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 받아라! 어디 한 번 받아봐라!”
“크윽?!”
루크는 가까스로 자신에게 날아오는 농구공만한 화구를 불의 검으로 쳐냈다. 루크가 쳐낸 화구는 그대로 근처에 있던 마차에 부딪혔고 곧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부서진 마차의 잔해들과 짙은 연기가 하늘로 피어올라갔다. 루크는 숨을 헐떡이며 상대를 바라보았다.
‘저게 제대로 상대해주고 있는 거라고? 웃기시네!’
루크의 시선을 알아챈 저승사자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그는 마차에서 부서져 나온 의자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루크로부터 불과 20m 남짓 떨어진 거리. 그러나 그런 그에게 루크는 제대로 접근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름 최대한의 예의를 갖춰 상대해주고 있는 거라고, 황실 기사단장님. 그러나 나는… 고작 닭 잡는데 소 잡는 칼을 사용하지는 않아서 말이야. 그것은 합리적이지 못하잖아. 나는 말이야. 나보다 약한 상대에게는 맞춰주는 버릇이 있어서 말이야. 그들이 나를 충분히 이길 정도의 힘만 사용해서 상대하지. 뭐… 결과는 한 명도 나를 이기지 못했지만. 하지만 당신은 예외라고. 딱 당신을 쓰러뜨릴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힘만 사용하고 있다고.”
“빌어먹을!”
비단 기사로써가 아니라 누구든지 이런 말을 들으면 이성을 잃을 것이 분명했다. 실제로 이 노련한 기사도 그러했다. 그는 분을 참지 못하고 곧장 저승사자를 향해 내달렸다. 제대로 달리면 아무리 느려도 5초면 충분히 도달할 수 있는 거리였고 무방비한 그의 목을 검으로 찌르는 데에는 충분했다. 하지만 저승사자는 씨익 미소를 지었다.
“남은 게 노련함 밖에 없는 당신이 그것마저 잃으면 나를 어떻게 상대하려고 그러나? 후후후. 성난 멧돼지처럼 콧김을 내뿜으며 달려와 봤자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기사단장님.”
“아차?!”
당황해서 멈추려는 루크였지만 이미 가속도가 붙은 터라 바로 딱 멈출 수가 없었다. 저승사자는 잔혹한 눈웃음을 지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하는 소리와 함께 루크의 바로 밑에서 거대한 불기둥이 솟구쳤다.
“크아아아아아아아악!”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저승사자의 기분 나쁜 웃음소리가 루크의 고통이 가득한 비명소리를 삼켰다. 곧 불기둥의 불길은 사그라들었고 루크는 힘없이 무릎을 털썩 꿇었다. 그러나 그는 가까스로 쥐고 있는 검으로 쓰러지려는 자신의 몸을 지탱했다. 저승사자는 감탄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바라보았다.
“크으으으윽!”
루크의 몸은 이미 걸레짝이나 다름이 없었다. 아니 화장실을 청소하는 걸레도 지금의 그의 몸 상태보다는 깨끗할 것이다. 깔끔하고 정갈하던 그의 기사복은 군데군데 해졌고 그을렸으며 온 몸에는 피와 함께 화상 자국으로 인한 수포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저, 저런 괴물이… 저건 이미 인간의 수준이 아니야. 이게… 하이 랭커들 중에서도 최상위에 있는 자들의 힘인가.’
루크는 이를 악물고 이제는 실낱과도 같은 의식의 끈을 잡아내었다. 상대는 정말 너무나도 강했다. 게다가 저승사자가 틀린 말을 한 것도 결코 아니었다. 고작 3분 정도 싸웠다. 그가 그 3분 동안 사용한 마법은 화구와 불기둥 뿐.
물론 저렇게 원하는 때에 원하는 장소에 완벽하게 사용하는 것부터 그의 마나 제어 실력이 자신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된다는 것을 의미했지만 화구와 불기둥 그 자체는 그리 어려운 마법이 아니다. 특히 화구는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불의 마법의 초급 중의 초급이다.
시크릿은 충분히 자신이 이길 가능성을 주고 싸웠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뚫어내지 못했다. 마치 패배의 여신이 전투 시작 전부터 들러붙었던 것처럼. 마치 처음부터 이렇게 되는 것이 결정된 것만 같았고 저승사자의 승리는 이미 약속받은 것과도 같이 느껴졌다.
“크으으으윽!”
“…뭐야, 아직도 해보려는 거냐?”
그러나 루크는 포기하지 않았다. 아니, 포기할 수 없었다. 그는 이를 바드득 갈며 누더기가 된 몸을 일으켰다. 그러나 저승사자는 이미 자신을,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자신을 적으로 여기지도 않고 있었다. 원래 그의 승리는 이미 약속되어 있었으니까.
“한심하군. 어차피 죽을 거라면 조금이라도 편하게 죽는 것이 낫지 않나? 왜 사서 고생을 하려는 거지? 도저히 이해를 할 수가 없군. 혹시 고통을 느끼면 성욕이 끓어오르는 변태냐? 하하하하하하하하!”
“…”
저승사자의 저급한 농담에도 루크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자신만 웃자 뻘쭘해진 저승사자는 한숨을 내쉬며 쓰레기를 창문 밖으로 버리는 것 마냥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화구 하나를 날렸다. 루크는 그것을 그대로 얻어맞고 폭발 소리와 함께 그 자리에서 다시 쓰러졌다.
“크으윽?!”
평상시의 루크라면, 아니 비단 루크가 아니라 잘 훈련받은 병사들이라면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눈에 보이는 공격이었지만 루크는 그것을 피할 수 없었다. 이미 몸이 말을 듣지 않는 상태에 온 것이었다. 저승사자는 하품을 하며 주변을 둘러보려다가 포기했다. 다리 위에 시계가 있을 리가 없다.
“그럼 돌아가지. 너를 상대하는 것도 이제 질렸다. 어차피 이렇게 가만히 내버려두면 네놈은 뒤질 거니 말이야. 하지만… 후후후. 혼자서 쓸쓸하게 죽는다고 외로워하지는 마라. 더 많은 사람들을 네 곁으로 보내줄 것이니 말이야.”
저승사자는 이제 그를 괴롭히는 것도 질린 모양이었다. 앉아있던 부서진 의자에서 일어난 그는 쓰러진 루크를 무시하고 다리 바깥으로, 사일런스 제국의 황도인 이카루스로 향했다.
“끄으…”
루크는 다 죽어가는 짐승 소리를 내며 어떻게든 일어나려고 발버둥 쳤다. 그러나 이미 그의 말대로 그는 죽어가고 있었다. 당장 눈앞의 시야도 흐릿해서 몇 번이나 고개를 뒤흔들며 정신을 다잡아야 할 정도였다.
“웃… 기지마라.”
“응, 뭐라고?”
뒤에서 들려온 죽어가는 목소리에 저승사자는 고개를 살짝 돌렸다. 그리고 아주 살짝 이었지만 그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루크는 검을 지팡이 삼아, 부서진 마차를 버팀목 삼아 힘겹게 일어난 것이었다. 이미 한 치 앞도 제대로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나는… 사일런스 제국의 자랑스러운 기사다. 그런 내가 살아있는 한… 네놈을 절대 이 다리 바깥으로 보내줄 수는 없다. …절대로.”
“기가 찰 노릇이군. 그렇게 고통스럽게 죽는 것이 당신의 소원인가. 정말 소름이 돋을 것 같군. 혹시 정말 고통을 느끼면 발기부전이라도 치료되는 건가? 휴, 이런 변태 상대를 해줘야 하는 것이 짜증이 나는군.”
“…마음대로 지껄여라. 물론 나는 네놈에 비하면 한없이 나약한 존재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나는 긍지가 있다. 나는 선이 있다. 나는… 정의가 있다. 나는 죽어도… 자랑스러운 기사로서 죽는 것이다. 하지만… 하지만 네놈에게는 뭐가 있나. 사람들을, 죄없는 사람들을 괴롭힐 힘만이 존재할 뿐. 네놈은 긍지도 없다. 정의도 없다. 네놈은… 신관의 부하라는 자각이 있나. 네놈은 ‘악’이다. 너는 살아도 산 것이 아니다. 살아도 인간이 아니라… 짐승, 아니… ‘악마’일 뿐이다.”
그의 말을 들은 저승사자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루크는 힘없이 공허해진 눈빛으로 저승사자가 있는 곳을 힘겹게 노려보고 있었다. 그러나 이미 그의 시야는 완전히 흐릿했다. 형체만 가까스로 보일 뿐이었다.
“…내가 악이라고…”
몇 초간의 침묵 끝에 나온 저승사자의 말은 한없이 차가웠다. 그는 이를 바드득 갈았다. 지금 그는 아까 전 있었던 세이라 공주와의 설전 그 이상으로 분노하고 있었다. 루크는 눈앞을 제대로 볼 수는 없었지만 무엇인가 심상치 않음을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래. 내가 악이라 치자. 그럼 되묻지. 나를 악으로 만든 너희는 선이냐. 아니면 ‘우리’를 악으로 정의한 너희가 정의냐! 나를 쓰레기로 만들어놓고 자기들은 깨끗한 척하지! 신관의 부하? 신앙? 인간성? 엿 먹어라!”
“헉?!”
루크는 온 몸이 덜덜 떨리는 것을 느꼈다. 절대 건드리면 안 되는 역린을 건드린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는 자신의 피부가 타들어가는 듯한 뜨거움을 느꼈다. 그들이 있는 곳의 온도가 순식간에 올라가기 시작했다. 잠잠했던 다리 위는 불기둥들이 솟구쳤다.
“장난은 여기까지다. 이제 즐기는 것은 접겠다. 다 죽여주마. 지옥을 보여주마!”
“마, 말도 안 돼… 무, 무슨 마나 제어를 저렇게…”
루크의 흐릿한 시야로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었다. 저승사자의 머리 위에 수많은 화구들이 떠올랐다는 것을. 헤아리는 것을 포기해야만 하는 그것들은 마치 작은 태양과도 같았다. 저승사자는 이를 바드득 갈았다.
“죽어라. 고통스럽게 죽어라! 그리고 나를 원망해라. 너희들의 원망이 내 힘이고 내 양식이다. 네놈들의 원망을 곱씹으며 나는 내가 해야만 하는 일을 하겠다!”
“아아아아…”
가까스로 일어난 루크는 힘없이 다시 주저앉았다. 그가 태어나서 이렇게 강한 악의를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의 마법 하나하나에, 그리고 말 하나하나에 얼마나 그의 분노가 응축되어있는지 알 수 있었다. 오히려 평상시에 경박하게 행동했던 것은 그 악의를 숨기려고 했던 것이라고 여겨졌다.
“꺼져라.”
“으윽!”
저승사자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중에 떠오른 수많은 화구들과 땅에서 치솟은 불기둥들이 모두 루크 한 사람만을 죽이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가 아까 말했던 것처럼 닭잡기 위해 소 잡는 격이었지만 이제 그런 것을 중요하지 않았다.
그는 이제 한시라도 빨리 더 많은 사람들을 죽여 버리고 싶었다. 아까처럼 즐기다가 시간을 빼앗기는 것은 이제 싫었다. 루크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수많은 불길에 눈을 질끈 감았고 곧 기절해버렸다. 죽음의 순간이었으니 당연했다. 차라리 기절을 함으로써 고통 없이 죽으라는 본능이 내린 결정이었다.
“…그래, 내가 시간을 끌기는 너무 끌었지.”
“…아슬아슬했군.”
저승사자는 인상을 구기며 새로 나타난 적을 바라보았다. 불은 이미 완전히 사라진지 오래였다. 난데없이 나타난 얼음벽이 저승사자의 불길을 모두 가지고 소멸한 것이었다. 덕분에 엄청난 양의 뜨거운 수증기가 피어올랐고 상대는 수증기 안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이제 당신이 나설 차례인가? 제국의 수호신… 라오스 머큐리.”
“황실 기사단장, 루크 사일런스 준장. 그대의 기사 정신은 훌륭했다. 그대는 내가 예상한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을 벌 수 있었고 덕분에 더 이상의 인명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정말로 훌륭하다. 그러니 이제 안심하고 푹 쉬어라. …그대가 지키려고 했던 제국은 내가 지킬 것이니.”
사일런스 제국의 군 원수이며 신관 직속 부하, 초신성 중 한 사람인 제국의 수호신, 라오스 머큐리는 사일런스 제국의 명검 듀란달을 저승사자에게 겨누며 말했고 저승사자는 그런 그를 가만히 노려보며 말했다.
“지켜 볼 테면 어디 한 번 지켜봐라. 하지만 네가 곧 지켜볼 것은 활활 불타는 황도와 네가 그토록 아끼는 제국의 국민들이 활활 불타는 장면이겠지만 말이야.”
“그때 ‘그 일’처럼 말인가! 저승사자, 시크릿!”
‘그 일’에 대해 라오스가 언급하자마자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저승사자가 어느새 품에서 뽑은 단검으로 그의 목을 베려고 했지만 라오스는 루크와는 달리 그의 단검을 가볍게 막아내었다. 오랜만에 다시 금속끼리 맞물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왜? 네놈에게도 ‘죄책감’이라는 것이 존재했나? 아니면 왜 발끈하지?”
“죽여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