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이 사람 경호를 할 생각은 있는 건가…’
저승사자가 가출 공주의 경호를 맡게 된 지도 벌써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그 기간 동안 처음에 세이라 공주가 말했던 것처럼 두 사람은 서로를 거의 없는 것처럼 대하며 지내고 있었다. 그 기간 동안 말 한 마디도 제대로 섞지 않은 것이었다.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의자에 앉아 퍼질러 눈을 감고 퍼질러 자고 있는 저승사자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처음 3일 동안은 졸지는 않았는데 나흘째부터 아예 대놓고 저렇게 퍼질러 자고 있었다.
‘무례한 것도 정도가 있지.’
아무리 서로를 없는 사람 취급한다고 했고 그 이야기를 꺼낸 장본인도 세이라 공주였지만 그래도 어떻게 감히 황녀의 지근거리에 있으면서 잠이나 퍼 잔단 말인가. 사실 저승사자가 이렇게 나흘째부터 퍼질러 자게 된 것에는 이유가 있었다.
아무리 그가 인간을 싫어한다고는 하지만 그도 일단 성별은 남자였고 미인 옆에 있는 것이 싫지는 않았다. 그녀가 지난번처럼 입을 열고 시어머니 이상으로 잔소리를 하면 살의가 솟구쳤지만 그것은 다행히 그녀 본인이 해결해주었다.
그러나 아무리 세이라 공주가 미소녀라고 해도 3일 동안 하루 9시간 가까이 같이 있으니 질린 것이었다. 그래서 흥미를 잃은 그는 경호 시간 9시간의 대부분을 잠을 자게 된 것이었다. 세이라 공주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저승사자를 노려보다가 책을 덮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 남자 때문에 병사와 기사들의 호위도 더 강화되어서 빠져나가기도 쉽지 않은 데…’
원래 전담 경호원이 오면 호위가 약간이나마 소홀해질 만도 하건만 오히려 더 호위가 강화되었고 그녀의 호위를 맡는 기사는 오히려 2명 더 추가되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 전담 경호원이 하필이면 저승사자였기 때문이었다.
얼굴까지는 모르더라도 정말로 울고 있는 아이도 저승사자가 잡아간다고 하면 울음을 뚝 그칠 정도로 전 세게 대부분에 저승사자의 악명은 널리 퍼져 있었다. 그런 상대와 사일런스 제국의 지보(至寶)를 단 둘이 9시간 가까이 있게 해야하니 어쩌면 호위가 늘은 것은 당연한 것이리라.
그를 이기지는 못하더라도 최소한 방패라도 되어서 공주를 보호해야만 했기에. 당연히 병력을 늘리더라도 큰 의미는 없겠지만 조금이라도 세이라를 구할 확률이 높아지기라도 했기에 황실 기사단에서 내린 결정이었다.
“하아…”
세이라는 다 읽은 책을 책장에 꽂고 새로운 책을 책장에서 꺼내 의자에 앉았다. 아무리 평상시에 독서를 좋아했던 그녀지만 이렇게 책만 읽으니 이것도 지겨워지려고 하고 있었다. 그러나 아직은 근신이 풀리지 않았으니 그녀는 화장실을 갈 때와 씻으러 갈 때를 제외하고는 꼼짝없이 이곳에 갇혀 있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
그러다보니 그녀는 다른 시간 죽이기 거리를 찾기 위해 펼친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하면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다가 팔짱을 끼고 자고 있는 저승사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마치 죽은 것처럼 자고 있는 그를 세이라 공주는 잠시 멍하니 바라보았다.
사실 세이라 공주가 아버지인 임파이니 황제를 제외하고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남자와 단 둘이 있었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고 이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사실 원래 임파이니가 그녀의 전담 경호원으로 생각했던 사람은 저승사자가 아니라 그의 스승 쪽이었다.
그러나 그녀는 도저히 행방을 알 수가 없었고 그녀의 직속 신관도 황제의 부탁을 거부했으며 다른 여성 신관 직속 부하는 설득해봤자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남은 신관 직속 부하는 3명.
그 중 제국의 수호신은 자국의 군 원수의 일을 하기도 바빴고 ‘마왕’ 쪽은 너무 강대해서 사일런스 제국 측에서도 부담 적이었고 애초에 헌터 킬러의 불의 신관이 허가를 해줄 리도 없었다. 그래서 남은 사람이 저승사자였던 것이었다.
처음에는 물의 신관도 난처했지만 저승사자가 때마침 제대로 사고를 터뜨려 주었기에 그에게 벌을 내릴 겸 허락해준 것이니 저승사자가 필요 없어서가 아니었다. 애초에 신관 직속 부하의 자리는 세계의 균형 유지에 반드시 필요한 인물이니 이렇게 쉽게 다른 나라에 빌려줄 리가 없을 정도의 위치였다.
어쨌든 세이라 공주는 생전 처음으로 가족 이외의 남자와 단 둘이 오래 있을 수 있었다. 그녀는 멍하니 저승사자가 자는 얼굴을 바라보았다. 지난번 그렇게 사악한 행동을 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얌전하게 자고 있었다.
‘얼굴은 멀쩡하게 잘 생긴 사람이 도대체 왜 그런 끔찍한 행동을…’
세이라 공주가 많은 남자를 만나본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국내외 파티를 통해 높은 신분의 남자들을 만나왔다. 그러나 여태까지 그녀가 만나본 남자들 중에서는 저승사자가 가장 잘생긴 남자였다.
사실 저승사자가 사람들이 치를 떨게 만드는 성격 때문에 인기가 없는 것이지 그가 ‘그 사건’을 일으키기 전까지만 해도 그의 인기는 엄청났다. 저승사자의 전에 전 세계 사람들이 치를 떨게 만든 악귀, 네오스 아카이론을 저승사자 본인이 쓰러뜨린 것도 분명히 큰 원인이었다.
그러나 그의 준수한 외모도 한몫했으며 무엇보다 저승사자는 어렸고 지금도 어렸다. 최근 30년 간 10대의 마법사가 신관 직속 부하의 자리에 오른 경우는 저승사자를 포함해 단 두 사람 밖에 없었다.
대체적으로 마법사의 전성기가 40대부터 본격적으로 열린다는 것을 볼 때 저승사자의 잠재력은 엄청난 것이었고 그렇기에 수많은 국가의 원수들이 저승사자를 사위로 들이기 위해 그에게 접근하려고 노력했었다.
특히 약소국가들이 그러했다. 왜냐하면 신관 직속 부하의 힘은 정말로 웬만한 국가 정도는 혼자서 멸망시킬 수 있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신관 직속 부하가 휴가로라도 어느 국가에 입국을 하면 그 국가에는 비상이 걸릴 정도였다. 그렇지만 이런 신관 직속 부하의 힘 때문에 그들이 어느 한 국가에 속한다는 것은 엄청난 이점을 자랑했다.
물론 신관 직속 부하가 되면 국가를 버리는 경우도 상당했지만 친인척으로 묶이면 그것도 어려워졌으며 무엇보다 저승사자는 출신도, 신분도 명확하지 않았기에 먼저 가져가는 사람이 임자인 원석 그 자체였다.
실제로 2년 전. 저승사자, 시크릿이라는 원석이 나타났을 때 사일런스 제국 내에서도 황제인 임파이니에게 저승사자를 사위로 데려오는 것이 어떠냐는 신하들의 상소가 자주 올라왔었고 임파이니도 진지하게 고민을 했었다.
그러나 이미 다른 신관 직속 부하를 신하로 두고 있는 상황에서 다른 신관 직속 부하를 국력을 더 높이기 위해 딸을 팔아가면서까지 올릴 필요를 임파이니는 느끼지 못했고 결국은 없던 일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사건’이 발생했고 ‘신의 탑’ 측에서는 헌터 킬러와 연계해서 어떻게든 그 사건을 덮었지만 애초에 임파이니는 라오스를 이미 신관 직속 부하로 두고 있었기에 그 사건을 누가 일으켰는지 들을 수 있었고 임파이니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한편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저승사자의 만행이 악귀와 다를 것이 없거나 오히려 더 심하다는 것이 증명이 되자 다른 약소국가들도 딸을 바치고 나라를 망하고 싶지는 않았기에 모두들 발을 뺀 것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한 때는 각 국가에서 노리던 1등 사윗감에는 분명하던 저승사자를 세이라 공주는 계속해서 바라보고 있었다. 정말로 증오스러운 상대였지만 이상하게 저렇게 얌전하게 있으니 싫은 마음은 들지 않았다.
오히려 뭐랄까… 그렇게 잔인하던 모습과 얌전하게 자는 모습이 겹쳐졌기에 갭의 차이가 느껴졌고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피식 미소를 지었다.
‘성격만 멀쩡하면 인기가 많을 것 같은데… 도대체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거지? 어리석고 딱한 사람.’
“…엄마.”
그때 난데없이 저승사자가 입을 열자 깜짝 놀란 세이라 공주는 헛숨을 들이키며 그 자리에서 굳어버렸다. 그러나 곧 잠꼬대인 것을 안 그녀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녀는 이미 가져온 책을 덮은 뒤였다.
‘엄마라…’
그녀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진을 통해서만 볼 수 있었던 엄마의 모습… 그녀에 대해서 안 이후로 그녀는 존경하던 아버지인 임파이니와 처음으로 싸웠고 그 날부터 가출이 계속되었다. 이것은 임파이니가 싫어서가 아니었다. 어머니인 이리야 사일런스 황후가 불쌍해서였다.
“하아.”
그녀는 우울한 표정을 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 근신이 결정된 이후 겨우 잊으며 살고 있었는데 다시 떠올리게 만들다니… 그러나 저승사자가 그렇게 원망스럽지는 않았다. 오히려… 갑자기 동정심까지 들게 되었다.
스톡홀롬 증후군 때문일까. 대화는 섞지 않았지만 같은 공간에 단 둘이 오래 있어서 이렇게 된 것일까? 아니다. 그녀가 기본적으로 선한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아무리 상대방이 싫어도 어떻게든 상대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었다.
물론 저승사자는 정말로 용서하기 힘들었지만 그래도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되었는지 호기심이 들었고 이 남자가 불쌍하고 딱하게 여겨졌다. 이렇게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를 옥죄는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이라는 것을 그녀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어? 추운가?”
그때 저승사자가 난데없이 몸을 덜덜 떨었고 그녀는 창문이 열렸나 바라보았지만 창문은 굳게 닫혀있었다. 그녀는 말없이 저승사자를 바라보았다. 눈가가 바르르 떨리고 있다. 그녀는 잠시 주위를 둘러보다가 침대 위에 놓인 무릎 담요를 가져왔다.
지금보다 쌀쌀할 때는 곧잘 덮었지만 최근에는 그렇게 춥지는 않았기에 사용이 드물었다. 그래서 최근에는 낮잠을 잘 때 가볍게 덮는 용도로만 사용하고 있었다. 그녀는 그것을 펼쳐 먼지를 털어낸 뒤 조심스럽게 저승사자의 등 뒤로 다가갔다.
그에게서는 옅은 탄 냄새가 나고 있었다. 불 속성을 가진 마법사이니 그런 것 같았다. 그러나 독한 정도는 아니었다. 그녀는 저승사자가 깨어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에 담요를 덮어주려고 했다.
“!!!”
“꺄악?!”
그러나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난데없이 일어난 저승사자가 순식간의 그녀를 넘어뜨리고 그녀의 목에 단검을 들이댔기 때문이었다. 저승사자의 눈빛은 짐승의 그것과 같이 빛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그녀는 마른 침을 꿀꺽 삼켰다.
“…뭐 하려던 거지? 왜 난데없이 등 뒤에서 접근한 거냐고!”
“그, 그, 그게…”
극도의 공포감이 세이라의 전신을 휘감았다. 평화로워보였던 그의 모습은 이제 온데간데없이 사라진 뒤였다. 그녀의 목에서 서늘하고 날카로운 단검의 느낌이 고스란히 전해졌고 그녀는 대답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때 문 밖에서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공주님! 무슨 일 있으십니까!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아, 아니에요! 괜찮습니다! 책장에서 채, 책이 떨어져서! 하하하.”
“그렇습니까. 무슨 일 있으시면 부르시옵소서.”
저승사자가 말하기도 전에 공주가 재빨리 문 밖에 있던 병사에게 말했고 호위 병사는 더 이상 말을 걸지 않았다. 저승사자는 그런 그녀를 잠시 빤히 노려보았고 그녀도 그런 그를 바라보았다.
“무거운 데 좀 비키시죠. 무서우니까 제 목에 가져간 것도 치우시고요.”
“…”
시크릿은 그녀의 목에서 단검을 거둔 뒤 조심스럽게 그녀의 위에서 일어났다. 그러던 와중 땅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발견하고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한숨을 내쉰 뒤 조심스럽게 바닥에서 일어났다. 그러나 몸은 아직 놀랐는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녀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해 탁자에 놓인 냉수를 조심스럽게 마셨다.
“…왜 나를 감싼 거지?”
“푸하. …착각하지 마세요. 당신이 저를 단검을 빼어들고 덮치고 있는 모습을 들키면 애꿎은 다른 사람들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니까요. 딱히 당신을 감싼 것은 아니에요.”
그녀의 말을 들은 저승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정도 가슴의 떨림이 진정된 그녀는 심호흡을 몇 번 한 뒤 바닥에 떨어진 담요를 집어 들어 정돈하기 시작했다. 시크릿은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 그의 목소리는 그의 속성과는 달리 싸늘했다.
“내 몸에 담요를 덮으려고 한 것도 다른 사람들이 죽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인가?”
“저승사자, 어째서 당신은 호의를 그렇게 삐뚤어지게 밖에 보지 못하는 것인가요?”
“왜냐하면 나는 인간을 믿지 않으니까.”
“그러는 당신도 인간이죠.”
그녀의 말을 들은 저승사자의 눈이 바르르 떨렸다. 그는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나 곧 다시 입을 열었다. 그러나 저승사자는 당황한 기색을 완전하게 숨기지는 못한 듯 그의 목소리가 살짝 떨리고 있었다.
“정말로 내, 내가… 인간이라고 생각하나?”
“그럼 악마인가요?”
“…그렇게 여기더군.”
“남들이 그렇게 여긴다고 그렇게 행동하면 진짜 악마가 되는 거예요. 그러니 좀 생각 좀 하시고 행동하세요. 좀 다른 사람들도 믿으시고요. 물론 저는 당신을 싫어하지만 당신을 진짜로 좋아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하아, 당신과 대화를 나누면 또 화가 나네요. 대화는 여기까지로 하죠. 괜히 호의를 베풀었다가 이게 무슨 꼴이람.”
그녀의 말을 들은 저승사자는 또 침묵했다. 그러나 곧 그도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
“동감이다. 애초에 없는 사람 취급하자고 해놓고 먼저 깬 쪽은 공주님 쪽이지 않나? 앞으로 이런 일 겪고 싶지 않으면 내게 신경 쓰지 마라.”
“…당신은… 하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화가 날 것 같으니 그만하죠. …그래도 말 안하면 저만 화나고 끝날 것 같으니 한 마디만 더 하고 더 이상 말하지 않을게요. 자신을 옥죄는 일은 그만하세요.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입니다. 아시겠어요, 이 속은 텅텅 빈 금고야?”
그녀의 말에 저승사자는 바로 이를 바드득 갈며 따지려고 했지만 그녀는 이미 그에게 신경도 쓰지 않겠다는 듯 책에만 집중하고 있었다. 그 모습에 할 말을 잃어버린 저승사자는 분한 표정을 지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렇게 그 날의 경호 일이 끝날 때까지 그들은 어떠한 대화도 나누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