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화. 최고의 영지를 고르다
영지를 선택하는 과정은 여과지를 사용하는 것과 같이 거르고 거르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강철인이 원하는 영지 최적의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1. 부유 기능이 있을 것.
2. 생명체에 의존하지 않을 것.
3. 시작 지점이 굴베이그 연합이나 발두르 동맹의 영역이 아닐 것.
4. 테메레르 영지의 파이어나 스팅레이의 게놈 베일과 같은 특수한 능력이 있을 것.
정말이지 까다로운 조건이지만, 4번 항목 같은 경우 양보할 수 있다고 쳐도 1 · 2 · 3번 항목의 경우엔 타협할 수 없는 부분이었기에 강철인은 남은 600개의 영지를 전부 훑어보아야만 했다.
‘아니, 이것도 아니다.’
홀로 남겨진 강철인은 끊임없이 영지를 물색했다.
데스데모나 · 큐브 · 앙그라 마이뉴 · 스바로그 영지 등등 여러 영지가 강철인의 눈길을 스쳤다.
하지만 ‘이거다!’ 싶을 정도로 강철인의 마음을 확 잡아끌거나 조건에 딱 부합하는 영지는 없었다. 위에 네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하는 영지를 찾기란 정말로 어려웠다.
‘하나쯤은 나와. 아직 100개는 더 남았다.’
강철인은 참을 ‘인(忍)’ 자를 되뇌고 또 되뇌며 차근차근 자신의 영지를 찾았다.
그러던 차에 우연찮게 웬 특색 없는 성채에 시선이 머물게 되었다.
‘뭐 이리 볼품이 없어?’
평범한 성채였다.
정말이지 평범하기 짝이 없어 21세기인 현재에도 유럽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는, 그런 성채같이 생겼다. 왠지 특수 기능 하나 없이 성채만 덩그러니 있을 것 같았다.
‘쯧, 신이란 작자도 어지간하군. 마케팅은 장식인 줄 아는 모양이지? 이따위로 생겨 먹은 걸 누가 선택한다고.’
강철인은 무려 신, 그를 대소환으로 이끈 절대적 존재를 욕하며 혀를 찼다.
‘어차피 팔려도 그만, 안 팔려도 그만이라는 건가? 마케팅은 무용론만큼이나 어처구니가 없군. 뭐, 신이니 상관없을지도.’
하기야 명색이 신이라는 존재가 영지 판매에 열을 올려보았자 무슨 소용일까. 강철인은 피식 코웃음과 함께 신을 마케팅 무용론자라 여기며 해당 영지를 지나쳤다. 아니, 지나치려 했다.
‘아니, 지나치진 말자.’
혹시 모른다는 생각에 강철인은 발걸음을 멈췄다.
돌다리도 두들겨 보고 건너라 했고, 등잔 밑에 어둡다고도 했다. 혹시 아는가, 이 영지가 엄청난 기능을 갖춘 보물일지도 모르는 일이 아닌가.
강철인은 그런 생각에 이 볼품없는 성채를 살펴보기로 했다.
해당 영지를 2, 3초간 응시하자 상태창이 떠올랐다. 영지의 이름은 천공 요새, 라퓨타 영지라고 했다.
‘……!’
상태창을 통해 라퓨타 영지의 정보를 확인한 강철인은 회귀한 이래 가장 크게 놀라움을 느껴야만 했다.
옛말에 보물은 제 주인을 스스로 찾아간다고 했던가.
마치 바위에 박혀 아서 왕을 기다리던 엑스칼리버처럼, 조조가 하후은에게 하사했으나 결국 조자룡의 손에 들어갔던 보검 청강검처럼.
그냥 지나치려 했건만, 지나쳤다면 크게 후회할 뻔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랬다고, 볼품없는 영지를 살펴보기로 한 결정이 신의 한 수, 일생일대의 기회를 움켜쥐는 일이 될 줄이야! 영지의 모양이 볼품없던 것은 신이란 작자의 속임수나 농간인 모양이었다.
–[천공 요새 라퓨타(Laputa)]
타입 : 공중 도시
성향 : 다목적
위치 : 대륙 서남부 판데모니엄 지방
설명 : 최첨단 마법 공학이 적용된 에인션트 제국의 요새
기능 : 클로킹(Cloaking), 자가 치유 시스템[Self―Healing System]
부가 옵션 : 다목적 마법 공학 인공위성, ‘코즈믹 포스(Cosmic Force)’
가격 : 9,800골드
‘이런 영지도 있었나……!’
강철인을 놀라게 한 요소는 다목적 마법 공학 인공위성 코즈믹 포스의 존재였다.
인공위성.
마법과 같은 이능력(異能力)이 존재하지 않는, 과학기술력이 극도로 발달한 지구에나 존재하는 물건인 줄 알았건만 판게아 대륙에도 인공위성이 존재할 줄이야. 판게아 대륙에서 산전수전 공중전을 다 겪은 강철인마저도 깜짝 놀랄 만큼 파격적인 사실이었다.
사실 판게아 대륙에서 마법[Spell]과 과학기술[Tech]의 조합, 그러니까 마법공학[Spell―Tech]은 흔히 찾아볼 수 있는 요소였다.
일반 차원 여행자, 그러니까 흔히들 ‘헌터’라고 칭하는 몬스터 사냥꾼들이야 이러한 사실들을 잘 모를지 몰라도 대군주급 정도 되는 이들이라면 과거의 판게아 대륙이 마법 공학으로 찬란한 문명을 이룩했던 곳이라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인공위성이라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이거다, 비로소 내 영지를 찾았다.”
강철인은 더는 타 영지를 돌아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천공 요새 라퓨타 영지는 강철인이 원하는 거의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충족했다.
일단 공중 도시라는 기본 조건을 충족하면서도 생명체에 의지하지 않았다.
또, 시작 지점이 훗날 굴베이그 연합과 발두르의 동맹과는 한참이나 동떨어져 있었다. 대륙 서남부 판데모니엄 지방이라면 변방 중의 변방이었으니까.
‘판데모니엄. 정복 군주인 내 성향과 너무도 잘 들어맞는다.’
악마의 땅, 전쟁광들의 낙원 판데모니엄 지방.
천공 요새 라퓨타 영지의 시작 지점인 판데모니엄 지방은 라그나로크가 벌어지기 이전에도 군주들 간의 피 터지는 전쟁으로 인해 하루도 바람 잘 날이 없는 땅이었다.
오죽하면 다른 지역의 군주들이 전쟁광들의 낙원이라며 혀를 내둘렀겠는가. 완벽히 고립된 지역, 그들만의 리그가 바로 이 판데모니엄 지방이었다.
얼마나 서로 치고받고 전쟁에 전쟁을 거듭했는지 판데모니엄 지방을 근거지로 삼은 군주들 가운데 대군주는 단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만큼 판데모니엄 지방은 누구 하나 두각을 나타내지 못할 정도로 치열한 각축전의 장이었다.
영지를 키우기는커녕 허구한 날 전쟁을 일삼기에 바쁘니 영지를 살찌울 시간이 있을 턱이 없었다.
‘판데모니엄을 평정, 내 기반으로 삼은 뒤 최대한 빨리 발할라 영지가 있던 지역을 장악해 엇나간 미래를 짜맞춘다.’
어느새 강철인의 머릿속에선 앞날에 대한 계획이 차곡차곡 세워지고 있었다.
‘지형이 좋아. 일이 잘못됐을 경우, 방어전에도 엄청나게 유리하다.’
게다가 판데모니엄 지방은 본토로부터 제법 떨어져 있는데다가 무지막지하게 높고 험악한 산맥이 우뚝 솟아 있어 만약 강철인이 본토에서 패배하는 불상사가 벌어진다고 해도 본진 방어를 손쉽게 해낼 수 있어 보였다.
모든 게 완벽했다.
클로킹 기능의 경우는 영지를 아예 숨기거나 위장하는 기능일 테니, 영지의 기도비닉(企圖秘匿)이 보장된다는 이야기였다.
은 · 엄폐란 방어에도, 적을 순간적으로 기습할 때도 유용한 옵션이다. 공격과 방어 모든 면에서 유리하니 과연 영지의 성향이 다목적이라고 할 만했다.
거기에 더해 자가 치유 시스템이란 말 그대로 영지가 스스로 파괴된 곳을 자가 치유한다는 이야기가 된다. 마치 영지 자체가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말이다!
‘어째서 과거엔 이런 영지를 고르지 않았을까?’
강철인은 성급하게 영지를 선택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별다른 기능 없이 값싸다는 이유로 고른 발할라 영지는 끝내 그의 발목을 잡았다. 기동력만 있었다면 로스차일드의 손에 목이 날아가는 치욕을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내 영지다.”
비로소 자신의 영지를 찾은 강철인은 그렇게 중얼거리며 망설임 없이 구매 버튼을 눌렀다.
더 고민할 필요도, 다른 영지를 둘러볼 것도 없었다.
영지의 완벽함도 완벽함이지만, 마법 공학 인공위성이라는 코즈믹 포스가 어떤 것일지가 궁금했다. 한시라도 빨리 영지를 직접 살펴보고만 싶었다.
군사적인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을까?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인공위성을 통해 적지로 레이저를 쏜다거나 폭격을 가하는 등의 궤도 폭격[Orbital Bombardment]이 가능할까? 과학기술력이 극도로 발달한 2020년의 지구인들조차 여러 가지 제약 사항으로 인해 소설, 영화 등에서나 가능한 그 궤도 폭격을?
그것도 아니라면 코즈믹 포스를 통해 특별히 만들어진 전략 병기를 쏘아 적 영지를 향해 유도할 수 있을지도 몰랐다. 마치 ICBM(대륙 간 탄도미사일)을 운용하듯 말이다.
지금으로선 알 방법이 없지만, 차근차근 영지를 키워 나가다 보면 코즈믹 포스를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활용하는지 알게 되리라.
[ 정말로 9,800골드를 내고 천공 요새 라퓨타 영지를 구매하시겠습니까? Yes or NO ▶ ― ]
최종 결정을 요구하는 안내 문구가 떠올랐다.
[ Yes ]
강철인이 구매 결정 버튼을 눌렀다.
[ 축하드립니다! 천공 요새 라퓨타 영지를 구매하셨습니다! ]
영지 구매를 축하하는 상투적인 문구가 떠올랐다가 사라지고, 뒤이어 판게아 대륙으로의 이동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 군주 강철인, 판게아 대륙으로 이동합니다. 차원 도약까지 앞으로 5… 4… 3… 2… 1……. ]
스르륵―!!!
강철인의 몸이 미립자 형태로 흩어져 자취를 감췄다. 영지를 구매한 타 군주들처럼 판게아 대륙으로 이동한 것이다!
***
[ 차원 도약 완료! ]
[ 군주 전용 레벨업 시스템이 가동! ]
[ 튜토리얼 퀘스트 발생! ]
[ 판게아 대륙에 오는 것을 환영합니다. ]
눈앞에 여러 가지 문구가 떠오르는가 싶더니, 눈앞의 환경이 달라졌다.
“오래도록, 진정 오래도록 기다리고 있었사옵니다, 나의 영원한 주군이시여.”
판게아 대륙, 천공 요새 라퓨타 영지의 심장부에서 눈을 뜬 강철인을 반기는 이가 있었다.
한쪽 무릎을 꿇은 채 강철인을 향해 공손하게 예를 취한 그녀는 충격적일 정도로 풍만한 가슴이 훤히 드러나면서도 하의 실종에 가까운 터틀넥 원피스를 입고 코끝엔 엄격해 보이는 뿔테 안경을 쓴 차림이었다.
“저는 이 숨이 다하는 날까지 주군께 충성하며 보필할 보좌관, 루시아 헤드미스트리스(Lucia Headmistress)라고 하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