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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출 공주님을 경호하라!
작가 : 머리식히기
작품등록일 : 2017.1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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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담(1)
작성일 : 17-11-24     조회 : 35     추천 : 0     분량 : 64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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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래, 그대가 그렇게 잘난 저승사자인가?”

 

 일주일 뒤, 사일런스 제국의 황궁. 임파이니 황제와 저승사자와의 첫 만남이 몇몇 고위 신하 사이에서 이루어졌다. 원래 저승사자가 이카루스로 오고 하루 뒤에 만나기로 변경되었지만 그가 벌인 일이 너무 엄청났기에 어느 정도 수습하는데 일주일 정도 걸린 것이었다.

 

 “예, 경애하는 황제 폐하. 시크릿이라 하옵니다. 천한 신분인지라 성은 가지고 있지 않사옵니다. 하온데 폐하.”

 

 “말해보라.”

 

 “다리가 아파서 그런데 앉아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며 바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의 그런 모습에 신하들이 경악하며 입을 쩍 벌렸다. 임파이니 역시 이런 일은 처음 겪는 일이기에 노골적으로 불쾌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노려보았다. 그렇지 않아도 첫인상이 그렇게 좋지 않았는데 이렇게 무례하게 행동하다니…

 

 “크흠. 뭐, 천한 신분이라고 하니 예의라는 것을 배우지 못했겠지. 짐이 너그럽게 이해하겠노라.”

 

 “이해해주셔서 망극하기 그지없군요, 황제 폐하.”

 

 한 마디도 물러서지 않는 그의 행동에 임파이니의 눈썹이 분노로 몇 번 움찔거렸다. 자기 딸 뻘 나이의 애송이에게 이런 대접을 받을 정도로 황제는 인생을 헛살지 않았다. 그러나 저승사자는 너무나도 당당했다.

 

 “그래, 그럼 일단 지난번에 일어난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보도록 하지. 저승사자여. 그대는 어찌하여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을 죽고 다치게 만들었는가?”

 

 “하하하. 그게 다 황제 폐하께서 지키라고 하신 세이라 사일런스 황녀를 지키기 위해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까.”

 

 임파이니는 이를 바드득 갈며 저승사자를 노려보았다. 그는 어떻게든 분노를 삭히려고 최대한 노력 중이었다. 한편 황제가 저렇게 화난 적을 본 적이 없는 신하들은 대부분 안절부절 못했다. 어느 정도 진정된 임파이니가 다시 말했다.

 

 “짐이 알기로는… 실질적으로 공주를 해치려고 한 사람은 처음 한 사람과 납치한 세 명. 즉 네 명 뿐이다. 그러나 그대가 죽인 사람의 수는 152명이다. 무려 148명이 무고한 제국의 국민이란 말이다.”

 

 “정말 어리석기 짝이 없는 말씀이시군요, 폐하. 그럼 저보고 수많은 사람들이 지나가는 마차를 일일이 수색하며 찾으시라는 말씀이십니까. 황제 폐하의 의뢰 내용은 공주님을 지키는 것이지 사람을 죽이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제 맡은 바 일을 충실히 해냈다고 생각합니다만.”

 

 “뭐라!”

 

 결국 참지 못한 임파이니가 주먹으로 팔걸이를 내리치며 옥좌에서 일어났다. 황제의 격노에 신하들은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그러나 저승사자는 한가롭게 하품을 하며 임파이니를 바라볼 뿐이었다.

 

 “네놈이 도대체 대단하면 얼마나 대단하기에 사람의 목숨을 함부로 대하는 것이냐! 148명이다. 148명! 그들 모두 사랑하는 가족이 있는 사람들이란 말이다! 근데 그런 목숨을 모기 잡듯 그렇게 함부로 대할 수 있는 것이냐!”

 

 황제의 말을 들은 저승사자의 몸이 살짝 움찔거렸다. 그는 얼굴을 붉힌 그는 고개를 숙이고 눈을 지그시 감았다. 마치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아내려고 애쓰는 것만 같았다. 그의 행동에 자리에 있는 라오스는 살며시 허리에 찬 검에 손을 갔지만 곧 이성을 되찾은 저승사자의 모습에 다시 검에서 손을 치웠다.

 

 “그럼 황제 폐하께 묻겠사온데 그 148명과 세이라 공주. 그들 중 하나를 선택하라면 누구를 선택하겠습니까? 제가 그렇게라도 하지 않았으면 공주가 죽었을 것이 분명할 텐데요? 그냥 죽으면 다행이지 온갖 능욕을 당해서…”

 

 “무엄하다!”

 

 참지 못한 신하 중 한 사람이 저승사자에게 삿대질을 하며 외쳤다. 그러나 돌아온 것은 저승사자의 차가운 눈빛이었고 혈기 왕성한 신하는 그의 눈빛에 그저 얼어붙을 뿐이었다. 마치 맹수 우리에 갇혀버린 기분이 들었다.

 

 “너 따위가 나설 자리가 아니니 빠져! 죽고 싶나?”

 

 “으으으…”

 

 저승사자의 말을 들은 신하는 그 자리에서 다리가 풀려 주저앉았다. 저승사자의 죽고 싶냐는 말은 결코 말 뿐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승사자는 다시 시선을 돌려 물을 벌컥벌컥 들이켜고 있는 황제를 바라보았다.

 

 “공주 운운하지 마라, 저승사자! 감히 네놈은 그 공주를 죽이려고 하지 않았나!”

 

 “기껏 물에 빠진 놈 구해주니까 보따리 건져오라는 식으로 대하는 데 제가 참을 수 있겠습니까? 아무래도 가정교육을 잘못하신 모양이시군요, 황제 폐하. 구해주니까 다짜고짜 뺨을 때리며 모욕하는 상대에게 제가 인정을 베풀어야 합니까? 착각하지 마십시오, 황제이시여. 저는 DS길드장과 물의 신관의 부하이지 당신의 신하가 아닙니다. 제가 왜 공주의 어리광을 받아줘야 한다는 것입니까. 너무 이기적이신 것 아닙니까? 아무래도 사일런스 제국의 황족은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모르시나 보군요. 저야 신분이 천하니까 그렇다고 치지만 이 제국의 귀족과 황족은 도움 받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니… 사일런스 제국이 이토록 번성한 것은 아마 운뿐인 모양이군요.”

 

 “이 새끼가…”

 

 임파이니가 이를 바드득 갈며 말했다. 제국까지 모욕하는 그의 모습에 다른 신하들도 그를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지만 감히 그에게 뭐라고 말을 하지 못하고 있었고 라오스는 헌터 킬러 때문에 괜히 그에게 트집을 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아무리 저승사자가 ‘마왕’을 두려워한다고는 하지만 저 자가 화나면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들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저승사자는 기지개를 쭉 편 뒤 자리에서 일어나 엉덩이를 툭툭 털었다.

 

 “하실 말씀 다 하셨습니까? 그럼 물러가겠습니다. 정말 하기는 싫지만 그래도 신관의 명령인지라 수행을 해야 하거든요. 앞으로 1년 동안 잘 부탁드립니다, 위대한 황제 폐하.”

 

 “잠깐 멈춰라.”

 

 그곳을 떠나려던 저승사자를 황제가 불렀고 저승사자는 다시 뒤로 돌아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황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가득하다. 왠지 그와의 설전으로 몇 년은 더 늙은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눈에서는 독기를 내뿜고 있었다. 그는 짐승이 위협을 하는 듯한 소리를 내며 말했다.

 

 “짐은 반 백 년을 살아오면서 그대와 같은 마법사들을 수도 없이 보았느니라. 모두 갑자기 유명해져서 여기저기 설치고 다녔지. 그들의 말로가 어땠는지 아나? 인과응보라는 말이 있다. 그대가 한 일은 훗날 그대로 그대에게 돌아올 것이다. 남의 눈에 피눈물을 흘리게 만들면 언젠가 반드시 자신의 눈에도 피눈물이 날 일이 생기지. 짐의 말을 명심하라.”

 

 사일런스 제국의 위대한 황제가 한 말을 들은 저승사자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그러나 곧 그는 입가에 피식 미소를 지으며 임파이니를 흘겨보듯이 쳐다보았다.

 

 “예. 그럴 지도 모르죠. 하지만 황제께서는 저를 처음 만난 것이 아닙니까? 저는 다를 겁니다. 어차피 인생 참 짧지 않습니까? 언제 죽을 지도 모르고요. 저는 남의 눈에 피눈물이 나는 것을 너무나도 좋아하기에… 앞으로도 그리 살 것이니 신경 끄시고 가출이나 하는 공주님 엉덩이나 몇 번 두드리시지요. 따지고 보면 이번 일은 공주님 때문에 일어난 것이니.”

 

 “저, 저런 무엄한 자가 있는가!”

 

 신하들이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격노하며 그에게 소리쳤지만 저승사자는 호탕하게 웃으며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황제는 이를 바드득 갈며 그가 나간 문 쪽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라오스에게 말했다.

 

 “군 원수. 황실 기사단장. 어쨌든 저 자가 황도에 있게 되었으니 저 자를 예의주시해주시오.”

 

 “알겠습니다, 페하!”

 

 사실 라오스는 아직도 저승사자를 황도에 데려온 것을 탐탁지 않게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일이 커졌기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회의는 마무리 되었다. 한편 복도로 나온 저승사자는 몇 걸음을 걷다가 애꿎은 나무기둥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새빨간 선혈이 방금 까진 상처의 틈으로 흘러내렸다.

 

 “‘고작’ 148명 더 죽였다고 감히 ‘우리’에게 그리 화를 내? 우리는 수 백, 수천이 죽었다. 그런데 어느 누구가 우리를 위해 울어주었는가. 그리고 뭐? 남의 눈에 피눈물 나게 만들면 반드시 자기 눈에도 피눈물이 나기 마련이라고? 너희의 눈에서 단 한 번이라도 피눈물이 흘린 적이 있는가. …언젠가… 내가 지금보다 더 강해졌을 때 반드시… 반드시 너희들의 눈에서 피눈물이 흘러넘치게, 울며불며 제발 살려달라고 애원을 해주게 만들어주마. 반드시!”

 

 %%%%%

 

 한편 세이라 공주는 지난번 가출의 대가로 한 달 동안의 근신형에 처해졌다. 가출을 하면 된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에는 황실 기사단 중에서도 나름 강단 있는 자들이 공주의 건물을 지키고 있었다.

 

 “으으으…”

 

 그러나 그것은 차치한다고 치더라도 그녀에게 있어 더욱 짜증나는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오늘부터 그 재수 없고 경멸하는 저승사자의 경호를 받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그는 아침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만 있는 것이기에 항상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화장실을 갈 때를 제외하고 그에게서 몇 m 이상 벗어나지 못한다는 것은 그녀에게 있어서 고문이나 다름이 없었다.

 

 “휴. 가출을 적당히 할 걸 그랬나?”

 

 그러나 그녀는 곧 고개를 저었다. 그녀가 가출을 하는 이유는 반항기라서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이러니… 아주 살짝은 후회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녀는 독서를 하며 그 남자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공주님. 저승사자가… 아앗! 안 됩니다!”

 

 문 밖에서 보고를 하던 병사가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지만 그가 말릴 새도 없이 난데없이 문이 열렸다. 문 밖에는 당당히 서 있는 저승사자, 시크릿과 난처해하는 병사가 서 있었다. 세이라 공주는 한숨을 깊게 내쉰 뒤 말했다.

 

 “수고하셨어요. 문을 닫고 밖에서 대기하세요.”

 

 “…하, 하지만 공주님…”

 

 병사는 문을 닫는 것을 망설였다. 이 위험한 남자와 단 둘이 같은 공간에 있게 하면 무슨 일이 발생할 줄 모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공주는 몇 번이고 연거푸 괜찮다고 말했고 병사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았다.

 

 그러나 혹시 모르기에 저승사자가 들어간 순간부터 밖에 있던 모든 병사들이 무기에 손을 가져갔다. 안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오면 바로 들어가 공주를 구해낼 생각이었던 것이다. 한편 방 안에 덩그러니 남은 두 사람은 말없이 서로를 잠시 불구대천의 원수라도 만난 것처럼 노려보았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긴장감이 방 안에 감돌았다.

 

 “뭐, 앞으로 잘 부탁해요. 저도 당신을 없는 사람처럼 대할 테니 당신도 그리 하도록 하세요. 어차피 사이가 좋은 것은 아니니까.”

 

 “…그렇게 하도록 하죠, 공주님.”

 

 저승사자의 말에 세이라 공주는 코웃음을 친 뒤 책으로 눈길을 돌렸고 저승사자도 인상을 찌푸리며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물었다. 모든 나라에서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사일런스 제국에서는 20세 미만은 엄격히 흡연을 금지하고 있었다.

 

 “당신. 지금 나이가 몇 살이시죠?”

 

 “…서로 없는 사람처럼 대하자고 하지 않으셨나요, 공주님?”

 

 공주는 한숨을 내쉰 뒤 책을 덮어놓고 저승사자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그를 똑바로 올려다보았다. 신장의 차이가 있었기에 치켜뜨듯이 그를 올려다보는 그녀는 정말로 귀여웠다. 특히 긴 속눈썹이 매력적이었다.

 

 “묻는 말에나 대답하시지요.”

 

 “18살입니다만. 또 지난번처럼 나이로 시비를 거실 생각이십니까?”

 

 저승사자의 무례한 말에 세이라는 그의 눈을 잠시 노려보았지만 곧 옅은 한숨을 내쉰 뒤 그의 입이 물고 있던 담배를 뽑아내듯이 빼낸 뒤 쓰레기 통으로 던졌다. 저승사자는 지금 애가 뭐하나 싶어 그녀를 노려보았지만 그녀도 굴하지 않고 저승사자를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우리 제국에서는 20살 미만은 흡연이 금지입니다. 당신이 암에 걸려 죽는 것은 제 알바 아니지만 법은 지키세요. 아니면 나 몰래 피던가.”

 

 “제가 도대체 왜 이 망할 제국의 법을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까.”

 

 “지키라면 지키세요. 그리고 거슬리니까 존댓말 하지 마세요. 존댓말은 말 그대로 상대를 존대해야만 쓸 수 있는 말입니다. 당신 같은 사람에게는 어울리는 말이 아니에요. 듣는 사람도 불쾌하니 하지 마세요.”

 

 그녀의 말을 들은 저승사자는 손을 높이 치켜들고 그녀를 때릴 뻔했다. 그러나 그녀는 굴하지 않고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저승사자는 화를 꾹꾹 참아낸 뒤 비어있는 의자에 앉았고 그제야 공주도 고개를 끄덕이고 앉아있던 자리로 돌아가려다가 발걸음을 우뚝 멈추고 한심하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또 싸우셨나요? 당신은 정말 싸우는 것 말고 할 일이 없나보죠?”

 

 “그게 무슨 소리지?”

 

 그의 질문에 공주는 대답대신 눈짓으로 저승사자의 손을 가리켰다. 아까 나무기둥을 후려친 곳에서 피가 고여 있었다. 저승사자는 인상을 찌푸렸고 세이라 공주는 한숨을 내쉰 뒤 방 주변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가져온 것은 새하얀 붕대였다.

 

 “제 손으로 제 국민들을 죽게 만든 손을 치료하고 싶지는 않으니 직접 감으세요.”

 

 “그냥 무시하지? 왜 갑자기 잘해주는 척이지?”

 

 “왜냐하면 저는 사람이거든요.”

 

 “나는 사람이 아니란 소리인가?”

 

 “바보 같은 질문이군요. 물론 당신도 ‘사람’이죠. 그러니까 미워도 치료하라고 주는 거죠. 하지만 당신의 마음은 쓰러져 있어요. 딱한 사람. …더 이상 말하면 또 싸울 것 같으니 그만하죠. 붕대는 여기 놔둘 테니까 감던지 말든지 알아서 하세요.”

 

 그녀의 말을 들은 저승사자는 아무 말도 못하고 빤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무엇인가 충격을 받은 것 같았지만 그녀는 신경도 쓰지 않고 자리로 돌아가 다시 독서에 열중했다. 곧 정신을 차린 저승사자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건넨 붕대로 손을 감았다.

 

 “그래… 사람이라 이건가. 후후후. 오묘한 느낌이 드는군. 후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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