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1화. 라퓨타에 부임하다
‘보좌관은 영지에 따라 각기 다른 모양이로군.’
강철인은 루시아를 바라보며 그의 옛 보좌관이었던 뱀파이어 집사 알프레드를 떠올렸다.
“주군… 자중을……!”
“주군의 전투력에 이 알프레드, 감탄하고 말았사옵니다!”
“주군께서도 이제 나이가 있으신데 이 대영지 발할라의 안주인 되실 분을 알아보시는 게 어떠한지?”
“이 알프레드, 주군의 혈육을 보는 게 소원입니다! 이 늙은 뱀파이어가 넘어가기 전에 제발 자손을 좀 보시지요!”
알프레드는 뱀파이어치곤 70대 노인의 얼굴을 한 늙은 뱀파이어였지만, 업무 능력과 강철인을 보좌하는 역할만은 탁월했다.
또한 평소엔 둘도 없는 신하면서도 너무 막 나가는 강철인을 만류한다거나 시어머니처럼 잔소리를 늘어놓을 줄도 알았다.
‘알프레드.’
강철인은 알프레드와 다신 만날 수 없단 사실에 아쉬워하며 그에게 했던 말을 떠올렸다.
“경거망동하지 말고 전전긍긍하지 마라. 품위를 지켜라. 졌어도 진 게 아니다.”
“오늘은 지겠지만, 다음엔 아닐 테니.”
그랬다.
발할라 대영지가 멸망하기 직전, 강철인은 그렇게 말해 알프레드를 안심시켰다.
그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다.
비록 발할라 대영지는 시간의 뒤안길로 사라져 버린, 일어나지 않은 역사가 되어버렸으나 강철인만큼은 그때의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었다.
‘알프레드, 지켜보고 있나? 지켜볼 수 있다면, 나를 볼 수 있으면… 기대해라. 감히 발할라를 건드린 저 비열한 자식들에게 복수해 우리의 무서움을 뼈저리게 깨닫게 해주겠다.’
강철인 끝까지 그를 믿어주었던 충직한 신하를 향해 약속하고 또 다짐했다.
이번에야말로 로스차일드를 박살 내기로, 판게아 대륙을 통일하고 10인의 대군주 가운데 가장 고귀하고 영광스러운 황제의 지위를 차지하기로!
“주군… 제 말이 들리십니까, 주군?”
그런 강철인의 생각을 까맣게 모르는 보좌관 루시아가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혹시나 강철인의 심기를 거스르지는 않을까 무척이나 염려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아, 네가 나의 보좌관인가?”
강철인은 그제야 루시아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예, 주군. 루시아라고 하옵니다.”
루시아가 다시금 강철인을 향해 고개를 조아렸다.
“루시아라… 이종족(異種族)으로는 보이지 않는데, 인간인가?”
판게아 대륙에는 인간의 친척뻘 되는 유사 인류가 여럿 존재했다.
대표적인 이종족을 꼽자면 엘프, 다크 엘프, 뱀파이어, 라이칸스로프, 드워프, 수인족(獸人族, 라이칸스로프와 같은 종족이 아님), 인어, 마족, 천족 등등 숫자가 적은 이종족들까지 합하면 대강 20여 종족의 유사 인류가 있었다.
군주의 보좌관 격인 이들, 그러니까 처음 영지를 구매했을 때 자연스레 딸려오는 NPC 유닛은 무조건 유사 인류였다.
그런데 루시아에게서는 강철인이 아는 이종족의 특징이 단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아닙니다.”
루시아가 대답했다.
“흠, 인간이 아니다?”
“예, 주군이시여. 저 루시아의 근본은 인간이나 마법 공학이 가미된 신체를 지니고 있어 이종족도 아니며 인간이라고도 할 수 없사옵니다.”
“음… 그렇군.”
뭔가 복잡하긴 한데, 일단 평범한 인간 여자보다는 강한 전투력을 지니고 있을 것 같기에 강철인은 대강 고개를 끄덕이고는 손을 휘저어 알아들었다는 제스처를 취했다.
“주군이시여.”
“말해라.”
“소녀의 짧은 식견으로 주군께선 이곳 판게아 대륙이 아닌 머나먼 이계로부터 강림하신 것이라 알고 있사옵니다.”
“맞다.”
대충 맞는 말이었기에 강철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지고하신 주군이시라 할지라도 이계에서 강림하신 만큼 아직 파악하지 못하시는 부분이 많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옵니다. 이에 저 루시아가…….”
“아니다.”
강철인이 루시아의 말을 잘랐다.
“주군이 낯선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 네 역할이겠지만, 내게는 필요치 않다.”
“하오나…….”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우선 내가 잠시 볼일을 볼 동안 기다릴 수 있겠나?”
“예, 주군.”
루시아는 강철인의 말에 따르면서도 못내 걱정된다는 듯 불안한 기색을 내비치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주군께서 판게아에 적응하시게끔 도와드리는 것이 나의 임무인데 그걸 거절하시다니… 주군께선 내가 마음에 드시지 않는 걸까?’
루시아는 혹시라도 자신이 강철인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에 안절부절못했다.
‘일단 내 정보와 영지의 현황을 체크하는 게 맞겠지.’
강철인은 루시아가 불안해하거나 말거나 본인이 해야 할 일을 떠올리며 곧장 실행에 옮겼다.
“내 정보 열람.”
강철인의 입에서 명령어가 흘러나오자 상태창 하나가 홀연히 나타나 현재 그에 대한 정보를 표시했다.
–[내 정보]
이름 : 강철인 / 지위 : 군주 / 대분류 : 전사
점수 : 0포인트 / 종합 랭킹 : ―
레벨 : 1레벨 / 특기 : 정복 (B등급) / 성향 : 정복 군주
종족 : 인간 / 권능 : 잠김 (대군주 등극 시 부여)
배우자 : ― (최대 7명까지 가능)
카리스마 : 67 (B+등급)
체력 : 200 / 200
마력 : 100 / 100
물리 공격력 : 67
마법 공격력 : 10
근력 : 120 / 지능 : 141
민첩 : 110 / 주문 운용 : 20
명중률 : B+ 등급
회피율 : B- 등급
치명타 : B- 등급
방어력 : 9% / 항마력 : 3%
재정 : D-등급 / 내정 : E-등급
지략 : B-등급 / 정치 : C+등급
외교 : C-등급 / 지휘 : A+등급
공격 : A+등급 / 방어 : C-등급
무력 : A+등급 / 매력 : A+등급
획득 포인트 : 0 (레벨당 +5)
잔여 포인트 : 0
‘나쁘지 않다. 아니, 오히려 처음 시작했을 때보다는 훨씬 좋다.’
과거의 1레벨 강철인과 현재의 1레벨 강철인의 능력치는 매우 큰 차이가 있었다. 아무래도 회귀 이전의 경험들이 자연스레 녹아들어 좋은 능력치를 보유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컸다.
확실히 강철인의 능력치는 우월했다. 아마 300인의 군주 가운데 상위 1% 안에 들 만한 능력치였다.
‘좋아, 부족한 부분은 레벨이 오르면 자연스레 메워질 테니 크게 걱정할 필요는 없겠어.’
강철인은 [내 정보] 메뉴를 확인하곤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다음은 영지인 천공 요새 라퓨타의 상태를 확인할 차례였다.
그 무엇보다 영지에 대한 기대감이 큰 만큼 강철인은 곧장 명령어를 읊어 이 천공 요새에 대한 정보를 열람했다. 그러자 라퓨타 영지에 대한 간략한 정보가 떠올랐다.
–[천공 요새 라퓨타]
타입 : 공중 도시
성향 : 다목적
위치 : 대륙 서남부 판데모니엄 지방 (위치 정보에 따라 갱신)
설명 : 최첨단 마법 공학이 적용된 에인션트 제국의 요새
기능 : 클로킹, 자가 치유 시스템
부가 옵션 : 마법 공학 인공위성 코즈믹 포스
영주 : 정복 군주 강철인
레벨 : 1레벨 (최대 30레벨까지 성장)
상태 : 평화로움
기동 : 착륙 상태 (이륙 시 골드, 마나, 연료 소모)
최저 속도 : 5㎞/h
최고 속도 : 100㎞/h (레벨에 따른 최고 속도 제한)
기본 유지 비용 : 30일 기준 100골드 (영지 상태에 따라 변동)
치안 : 매우 좋음 / 재정 : 빈곤함 / 식량 : 소량 부족
인구 : 500 / 500
병력 : 100 / 100
시설 : 11개 / 내구도 : 1,000 / 1,000 / 충성심 : 90 / 90
‘재정과 식량이 부족한 것 외엔 양호하긴 한데… 빨리 이 두 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곤란해지겠어.’
재정과 식량이 부족한 이유는 주어진 초기 자금인 1만 골드 중 영지를 구매하는 데 9,800골드를 써버렸기 때문이다.
‘그 문제들은 차근차근 해결해 나가야겠지……. 다음은 코즈믹 포스.’
강철인은 영지의 상태를 대략적이나마 확인하고는 곧장 부가 옵션인 코즈믹 포스에 대한 정보창을 열람했다.
–[코즈믹 포스]
타입 : 마법 공학 인공위성
성향 : 다목적
설명 : 최첨단 마법 공학이 적용된 인공위성
레벨 : 1레벨 (최대 5레벨까지 성장)
‣ 1레벨 : 탐색 (사용 가능)
‣ 2레벨 : 위치 설정 시스템 (사용 불가)
‣ 3레벨 : 펄스 웨이브(Pulse Wave) (사용 불가)
‣ 4레벨 : (사용 불가, 4레벨 달성 시 잠금 해제)
‣ 5레벨 : (사용 불가, 5레벨 달성 시 잠금 해제)
‘이건 미쳤다……!’
코즈믹 포스에 대한 간략한 정보를 본 강철인은 다시 한 번 놀랐다.
‘탐색은 정찰, 위치 설정 시스템은 GPS다. 펄스 웨이브라면… 적 통신망 교란!’
이 초반 세 가지 기능들만 해도 타 군주들을 농락하기에 충분하건만 4레벨, 5레벨 달성 시 사용 가능한 두 가지 기능은 또 무엇인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설마하니 진짜로 궤도 폭격이 가능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강철인! 침착해라!’
강철인은 거세게 두방망이질 치는 심장을 억누르며 냉정함을 유지하기 위해 힘썼다.
‘신중해야 한다. 동요하지 말고 냉정하게 내가 가진 것들을 활용할 방안을 찾아서 움직여야 한다. 손에 보물을 쥐었다고 해도 적재적소에 활용하지 못한다면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일단은 내 힘을 되찾는 것이 우선이다. 이번에도 패배할 순 없다.’
강철인은 경솔함과 오만함으로 인해 실패했던 과거를 떠올리며 자신을 다잡았다.
한 번의 패배도 용납하지 못할 일인데, 회귀까지 해놓고서 패배한다면 어디 저승에서 얼굴이나 제대로 들 수 있겠는가.
“후…….”
강철인은 숨을 한 번 크게 내뱉음으로써 들뜬 마음을 정리하고, 우선 차근차근 성장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일단 튜토리얼부터 수행하자.’
처음 영지에 부임하게 되면 초반 레벨업을 위한 여러 가지 퀘스트가 주어지기 마련이었다.
“루시아.”
강철인이 루시아를 불렀다.
“예, 주군.”
루시아가 대답했다.
“영지를 둘러보고 나의 병사들을 사열할 예정이다. 준비하도록.”
명령을 내리는 강철인의 눈이 반짝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