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어서 서둘러 움직여! 이 빌어먹을 새끼들! 기사 자리에 앉으니까 인생이 편하디?”
“죄송합니다, 기사단장님! 크윽?!”
루크 사일런스 황실 기사단장은 참지 못하고 오늘 새벽 세이라 사일런스 제 1 황녀의 처소 당번이었던 기사의 복부를 걷어찼고 그의 행동에 기사의 밑에서 처소를 지키던 일반 황궁 병사들의 표정이 사색이 되었다. 루크 사일런스는 이를 바드득 간 뒤 말했다.
“너 이 새끼! 분명히 제대로 관리하지 못했겠지! 얼굴을 보니 황궁 병사에게만 맡기고 아주 푹 주무셨구만, 그래! 지휘자라고 아주 좋아 죽지? 빌어먹을 새끼가!”
“크윽!”
루크는 다시 한 번 당번 기사의 복부를 이번에는 주먹으로 후려갈겼고 그의 밑에서 처소를 지키던 황궁 병사들은 두려움에 몸을 덜덜 떨었다. 황궁 병사들 대부분이 일, 이병이었고 그런 그들에게 준장이라는 계급의 분노는 여태까지 느꼈던 그 어떤 것보다도 무서운 것이었다.
“야, 이 새끼야! 내가 분명히 말했지! 네놈이 솔선수범해서 지키라고 말이야! 황궁 병사들에게 있어서 세이라 공주님은 하늘과 같은 분이라 제대로 대응도 못하는 실정인데 너는 그 상황에서 잠이나 쳐 자러 가? 아주 푹 잤지? 응?!”
“죄송합니다! 다,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루크 사일런스는 가까스로 분노를 참아내며 이번에는 폭력을 휘두르지 않았다. 그는 흥분을 가라앉히기 위해 몇 번 심호흡을 한 뒤 기사단장 바로 밑의 직책인 기사장 한 명을 부른 뒤 말했다.
“이 놈들 모두 끌고 가서 철저하게 조사해! 불구가 되지 않을 정도라면 고문도 허용하고 그에 대한 책임은 모두 내가 진다. 공주님이 언제 어떻게 없어지셨는지 철저히 조사하란 말이야! 알아내지 못하면 네놈도 연대책임이다! 알았어!”
“알겠습니다, 기사단장님! 내 밑의 기사들과 황궁 병사들은 어서 저 놈들을 끌고 가라! 철저히 조사한다!”
루크의 명령을 들은 기사장은 자신의 직속 부하들에게 황궁 병사와 당번 기사를 끌고 가라고 명했고 수 십 명의 기사들이 급히 움직여 그들을 끌고 가기 시작했다. 끌려가는 이들은 제발 한 번만 용서를 해달라고 루크에게 빌었으나 루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빌어먹을! 하필이면 이때…”
세이라가 가출을 했다는 사실은 불과 조금 전에 밝혀졌다. 그녀가 하도 기상을 하지 않자 그녀를 기상시키기 위해 들어갔던 궁녀가 침대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고 서둘러 보고를 올린 것이었다. 덕분에 황궁은 발칵 뒤집어졌다.
임파이니는 서둘러 황실 기사단에게 황궁과 황도를 수색하라 명했다. 지금 상황은 정말로 위급한 상황이었다. 황궁 내에서라면 모를까 수많은 귀족들이 모여 살고 있는 황도, 이카루스 내에는 그녀의 목숨을 노리는 적들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런 상황에서 경호원 하나 없이 황궁을 빠져나가다니… 너무나도 무모했다. 루크 사일런스는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명백히 자신의 실수였다. 평상시의 그녀라면 한 번 가출이 실패하면 다음 계획을 세우느냐고 최소 며칠 동안은 가출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다음 가출을 위해 그녀도 연구를 해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져 그녀가 한 번 가출을 실패하면 다음 가출까지는 최소 며칠이 걸린다는 공식이 생긴 것이었다.
그러나 어제는 명백히 상황이 달라졌다. 가출 공주에게 있어 저승사자란 너무나도 무서운 존재였다. 어지간하면 침착하고 황제에게는 절대적인 충성을 보이는 루크 사일런스가 두려워하며 황제에게 항명을 하는 모습은 세이라에게 충격적일 터였다.
사실 만약 루크가 그 상황에서 침착하게 대응했다면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 애들도 두려워하는 저승사자가 온다는 사실을, 그것도 세이라 공주의 경호를 전담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는데 담담하게 대응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었다.
어쨌든 이 결과 세이라 공주는 어지간하면 쓰려고 하지 않았던 필살기를 쓴 것이었다. 세이라 공주는 철이 없다고 볼 수 있었지만 명석했다. 그녀 입장에서는 일부러 가출 실패와 다음 가출 사이에 기간을 두었던 것이었다. 그 루크 사일런스조차 방심하고 놓치고 있던 이 맹점을 찌르기 위해.
그러나 어쨌거나 지금 상황은 최악이었다. 사실 황실 기사단 입장에서는 저승사자 한 사람에게 대응하기도 벅찬 상황이었다. 어지간히 간 큰 사람이 마중 나가지 않으면 그에게 감히 서 있기도 힘드리라. 사실 루크 사일런스조차 그의 앞에 섰을 때 다리를 떨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을 정도였다.
그런 상황에서 경호 대상인 세이라 사일런스 제 1 황녀마저 가출을 했으니… 황실 기사단 입장에서는 하나도 제대로 감당하기 힘든 일이 이중으로 생겨 버거운 상태였다. 곧 어느 정도 충격에서 벗어난 루크 기사단장은 침착하게 기사장들에게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들에게는 황제와 당부와 함께 저승사자가 오늘 황도, 이카루스에 온다는 것을 알려준 상태였다.
“저승사자, 시크릿이 오기 전까지 앞으로 고작 2시간 반 남았다. 우리에게 굉장히 부담스러운 일이겠지만 달리 방법이 없다. 어떻게든 힘써보자. 기사들에게는 아직 알리지 마라. 알겠나?”
“예, 기사단장님!”
“그럼 어서 움직여라! 시간이 없다!”
루크 사일런스의 침착한 명령을 들은 기사장들이 분주히 움직였고 곧 기사단 전체가 썰물 빠지듯이 일사분란하게 황궁 밖으로 이동했다.
“부디 늦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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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세이라 공주는 지금 황궁 상황이 얼마나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는지 알고 있을 리가 없었다. 워낙 ‘자신의 일’을 제외하고는 무관심한 그녀였던 터라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녀는 여기저기 찢어진 후드로브를 입고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녀 입장에서는 나름 자신의 신분을 숨기기 위해 입은 것이었으나 그녀의 몸짓 하나만으로도 그녀가 고귀한 신분이라는 것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알아차리고 몇몇 사람은 한숨을 내쉬며 ‘공주님이 오늘도 가출하셨구나.’라고 중얼거리고 있었다.
물론 가출 공주님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었지만. 그녀는 광장 한복판에 설치되어 있는 시계탑을 바라보았다. 시계탑의 거대한 시계는 현재 시간이 10시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었다. 황실 기사단이 황궁에서 출발한지 벌써 30분이 지난 상태였던 것이다.
“지금 시간이 10시구나… 지금쯤 그 흉악한 ‘저승사자’인가 뭔가 하는 사람은 기차를 타고 신이 나서 이곳으로 향하고 있겠지?”
세이라는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저승사자의 얼굴을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지만 그녀는 이미 그의 얼굴을 흉악한 살인마처럼 생겼다고 단정하고 있었다. 분명히 그 저승사자라는 사람은 도깨비처럼 사악하게 생긴 사람일 것이야.
그 착하고 어여쁘신 플로리아 공주님께 몹쓸 짓을 한 사람이라고? 정말 잔인하고 흉악한 사람일 것이 분명해! 아니, 어쩌면… 혹시 모르지만 사람이 아닐 지도 몰라. 어쩌면 ‘악마’일지도?
세이라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그런 흉악하고 사악한 자에게 도저히 경호를 받을 수는 없었다. 어쩌면… 만약이지만 어쩌면 경호를 가장에 자신에게 몹쓸 짓을… 으으… 그녀는 다시 온 몸을 덜덜 떨었다. 기분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누군가 바라보는 느낌과 함께 한기가 느껴졌다.
그렇게 그녀가 정신없이 걸어 다니는 사이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기차역에 도착한 상태였다. 방금 기차역에서 사람이 내린 탓일까? 평상시에도 굉장히 붐비는 기차역이 오늘 따라 더욱 붐비고 있었다.
“어? 왜 내가 이곳에…”
그녀는 당황한 표정을 지으며 그곳을 떠나려고 했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 때문에 쉽게 이동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난처한 표정을 지으며 주위를 둘러보아 사람이 그나마 적은 곳으로 힘겹게 이동했다.
그런데 자고로 이런 말이 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 속에 숨기라는 말. 이 말은 쉽게 말해 사람을 숨기려면 사람들 속에 숨기는 것이 가장 좋다는 것을 의미했다. 다만 지금 이 말은 세이라 사일런스 공주를 위한 말은 결코 아니었다.
누구를 위한 말이냐면… 붐비는 사람들 속에 숨어 조그마한 단검을 남몰래 숨겨들고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가는… ‘암살자’를 위한 말이었다. 차기 황제 자리를 노리는 귀족에게 고용된 암살자답게 그는 물고기가 물속에서 헤엄치듯 자연스럽게 사람들 속을 비켜나가며 은밀하게 세이라 공주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타겟인 그녀의 바로 뒤에 섰을 때 이 빼어난 암살자는 단검을 치켜들며 그녀의 귓가에 속삭였다.
“죽어라!”
푹!
찔렀고… 피가 넘쳐흘렀다.
“이런 것을 들고 다니면 위험하지.”
“커억?!”
암살자의 목에 칼이 꽂혔고 피가 분수처럼 뿜어져 나왔다. 그리고 뿜어져 나오는 그 피는 마치 피처럼 땅으로 다시 내려왔고 이 피의 빗줄기는 세이라 공주의 얼굴에 그대로 묻었다.
“꺄악?!”
난데없이 사람이 죽어나가자 기차역이 아수라장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떻게든 이 기차 역 주변에서 도망치기 위해 비명을 지르며 달려나갔다. 그런 상황에서… 세이라는 자신의 눈앞에서 일어난 일에 잠시 멍한 표정을 짓다가 바닥에 털썩 주저앉아 버렸다.
사람이 죽었다. 그것도 눈앞에서… 그녀는 사람이 죽는 것을 단 한 번도 직접 본 적이 없다. 당연하다. 임파이니 황제가 온실 속의 화초처럼 소중하게 길렀으니. 난데없이 나타난 누군가가 자신을 죽이려 했고 또 난데없이 나타난 누군가가 그 누군가를 죽였다. 충격이 배가 된다.
“후후후후. 인수인계를 일찍 받고 좀 쉬려고 조금 일찍 왔는데 이렇게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다니! 그건 그렇고… 오? 이 단검 좋은데? 꽤 이름 있는 암살자였나봐. 좋아! 이 단검은 특별히 내가 애용하도록 하지! 야, 듣고 있나? 아, 뒈져버렸지? 후후후후후!”
그녀를 구해준 남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대수롭지 않게 손수건으로 단검에 묻은 피를 대충 쓱쓱 닦은 뒤 품에 넣었다. 사람을 죽이는 게 대수롭지 않다는 점… 그것은 세이라 공주에게 더 큰 충격을 주었다. 단검을 차지한 남자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다가갔다.
“그건 그렇고 오자마자 일이라니. 처음 뵙겠습니다… 라고 해야하나? 가출 공주님?”
“오, 오지 마! 이 살인자!”
마치 장례식 장에 가는 것처럼 검은색 양복에 넥타이를 매고 있는 남자의 몸에는 검붉은 피가 진득하게 묻어있었다. 그것은 구릿빛 피부의 얼굴과 회색빛 은발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이런 상황을 이미 수없이 겪었는지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있었다.
그는 세이라 공주의 말을 무시하며 천천히 그녀에게 다가갔고 그 순간 죽음의 공포를 느낀 세이라는 정신없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저, 저 사람 도대체 누구야?!”
외모는 준수하지만… 눈에는 그녀가 처음 느끼는 광기라는 이름의 분노가 어려 있었다. 마치 저승사자처럼…
이것이 그들의…
저승사자와 가출 공주님의 첫 만남이었다.
핏빛만이 가득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