함 손잡이 쪽을 유심히 바라보았다.

 

 그리곤 이내 흠칫할 수밖에 없었다.

 

 “미친…….”

 

 손잡이 안쪽에, 빛나는 무언가가 깊숙이 자리 잡고 있었다.

 

 날카롭고 길쭉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저게 칼심인 것이 확실했다.

 

 “훈아, 멈춰……!”

 

 지안이 다급한 목소리로 앞에 있는 선우훈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그의 손은 이미 사물함손잡이에 거의 다 와간 상태였다.

 

 선우훈의 손이 완전히 칼심에 닿을 때쯤.

 

 “……!”

 

 있는 힘껏 선우훈을 옆으로 밀쳐버렸다.

 

 그와 동시에, 지안은 무게중심이 쏠려 앞으로 휘청거렸다.

 

 탁-

 

 “지안아……!”

 “꺄아아악!!!!”

 

 구경하던 이들 중 한명이, 지안의 손을 보자마자 너무 놀라 소리를 질러댔다.

 

 “아….”

 

 그녀가 휘청거리며 잡은 곳은, 다름 아닌 문제의 손잡이였다.

 

 안쪽에서부터 빽빽하게 칼심이 박혀있던, 자신의 사물함손잡이.

 

 순식간에 지안의 오른손이 피로 흠뻑 물들었다. 팔을 들자, 주르륵- 하고 피가 물 흐르듯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꺄악!!!! 어, 어떡해!”

 “잘린 거 아냐?!”

 “누가 선생님 좀 불러봐…!”

 

 그녀의 주위가 시끄러운 소음들로 번져갔다.

 

 “……으윽.”

 

 깊게 베인 손바닥이, 온통 새빨간 빛을 내고 있었다. 상처를 물끄러미 바라보는데, 갑자기 시야가 어지럽게 흔들려보였다.

 

 쿠당탕-

 

 “…지안아!!!!”

 

 선우훈의 눈에서 툭-하고 눈물이 떨어졌다. 지안은 다시 일어나려 했으나, 몸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쓰러진 와중에도 피는 계속 흘러나오는 중이었다.

 

 “…….”

 

 이내 정신을 완전히 잃고 말았다.

 

 

 

 

 

작가의 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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