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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혈의 오버로드
작가 : 담화공
작품등록일 : 2016.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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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8 화
작성일 : 16-08-19     조회 : 590     추천 : 0     분량 : 63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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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8화. 선전포고

 

 

 

 ‘적의 병력은 보잘것없다. 없는데… 왜 이리 불안한지 모르겠군.’

 티모시는 고민에 빠졌다.

 이틀간 정찰용 매를 무려 일곱 마리나 투입해 정찰한 결과, 라퓨타 영지의 병력은 만만하다 못해 허수아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전력으로만 놓고 보면 버로우 영지의 승리는 기정사실이었다.

 일단 기본적인 스펙부터가 버로우 영지 쪽이 압도적이었다.

 강철인의 라퓨타 영지가 인간들로 구성된 영지라면, 버로우 영지는 앤트(Ant), 두더지, 지네, 땅강아지 등등 주로 땅속에 거주하는 종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투가 벌어진다면 압승을 기대할 만했다.

 그런데 불안했다.

 강철인의 영지 안에는 특별히 경계할 만한 위험 요소를 찾아보기 힘들었음에도……. 흔히들 이런 경우를 촉이 안 좋다고 했던가? 티모시는 이 충동적이고 무모한 전쟁이 내키지 않았다.

 “어렵구나, 어려워.”

 티모시가 탄식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티모시의 특기는 [행정]으로, 서류 작업에 특화된 보좌관이었다. 그런 그가 전쟁에 대해 머리를 굴리자니 영 신통치 않은 건 당연했다.

 그렇다고 군주인 기무라에게 일을 맡길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기무라는 아무것도 몰랐다.

 그저 역할극에 심취해 ‘정이대장군(征夷大將軍)’이나 ‘쇼군’같이 티모시가 알아들을 수 없는 직책을 운운하며 왕 노릇을 하려고만 했다. 전형적인 폭군, 그것도 애새끼 폭군처럼 말이다.

 “휴… 내 팔자야!”

 늙은 고블린의 입에서 긴 한숨이 푹푹 흘러나왔다.

 전력은 분명 우위인데 불길함이 느껴져 견딜 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벌집을 건드리는 것만 같았다.

 그렇다고 군주인 기무라가 전쟁을 포기하게끔 할 변명거리도 마땅치 않았다.

 적당한 구실만 있다면 어떻게든 어르고 달래볼 법도 하련만… 전력상의 우위가 너무나도 명백해 전쟁을 포기하라고 말할 명분이 없었다.

 그때였다.

 제법 좋은 생각이 늙은 고블린의 뇌리를 스쳤다.

 “옳거니!”

 꽤 괜찮은 생각이었다.

 ‘이거면 됐다, 됐어! 적당한 구실을 만들 수도 있겠다!’

 좋은 생각이 떠오르자 티모시는 활짝 웃음 지으며 곧바로 군주인 기무라를 찾았다.

 

 “망할 놈! 감히 내게 화살을 쏴?”

 기무라는 땅굴 깊숙한 곳에 자리한 군주의 홀에서 꿀물을 들이켜며 강철인을 향해 이를 갈고 있었다.

 “쇼군!”

 “뭐냐, 고블린.”

 “저를 외교관으로 파견해 주시면 아니 되겠습니까요?”

 “뭐?”

 그게 무슨 개소리냐는 듯 기무라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귀찮게 그딴 걸 왜 보네? 그냥 쳐들어가면 그만이잖아?”

 “전쟁에도 룰(Rule)이란 게 있는 법 아니겠습니까요?”

 “룰?”

 티모시의 반문에 기무라가 인상을 찡그렸다.

 “아무리 적이라지만 상호 간에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은 있습죠. 암요, 그렇고말고요.”

 “고블린 주제에 어려운 소리 지껄이지 말고 쉽게 말하라고!”

 “죄, 죄송합니다요…….”

 “그래서 요점이 뭔데?”

 “예로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말에, 싸우지 않고 이기는 것을 최고의 승리로 친다고 하였습니다요.”

 “으음… 그건 그렇지.”

 기무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티모시의 말은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야기로, 손자병법의 한 구절과 일맥상통하는 의미를 담고 있었다.

 비록 세계가 다를지라도 싸우지 않고 얻어내는 승리가 값진 것이라는 사실만은 공통된 의견인 듯했다.

 “소신을 외교관으로 파견해 주시면 쇼군께 무례를 범한 그 군주에게 항복을 한 번 권유해 보도록 하겠습니다요.”

 “항복?”

 “예, 쇼군. 항복을 권유해서 상대방이 이를 받아들인다면 피를 흘리지 않고도 승리를 얻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요? 쉽지는 않겠지만, 우리 버로우 영지의 군사력이 훨씬 강대하니 먹혀들 가능성이 있습니다요.”

 “으음…….”

 기무라가 구미가 당긴다는 듯 고민하는 기색을 보이자 티모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말을 이어갔다.

 “만약 상대방이 항복 권유를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해도 소인이 외교관으로 가는 것 자체가 큰 이득이지 않겠습니까요?”

 “이득? 무슨 이득?”

 그 순간, 티모시는 군주고 나발이고 깡그리 무시하고는 ‘도대체 머리는 왜 달고 사십니까요!’라고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이건 단순히 연륜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냥 인간 자체가 별생각이 없고 어리석은 게 확실했다.

 보좌관 된 입장에서는 복장이 백번이고 천 번이고 뒤집히고도 남을 노릇이었다.

 ‘차, 참자… 이분은 내 주군이시다… 참아야 한다…….’

 티모시는 초인, 아니, 초(超)고블린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가까스로 끓어오르는 분노를 참았다. 그리고 되도록 공손하고도 부드러운 어조로 기무라를 향해 아뢰었다.

 “일단 외교관을 보낸다는 것 자체가 우리 버로우 영지가 단순한 무력 집단이 아닌 어엿한 영지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요. 일종의 구색 맞추기입죠.”

 “그게 다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요! 외교관이야말로 합법적인 정찰 아니겠습니까요? 항복을 권유하러 가는 김에 겸사겸사 적들의 동태를 살피고 오겠습니다요. 값비싼 정찰기를 쓰는 것보다 두 눈으로 직접 확인하는 게 아무래도 정확하지 않겠습니까요?”

 “으음… 듣고 보니 네놈 말도 옳군.”

 기무라가 수긍하는 기색을 보이자 티모시가 딴에는 믿음직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게다가 전쟁이란 건 막무가내로 거는 게 아니라 반드시 선전포고가 먼저입니다요. 아무런 경고도 없이 다짜고짜 싸움을 거는 건 시정잡배들이나 하는 짓입죠. 쇼군께서는 그런 막돼먹은 군주가 아니라 성군이시지 않습니까요?”

 “으음… 그렇긴 하지.”

 “믿고 맡겨만 주신다면 항복을 받아내진 못하더라도 정찰 정도는 확실하게 하고 오도록 하겠습니다요.”

 어느새 티모시의 말발에 휘말린 기무라는 결국 외교관 파견을 허락하고야 말았다.

 “흥, 그 군주 놈한테 꼭 전해라. 항복하지 않으면 아주 지옥을 맛보게 해주겠노라고.”

 “예, 물론입죠. 헤헤~ 그럼 다녀오겠습니다요.”

 기어이 허락을 타낸 티모시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됐다, 됐어!’

 기본적으로 티모시의 입장은 이 밑도 끝도 없는 충동적인 전쟁을 반대했다. 때문에 항복 권유를 하러 간다는 말은 그저 기무라를 설득하려는 방편이었다.

 티모시의 의도는 이랬다.

 가긴 가되 적당한 변명거리, 사실은 적 병력이 엄청나게 강성하다거나 비밀 병기가 있는 것 같다는 등의 구실을 대 기무라가 전쟁을 포기하도록 만들 생각이었다.

 적어도 티모시는 전쟁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

 또한 강철인의 영지를 집적 방문하여 가슴속 깊고 깊은 곳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알 수 없는 불안감을 해소하려는 목적도 있었고.

 그러나 티모시의 쾌재는 오래가질 못했다.

 ‘죄송합니다요, 쇼군. 하지만… 이 티모시, 쇼군의 안위와 영지의 안녕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죄를 지을 각오가 되어 있습니다요!’

 티모시는 속으로 군주인 기무라에게 사죄했다.

 의도야 어찌 되었든 간에 티모시의 행동은 군주인 기무라를 명백히 기만하는 것이었으니 죄책감을 느끼는 것이다.

 “휴… 쇼군께서 하루빨리 노련하고도 현명한 군주가 되셨으면 좋겠구먼.”

 티모시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강철인의 영지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날 오후.

 티모시는 버로우 영지의 외교관을 자처, 라퓨타 영지를 찾았다. 그리고 라퓨타 영지의 군주 강철인과 만날 수 있었다.

 “그러니까… 단순한 주변 정찰일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

 옥좌에 앉은 강철인이 흥미롭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예, 그렇습니다요.”

 “호오… 듣던 중 신선한 소리로군.”

 “예에?”

 “무슨 놈의 주변 정찰에 그 비싼 정찰용 매를 일곱 마리나 쓰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군. 그것도 우리 영지에만이라… 그쪽 영지는 금화가 썩어 나나?”

 “……!”

 티모시는 강철인의 날카로운 지적에 무어라 반박을 하지 못하다가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변명을 늘어놓아야만 했다.

 “절대로 아닙니다! 우리 버로우 영지의 군주께서는 평화를 원하고 계십니다요! 다만, 영지와 영지 간의 거리가 워낙에 가까워 만약의 사태를 대비할 뿐입죠. 암요, 그렇고말고요.”

 “만약의 사태?”

 “그저 방위적인 차원에서의 정찰 활동이라고 생각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요. 기무라 쇼군님께선 앞으론 이런 일이 없도록 조치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 이번 건에 대해선 너그러이…….”

 “잠깐.”

 강철인이 티모시의 말을 잘랐다.

 “방금 뭐라고 했나? 다시 말해봐라.”

 “예?”

 “기무라? 쇼군?”

 “아, 예. 버로우 영지의 군주께선 본인을 지칭하시길 주군이 아닌 쇼군…….”

 “크핫핫핫―!!!”

 강철인의 별안간 입에서 폭소가 터져 나왔다.

 “……?”

 티모시는 강철인의 돌발 행동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그가 본 강철인은 나름 공식적인 자리에서 갑작스레 웃음을 터트릴 만큼 가벼운 인물이 아니었다.

 얼핏 봐도 위엄이 가득한 얼굴에 옥좌에 느긋하게 앉은 자세마저 품위가 넘치는 인물이 난데없이 폭소를 터트리다니. 티모시로선 도저히 모를 노릇이었다.

 “전하, 왜 웃으시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요?”

 “우스우니 웃었다.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

 강철인이 반문했다.

 “어떤 점이 우스우신지요?”

 그렇게 말하는 티모시의 얼굴에는 불편한 기색이 역력했다.

 아무리 무능하고 폭군의 자질이 다분한 군주라 할지라도 기무라는 엄연히 티모시의 주군이다. 충성스런 보좌관의 입장에선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강철인은 그런 티모시의 기분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채 다분히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다시금 물었다.

 “네 군주라는 자가 쇼군을 칭했다고?”

 “예, 그렇습니다요. 우리 버로우 영지의 기무라 쇼군께서는…….”

 “미친놈이지.”

 “예?”

 “네 군주는 미쳐도 단단히 미친 애송이다.”

 “……!”

 강철인의 발언에 티모시의 얼굴이 서릿발처럼 굳었다.

 “전하, 지금 그 말씀은 우리 버로우 영지의 군주를 모욕하시는 발언이십니다요.”

 “미친놈을 미친놈이라고 부르지 뭐라고 부르나.”

 “전하!”

 “달리 부르면 머저리, 정신병자쯤? 판데모니엄… 미친놈들의 소굴이라더니, 빈말이 아니었어.”

 강철인이 어이없다는 듯 코웃음을 흘렸다.

 당연한 반응이었다.

 강철인이 다른 나라 국적이라면 모르되, 한국인인 이상 스스로 쇼군을 칭하는 기무라를 미친놈이라고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쇼군.

 바쿠후(막부)의 핵심 직책으로 일본의 중세, 근세의 최고 통치자를 지칭하는 단어다.

 아무리 일본인이라지만 자기 자신을 쇼군이라고 칭할 뻔뻔한 인간이 있을 줄은 상상도 못한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는 티모시는 애써 참았던 분노를 토로할 수밖에 없었다.

 “전하! 아무리 우습기로서니 기무라 쇼군께서는 엄연히 한 영지의 군주이십니다요! 이렇듯 공적인 자리에서 우리 영지의 군주를 모독하신다면…….”

 “뭐, 전쟁이라도 할 텐가?”

 “전하! 어찌 그런 과격한 말씀을! 앞서 말씀드렸다시피 기무라 쇼군께서는 평화를…….”

 “그만.”

 강철인이 티모시의 말을 끊고는 나직한 목소리로 근엄하게 말했다.

 “티모시라고 했나? 어설픈 수작으로 날 기만하려고 들지 마라.”

 “……!”

 순간, 티모시는 옥좌에 앉은 사내의 시선에 그만 얼어붙고야 말았다.

 ‘허억……!’

 오연히 내려다보는 눈빛은 절대 범인의 것이 아니었다. 마치 먹잇감을 눈앞에 둔 맹수이라고나 할까?

 ‘이, 이 남자… 쇼군과는 다르다…….’

 인정하긴 싫지만, 티모시는 눈앞에 있는 이 남자가 기무라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큰 그릇이라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풍기는 분위기부터가 달랐다.

 마치 태어나길 제왕으로 태어난 것 같았다. 옥좌에 앉은 모습이 너무나도 잘 어울렸다. 그런 남자가 근엄하게 말하니 티모시로서는 압도당할 수밖에 없었다.

 ‘티모시… 침착하자! 정신 차려라! 쇼군이 모욕을 당하지 않았는가! 여기서 내가 꼬리를 내리면 쇼군께서 꼬리를 내리는 것과 같다!’

 티모시는 최대한 당당해지려 노력했다. 보좌관으로서 역할을 다하려는 것이다.

 “전하, 아무리 심기가 불편하셔도 말씀이 지나치십니다요. 당장 제 주군이신 기무라 쇼군을 모욕한 것을 사과하시기를 바라는 바입니다요. 그러지 않으신다면 우리 버로우 영지는 전하께 선전포고를 할…….”

 그때였다.

 티모시가 미처 말을 끝내기도 전에 근위대장 제임스가 군주의 홀로 다급하게 들어서며 강철인의 앞에 엎드려 말했다.

 “전하, 급히 보고드릴 것이 있사옵니다.”

 “뭔가?”

 “적이 땅굴 영지를 벗어나 우리 영지로 진격하기 시작했다고 하옵니다!”

 그 순간, 티모시는 눈앞이 샛노래지는 것을 느꼈다. 당장에라도 혀를 깨물고만 싶은 심정이었다.

 ‘그새를 못 참고… 이런 빌어먹을!’

 티모시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강철인이 씩 웃으며 티모시를 향해 말했다.

 “뭐라고 했나? 하던 말 마저 할 수 있도록.”

 “그, 그게…….”

 어떻게 상황이 이렇게 돌아간다는 말인가. 티모시는 낯부끄러워 차마 얼굴을 들지 못했다.

 “혀, 현 시간부로… 우리 버로우 영지는 전하께… 서, 선전포고를 하는 바이옵니다…….”

 티모시가 고개를 푹 숙인 채 궁색한 선전포고를 했다. 출병과 선전포고가 동시에 이뤄진 희대의 촌극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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