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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주인님
작가 : 정블루
작품등록일 : 2017.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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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너와 나 [3]
작성일 : 17-12-14     조회 : 472     추천 : 0     분량 : 45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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맑은고딕 나눔고딕 돋움 굴림 궁서 바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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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딜.”

 

 “......”

 

 “도망가시려고?”

 

 두 눈이 찔끔 감겼다.

 

 거대한 덩치의 인영이 나의 뒤를 옥죄어오기 시작했다. 어정쩡한 걸음을 뒤로 돌려 그를 보고는 난처하게 웃었다.

 

 “도망가기는요.”

 

 “그럼?”

 

 그가 팔짱을 낀 채로 현관 입구에 삐딱하게 어깨를 붙였다.

 

 빌어먹을.

 

 돈도 많은 주제에 눈치도 빨라?

 

 “화장실이 어디더라?”

 

 능청스러운 웃음이 입가를 타고 뻗었다. 이 말도 안 되는 변명을 그가 믿어줄 리가 없겠지?

 

 “화장실은 저기에 있어.”

 

 그는 내 말을 믿는 것인지, 아니면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순순히 화장실을 가리켰다. 누가 보기에도 화장실 같이 보이는 곳을 향해 떨어지지 않는 걸음을 옮겨야만 했다.

 

 결국 도주를 포기하고 나니 마음만은 편해졌다.

 

 가볍게 손만 씻고 문을 열자마자 그가 보였다. 소파에 앉아 긴 다리를 늘어뜨리고 호텔용 잡지를 읽는 그의 모습은 일견 우아하게만 보였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눈을 끔뻑거리고 있을 때, 그는 나를 쳐다보지도 않으며 잡지에 눈을 고정시키고는 건조하게 말했다.

 

 “가도 되는데.”

 

 “......”

 

 “저거 먹고 가.”

 

 한 손에 잡지를 든 채로 그가 무심하게 어딘가를 가리켰다. 그를 따라 눈을 움직였다.

 

 거대한 탁자 정중앙에 약 봉투가 놓여있었다. 투명한 잔에 담긴 물도 함께.

 

 그것이 눈에 걸리자마자 무심코 그를 보며 물었다.

 

 “저게 뭐에요?”

 

 그는 여전히 나를 보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약.”

 

 “......약?”

 

 “술 깨는 약.”

 

 “아.”

 

 순간 뜻 모를 죄책감이 내면 한 구석에 정통으로 날아와 박혔다. 그는 술 깨는 약을 내게 주려고 했던 거다.

 

 “고마워요.”

 

 “......”

 

 대꾸하지도 않잖아, 빌어먹을.

 

 저 남자는 고요하게 내 앞에서 세련된 손짓으로 잡지 한 장을 이제 막 넘기고 있을 뿐이었다.

 

 어색하게 걸어가 봉투를 뜯었다. 작은 환이 담긴 알약들이 조그만 봉지에 가득 담겨 있었다.

 

 그것을 들어 물과 함께 마셨다. 역시나 맛은 없다.

 

 “잘 먹었어요.”

 

 “......”

 

 그는 역시나 대꾸가 없었다.

 

 무어라 말하려던 입가가 꾸욱 다물렸다. 어디로 발짓해야 할지 몰라 지면에 대고 발을 틱틱거리고 있을 때 그의 안정적인 톤이 들려왔다.

 

 “이제 가도 돼.”

 

 “알겠어요. 고마웠어요.”

 

 마침 그가 잡지 겉면을 슬쩍 내리며 나에게로 한쪽 눈가를 접어 은근하게 웃었다.

 

 “곧 연락하지.”

 

 연락은 무슨.

 

 아니, 그보다도 연락해서 나랑 뭐하시려고?

 

 그와 나의 접점은 도저히 찾을래야 찾을 수가 없다. 연결고리가 없다는 거였다.

 

 거기에 덧붙여 저 남자는 지독한 마성의 외모를 뽐내고 있을지언정 별반 정이 안 간다는 것이 핵심이었다.

 

 싸가지를 밥 말아 먹은 왕재수라는 말이지.

 

 부러 그에게 뭐라고 대꾸하지 않으며 어설프게 발걸음을 옮길 때였다.

 

 “잠깐만.”

 

 현관문 근처에 다다랐을 때 그가 나를 불렀다. 고개를 돌리며 한쪽 끝으로 갸웃거렸다.

 

 “왜요?”

 

 그가 잡지를 내려놓고 저벅저벅 걸어오기 시작했다. 단숨에 앞에 도착한 그가 잠긴 ‘음.’ 목울림 소리를 내다가 살 떨릴 정도로 느릿하게 나와 눈을 맞췄다.

 

 “하나만 묻지.”

 

 “......뭐가 궁금한데요?”

 

 그가 말없이 빤히 나를 응시했다. 부담스러울 정도의 눈길이었다. 내게는 그런 그의 눈이 어딘가 모르게 위험하게 보일 정도로.

 

 뭐라고 되물으려던 그때, 의미심장하게 눈을 빛낸 그가 벽에 기대어서서 물었다.

 

 “너는 어떤 존재지?”

 

 “......”

 

 허둥지둥하던 눈이 거짓말처럼 얼어붙었다. 분명 그는 담백하게 물었음에도 불구하고 한기가 가득 가슴을 관통하는 기분이었다.

 

 “그게 무슨.”

 

 “조금 전과 질문의 요지는 똑같아. 너는 어떤 존재지?”

 

 “그게 무슨 생뚱맞은 소리에요?”

 

 서늘하게 나를 보던 그의 눈이 위험하게 이글거렸다.

 

 “사람? 아니면 혹시나.”

 

 “......”

 

 “마녀라거나?”

 

 ......!

 

 순간 명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동시에 형용할 수 없는 소름이 발끝에서부터 어깻죽지까지 타고 흘렀다.

 

 그런 것을 물어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 도대체, 아니 그러니까.

 

 “마녀, 라니요?”

 

 얼굴에 주름이 지도록 눈을 질끈 감으며 그에게 보이지 않게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귓가로 음산한 웃음소리가 파고들었다.

 

 “아. 내가 실없는 농담을 조금 좋아해.”

 

 털끝까지도 곤두섰다.

 

 “내가 책에서 봤던 마녀랑 너무 비슷하게 생겨서 말이야.”

 

 “......”

 

 그가 한쪽 눈꼬리를 찡긋 하고는 양 옆에 난 신발장 한쪽 문을 열어 박스를 꺼냈다. 얼어붙어있는 나와는 대조적으로 아주 차분한 느낌이었다.

 

 이내 박스 안에서 신발을 꺼낸 그가 내 앞에 그것을 내려놓으며 짧게 웃었다.

 

 “얼추 짐작해서 사왔어. 맞을지 장담은 못하니까 일단은 이걸로 신고가.”

 

 일어선 그가 나를 빤히 내려다봤다. 정확히는 마녀의 각인이 새겨진 나의 팔이었다. 황급히 원피스 니트를 잡아당겨 그것을 숨겼다.

 

 말없이 싱긋 웃는 그의 모습이 더욱 수상해 어깨가 쪼그라든 봉지처럼 움츠러들었다.

 

 일단 촉이 안 좋은 건 둘째치고서라도 이런 수상한 친절을 몸소, 그것도 그에게서 받고 있자니 더욱 불안했다.

 

 얼른 도망치고 싶었다. 지면에 박혀버린 발을 억지로 떼어 신발 안에 구겨 넣었다.

 

 “새 신발인데 너무하는군.”

 

 그가 쓴웃음을 짓는 것이 보였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시선을 회피하며 대답했다.

 

 “갈게요.”

 

 도망치듯이 문을 열었다.

 

 자꾸만 흔들리는 눈동자를 억지로 부여잡은 채로 꼿꼿해진 발걸음에 힘을 부여하며 문을 닫을 때였다.

 

 “나는 다니엘이야.”

 

 그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

 

 “앞으로 자주 볼 것 같은 예감이 드는군.”

 

 피식 웃는 소리가 들렸다.

 

 “별로요.”

 

 마른침을 간신히 삼키고 쏘아붙이듯이 대답하며 문을 닫았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문을 닫고 나서야 벽 한가운데에 섰다. 엉킨 발이 당장이라도 꼬부라져 주저앉을 것만 같았다.

 

 운동 한번 하지 않았는데도 헉헉, 거리는 숨소리가 입술사이를 뚫고 비산했다.

 

 “도대체 뭐지......?”

 

 저렇게 진지한 얼굴로 그런 것을 물어오리라고는 절대 예상하지 못했다. 덧붙여 모든 것을 꿰뚫고 있다는 듯한 그의 눈빛은 그 자체로 공포였다. 담담한 말투마저도.

 

 갑작스럽게 나타난 걸로도 모자라 나의 실체를 파악하려는 그의 이질감에 경계심이 잔뜩 돋아나는 기분이었다.

 

 그는 나를 알고라도 있는 것일까?

 

 “......다니엘.”

 

 종잡을 수 없었다.

 

 *

 

 68층을 전부 사용하는 다니엘의 공간.

 

 그곳에서도 벽에 붙여져 있는 하나의 문을 타고 가면 그의 집무실이 있었다.

 

 강선호가 다가와 복잡한 표정으로 서류더미를 뚫어져라 응시하던 다니엘에게로 메밀차를 내밀었다.

 

 “유기농 메밀차입니다.”

 

 다니엘은 강선호와 두 눈을 마주치며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맛없어.”

 

 “그래도 드셔야합니다. 건강이 최우선이니까요.”

 

 강선호는 자신이 이것을 마시기 전에는 좀체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 강직한 인간이다. 당연하게도 다니엘에게는 그것이 성가셨다.

 

 “놓고 가.”

 

 강선호를 떼어놓을 요량으로 대답했는데, 그는 발이 땅에 붙어버렸는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다니엘이 한쪽 눈썹을 치켜뜨자, 쭈뼛거리던 강선호가 어렵사리 말을 꺼냈다.

 

 “저, 대표님.”

 

 “왜.”

 

 강선호는 요점만 딱 짚어 대답했다.

 

 “문제가 살짝 생겼습니다.”

 

 그제야 다니엘은 자세를 고쳐 잡고는 폭신한 의자에 등을 깊이 파묻었다. 거치대에 한쪽 손을 올리고 삐딱하게 턱을 괜 그가 물었다.

 

 “뭔데?”

 

 입술을 잘근 물던 강선호가 대답했다.

 

 “그날, 클럽 안에서 누군가 목격자가 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다니엘이 사람을 때려눕힌 영상을 가지고 폭로하겠다고 하던 인물이 나타났는데, 어떻게 할까요?”

 

 “폭로?”

 

 그 말을 듣고 약간 멈칫한 그가, 이내 입꼬리를 슬며시 말아 올리며 웃었다.

 

 “누가?”

 

 “하필 목격자가 기자였던 모양입니다. 영상을 가지고 거래를 제안하고 있습니다. 아니라면 다니엘의 이미지를 추락시키겠다고 하더군요.”

 

 강선호가 정직하게 서서 대답했다. 다니엘이 입가에 조소를 담아냈다.

 

 “이름은 알아냈고?”

 

 “알아냈습니다. 클럽 안의 영상을 이미 확보한 상태입니다.”

 

 다니엘은 그제야 의자에서 느릿하게 일어났다. 강선호의 눈가로 곧, 그가 거들떠보지도 않던 메밀차가 식어가는 것이 보였다.

 

 “제가 직접 처리할까요?”

 

 강선호가 물었다. 다니엘은 시시각각 빛이 폭사하는 통유리창에 서 있다가 나지막이 대답했다.

 

 “적당히 돈 주고 타일러서 카메라 받아내. 쓸데없는 짓은 지양하는 게 우리에게도 여러모로 이익이니까.”

 

 “알겠습니다.”

 

 강선호가 고개를 숙여 발길을 돌릴 때였다.

 

 “강선호.”

 

 그가 반쯤 돌린 고개를 다시 세우고는 다니엘을 쳐다보았다.

 

 “예.”

 

 “혹시 말이야.”

 

 다니엘은 여전히 고개를 돌리지 않은 채로 담담하게 물었다.

 

 “꿈에도 그리던 여자가 네 앞에 나타났다면 어떡할 거지?”

 

 다소 엉뚱한 질문에 강선호가 멈칫했다.

 

 “......예?”

 

 “그런데 그 여자의 심장을 파먹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증오하는 대상이라면?”

 

 강선호는 마른 입술을 적시며 대답했다.

 

 “저라면 그 여자를 유혹할 것 같습니다.”

 

 “왜지?”

 

 “사랑은 인간이 나타낼 수 있는 최고의 인류애적 감정인 동시에, 가장 위험하고도 무자비한 복수의 무기가 되기도 하니까요.”

 

 “......”

 

 다니엘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 뭔가를 골몰히 생각하기라도 하는 듯이 묵직한 침묵을 내보일 뿐.

 

 강선호는 그의 대답이 있을 때까지 물끄러미 다니엘의 탄탄한 등판을 보고 있었다.

 

 보이지 않는 기다림의 한숨이 강선호의 입가에서 진하게 나타날 무렵, 서서히 그가 고개를 돌리기 시작했다.

 

 강선호는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후광을 등에 업은 다니엘의 미소가 그 무엇보다도 찬란하고, 또 달콤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웃음은.

 

 “그것 참.”

 

 “......”

 

 “좋은 생각이야.”

 

 점차 사악한 악마의 웃음이 되었다.

작가의 말
 

 “너는 어떤 존재지?”

 :저는 귤을 먹고 있는 존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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