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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군의 주인님
작가 : 정블루
작품등록일 : 2017.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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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없는 너와 나 [4]
작성일 : 17-12-15     조회 : 477     추천 : 0     분량 : 8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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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로엔 글로벌 호텔.

 

 객실예약부서.

 

 보통, 호텔 예약을 잡기 위한 고객은 두 부류로 나뉜다.

 

 가격과 교통편, 여행목적에 편승하여 해도 되지 않을 설명들까지 장황하게 늘어놓아야 마음이 움직이는 고객.

 

 이런 고객들은 대체적으로 꼼꼼하여 웬만해서는 실수를 눈감아주지 않는다. 호텔의 매출 상승에 도움이 되려면 조그마한 말실수 하나마저도 조심해야 하는 고객들이다.

 

 두 번째로는 파티를 즐기려거나 주변에 카지노 시설이 있는 호텔을 찾는 고객들이다.

 

 이런 손님들은 그저 객실과 조식 정도만 제공되는 실리적인 부분만을 챙기기에 따로 무언가를 요구하지는 않는다. 향락을 위한 여행목적이 다분한 손님들이다.

 

 물론 세부적인 사항으로만 들어가자면 예외적인 고객들도 수없이 많다.

 

 비즈니스를 위해 출장 온 고객들부터, 외국인 단체관광객들, 가족끼리의 기념적인 여행과 커플들의 하룻밤을 위한 놀이시설을 제공하는 장소로 이용하는 등.

 

 턱을 한쪽으로 기울여 전화를 받았다.

 

 “네, 고객님. 이번 달 프로모션에 의거, 이전 3번째 방문 이상인 고객님들께는 20프로의 추가 할인이 들어가고 있습니다. 홈페이지에 나와 있듯이 10프로를 넘기지 않는 신용카드와의 중복할인 또한 가능하시고요. 대신, 객실 타입은 스탠다드와 프레스티지룸을 제외한 전 객실에 세일링이 적용됩니다.”

 

 머릿속에 공식처럼 뿌리박힌 예약에 관한 정보들을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정확하고 빠짐없이 전달해야만 한다.

 

 [그럼 로얄 트윈룸으로 할게요.]

 

 “알겠습니다. 결제는 어떻게 해드릴까요?”

 

 [신용카드요. 아, 10프로 추가할인 적용 안 되는 걸로요.]

 

 “알겠습니다. 카드는 앞면에 부착되어 있는 번호 12자리와 년월 사항에 대해 미리 오픈을 시켜주셔야 합니다. 또한 예약자의 성함과 일치해야 합니다. 괜찮으십니까?”

 

 [그렇게 해주세요.]

 

 이런 사람들은 굉장히 교과서적인 손님들이다. 괜한 잡음도 없고 서로가 순조로운 거래로 끝나는 경우가 많다.

 

 “예, 로엔 글로벌 호텔 객실 예약과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대실 좀 하려고 하는데요.]

 

 간혹 이런 손님들이 걸리기도 한다. 한눈에 척 봐도 어린 남자의 말투다.

 

 “저희 호텔은 대실 객실을 제공하지 않습니다. 혹여나 대실의 용도로 사용하실 거라면 똑같이 숙박료로 적용이 됩니다. 괜찮으신......”

 

 뚝, 전화가 기다렸다는 듯이 끊겼다.

 

 “......가요. 후.”

 

 눈가가 살짝 꿈틀거렸지만 옅은 한숨을 내쉬는 걸로 마무리한다. 이 정도는 애교에 가까운 것이었으니까.

 

 “신희진 고객님, 어젯밤에 휴대폰 충전기를 잃어버리셨다고요? 미리 연락처를 주시면 메이드팀에게 확인을 하고 다시 연락을......”

 

 “What can I do for you, sir?”

 

 “ok, I’ll take care of it!”

 

 “아드님이 일요일에 시험이 있으셔서 토요일 날 부산에서 방문을 하신다는 말씀이시죠?”

 

 “그게 아니라요, 고객님! 제 말씀 좀 들어보세요.”

 

 객실예약부서의 분위기는 꽤나 전투적이다. 긍정의 의미로만 보자면 활발하고, 나쁜 의미로 만 보자면 예약기계들이다.

 

 감정이 있는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절대적으로 감정을 배제하고 말해야 하는 것이 특징이다. 물론 모든 서비스업은 동일하다. 고객의 마음을 사야하고, 그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였으니까. 그래야만 우리 또한 남의 월급을 받아먹을 수 있다.

 

 “야, 이하연.”

 

 강하지가 다가왔다. 그녀는 오늘 오전 타임을 쉰 덕에 얼굴이 꽤나 밝아보였다.

 

 턱, 소리가 나며 내 앞에 모카라떼 한잔이 수줍게 고개를 내민다. 하지가 업무용 책상위에 컵을 내려놓으며 머쓱한 웃음을 내보였다.

 

 “그날 진짜 미안해.”

 

 “벌써 이번만 사과가 백두 번째야.”

 

 클럽 안에서의 일은 강하지의 사과로 일단락되었다.

 

 사실 사과랄 것도 없는 일이었지만 자꾸만 미안하다고 하는 통에 고막이 아플 지경이다.

 

 하지는 내가 VIP실에서 없어진 것을 알고 한참동안을 나를 찾아 눈에 불을 켜고 다녔다고 한다.

 

 신고를 할까 하다가 결국 클럽 직원에게 몰래 일말의 사건을 전해들은 후로 그녀는 나를 졸졸 따라다니며 사과했다.

 

 “진짜 미안. 내가 다음에 돈가스 말고 통 크게 치즈돈가스로 쏠게.”

 

 하지와 나는 아침에 온 뒤로 퇴근할 때까지 한시도 떨어지지 않는다. 정확히는 그녀가 내 옆에 철썩 같이 붙어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도 몰랐다.

 

 “후식으로 치즈빙수도?”

 

 이럴 때는 단순하게 대응하는 것이 최고다.

 

 강한 척해도 마음이 여리고 걱정이 많은 하지를 안심시키는 데에는 농담만한 것이 없다.

 

 역시나 그녀는 금세 쾌활한 기색이 되었다.

 

 “1인 1빙수로 사주마.”

 

 “이빨 썩어.”

 

 “이리와, 이하연.”

 

 그녀는 내 어깨에 스스럼없이 손을 올리며 제 쪽으로 끌어당겼다.

 

 “숨 막혀.”

 

 겨우 그것을 뿌리치자마자 누군가 통로 끝에서 다가오며 헛기침을 했다.

 

 “크흠.”

 

 호텔의 홍보 담당을 주로 맡고 있는 박현서 차장이었다. 객실예약과에서 일하는 우리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쉽게 말해 노른자위 부서였다.

 

 회사에서도 각 부서마다 각각의 실세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들은 대부분 힘과 권력을 등에 업은 존재였지만, 문제는 그런 사람들은 대부분 성격적으로 뚜렷한 문제점들을 하나씩 떠안고 있는 경우가 많았다.

 

 박현서 차장 또한 로엔 글로벌 호텔의 실세 중 한명이었다. 말하는 것이 밉상인 통에 대부분 그녀를 좋아하지 않는다. 알음알음 들어서 알게 된 거지만 로엔 그룹 대주주의 무남독녀라고 했다. 갑자기 저 여자가 왜 여기에?

 

 박차장이 팔짱을 끼고 약간의 거만한 웃음을 띠며 대답했다.

 

 “객실예약부서의 주간 파트 직원들의 퇴근 시간이 몇 시인가요?”

 

 “6시 반입니다.”

 

 예약부서 최팀장이 넌지시 대답했다.

 

 “그렇군요. 전달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약간 무게를 잡으려고 발끝을 뻗대던 박차장이 일순간 얼굴을 붉히며 어쩔 줄 몰라했다.

 

 “흐음, 흠.”

 

 놀라운 것은 우리였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우리에게 저런 인간적인 모습을 보일 정도의 인물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슨 꿍꿍이래?

 

 “일전에 들어서 아시겠지만 로엔 글로벌 호텔이 아주 건실한 투자처에 매각이 되었습니다. 아실런지 모르겠지만.”

 

 “......”

 

 “각국 귀빈들도 자주 즐겨 찾는다는 전 세계적인 호텔, 엘르 호텔입니다.”

 

 반응은 즉각 나타났다.

 

 “오오.”

 

 “우와.”

 

 “헐. 엘르 호텔이래!”

 

 직원들 모두 이구동성으로 놀람을 표현했다. 모두가 반기는 분위기였다.

 

 “시끄럽군요! 경박한 반응은 자제해주시길 바랍니다.”

 

 박차장의 얼굴이 단박에 일그러지며 한마디 했다. 조금 전까지도 제일 먼저 반색하던 꼴을 보이던 것이 누구였더라.

 

 “아무튼 오늘 그 대단하신 엘르 호텔의 최고경영자께서 이곳 로엔 글로벌 호텔에 친히 방문해 직원들을 한분, 한분 찾아뵙는다고 하니 퇴근을 조금만 미뤄주시길 바랍니다.”

 

 그녀의 얼굴이 다시금 홍당무가 되었다.

 

 “얼마나 멋들어진 분인지, 보시면 후회 안 할 거라고 장담하고 싶네요. 아흥.”

 

 도저히 적응 안 되는 비음마저도.

 

 놀라울 지경을 넘어 어안이 벙벙했다.

 

 골드미스를 지향한다고는 하지만 결국 노처녀였던 39세의 박차장이 저렇게 부끄러워하는 꼴이라니.

 

 더군다나 그녀는 철저한 외모지상주의였다. 그 말은 곧 TV속의 모델 같은 남자를 선호한다는 말이었다.

 

 “아무튼 그분을 만난다면 경거망동하지 말라고 당부 드리고 싶군요. 또한 당분간은 예약을 받으실 때 로엔 글로벌 호텔의 이름은 그대로 사용하도록 할게요. 주간 회의에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실행할지에 대하여 따로 언질을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막간 조회를 이만 마치도록 하죠! 흥.”

 

 맙소사.

 

 저 흥, 소리는 도대체 뭐지?

 

 특유의 콧소리를 내며 총총 사라지는 박차장의 뒤를 쳐다보던 내 옆으로 강하지가 다가와 속삭였다.

 

 “봤냐? 박차장 뒤 허벅지 쪽 스타킹에 김치 국물 묻은 거?”

 

 강하지는 눈썰미도 좋다.

 

 “못 봤는데.”

 

 “아깝다. 얘기해줄까 하다가 한 소리 들을까봐서 참았거든.”

 

 “아서라 아서. 괜히 쪽팔린 거 티내기 싫어서 너한테 더 뭐라 할 걸.”

 

 “그치.”

 

 헤실 웃던 하지가 자신의 두 손을 마주잡으며 은근 기대감어린 말을 던졌다.

 

 “도대체 얼마나 잘생겼기에 저렇게 속마음 잘 숨기는 박차장이 주체를 못할까. 기대되지 않냐?”

 

 “난 별로.”

 

 시큰둥하게 대답했다. 외모적인 부분은 나에게 있어 별 중요사항이 아니다.

 

 뭔가 번뜩하는 존재감은 있었다. 그러고 보니.

 

 “그 남자는 어떻게 됐을까......”

 

 막연하게 그 남자가 떠올랐다.

 

 사실 생각하고 싶어서 생각이 난 것은 아니었다. 어디까지나 하지의 ‘잘생긴 남자’ 라는 말에 자연스럽게 그 남자가 떠오른 것일 뿐이었다.

 

 사실 70년 넘는 인생에 그 남자만한 미남은 본 적이 없을 정도다. 조물주가 섬세하게 몇날 며칠을 빚어 완성된 걸작의 느낌이 단연 그에게서 풍겨졌을 정도였으니까.

 

 단지 목에 걸린 가시같이 찜찜한 부분은 아직도 남아있었다.

 

 “대뜸 마녀라니......”

 

 해결되지 않은 난제의 수학공식이 머릿속에 불쾌한 찌꺼기처럼 남아있는 기분이었다. 도대체 밑도 끝도 없이 마녀라는 말이 왜 하필 그의 입에서 튀어나왔을까?

 

 “무슨 생각 하냐?”

 

 마침 하지가 어깨를 툭 쳤다.

 

 “응?”

 

 “너 전화 왔어.”

 

 “아.”

 

 고객 전화가 온 것을 까마득하게 잊을 정도로 그 남자의 존재감에 너무 열중했었나 보다.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로엔 글로벌 호텔 객실예약부서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로얄 프리미어 더블룸을 예약하려고 하는데요.]

 

 “따로 가격을 보고 오신 호텔예약처가 있으신가요?”

 

 [조금 전에 페이스북 이벤트 보고 연락을......“

 

 그 이후부터는 어떻게 응대했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환청이 점차 도졌기 때문이었다.

 

 별안간 쇠 긁는 목소리와 함께 그들의 피 끓는 메아리가 들려왔다.

 

 ㅡ저주받은 피의 마녀야.

 

 ㅡ감히 죽은 이의 안구를 적출하고도 네가 제명에 살 수 있을까?

 

 ㅡ네가 나를 죽인 거야, 네가 나를 죽인 거라고!

 

 이럴 때가 오면 패닉 상태에 이른다.

 

 아직도 좀체 적응이 되지 않았던 까닭인지 재빨리 하도현이 처방해주었던 알약을 부랴부랴 서랍에서 꺼내기 시작했다.

 

 덜덜 떨리는 손과 비례해 환청의 강도가 점점 맹렬하게 나의 귓가를 짓밟았다.

 

 ㅡ당장 나의 눈알을 제자리에 갖다놓지 못해!

 

 ㅡ언젠가 너의 팔다리를 모두 잘라버릴 거야. 기대해? 알았지?

 

 ㅡ똑같은 피의 복수가 시작될 거라고!

 

 곧 있어 탁한 빛을 띤 여러 모양의 환각들이 시시각각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

 

 누구는 절규하는 표정으로, 어떤 것은 꼬마유령의 형체가 되어 자신의 어깨를 뜯어먹고 있었다. 비릿한 웃음으로 나를 노려다보면서.

 

 ”제발......“

 

 약통에서 우수수 흘러내린 알약이 팔을 타고 아무렇게나 흘러내린다.

 

 ”야, 너 괜찮아?“

 

 옆자리에 앉은 하지가 다분히 걱정 섞인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에 신경 쓸 겨를은 없다.

 

 정신없는 표정으로 땅에 흘러내린 알약을 주워 모아 허겁지겁 입안에 털어 넣었다. 조금 전에 하지가 주었던 식은 모카라떼와 함께 목 넘김 하고서야 몇 초 후, 기어이 환청들이 귓가에서 들리지 않게 되었다.

 

 지독한 숨이 어느새 안도의 숨결이 되어 입가를 타고 번졌다.

 

 ”하아.“

 

 이마로 흘러내린 식은땀을 닦을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이하연, 진짜......“

 

 하지의 걱정 또한 못들은 척.

 

 오늘도 제발 하루가 무사히 지나가기를 바랐다.

 

 나는 곧 본능처럼 휴대폰 연락처에 고이 저장되어 있는 하도현의 번호를 찾아내고 있었다.

 

 알약은 단지 임시방편일 뿐이었다.

 

 하도현을 만나야 이 빌어먹을 환각과 환청이 보이고, 또 들리지 않을 것임을 직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서 느껴지는 생명, 생기, 모든 충만한 에너지가 필요했다. 그래야 이 지옥의 문턱으로부터 또 며칠 정도는 해방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피곤하다.“

 

 오늘도 불면증이 시작될 것임을 알고 있었다. 긴 하루가 될 것이라는 것도.

 

 *

 

 조금 진정된 기분이 들었다.

 

 나의 부탁에 따라 알약을 처방해준 하도현의 안목이 그저 고마울 뿐이었다. 심지어 이 알약마저도 그에게서 직접 받으면 공짜다.

 

 ”물 마셔.“

 

 ”고마워.“

 

 사내휴게실 안에서 힘없이 의자에 걸터앉은 나를 보고 하지가 따듯한 물에 티백을 우려 넣어 나에게 건넸다. 곧, 그것을 받아들고 호, 불며 점잖게 마셨다.

 

 ”또 도진거야?“

 

 ”응.“

 

 하지가 걱정스럽게 서서 내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내가 환각과 환청을 겪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물론, 내가 마녀라는 사실은 하지 또한 절대로 모른다. 그것은 무덤까지 갖고 가야할 비밀이었으니까.

 

 ”진짜 무당 한번 찾아가야하는 거 아냐?“

 

 ”무당은 무슨.“

 

 낮게 대답하며 코웃음 쳤다.

 

 신기를 아우르는 무당들의 존재는 내 능력에 미치지 못한다. 또한 내가 겪는 이 강력한 환해 증상을 그들은 절대로 물리칠 수 없다.

 

 엄연히 말해 내가 겪고 있는 지금의 환촉 증상은 내 스스로 일으킨 것이나 다름없었다.

 

 아무리 막대사탕 하나에 내 인생을 악랄한 헤이즐에게 저당 잡혔다고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의지가 마찬가지였다.

 

 덧붙여 내가 마녀로써 했던 짓은 거의 옛날이나 지금의 사고로만 쳐도 구속이나 다름없는 중범죄였다.

 

 무덤에서 시체를 꺼내 그들의 사지를 분해하거나, 혹은 필요한 부위를 마녀의 기준에 맞춰 선별하여 마법과 시약을 만드는 등의 재료로 사용했었다.

 

 지팡이로 하늘을 나는 능력 또한 수없이 많은 주검들의 신체부위를 사용했기 때문이었다.

 

 예컨대 한 번도 남자와 정을 섞지 않은 30살 이전의 처녀 머리카락과 손톱 2점, 딱새과인 붉은가슴울새의 목을 통째로 잘라 넣고 닭의 생피를 조혈해 만든 응축된 방울 12점을 떨어뜨려 가루가 될 때까지 은근한 불에 달여 끓이면 지팡이의 추진력을 얻을 수 있는 연료를 얻는다.

 

 이렇다보니 죽은 사체들의 원귀가 독으로 작용한 경우도 심심찮게 볼 수 있었다. 헤이즐 또한 죄책감을 잊고 수많은 악독한 실험을 자행한 끝에 미쳐버려 불이 흐르는 직화소에 몸을 던졌지 않은가? 추측컨대 그럴 가능성이 농후했다.

 

 단 하나, 빌어먹을 결과가 나를 덮친 것이 예외라면 예외였다.

 

 헤이즐을 괴롭혔던 원귀들이 전부 나에게로 옮겨 붙은 곳이었다.

 

 ㅡ낄낄낄.

 

 그것은 피하려도 해도 피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오늘은 조금 일찍 퇴근을 해야겠어.“

 

 증상은 날이 갈수록 더욱 심해져만 갔다.

 

 설명되어지지 않는 환청들은 점차 나의 목을 옥죄어오고 있었다.

 

 ”그래. 네 몫까지 내가 열심히 예약 받을게. 어차피 퇴근 시간 1시간밖에 안 남았어.“

 

 하지가 고맙게도 자진해서 나의 일까지 하겠다고 했다. 그녀는 나의 고충을 아는 유일한 친구였다.

 

 ”내가 네 가방 챙겨서 나올까?“

 

 그런 하지가 너무 고마웠다.

 

 ”응. 그래줄래? 올 때 알약도 좀 부탁해.“

 

 ”알았어.“

 

 하지가 문을 열고 서둘러 걸음을 떼는 것을 끝으로 나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오늘도 예약이 될려나......“

 

 하도현이 필요했다.

 

 그만이 나의 상태를 진단하고 나를 치료해 줄 수 있다. 하도현과 찰나라도 함께 있으면 그 이후의 며칠은 고요와 평온 속에서 살아갈 수가 있다.

 

 조금 전에 하도현과 통화를 끝냈다. 내일 당장 예약을 잡아도 괜찮겠냐고 했지만, 그는 흔쾌히 오늘이라도 상관없다고 하였다.

 

 그 또한 내가 환촉 증상을 겪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 증상이 더욱 심해지기 전에 그를 찾아가야 할 것 같았다.

 

 ”하지는 왜 안와.“

 

 골을 울리는 지끈거림에 이마를 부여잡고 일어났다.

 

 서슴없이 문을 열고 정갈하게 길이 난 복도를 향해 걸었다.

 

 땅만을 보고 걷던 걸음이 점차 빨라지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아직은 약한 환청들을 이겨내고 퇴근시간에 맞춰 갈 요량이었다. 아무래도 하지에게 짐이 될 수는 없었다.

 

 걸음을 멈추고 문을 열던 발짓이 순간 맥이 풀린 듯이 멈췄다.

 

 ”반갑습니다.“

 

 ”......“

 

 직원들 모두의 시선이 한 곳으로 모아지고 있었다.

 

 한 눈에 보기에도 넓은 등판과 훤칠한 키를 자랑하는 인영이 어떤 덩치 큰 남자와 함께 서있었다. 그의 주변을 감싼 호텔의 고위급 인사들까지도.

 

 ”나는 다니엘이라고 합니다. 여러분과 같이 로엔 글로벌 호텔을 이끌어갈 기회가 생겨 무한한 영광입니다.“

 

 그는.

 

 ”......“

 

 너무도 근사하게.

 

 ”앞으로 잘 지내보죠.“

 

 말하고 있었다.

 

 모두들 숨죽인 가운데 자신만을 향해 집중하게 만드는 화술이 굉장한 남자였다. 별 거 말하지 않았던 거 같은데.

 

 나는 그때가 되어서야 움직였다. 정적인 가운데 발걸음을 내짓는 신발 소리가 탁, 땅을 가볍게 박찰 때 그가 서서히 고개를 돌렸다.

 

 서둘러 말을 삼키고 꾸벅 인사를 했다.

 

 저벅저벅, 상단에 있던 그가 나에게로 느릿하게 다가왔다. 잘 닦여진 갈색의 구두가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고개를 흠칫 들어 사무적인 웃음을 그를 향해 내보이려고 하던 그 순간.

 

 ”......헉!“

 

 발걸음이 블랙홀 한 면에 갇힌 듯 멎어버렸다.

 

 ”안녕?“

 

 다니엘이라고 불린 남자가 나를 향해 서서 한 손을 까닥거리고 있었다.

 

 나만을 보며 생긋 웃던 그의 웃음이 점차 입매 한쪽 끝에 걸려 진해지고 있었다. 아주 사악하게.

 

 맙소사.

 

 그 변태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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